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030139_thumb.jpg)
완도의 작은 섬, 보길도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역시나 가장 아름다운 섬인 홍도와 흑산도였다. 홍도와 흑산도의 아름다움을 느낀 다음부터는 명절 가족여행에는 가능하면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섬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런 연유로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의 다음 목적지는 완도군에 속한 보길도였다. 보길도로 가려면 우선 창원에서 출발해 목포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완도까지 가야 한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30~35분 정도 가면 노화도의 동천항에 도착한다. 노화도와 보길도는 두 섬을 잇는 연도교인 '보길대교'가 있어 차를 타고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47714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48044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48076_thumb.jpg)
창원에서 완도로 가는 길이 너무나 멀어 중간 기착지로 보성에 하룻밤 묵기로 했다. 보성에서 하루를 편하게 쉰 뒤 보성에서 가장 유명한 대한다원을 구경했다. 완도로 가는 길에 있는 장흥에서 한우 물회를 먹고 완도 화흥포항으로 향했다. 화흥포항에 차를 싣고 동천항에 내리자마자 보길도의 숙소로 향했다. 노화도가 전복으로 유명한 섬이긴 하지만 딱히 볼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보길도로 곧장 향하곤 한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40155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40312_thumb.jpg)
보길도에서 다시 완도로 돌아온 건 그다음 날이었다. 완도는 신라 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활동하였던 청해진이 세워진 곳이었기 때문에 청해진 유적지를 안 보고 돌아갈 수 없었다. 시간 상으로는 완도 청해진이 뒤인 데다, 청해진이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에 포함된 구역도 아니다. 하지만 완도를 거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청해진에 반드시 들리곤 하므로 청해진을 이번 여행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국립공원 이야기 74 - 완도 청해진 (淸海鎭)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에 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에 분개하여 신라에 돌아와 왕의 허락을 받고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 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01884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502063_thumb.jpg)
장도는 섬 전체가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 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 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성터 안에는 토기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인근에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가 남아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완도의 상징 청해진
청해진 유적은 완도 동쪽 조그만 섬인 장도에 있다. 장도로 가는 길목에 청해진을 세우고 신라의 국력을 널리 알린 장보고를 기념하는 장보고기념관이 있어 잠깐 들리면 좋다. 장보고가 1,000년 전의 인물인 데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이 들어서면서 당시의 흔적을 알리는 유물은 거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장보고와 청해진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44092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44245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44156_thumb.jpg)
장보고기념관에서 장보고의 행적에 대해 공부한 뒤 나무로 만들어진 멋진 다리를 건너 장도로 건너갔다. 장도 청해진 유적은 깔끔하게 정비되어 산책하기에 좋다.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가 남아 있으며 장도의 외성과 내성이 일부 복원되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청해진 앞바다에도 수많은 배가 있었을 테지만 오랜 세월 버려져 있던 지금 그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28857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29183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29044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29351_thumb.jpg)
당나라와 일본 사이 요충지였던 청해진을 장보고가 선택한 건 뛰어난 선택이었다. 신라는 한반도 최초로 통일을 이룬 나라지만 당나라의 힘을 빌려 이룩한 성과였기에 당나라든 왜든 신라를 얕잡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주도적으로 해상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장보고는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비록 신라의 혼란한 정세 속에 휘말려 암살당하긴 했지만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위대한 장군으로 여겨지는 데는 그의 업적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일 것이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13992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14314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15008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1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414334_thumb.jpg)
복원된 청해진 유적 아래로 가면 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책이 남아있다. 사실상 청해진 유적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흔적으로 물이 빠졌을 때 장도를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썩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목책을 보면 장보고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청해진을 세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길도에서 우리가 묵은 곳은 예송리 해수욕장 바로 앞의 황토한옥펜션이었다. 예송리 해안에서 불과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아침 일출을 보기 편하며 황토로 만들어져 있어 도시에서 접할 수 없는 흙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숙소에 짐을 내린 뒤 여유롭게 바다를 산책하면 좋을 늦은 오후였지만 우리는 바다를 보는 대신 윤선도의 발자취를 쫓기로 했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33481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33198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33294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33374_thumb.jpg)
보길도에서 윤선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해안가가 아닌 보길도 중앙의 부황리다. 산으로 둘러싸여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 부용동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 계곡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동천석실이 세워져 있다.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 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1,000여 평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던 곳이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21335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20843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22921_thumb.jpg)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동천석실에 도착하니 왜 윤선도가 이곳에 자리 잡고 시를 읊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보길도를 둘러싼 아름다운 바다 대신 그가 논밭이 보이는 산 중턱에 정자를 세운 건 농업을 제일로 여기는 조선의 정치인이라는 사실과 신선이 되고 싶어 하는 이상의 절충안이다. 섬 정중앙에 위치해 보길도의 넉넉한 자연환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동천석실인 것이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308137_thumb.jpg)
동천석실에서 윤선도의 흔적을 느낀 뒤 보길도 서쪽의 망끝 전망대로 향했다. 망끝 전망대는 보길도에서 일몰을 보는 가장 좋은 장소다. 보길도의 부속섬인 갈도·옥매도·미역섬 뒤편으로 해가 넘어가는 절경을 볼 수 있다. 일몰이 아니더라도 보길도의 아름다운 산인 보죽산을 바라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255713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2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255809_thumb.jpg)
![제74화 - 보길도,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3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17%2F20220417211256073_thumb.jpg)
저녁은 보길청별항과 가까운 바위섬 횟집에서 해결했다. 보길도에서 잡은 자연산 활어를 횟감으로 뜨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함께 나오는 반찬도 종류가 다양해 배부르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보길도에서 참돔을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윤선도가 또 생각이 났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생활하면서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먹으며 어부사시사를 짓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척박한 섬과 반대로 농사짓기도 괜찮고 바다 앞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있어 풍요로운 보길도. 윤선도가 83세까지 장수하며 살다 간 건 정치에서 잠깐 물러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