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셨나이다.”(루카 2,19)
교회는 오늘, 곧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날인 오늘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로 지냅니다. 지난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낸 후 그 다음 금요일인 어제, 교회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오늘 교회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을 기억하는 성모 신심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 같은 교회의 전례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예수님의 사랑의 사건을 기억하며 그 사랑의 결정적 증거인 예수님의 몸과 피, 그 사랑의 헌신을 재현하는 미사성제의 성체 성혈을 기억하며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그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예수님의 거룩한 성심을 기억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고 그 다음으로 예수님을 나은 어머니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억하는 성모 신심 기념일을 연속적으로 지내도록 함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드러낸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낳으신 성모님의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합니다.
사실 성모 성심은 17세기 프랑스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서 예수성심의 공경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 같은 성모 성심 공경은 미사 전례로 따로 자리 잡기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예수성심 미사에서 함께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42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은 온 교회가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1996년부터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바로 다음날 이 성모성심미사를 봉헌하도록 정함으로서,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하나의 같은 마음임을 교회 전례 안에서 드러내도록 하였습니다.
이 같은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복음의 말씀은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이 어떠한 마음인지를 잘 드러내 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전하는 루카 복음의 말씀으로서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에서도 어린 예수님이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올라가던 중 일어난 사건을 전합니다. 매년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12살이 된 아들 예수와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해 가던 그 와중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아들 예수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가 부모의 곁을 떠나 홀로 성전에 남아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건대, 모든 유다인들은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번 거행되는 파스카 축제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들의 이 같은 여정은 과거 이집트 종살이하던 선조들을 모세가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탈출한 그 사건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축제로 여겨졌습니다. 이에 모든 유다인들이 그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여정은 정말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가족들이 한데 모여 성전을 향해 가는 모습, 그 무리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 무리의 끝을 찾기 힘들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가족들 서로가 한데 모여 누구 하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신의 가족 무리가 똘똘 뭉쳐 있던 상황에 예수가 돌발행동을 합니다.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가족의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성전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루카 복음사가가 이 사건을 전하며 이례적으로 예수의 나이를 12살이라고 밝히는 것은 12이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와 연관됩니다. 성경 속에서 12은 완전수로서 예수의 나이가 12살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나 성인으로서의 나이에 이르렀음을 드러냅니다. 그 나이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간 예수가 정말 말 그대로 부모의 품을 떠나 성전에 남아 율법 교사들과 토론을 나눕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하루 길을 다 갈 때까지 예수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의례히 한 무리 안에 있겠지라고 안심하고 있던 사이 예수는 자신의 길을 가고 하루 길을 다 와서야 예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모들은 다시 하루 길을 걸어 예수를 성전에서 되찾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더 놀라운 일이 생겨납니다. 하루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해 가던 부모들이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황급히 걸어온 그 길을 되짚어 아이를 찾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요셉과 마리아는 아이를 잃어버린 황망함에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찾으며 그 먼 길을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천고의 노력 끝에 성전에서 아이를 되찾았을 때, 안도의 마음과 함께 부모의 마음을 이토록 타들어가게 한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을 때, 아들 예수는 부모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이 대답에 아마도 어머니 마리아는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자식을 찾았더니 그 자식이 한다는 말이 왜 나를 찾았냐며 오히려 부모를 타박하고 있으니,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들이었다면 이렇게 대답하는 자식의 등짝을 시원하게 내려치고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도 못하게 호되게 혼내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을 전하는 루카 복음사가는 그 당시 성모님의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성모님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뜻을 마음속에 새겨 두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성모님의 이 같은 마음이 오늘 복음환호송 안에 잘 표현되어집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셨나이다.”(루카 2,19)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한 여인, 그 마음으로 그 여인을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뜻을 완수하는 순간까지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고 보호하며 끊임없이 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전하는 성모님의 이 같은 모습이 바로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 성모성심이며 그 마음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느님께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계속됩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지극히 복되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 성모님의 간구를 통해 우리의 삶이 오늘 제 1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가 이야기하는 기쁨의 삶, 곧 당에 새순이 돋아나듯, 정원에 새싹이 솟아나듯 우리의 삶이 하느님 안에서 즐거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어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이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신심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에 의탁하여 여러분 각자의 소중한 바람과 청을 좋으신 하느님께 성모님을 통해 기도함으로서 여러분의 기도가 자비로운 하느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시편 13(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