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 고단한 삶 버텨준 ‘아름드리 소나무’ 같은 절
어른들 마음에는 쉼을, 아이들 마음에는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사려 깊은 도량, 부산 원오사를 지난 6월21일 찾았다. 주지 정관스님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경내 조성된 명상길을 걷고 있다.
사찰은 마을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마을은 사찰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 위치한 ‘원오사’가 그러하다. 원오사와 반송 마을은 서로의 대소사를 꿰고 있다. 마을 주민과 함께한 ‘단톡방’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 건강이 위독한 어른 등 마을 주민들의 사연이 오가고, 사연을 확인하면 원오사는 곧장 ‘출동’한다. 아이들에게는 장학금을, 어른들에게는 생필품을 배달하는 것이다. 최근 중창불사까지 마친 원오사는 경내를 대대적으로 갈고 닦으며 주민을 힐링위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어른들 마음에는 쉼을, 아이들 마음에는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사려 깊은 도량, 부산 원오사를 지난 6월21일 찾았다.
해운대구 외곽 자리잡은 원오사
학원 못 가는 지역 아이들 위해
공부방 제공…명정장학재단 설립
은사 스님 유지 이어 도심포교 열심
단톡방서 주민들 대소사 챙기고
어려운 이웃에 물품·후원금 전달
중창불사 회향…‘명상길’도 조성
시민선방 차회 등 포교 활성화
“아이, 어른 아우르는 도량으로”
15년 전 원오사는 ‘마을의 등불’과 같았다. 오후 네다섯시면 마무리되는 게 사찰 일과라지만, 원오사의 불빛은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았다. 불빛의 정체는 ‘꿈나무공부방’. 그곳에는 중학생들이 모여 늦은 밤까지 공부하고 있었다. 정관스님이 원오사 주지 부임 후 가장 먼저 만든 공간이다.
정관스님은 2008년 반송 마을을 처음 마주했던 풍경을 회상했다. 해운대구 외곽에 위치해 개발이 채 이뤄지지 않은, 노후화된 모습이었다. 또 기초수급자 가정의 비율이 높아, 방과 후 학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에 스님은 경내 차실을 개조해 공부방을 열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원오사에 왔고, 저녁 공양을 한 뒤 공부를 시작했다. 평일 오후5시부터 10시까지, 꼬박 5년을 이어갔다. 이에 사찰 인근에 아동센터도 설립했다.
정관스님이 마을 주민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은사였던 명정스님이 도심포교도량을 마련하면서부터다. 통도사 극락암 선원장으로 주석하고 있던 명정스님은 당시 운봉사였던 사찰을 중창해 ‘원오사’로 이름 붙였다. 그러고선 2대 주지로 부임한 정관스님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제는 도심에 나가서 포교하는 시대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수행도량으로 거듭나라.”
정관스님은 은사 명정스님의 유지를 이어 매년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역 대학교 불교동아리에게도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불교동아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 모습.
아픈 지역 주민들의 집에 직접 방문해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는 정관스님.
포교를 하려면 마을을 알아야 했다. 정관스님은 마을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며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스님은 먼저 주민들이 소통하고 있는 ‘마을 게시판’을 살뜰히 활용했다. ‘공부방 학생 모집’ 게시글을 붙인 것이다. 학생들의 호응에 정관스님은 체계적인 포교복지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꼈고, 2012년 명정스님의 이름을 따 ‘명정장학재단’을, 이후 사찰 인근에 ‘명정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해 본격적인 장학복지사업을 펼쳤다. 밝을 명에 바를 정, 마음을 밝고 바르게 쓰라는 은사 스님 뜻을 기리고, 아이들이 그리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현재 센터에는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정 등 20여 명의 중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국영수뿐만 아니라, 미술과 다도 등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코로나19 이전엔 센터를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해외여행도 선물했다. 어린시절 견문을 더 넓혀주기 위함이다. 정관스님은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었을 때 베푸는 삶을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최근 성인이 된 아이들이 찾아왔는데 참 잘 컸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스님은 마을 게시판을 더 활용해 사찰의 주요한 소식도 알렸다. ‘축구할 어린이 모집’ 게시글은 FC명정이라는 축구단이 됐고, ‘효도순례에 함께할 어르신 모집’ 게시글로 주민들과 사찰순례도 했다. 코로나19로 중단됐지만, 스님은 행사를 언제든 재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정관스님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찰 도량을 정비했다. 갱이질을 하고 벽돌을 나르며 도량을 공사하고 있는 스님 모습을 보고선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사람인줄 알았다”는 주민 목격담도 있다.
