[새재사랑산악회-제163차 산행] ♣ 전라남도 완도 상황봉(644m) 종주산행 (2)
▶ 2016년 4월 16~17일 (차박(車泊)-일요일 산행) ◀
* [산행 코스] 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화흥리 <대구미마을>(05:30)→ 310고지→ (오봉능선) 전망바위1·2·3→ 460고지→ 심봉(598m)→ 상황봉(644m)→ 전망대1·2→ 하느재→ 삼층 전망대(아침식사)→ 백운봉(601m) 암괴→ 업진봉(544m)→ 헬기장→ 철탑→ 숙승봉(461m)→ (동백숲)→ 불목리 주차장(11:40)→ 완도읍(개성순두부 점심식사)→ 귀경(歸京)
♣ [완도의 진산(鎭山), 상황봉] — 오늘 산행의 정점, 남해의 모든 섬을 거느리는…
☆… 오전 7시 45분, 오늘 산행의 정점 상황봉(象皇峰, 644m)에 올랐다. 큰 돌로 축대를 쌓은 후 그 위에 투박한 자연석으로 정상(頂上) 표지석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의 축대 위에 ‘烽燧臺’ 표지석이 있었다. 이곳 봉수대(烽燧臺)는 남해(南海)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불을 피워 연기와 불빛으로 그 상황을 육지로 전하는 비상통신수단이다. 임진왜란 당시 유용하게 운영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봉수대 옆에는 이동통신 기지국이 서 있다. 상황봉은 이 지역의 섬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통신기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 정상은 사방의 풍경을 조망하는 데도 최적의 장소이다. 상황봉은 완도 주위의 20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서북쪽으로 해남, 동북쪽으로 강진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제목 아래 주변의 섬들과 풍경을 그린 안내판이 있고 산재한 섬들의 이름과 주요 명승지를 자상하게 표기해 놓았다. 오늘은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고 바다에는 물안개가 자욱하여 그 풍경을 제대로 조망할 없어 안타까웠다. 아쉽지만 그림판을 조망도를 바라보며 풍경을 그린다.
동쪽으로는 바다건너 장흥의 천관산과 고흥의 적대봉, 북쪽으로는 해남의 두륜산과 강진의 주작산-덕룡산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멀리는 흑석산과 월출산이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서쪽으로는 해남의 달마산과 진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동쪽으로 바로 앞, 남해 바다에는 신지도를 비롯하여 강진의 고금도, 조약도, 그리고 신지도 뒤로 생일도, 펑일도 자리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려해상의 청산도, 소안도, 노화도, 노화도 뒤의 보길도 등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다. 이 섬들은 모두 완도군에 속한 면 단위의 섬들이다. 그러나 상황봉의 압권은 날씨가 맑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선연히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어 이 아름다운 천하를 조망할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 [하느재와 삼층 전망대] — 남도의 섬, 깊은 산속에서의 아침식사
☆… 정상(頂上)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의 산행 포인트인 백운봉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한다. 내리막길이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 바람도 잠잠하여 쾌적한 길이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 안부(鞍部)에 이르렀다. 바로 ‘하느재’이다. 하느재는 지금은 산간도로고 닦여있지만, 완도의 동쪽과 서쪽 사람들이 오고가는 고개였다. 차가 귀하던 옛날 지금 서쪽의 군외면 사람들은 모두 이 길을 통해 넘어다니던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갯마루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군외면의 완도수목원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대수골이다.
