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세 번 째 수필집은 2011년에 발간한 ‘모정으로 피는 꽃’이다. 두 번 째 수필집을 발간하고 거의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에 나왔다. 이처럼 긴 시간이 흐른 것을 두고 작가는
“기력이 다 할 때까지 논밭으로 나가는 농부처럼 창작의 샘이 바닥나는 그 날까지 서재를 지킬 요량이다.”
나는 이 말에 최중수가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도 작가라면 본받아야 할 작가 정신이라고 본다.
그는 이때부터를 그의 인생의 ‘후반기’라고 표현하였다. 아마도 직장에서 퇴임한 이후의 날인 듯 싶다. 나이로는 60대로 접어든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남짓 동안 여섯 권의 수필집을 출판했다. 어쩌면 그의 수필세계를 이 후반기의 작품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그가 문학에 발을 담군 동기를 이야기했다.
“고교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시부에 장원으로 당선된 게 문예창작과의 만남이었다. 이후 글쓰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 습작에 깊숙이 빠져들어 단편 11편 탈고로 동분서주하다가 학창시절은 막을 내렸다. 용솟음치는 열정은 뜨거웠지만 해열은 쉽지 않았다. 소도시(안동)란 활동무대의 한계 때문인가. 문예창작에 관심있는 스승을 못 만난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72년도에 안동문협의 창립 동인으로 참가하여 회장인 김주영 선생을 모시고, 활동하였다고 하였다. 내 생각으로 이것이 이유가 되어서 시가 아닌 산문, 즉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나로서는 깊은 속내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로 자처하면서 세 번 째 수필집에 자신의 문학입문 동기를 말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문학에 정진하기로 자신과 새로운 약속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수필집 앞 부분의 몇 편의 글은 자신의 기억에 많이 남아있는 과거사며, 시대 비판적인 글이다. 이것도 엄격히 따져보면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과,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르다는 것이지, 반드시 나쁘다. 옳다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마침내 그의 인생의 후반기 삶에서 배경이 되는 앞 산 자락의 대명5동의 터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앞산이 그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그의 수필을 읽고 내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고달팠던 현실 생활을 표현하였지만, 조금만 깊게 읽어보면, 그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하여 오늘에 이른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을 알수 있다. 그의 글을 보자.
“산길을 오르다가 산새 가족이 살다 간 빈 둥지를 본다. 등산객의 시선을 피한 외진 곳이다. 나뭇가지 위의 보금자리는 산새 가족의 지난 날을 되새겨 보게 한다.
어느 날 아빠와 엄마 새는 서로 만나 사랑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입도 맞추고 포옹도 하다가 둥지를 틀었으리라.한두 개의 산란으로 모성애는 싹트게 되었을 것이다. 아빠 새는 먹이를 구해오고, 엄마 새는 따스한 체온으로 부화에 들어갔을 것을 터이다. 어느 날 아기는 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세상 구경을 나왔을 것이다. 놈은 세상 물정을 모른 채 먹고 배설하며 커 갔을 것으리라.”
계속하여 아기 새가 엄마 새로부터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로 계속한다.
나는 이 글에서 자기 자신을 반추한다고 보았다. 넉넉한 삶은 아니었더라도 자신의 삶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읽었다.
나는 세 번 째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문학에 정진하겠다는 그의 각오가 이 책에 반영되었다고 보았다. 그가 다루는 글의 주제도 다양하고, 소재도 다양했다. 직장생활, 현대인의 삶에서 부딪치는 여러 사건들을 소재로 삼았다. 변해버린 가치관을 그가 선 듯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세대는 모두가 그렇다. 그런 점도 잘 소화해내었다. 내가 그의 수필을 읽고 느낀 점은 수필로의 형상화를 정말 잘 이루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째의 수필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첫 번 째 수필집의 수필세계를 쓴 강석호는 단조롭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조롭지 않고 다양하다. 그의 글 한 편을 온전히 소개하기로 하자.
첫댓글 최중수 선생의 수필은 그의 삶 그 자체이다...
그의 수필에서는 사람의 향기가 풋풋이 난다...
그의 글에는 더 보탬도 없고, 더 뺌도 없는 진실함과 순수함 그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