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중반. 여름 밤이 되면 어쩌다 연산역 앞 공터에 가마니를 깔고 활동사진을 구경하느라 온 동네가 시끌벅쩍 하던 날이 있었다. '짜라락 짜라락" 소리내며 돌아가던 영사기 소리, 그 불빛에 뽀얗게 반사되어 흩날리던 흙 먼지, 임시 가설된 스크린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 듯 검은 반점들이 쏟아지던 광목 화면 . . . .
그래도 그 때는 그 것이 나라에서 시골 사람들에게 해주는 고마운 문화 행사라고 생각하며 즐거워 했었다.
그러던 그 곳에 식량 자급의 목표와 함께 농협창고가 들어섰고, 세월이 지나자 그 농협창고도 자신의 역활을 다 하고 자리를 비워주게 되었다. 그게 바로 '연산문화창고' 다.
오늘 연산문화창고에서 '봄맞이 영화음악 콘서트'가 있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수한 악단의 연주자들이란다.
외국의 유명 콩쿠르에서 수상을 해서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하니, 연주자들의 실력이 모두 대단한 모양이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 사이에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
이런 시골에까지 서울의 이름 있는 악단이 찾아와 연주를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작품을 편하게 관람할 수도 있으니. . . .
온 나라가 이런 저런 일로 싸우고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살 맛 나는 시골이 되었나 보다.
고마운 일이다!
2024. 4. 20 연산문화창고 '봄맞이 콘서트'
첫댓글 많은 뜻이 함축된 글, 반갑습니다!
이 봄 누리며, 내내 강녕하시길~
고맙습니다!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그 활동사진은 아마도 흑백이었을 것이고 소리가 나지 않는 터라 변사가 구성지게 나레이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그래도 그 자리가 문화의 명맥을 이어 연산문화센터가 세워지고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와서 좋은 연주를 하는 문화의 전당이 되었군요.
대부분 흑백 한국 영화였지요. 어쩌다 말 타고 탕탕 총 쏘던 서부 영화를 컬러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변사 나오는 무성 영화는 국민학교 1학년 때 강당에서 한 번 본 것 같은 데, 영화는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그래도, 시골에서 이 정도 문화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름방학 농촌봉사 활동으로 전기도 안들오는 마을도 있던 부여 충암, 대전문화원 지원으로 영화상영 준비해주던 기억이 나네요.
제목:민검사와 여선생
벌써 반세기가 후딱 지나갔네요 ㅠㅜ
그런 때도 있었지요. 시골로 '농촌 봉사', '농촌 계몽' 다니던 시절. . .
영화 '검사와 여 선생' 우리한테는 고전이나 다름없는 영화였는데.
그 검사가 민 검사였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