☆… 하느재에서 안내판을 보며 잠시 머문 뒤, 계단처럼 길이 나 있는 완만한 둔덕을 넘어가니, 목조로 지은 크고 높다란 삼층의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완도수목원이 등산객들을 위해 설치한 시설이란다. 각층마다 학교 교실 반 정도의 너른 공간으로 식사를 하거나 쉬어가는 곳이고, 그 중의 삼층은 사방의 시야가 열려 있는 전망대이다. 선두의 화영 대장이 바람을 피하여 1층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를 하도록 했다. 오전 8시 30분, 속속 도착하는 후미의 대원들과 함께 자리를 펴고 아침식사를 했다. 각자 지니고 도시락과 반찬을 한 자리에 내어 놓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식사를 했다. ‘꽁지 문 사장’이 별미의 ‘멍게젖비빔밥’그릇에 비벼낸다. 그리고 따끈하고 구수한 ‘된장국’과 시원한 ‘콩나물국’, 찰밥에 영양알밥 등, 서로 권하며 인정을 나누었다. 식사 후 삼층의 전망대에 올라갔다. 워낙 높은 위치이므로 사방의 풍경이 아주 잘 보인다. 우리가 지금 산행하고 있는 상황봉을 비롯한 오봉 능선의 장대한 산체가 뻗어가고, 강진만과 다도해의 풍경, 그리고 장흥반도의 부용산까지 눈에 잡히는 것이었다.
♣ [완도수목원 숯가마터] — 자생하는 붉가시나무로 질 좋은 숯을 굽던 곳
그렇게 잠시 전망대에서 잠시 머문 후, 오전 9시 정각, 산행을 계속해 나갔다. 산죽(山竹)이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는 산길은 쾌적했다. 오르내리는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아니하여, 울창한 수림(樹林) 속에서 열을 지어 가는 원색의 옷을 입은 대원들의 모습도 멋진 풍경이었다.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가니 조선시대 숯가마터가 있었다. <해설판>에 의하면, 이곳은 조선왕조실록 정조 18년(1794년)에 공납한 기록이 남아있는 전통숯가마였다. 이곳 숲에는 숯의 주원료가 되는 붉가시나무가 산림면적의 50~60%나 분포되어 있어서 주민들의 생계 수단으로 숯을 구웠다. 숯 명인 정무삼 씨는 이곳에서 숯을 구우면서 2015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붉가시나무숯은 숯의 조직이 치밀하고 화력이 세고 불이 오래 가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 [오늘 산행의 제3포인트, 백운봉] — 반듯하게 각진, 큰 바위를 타고
우리의 산행(山行)은 계속되었다. 한참 동안을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다시 경사가 급한 바윗길을 타고 올랐다. 오전 9시 33분, 드디어 백운봉(白雲峰)에 올랐다. 완강한 바윗돌로 이루어진 백운봉은 오늘 산행코스 중의 제3의 포인트이다. 정상에는 여기 저기 칼로 자른 듯한 커다란 바위들이 놓여있다. 일부러 그렇게 올려놓은 듯한 각진 바위였다. 바위 두 개가 서로 어께를 맞대어 사람인자 형상을 하고 있고, 가장 높이 있는 네모진 바위에 ‘백운봉’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짙은 구름에 숨을 죽이고 있다. 서쪽을 보니 안개 속에서 시야가 흐리고 북쪽을 바라보니 업진봉과 그 동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의 끝에 아득하게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돌올(突兀)한 산암이 바로 숙승봉이다.
♣ [오늘 산행의 제4의 포인트, 업진봉] — 벼랑에 핀, 몇 송이 연분홍 진달래 …
우리는 백운봉 정상 아래 철제 계단을 내려서 업진봉으로 향한다. 한참 동안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바위 벼랑 위는 지나는 길, 절벽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몇 송이 연분홍 진달래꽃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진달래꽃이다. 이쯤에서는 바람도 잠잠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안개 속에서 산봉이 올려다 보인다. 빽빽하게 자생하고 있는 산죽을 헤치고 업진봉에 올랐다. 오전 10시였다. 업진봉은 오늘의 산행 중 제4봉에 해당한다. 동행하는 대원들이 포즈를 취하여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하늘로 솟아오른 유아독존의 암봉, 숙승봉] —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 …
업진봉을 내려서 완만한 산길을 걸어 나갔다.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짙은 구름이 걷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니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업진봉에서 임도까지는 경사가 없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이다, 안개도 걷히고 아주 쾌적한 기분이다, 우리는 임도의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가지 않아 거대한 암봉으로 불쑥 솟아있는 숙승봉이 시야를 압도한다. 숙승봉은 오봉 능선 중 마지막 산행 포인트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산줄기가 무색하게 아주 거대하고 오연(傲然)한 암봉이다. 숙승봉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바위산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스님이 숙면(熟眠)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숙승봉(宿僧峰)이라 이름 붙였다. 직벽으로 아득하게 치솟아 있어 저기 암봉을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올라가는 길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산정에는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모습이 아득하게 올려다 보였다.
