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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知彼知己"로부터!
moowee 추천 1 조회 1,258 10.11.05 10:58 댓글 97
모든 일의 시작은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상대만을 알아서도 안되고, 나만을 알아서도 안됩니다.
자신과 상대를 모두 다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도 알아야 그 관계가 올바로 형성되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느님이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알고 얻게 되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55,7~8)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지식, 즉 "神學"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하느님이 직접 당신을 알려 주셔야 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은 그 오랜 세월을 수많은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알량한 지식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그 낮디 낮은 머리로 무엇을 자꾸 생각해내어
인간의 방식으로만 하느님을 알려 해왔던 것입니다.
이에, 너무도 답답해 하시던 하느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환히 다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아는 지름길"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십니다(知彼).
또한,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저절로 "자신에 대해서" 올바로 알게 됩니다(知己).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靈眼이 열려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미천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높으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면 "知彼知己"가 가능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자신의 편지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먼저 강조하셨고
또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 얻을 수 있지만,
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 먼저 가능해질 때,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뒤따라오게 되는 것이며 더 쉬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알려면 먼저 하느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하느님을 알려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을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본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참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 현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외침이 바로 그 말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엄마 앞의 "똥싸개 젖먹이"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미약하고 미천한 우리를 "철부지" 또는 "어린이"로 대접해 주셨습니다.
엄청난 어른 대접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똥싸개 젖먹이가 "엄마의 사랑"을 자기의 지식, 생각, 경험으로 알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아는 방법은 그저 "엄마의 사랑"을 통해서 "느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느낌"입니다,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과 심장의 두근거림과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몸으로 느끼며 엄마의 사랑을 알아 갑니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똥싸개 젖먹이는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싸개 철부지의 엄마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엄마만을 찾는 일"입니다.
무조건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조금만 배가 고파도, 조금만 추워도, 조금만 더워도,,,,,
엄마는 무조건 자신만을 찾는 자신의 똥싸개 젖먹이에 대해 더욱 큰 사랑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엄마보다도 우리의 하느님은 무조건 당신께 모든 걸 내맡겨 매달리는
내맡긴 영혼들을 더욱 사랑해 주시며 행복을 느끼십니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와의 대화법은 오로지 "느낌"입니다.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는 서로 "척"하면 "착"입니다.
생각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경험이 필요없습니다.
느낌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존재만이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면 비록 그의 몸은 살아 있더라도 영은 죽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태22,32)
여러분!
하느님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끼십니까?
당신의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뜨겁게 느끼십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배우자나 자식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정말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을 애걸하십시오.
"사랑하올 저의 주인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 일은 "知彼", "知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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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책{2권 28장} 너는 너 자신을 아는 정도만큼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다.
무화추천 0조회 15513.06.28 23:58
자기 인식과 하느님 인식
1. 나의 지극히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 내게 원하신 것은
내가 나 자신의 무를 직접 체험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이냐?"
이것이 그분께서 나타나시어 처음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2. 이 말씀들을 통하여 나는 두 줄기 큰 빛을 보았다.
한 빛으로 하느님을 깨닫고
또 한빛으로 나 자신의 비참, 나 자신의 무를 보게 된 것이다.
그 나는 다만 하나의 그림자 -
태양이 자신을 비출 때에 그 태양에 의존하는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이다.
태양이 다른 지점으로 옮아가면 그림자는 그 광채 안에 존속하기를 그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자인 나의 존재도 신비적인 태양이신 하느님께 의존하고,
하느님께서는 이 그림자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실 수도 있다.
3. 그런데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이 그림자를,
따라서 나의 것도 아닌 이 그림자를 내가 얼마나 추하게 변형시켰는지,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썩어 악취가 나고 온통 구더기 같은 내가 그 소름끼치는 상태가 된 채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오, 그러니 칠흑같이 어두운 구렁 속에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4. 그 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영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는 그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다.
자기 인식과 하느님 인식은 서로 병행한다.
너는 너 자신을 아는 정도만큼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영혼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느님 안에 있는 이 그림자로 변화되고,
그의 모든 행위도 하느님 안에서 하게 된다.
