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스름한 정물이 있는 힐링여행
유옹 송창재
누런 뾰족 감이
몇 개 달려있는 풍경이
마치 내 인생의 정물화인양 쓸쓸한 하늘에
무엇을 볼까
무엇을 찾을까
밤 낮이 다른 박쥐같은 나이에
소년과 영감이 때때로 경우에 따라 둔갑하는 나이에
밖에서 자는 여행을 가잔다.
"형님 수학여행 갑시다."
전주 영근이
환갑이 넘은 아우가
밖에서 자는 여행을 가잖다.
이름하여 수학여행
육학년이 넘었고 칠학년에 접어드는 아우들이 한번 뭉치자고 한다.
가을을 타는 나를 위해서 인줄 알지만 저희들도 가을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니
쌍수로 환영이다.
양처럼 순한 제수씨들의 동의 하에 나와
그리고 일년 농사 마무리한 막내 아우와 함께 떠났다.
역시 육십 정도는 애들 맞다.
하룻저녁 술 마시며 웃으며 놀면 그만 일텐데
뮐 얼마나 먹는다고
고기에 잠옷에 빤스에
이제 마누라는 안 볼 요량의 마음으로 나선 것같다.
이름하여 해방감…
나야 부담 없어도
지들은 애들 다 보냈지만 그래도 눈 밝은 여우들이 있는데!
아무튼 벗어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니까!
제수씨들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면서 쓴다.
30, 40년씩을 아내의 슬하에서 눈치껏 밥먹이를 하던 중늙은이들이
집 떠나면 개고생 이라는 말이 허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기분들이 좋아서 가방에 빤스, 샤스. 양말, 세면도구를 챙겨서 수학여행을 떠났다.
특히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을 못간 나를 위해서
벌써 4년여 전에는 지리산에 가고 그 다음 해는 동해안을 한 바퀴 돌았고 이태 전에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때 그때마다 색다른 풍광에 색다른 먹이와 잠자리로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이번에는 서해안인지라
결국은 한반도를 한바퀴 돈 것이다.
경로우대증이 나왔지만 아직 싱싱하다고 우기는 영감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싱싱한지는 제수씨들의 평가 몫으로 남겨두고
옥구에서 고추, 고구마, 마늘등의 농사를 지으며 올해 농사를 끝낸 막내를 태우고 홍원항으로 향했다.
광어와 참돔과 가리비 굴 조개등 횟거리 안주와 해물탕거리 생선들을 사고
무창포에서 세수 대야만한 그릇에 담겨 나온 해물 칼국수를 푸짐하게 먹고 막걸리 해장으로 속을 풀었다.
전주에서 온 영근이, 진규, 동암이는 여행 축배용 부라보 잔을 들고
특히 운전과 셰프급의 요리담당 진규는 좋아하는 막걸리를 반 잔으로 때우고
나머지들은 한 잔씩을 더해서 태안반도로 떠나는 기분을 적당히 적시기 시작했다.
두주 불사하는 주당들이라 도착하면 진규도 맘놓고 한잔 하기로 하고 미흡하게 적시고 떠난다.
되는소리 안 되는소리 씨부렁거리면서 신나게 달려
철새가 유명한 서산 간척지 천수만에 도착했다.
벌써 철새들은 먹이줍기에 분주하여 우리가 저희들을 찍는 줄도 몰랐다.
그 넓은 들판에 짚을 말아놓은 소위 공룡 알이 쥐라기 공원으로 장관이었지만
철새들하고 더불어 마냥 살 수만은 없어 아쉼을 버리고 태안 음포 해수욕장으로 달렸다.
이름도 음흉한 이곳에는
아우의 아우가 펜션을 한다고 전망좋은 방을 예약해 두어서 였다.
드디어 힐링비치에 도착했다.
힐링비치에 왔으니 이제부터 힐링이다!
앞이 확 트인 바다는 우리가 힐링하러 온 것을 아는지 서서히 밀물이 되어 해변가 백사장을 적셔가고 있었다.
전망이 좋은 2층 우리 방에 여장을 풀고 힐링을 시작한 진규는
바닷가 모정에서 칼질을 시작하고
그새를 못 참은 나를 비롯한 술꾼들은 진삼이의 폭탄주 제조법에 따라 소주와 맥주가 비워가고 있었다.
트인 바다 밀물은 술이 되어 빈 가슴들을 진규가 멋지게 썰어서
작년에 산에 들락거리며 따와서 담근 취나물 잎에 둘둘 말은 참돔회와 광어회를 안주 삼았으니.,
쌓여가는 것은 빈 병들 이었다.
거기에다 펜션 주인장은 대하를 삶아내어 코까지 벌렁거리게 만든다.