산길의 안부로 잠시 내려섰다가 산봉의 허리를 감아 돌아가는 길, 거기서 ‘수정, 향이, 짱가 대원’과 조우했다. 반가워 소녀처럼 터지는 홍소(哄笑), 깔깔깔깔 웃음소리가 산의 적막을 깨웠다. 우리가 내려갈 하산 길을 통하여 역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어울려 마지막 산봉을 함께 올랐다. 바위 절벽이 아닌 산록의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길은 아주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 산행 중 가장 급경사의 산길이다. 두 개의 길고 가파른 철계단도 올랐다. 오전 10시 40분, 드디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포인트인 숙승봉(宿僧峰, 461m)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비상헬기 착륙장 두어 배는 됨직한 너럭바위, 그 가장자리에 커다란 입석으로 서 있는 정상석, 산정에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정상석을 중심으로 환호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암봉이고 바다와 가까운 데 자리고 하고 있어, 주변을 조망하는 데 아주 좋은 곳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흐리지만 그런대로 시야가 열려 있었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상황봉-백운봉-업진봉의 장대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완도 앞바다 한려수도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 어울려 사진을 찍고 사방을 조망하며 더운 숨을 식혔다.
♣ [가파른 하산 길] —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숲길,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머물다가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하산 지점인 불목리 저수지가 있는 방향이다. 길은 가파르게 이어지는 길고 긴 내리막길이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산길이다. 더구나 바다 가까이 있는 산은 산정의 해발고도가 그대로 산행 거리가 되므로 산길의 경사가 여간 팍팍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울릉도 성인봉의 경우 바닷가 도동에서 해발 984m의 정상까지의 고도가 그대로 가파른 산행 길이 무척 팍팍하다. 미명(未明)의 새벽에 등산을 시작한지 5시간 넘게 경과했다. 하산 길은 늘 누적된 피로가 무거운 몸에 실려 고통을 준다. 특히 무릎 관절에 많은 부담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산 중턱쯤 내려오니 하늘이 환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울창한 숲 속으로 눈부신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곳 숙승봉에서 불목리로 내려오는 산록은 자생하는 동백(冬柏)나무의 군락지,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이미 땅에 떨어져 퇴색한 붉은 동백꽃들이 처연했다. 그러나 생기를 되찾은 동백의 나뭇잎은 숲으로 스며든 햇살을 받아 싱그럽게 반짝였다. 이제 막 움이 트는, 초록초록 연둣빛 새잎들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이 정결하기 그지 없다. 새롭게 피어나는 신록(新綠)을 바라보면 마음과 눈이 맑아진다. 바위 아래에는 물기를 머금은 야생화들, 그중 올망졸망 연보라빛 ‘현호색’이 은은히 눈을 뜨고 있었다.
♣ [군외면 불목리 저수지] — 무사히 하산을 완료하고, 남쪽의 완도항…
오전 11시 30분, 불목리 저수지로 하산을 완료했다. 하늘을 뒤덮었던 짙은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에는 간간이 흰 구름이 떠간다. 화창한 사월의 햇살이 쏟아지는 고요하고 맑은 날이다. 밤과 낮의 날씨의 조화가 이렇게 대조적이다. 산 아래에 원불교수련원이라는 건물이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수지엔 물이 가득하고 그 앞을 흐르는 맑은 계곡물이 흘러넘친다. 산행을 하는 동안 이렇게 날씨가 맑았더라면 산정에서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생각이 스쳐갔다.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하산했다.
우리 대원들은 버스에 올라 완도읍으로 이동하여 완도 포구 주변을 산책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항만과 포구는 백주(白晝)의 적막이 감돌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남도의 항구, 강풍주의보로 인해 출항을 하지 못한 크고 작은 배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박해 있었다.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깨끗하게 도색한 어선들이 사열을 하듯 즐비하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오후 1시, 포구 근처의 대로에 위치한 식당 <개성순두부>에서 따끈한 ‘순두부-돌솥밥’으로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 [완도(莞島)는 완도군의 주도(主島)] — 전라남도 해남(海南)에서 연륙교로 연결된 섬
☆… 완도(莞島)는, 육지인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해안에서, 남쪽으로 약 2.5㎞ 지점에 있다. 육지와는 ‘달도’를 사이에 두고 연륙교인 남창교와 완도대교로 연결되었다.