5.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느님 안에 있는 영혼은
(다른 무엇을) 보거나 탐색하거나 말하는 법 없이
하느님과 함께 걸을 뿐이다.
요컨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허무를 깊이 알고 있어서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하느님 말씀의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무조건 따라가기 때문이다."
6. 내가 보기에
자기 자신을 아는 영혼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과 같다.
스스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여기저기를 지나가면서
그들을 데려가는 기차의 힘에 의하여 긴 여행을 하니 말이다.
영혼도 하느님 안에 위치함으로써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처럼 완덕의 길 안에서 숭고한 질주를 할 수 있다.
자기를 복되신 하느님 안으로 데려가는 것은 그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자기가 아니라 하느님 덕분으로 돌리는 영혼에게 주님께서는
얼마나 각별한 사랑으로 큰 은총들을 베푸시어 부요하게 하시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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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창 화살★ 제3부 23 허무맹랑한 거룩한 내맡김 영성? / {천상의 책 1권6장} 마음속의 정화
무화 추천 0 조회 125 20.01.16 02:33 댓글 40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6
마음속의 정화
7 나는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강물처럼 풍성한 은총을 부어 준다는 것을 늘 기억하여라.
자기자신을 아는 사람들이란
그들이 행한 모든 일은 내 은총 덕분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그 어떤 것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자기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내게 감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내게 응답하지 않으면
그 모든 은총과 선물과 호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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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창 화살★ 제3부 16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 / {천상의 책 9권15장}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어야 한다.
무화 추천 0 조회 222 20.01.09 00:58 댓글 60
9-15 1909년 10월 4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따라 하려면
자기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어야 한다.
3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고 있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남들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만
너 자신은 어떠냐?
너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너를 위한 보속을 바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의 나쁜 점들, 매우 비참한 점들,
나의 죄로 인한 예수님의 부재 따위를 애써 생각하였고,
그러는 바람에
이 일상적인 내적 일에서 마음이 흩어지는 상태로
나의 심한 불행을 한탄하고 있었다.
5 이때 언제나 사랑하올 내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시면서
내가 귀로 들을 수 있는 크고 엄위 넘치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8 "그만두지 못할까!
네 안에서 하고 있는 나의 일을 망칠 작정이냐!"
5 "네가 너 자신을 조정하고 싶다는 거냐?
너의 내적인 일은 너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다.
너는 나를 따라서 할 뿐이다.
내가 몸소 여타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 자신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어야 한다.
오직 내가 원하는 바를 하면
너의 나쁜 점들과 좋은 점들은 내가 다 보살피겠다.
너와 나 둘 중 누가 너에게 더 유익하게 해 주겠느냐?"
9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 아마도 그분께서 내 생각을 침묵시키셨나 보다.-
(이후부터는)
그분을 따라 하려고 애쓰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7-40 1906년 9월 2일
"나는 너를 항상 내 무릎에 올려놓고 있다."
1 오늘 아침에는 성체를 영한 뒤 하루 피정을 하기로 하였다.
나의 죽음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성체 후 복되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저의 임종 순간에 정산(精算)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지 않도록
지금 셈을 따져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성찰이 없었으니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두려움도 양심의 가책도 심적 동요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3 한데
저보다 훨씬 더 선량한 이들과 제가 전기를 읽은 성인들은 모두
그들 자신에 대하여 성찰합니다.
마음이 냉정한지 따뜻한지,
유혹을 받고 있는지 고요한지,
죄 고백을 제대로 했는지 어떤지 생각하면서
거의 모두 부끄러움과 심적 동요와 가책을 느낍니다.
4 저는 그렇게 하는대신,
주의력이 온통
당신을 기다리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그리고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지 않는 것에 쏠려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숫제 고려에 넣지도 않습니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는 듯 하거니와,
만일 그런 것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라치면
내적인 음성이 저를 잡아 흔들고 나무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5 '너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으냐?
하느님과의 일을 할 생각이나 하여라.'
그러므로 저는 자신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곧 마음이 냉정한지 따뜻한지 메말라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면
저는 틀림없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잘못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그것을 고칠 수 있도록
지금 저와 함께 셈을 좀 해 주십시오,"
그렇게 거듭거듭 간청하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6 "딸아, 나는 너를 항상 내 무릎에 올려놓고 있다.
