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945644536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생명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집에 틀어박혀있는다면 서서히 죽어가는 선택지밖에 존재하지 않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한 남성은 장작을 피울 땔감, 혹은 배를 채울 음식, 혹은 자신 외의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이 죽음의 땅에 발을 딛고 서있다.
눈밭을 파헤치며 꽤나 먼 거리를 지나왔을 무렵, 남성의 눈에 빨간빛으로 점등하는 커다란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하게 녹슨 흔적, 희미하게 점멸하는 글자, 근 수십년동안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언어.
남자는 이 대형 화면과 화면속의 언어가 '현재 시대의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밭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건물과 출입문을 발견했다.
건물은 굉장히 거대했고, 회색빛의 단단하고 두꺼운 외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거대한 요새같았다.
허나 태어나서 처음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외관, 수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금이 간 외벽.
대체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건물의 모습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따뜻한 실내와 먹음직스러운 식사가 준비되어있는 곳이 아닐거라는 것 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들어갔을때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클 확률이 높을 것이며 잃는것이 자신의 목숨이 될 가능성 또한 낮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은 문을 열었다. 희망 없는 세상속에서 매일매일 살을 에는 눈보라를 맞는 것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이 안전하다는것을 확인한다면 조잡한 목재로 지은 집 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고 따뜻한 거처가 생긴다는 기대감을 안고,
주변을 둘러보니 말라 비틀어진 꽃과 얼어붙은 내벽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문과 이상한 도형들이 그려져있는 그림이 보였다.
샛노란 배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정중앙에 찍혀있는 점, 그 점을 세 방향에서 감싼 도형.
이 건물에 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진듯 했으나 당연히 남성은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식선에선 이 그림과 관련되어있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의 문을 열었다.
긴 복도가 나왔다.
복도를 걷는 동안 새하얀 분필 자국, 여기 저기 금가고 깨진 내벽, 괴상한 장신구를 쓰고 있는 조각상, 무슨 생물의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뼛조각들이 보였다.
발자국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남성은 이 건물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다시 한번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이 그려진 그림이 하나 더 있었다.
'대체 이 그림들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옛날의 인류들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길래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걸까?'
'그들이 이 건물을 지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새롭고 신기한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모든 지적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그리그 그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남성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고, 이 그림을 보고 돌아가는 대신 더욱 깊숙히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조그마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나 책상같이 익숙한 물건들이 보였으나 벽에 걸려있는 이상한 장치, 빛을 내는 물질 등 처음보는 물건들이 더 많았다
무너진 천장, 뼛조각을 보던 도중 다시 한번 입구에서 보았던 거대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을 이리저리 조작해보았으나 여전히 전혀 알 수 없는 글자들 투성이었다.
아무래도 이 건물에 존재하는 글자들은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닫힌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희미한 광원이라도 존재했던 이 방과는 달리, 계단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이었다.
나선형의 구조를 가진 계단을 내려가자 또다른 공간이 보였다.
나뭇잎, 작은 나무조각들, 물이 흐르는 소리, 쥐의 뼈, 희미한 빛.
위의 방과 현재 공간 모두 문명의 흔적이 있었다.
적어도 사람이 거주했었다는 공간은 맞았다는 점은 꽤나 좋은 소식이었다. 흐르는 물 소리 또한 어딘가 귀중한 식수원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였으니 남성의 심장은 가볍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문자로 이루어진 화면을 본 뒤 문을 열었다.
한손에 들 수 있는 가벼운 무게의 조명등을 찾아 다시 한번 어두운 지하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명등의 연료가 점점 떨어져가고, 앞은 점점 어두워진다.
이번 내리막길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길었다.
점점 발밑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코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 너무 많이 돌아다닌 탓일까? 남성은 몸상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직감했고 다리를 끌어당기는 물살을 헤쳐 다음 공간으로 가는 문을 찾아낸다.
문을 열자 순간적으로 귀를 막을 수 밖에 없었다.
불쾌한 고주파가 남성의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남성은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듯한 기분 나쁜 소리에 적응하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문과 글자가 적혀있는 화면이 보였다.
혹시라도 이 공간에 대해 파악할만한 '그림'이 있는지 알고자 화면을 이리저리 조사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글자뿐이었다.
그 순간 큰 소음과 함께 대형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을 확인했다.
커다란 대형 문 너머엔 허무하게도 금속재질로 이루어진 작은 사각형의 공간만이 존재했다.