완도(莞島)는 섬이다. 완도군(莞島郡)은 본섬 완도를 중심으로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완도에는 상황봉의 중심으로 하여 남쪽은 완도읍, 북쪽은 군외면이다. 섬의 동쪽 바다에 강진의 마량과 가까운 고금도(고금면),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신지면), 생일도(생일면), 약산도(약산면), 평일도(금일읍), 금당도(금당면)가 각각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고, 남쪽 바다에는 영화 서편제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청산도(청산면), 노화도(노화면), 소안도(소안면), 고산 윤선도의 원림(園林)과 세연정이 있는 보길도(보길면) 등의 큰 섬들이 면 단위의 행정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오늘 우리의 산행은 남쪽 완도읍 대구미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북쪽 군외면 불목리로 하산했다. 완도읍과 신지도는 바다 위로 신지대교로 이어지고 신지도와 고금도는 지금 다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고금도는 강진의 마량과 연결된 고금대교가 이미 가설되어 있으니, 앞으로 완도에서 다리를 건너 신지도-고금도를 경유하여 강진으로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
완도(莞島)는 신라시대인 829년 지금의 완도읍 죽청리에 장보고에 의해 청해진(淸海津)이 설치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동·서 지역이 각각 강진현과 해남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인 1521년 군내리에 가리포진이 설치되었다. 1896년 완도군의 신설로 군내면이 되었다가 1922년 완도면으로 개칭, 1943년에 읍으로 승격했다. 1973년 섬의 북부는 군외면, 남부는 완도읍으로 관할구역이 나뉘었다. 이곳 완도항은 연안 도서(島嶼)의 생활필수품 수송기항지이며, 제주도 관광의 지원항이다. 일부 남쪽 해안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법화암·구계등·청해진지(靑海鎭址) 등의 관광명소를 비롯한 해안일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관광지로 유명하다. 제주행 카페리호가 운항되고 있다. 인구는 25,000명 정도라고 했다.
북부 일대의 해안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간석지(干潟地)가 펼쳐져 있고 남쪽 해안은 큰 만(灣)과 돌출부가 이어져 있으며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했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며, 비가 많은 해양성기후이다. 온대활엽수가 자라며, 남단에는 팽나무·동백나무 등 상록수가 자란다. 특히 완도 앞바다에 위치한 주도(珠島)의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완도 주도(珠島)의 상록수림] —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원시림 보존
완도(莞島) 주도의 상록수림은 우리나라 난대림의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그 생물학적 가치가 높다. 완도읍 포구 앞 100m 정도 떨어진 바다에 있다. 그 높이는 약 25m로 둥글고 작은 섬인데 그 모양이 구슬 같다고 하여 주도(珠島)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완도 일대는 봉산(封山)이라 하여 큰 나무 벌채가 금지되었던 곳이다. 주도의 상록수림은 원시림이다. 나무가 빽빽해서 내부 접근이 매우 어렵다. 주도의 상록수림에 대한 60년 전의 기록에 의하면 메밀잣밤나무, 육박나무, 감탕나무가 대부분이고 황칠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주도는 원시림을 그대로 유지하고 좁은 면적에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식물생태 연구 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완도, 역사(歷史)의 현장] — 장보고(張保皐)의 해상왕국, 청해진(淸海津)의 <장도>
☆… 장보고(張保皐)가 왜(倭)나 당(唐)의 해적을 근절시킬 목적으로 흥덕왕에게 군사를 주둔시킬 것을 주청하여 허락을 받아 청해진을 설치했다. 근거지가 지금의 완도 서쪽의 ‘장도’이다. 그는 청해진(淸海津)을 근거지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일본과 활발한 해상무역을 전개했다. 청해진은 일종의 해상왕국이었다. 축적된 막대한 부(富)와 군사력으로 장보고는 중앙정부의 권력전에도 관여하여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딸을 문성왕의 차비로 들이려고 한 시도가 진골귀족의 반대로 무산되자 장보고는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고, 846년 자객 염장에게 살해당했다. 그뒤 청해진은 무역 활동이 이어졌으나 851년에 철폐되었다. 청해진의 위치는 완도 본도에서 170m 정도 떨어진 장도인데, 섬 둘레를 외성과 내성으로 축성한 흔적과 목책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에 발표된 최인호의 소설 <해신(海神)>은 장보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TV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 [에필로그] — ‘그 섬에 가고 싶었다’
강풍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었다.