지난 5월 중창불사가 완료된 후 테이프 컷팅식 모습.
중창불사가 완료된 부산 원오사 전경.
사찰 도량도 정비했다. 반송 마을은 고령 인구가 높지만, 이에 비해 원오사는 어르신들이 오가기 편한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찰 입구에서 법당까지 이르는 길은 수백 개의 가파른 계단이 유일했고, 산사태에 취약했다. 비좁은 공간 안에 공양실과 종무소가 함께 있어, 종무행정의 불편함은 물론 공양 한 끼도 편히 못할 정도였다.
이에 대대적인 불사가 시작됐다. 우선 계단을 통하지 않고 법당에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고, 산사태를 막기 위해 사방 공사를 진행한 뒤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셨다. 도량이 안전해진 뒤에는 차밭을 조성해 주민과 함께 가꿨다. 이밖에도 삼성각을 건립하고 명상길을 만들어 주민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법당까지 향하는 길이 너무 힘들다”는 신도들 의견에 따라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지난 5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을 새로 지어, 신축 건물에서 대웅전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이제 신도들은 엘리베이터로 편안하게 대웅전을 오르내리고, 쾌적한 공간에서 공양을 하고 있다. 또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지만, 새 공간은 향후 시민선방, 어린이법회 등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마을과 함께한 지 어언 15년, 정관스님은 최근 마을자치위원이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마을 게시판에서 공고를 보고 지원해 4: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스님은 주민들과 매주 모여 마을 발전에 관해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자투리땅 활용’을 주제로 논의해 마을 내 지저분했던 공터를 가꿔 아기자기한 포토존을 꾸몄다.
이처럼 원오사는 이미 종교적 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된 모습이다. 반송 마을은 이름난 관광지나 휘황한 도심도 아니다. 하지만 원오사가 있는 한, 힘이 들 때 쉬어가는, ‘꿈과 희망’이 남아 있는 고장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주민들과 소통하며 어려움 직접 해결”
■ 인터뷰/ 원오사 주지 정관스님
원오사 주지 정관스님
정관스님의 단톡방은 매일 뜨겁다. 마을과 관련된 단톡방만 명정장학재단, 자치위원회 등 대략 5개가 넘는다. 스님은 그중 가장 핫한 방으로 ‘희망복돼지저금통방’을 소개했다. 이는 주민들이 저금통에 돈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사업이다. 단톡방에서는 이웃들의 사연이 오가는데, 스님이 직접 힘든 처지의 주민들을 찾아간다.
이날도 정관스님은 뇌경색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민 사연을 보고 기저귀와 침대패드, 치료비용을 챙겨 나갈 준비 중이었다.
정관스님은 무엇이든 직접 한다. 갱이질을 하고 벽돌을 나르며 도량을 공사하고 있는 스님 모습을 보고선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사람인줄 알았다”는 주민 목격담도 있다.
경내 공부방이 지역을 대표하는 아동센터가 되고, 열악했던 도량이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 세월만큼 스님은 여기저기가 아프다. 도량을 공사하다 맞은 먼지로 눈물샘이 막혔고, 크게 다친 발목 인대는 여전히 아려온다.
그럼에도 출동을 해야 한다고 서두르는 스님이었다. 마지막으로 원동력을 물었지만, 스님은 한번 웃어 보이고선 별다른 대답 없이 마을 주민의 집으로 향했다. 도심 속에서 불교가, 사찰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 그저 실천으로써 답하는 듯했다.
한편 정관스님은 현재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경남본부장, 조계종부산연합회 부회장, 부산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승가의 사회적 역할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