이 공간에 들어서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작게 튀어나와있는 단추같은게 있었고, 이 단추를 누르자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단추를 눌러 문을 여니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온통 거대한 바위로 둘러쌓여있는 공간, 흐르는 공기가 조금 이상했다. 아까부터 계속 기침이 나온다.
또다시 의미없는 화면을 본 직후, 남성은 갑작스럽게 복통을 느끼며 핏기가 섞인 토사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후였다.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린다.
마치 지금 남성이 처한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입구로 이어지는 문은 스스로 닫혀버렸고 이제는 앞에 놓인 문을 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제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추운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엄청나게 화끈거려 얼굴을 더듬었으나 턱이 만져지지 않았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바닥엔 진득하게 눌어붙은 살점이 있었다.
몸이 뻣뻣해지는게 느껴지고 남성은 힘없이 주저앉으며 토사물을 쏟아내다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
땀에 젖은 얼굴에 붉은 횃불이 비친 후
정원의 서리 같은 침묵이 흐른 후
돌처럼 차가운 곳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은 후
고함소리와 울음 소리
감옥과 장소 그리고 반향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넘어오는 봄의 천둥소리
살아 있던 자는 이제 죽었고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가는 중이다
약간의 인내심과 함께
각종 불빛들이 점멸하며 방을 붉은색으로 채웠고 앵앵거리는 기분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남성은 이 건물에서 바깥으로 바람이 새어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화면이 암전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화면엔 end라는 글자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현재 인류 문명의 유지를 위해선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한것이 현실이다.
원전 4기를 보유하고 있는 핀란드는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꾸준히 논의해왔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끝에 '매우 거대한 시설을 지어 그곳에 방사능 폐기물을 매립한다'는 결정에 이르렀다.
이 폐기시설은 2004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중에 있으며, 18억 년 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지층을 기반으로 건설된다.
현재 버려지는 방사능 폐기물이 인체에 큰 지장이 없기까지 약 10만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화강암 지층 또한 10만년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되어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10만년 동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10만년의 세월동안 인류의 문명은 발전을 이루었을지, 쇠퇴했을지, 멸망했을지 절대 단정지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설의 존재가 후세의 지적생물체에게 드러날 경우, 엄청난 양의 방사능 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능으로 지구에 엄청난 악영향이 갈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접근하지 않을지'에 대한 대책을 강구중이고 몇 가지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1. 방사선 위험 도형, 사람의 뼈 모양, 어딘가로 급하게 이동하는 사람이 그려진 경고문 등으로 후세의 지적 생물체가 직관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것
2. 한눈에 봐도 굉장히 위험해보이는 구조물들을 대량으로 설치하여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방법,
3. 높은 비석에 UN의 공용어들과 상형문자로 이 시설에 대한 경고를 적어놓고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1단계 대책,
4. 그럼에도 누군가가 계속 접근할 경우 UN 공용어를 포함한 전세계 인류의 언어 대부분을 모두 벽에다 적는 2~3단계 대책,
5. 자갈, 화강암, 콘크리트 등으로 입구를 막은 숨겨진 방을 건설, 자체적인 전력 생산 시스템을 설치해 침입자가 들어올 경우 경고 사이렌과 비디오가 상영되게 하는 4단계 대책 등이 강구되고 있다.
4단계 대책이 뚫리게 되면 방사능 폐기물이 있는 공간으로 진입하게되고, 세상은 방사능에 뒤덮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시설의 이름은 '온칼로'이다.
이 게임은 후세의 인류가 구세대 인류의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온칼로'에 진입하는 내용을 다루는 'Burnet Matches'라는 게임이다.
플레이 링크 : Burnt Matches | Burnt Matches (pippinbarr.com) (소음주의)
글의 흥미를 위해 각색되거나 꾸며낸 부분이 존재할 수 있음
* 실제 웹게임의 결말은 온칼로에서 사망하는 것이 아닌, 온칼로에서 미지의 물질을 챙겨나온 후 주민들에게 자랑했는데 며칠 뒤 마을 전체가 괴멸했다는 내용이라고 함
첫댓글 와 저걸 저렇게 표현한 거 너무 현대 예술같다.... 게임이구나...! 내용 읽으면서 혹시..? 했는데 맞았음....
와 진짜 흥미돋이다 현실이랑 이렇게 이어지니까 더 소름돋아 잘봤어!
흥미롭다 원자력 발전과 방사능 폐기물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네
와 너무 좋다..
너무 재밌다...
와.. 엔딩까지 봐야 완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