이미 자정을 넘긴 야심한 시간,
서른 여덟명의 산정(山情)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내달리는
장장 500km가 넘는, 야반의 고속도로,
김제 만경벌, 몰아치는 세찬 바람이 질주하는 차체를 흔들었다.
다가올 아침, 날씨는 기약할 수 없었다.
오직 하늘의 일은 하늘에 맡기는 … 겸허한 기도로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한반도의 땅끝을, 훌쩍 뛰어넘어서 도착한
남해의 섬, 완도 대구미마을 …
아, 아직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둠의 하늘이지만, 우러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명(未明)의 시간, 우리는 그렇게 순결한 새벽, 어둠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시림(原始林)의 산길로 접어드니
몰아치는 강풍에 온몸을 뒤채며 숲이 울고 있었다.
욕망으로 오염된 세상의 바람이 아닌
그냥 바람에 따라, 바람을 안고, 바람의 아픔을 앓아서
울어주는 몸짓이었다.
여명(黎明)은 바람을 타고, 서서히 우리의 산길을 열어주었다.
구름과 구름이 하늘을 덮고 지나가고
막막한 남해바다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안개와 안개가 이마를 스쳐 가는데 …
잠을 깬 산죽(山竹)이 열어준 남도의 산 능선길
심봉-상황봉-백운봉-업진봉-숙승봉을 이어가는 오봉 능선
어디를 가도 바다가 눈에 걸린다 …
구름과 안개가 시야를 열었다 가렸다 하는 사이에도
바다는 늘 수많은 섬들을 안고 거기 있었다.
‘심봉’에는 거대한 거시기 입석 하나, 무모하게 심어놓고
정상 ‘상황봉’ 산정에는, 그 남해의 섬들을 그린 사진 위에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써 놓았다.
섬은 꿈꾸는 자의 언어(言語)
그것은 늘 동경이 되고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가슴에 섬 하나씩을 품고 산다.
늘 그 섬에 가고 싶었다!!
‘백운봉’의 각진 바윗돌은 마치 하늘을 위한 제단 …
그리고 벼랑 위헤 솟아 있는 산봉, ‘업진봉’이라.
오봉 중 마지막 산봉우리 —
천상천하 유아독존, 거대한 암봉으로 솟아 하늘을 받고 있는
‘숙승봉’의 기개가 세찬 바람으로 우리의 기운을 세워주고,
붉은 동백꽃은 이미 낙화하여 처절하게 흩어져 있는
그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오는 하산 길 …
눈부신 4월의 햇살이
연둣빛 나뭇잎 사이에 내리고 있었다.
하산 지점, 고요한 저수지가 있는 불목리,
햇살이 곱다!!
간밤의 비바람과 새벽의 강풍을 밀어내고
소리 없이 내리는 밝고 따스한 하늘의 빛!
인생이 그러하리라,
고진감래(苦盡甘來), 인생이 그러하리라!
그렇게 맞는 완도의 햇살은 유난히 고왔다.
대명천지 완도읍 포구, 청람빛 바다,
강풍주의보에 발이 묶인 수많은 배들이
줄을 지어, 조용히 포구를 지키고 있었다.
화사한 햇살 속의 평화로운 남도의 포구,
지난 새벽
온몸으로 서로의 몸을 비비는 나무와 나무들의 울음을 떠올리며
사람과 사람의 아픔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완도는 이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끝>
첫댓글 산은 오를때나 내려올때나 엄청 힘던데
함께하신 아주머니들이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