멀리 수평선에 작은 노을이 연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노을은 날 잡아 하늘을 잘 만나야 멋진 황혼을 볼수 있는 것이라
농무가 살짝 낀 날이어서 아무 것도 볼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미흡하지만 연한 노을이나마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이제 아예 방으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계단이 높고 가파라서
진규가 나를 들쳐 업었다.
주지육림의 리허설은 밖에서 끝냈으니 이제 본격적인 주안상이 펼쳐졌다.
하지만 리허설이 너무 멋져서 전망좋은 방의 메스게임은 남국 어느 나라의 뽕으로 시작되었다.
잡기를 멀리하는 나는 패를 돌리는 진삼이의 손만 보다가 술만 마셨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곤하게 자고있는 아우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맑은 바닷바람이 들어오는
소리와
방이 따뜻하여 뒹굴어 다니면서 자는 머슴아들은 어느 곳에서 인지 들리는 닭 우는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맑은 바닷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는 어쩌면 봄의 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푸른 파도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진규의 칼도마 소리 때문인지 하나 둘 일어나 순서적으로 화장실 행이다.
얼굴에는 간 밤의 알콜기 덕에 소년적의 홍조띈 광대뼈들이 전흔을 말하며
어제 남겨둔 참 돔의 머리를 육수 내어 끓인 해물 라면탕은
시원하게 해장을 하랬더니 다시 해장술을 부른다.
해물 라면탕에 해장 술로 해장을 하고,
다시 또 오겠다며 아쉬워하는 주인장으로부터
태을암의 풍광과
학암포 신두리 사구에 대한 소개를 받고 그쪽으로 출발하였다.
길가 포장친 양식장에서는 황금붕어를 한 봉지사서
아잇적 추억에 빠져
바삭거리는 꽁지부터 먹으며 우리 어릴적 붕어 풀빵과는 다른 황금 붕어 맛도 보았다.
태을암은 상당히 깊고 높은 암자였다.
하지만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태안반도가 전부 보인다던데
나와 영근이는 대웅전만 둘러보고 진규와 진섭이는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배아프다고 울쌍인 동암이는 안 보이는 것이 해우소에 들어 앉았나 보다.
그런데 태을암의 압권은 암자까지 오르는 길의 단풍이었다.
지금은 말라서 버석거리며 날리고 있지만
한 열흘만 일찍 왔으면 기가막힌 단풍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
학암포 신두리 사구에서는 레슬링 장사인 강장군 동암이의 힘과 젊은 막내 진섭이의 젊음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진규가 나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사구 가까이 가려고 모래밭에 돌격했다가 차가 모래밭에서 헛돌아 결국 동암이와 진섭이가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거꾸로 밀어 겨우 모래밭을 탈출할 수 있었다.
힘을 썼으니 술도 깨고 배도 고파서
이 곳의 명물이라고 알려진
게국지와 우럭젓국을 먹기로 하고
펜션사장이 자기를 팔고 먹으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게국지는 게 국에 김치를 넣은 김치 꽃게탕의 다른 이름이었고
우럭 젓국은 젓국이 아닌 마른 우럭으로
옛날 엄마가 쌀뜨물을 받아서 끓여 주시던 조기탕 대신 마른 우럭이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동물 애호가인 진규가 개탕이라니?
그리고 젓 국을 국으로 먹다니?
하고 의심했더니
역시
개는 게고, 젓국은 뿌연 젖국이었던 것이다.
힘쓴 진섭이와 동암이와 모래에 빠진 찻속에서 미안해서 술이 깨어버린 나와 일행은 반주로 두어병 마셨다.
입가심으로 에젤리너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귀로로 접어든 우리는
다시 천수만으로 돌아서, 진섭이가 보고 싶다던
보령의 옛 성주사지로 들어섰다
감성적 농부인 막내는 폐허가 된 옛 절의 정취를 느껴 보고자 여기 저기 돌더니 자기의 상상과는 다르다고!
그리고는 겨울 일찍 떨어지는 해를 원망하며 내가 뒷풀이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시골 대폿집에 들러
전주까지 되짚어 가기에 촉박하여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고는 장도를 끝냈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는 무엇을 느꼍을까?
우리는 무엇을 생각 했을까?
누렇게 떨어져 누르스름해 지는 은행잎 날리는 가로수 길에서
우리는 뭘 보고 생각 했을까
졸업 여행이 아닌
다음의 수학 여행을 기다리며
속옷 보따리를 풀었다!
또 다시 보따리 쌀 날을 기다리며!
첫댓글 유옹 선생님 11월 셋째주 수요일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쌀쌀한 날씨에 건강유의 하시고 코로나19 및 감기조심 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고운 옥고 고이 배람했습니다
맑은 시심 끊임없이 지피시고
문운 창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