네가 너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그토록 단단히 붙들고 있으니,
마치 자기 아이를 무릎에 올려놓은 아버지와 같다.
어떤 때는 뽀뽀를 해 주고
어떤 때는 쓰다듬어 주며
어떤 때는 자기 손으로 밥을 먹여 주고,
또 어쩌다가 때라도 묻어 있는 것이 보일 때는
손수 깨끗하게 씻어 주며 돌보는 아버지 말이다.
7 그러니 그 어린 것은
아버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 주고,
아버지가 화난 모습을 보이면 그 노여움을 진정시킨다.
요컨대, 아버지는 이 아이의 생명이기에
아이로 하여금
제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있는지,
어딘가 때가 묻은 것은 아닌지,
옷을 입을 필요가 있는지 따위
아주 사소한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게 한다.
심지어 잠을 잘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게 하는데,
그것은 (필요하다면)
아버지가 두 팔로 요람을 만들어 흔들어 주면서 아이를 잠들게 하여
자기 무릎에 눕히기 때문이다.
이 어린것은 그러니 아버지의 모든 위안이요 생명이다.
그 반면에
다 성장한 다른 자녀들은
집안을 다시 정돈하거나 제 힘으로 스스로의 몸을 씻거나
다른 모든 일을 돌본다.
8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한다.
조그마한 딸애처럼 내 무릎에 올려놓고
너 자신을 생각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와 긴밀히 결합시키고 있다.
생각은 내가 하면서 너의 모든 것을 돌보는 것이니,
때가 묻어 있으면 씻어 주고 음식이 필요해 보이면 먹여 준다.
요컨대,
모든 문제 속에서 내가 너를 앞질러 해결해 주기 때문에
너는 미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9 너를 내게 밀착시켜 꽉 붙안고 있음으로써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은총이다.
왜냐하면 (그 덕분에)
네가 숱하게 많은 결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네가 만약 너 자신을 생각한다면,
오, 얼마나 많은 결점에 떨어지고 말지 모른다!
그런즉 조그마한 딸애로서 나에 대해 할 일이나 생각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 * *
6-127,3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을 벗어나서
그 자신 안에서 살려고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자기를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선의 외양을 취하고 있더라도 결코 미덕이 아니다.
언제나 악덕이다."
11-34,2
"딸아, 나는 너를 떠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아무 걱정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곰곰이 생각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비록 선한 일 속에서 일지라도
사랑 안에 여러 개의 빈 구멍을 만드는 격이어서
내 생명이 그 영혼을 완전히 채울 수 없게 된다.
내가 마치 옆쪽으로, 구석 쪽으로 밀려 있는 듯 하니,
내게 좀 물러나 있을 기회를 주는 셈이랄까.
3-87,4
"딸아,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너를 너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 안에 있는 너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너 자신을 기억하지 말고 인정하지도 말아라.
그 대신 나를 기억하여라.
그렇게 너 자신을 무시하노라면 홀로 나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네가 너 자신을 잊고 없앨 정도가 되면
나를 아는 지식에 진보하게 되고,
다만 내 안에 있는 너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5 이를 실천하다 보면,
네가 너의 정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정신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6 영혼이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만 그 자신을 인정하게 되려면,
영혼 자신의 기원으로,
곧 자기 존재의 출발점인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창조주와 온전히 일치해야 한다.
영혼 자신의 기원에 밀착되어 있지 않은 모든 것,
자기 존재의 출발점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멸하여
무로 환원시켜야 하는 것이다.
7 이것이야말로
영혼이 자기의 기원으로 돌아가서
홀로 하느님 안에 있는 자신만을 인정하고
스스로 창조된 목적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본연의 꾸밈없는 방법이다.
따라서 영혼이 나와 온전히 일치하려면
그 자신도 나와 같이,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4-97,9
"내 딸아,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모욕을 받고 있다.
보아라,
내게 자기를 봉헌한 이들마저
생활을 바꾸어 그 모욕을 근절하기는 커녕,
어떤 점이 자기네 결점인가 하는 것을 따지는 데에만 마음을 쏟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통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통회와 사랑은 매우 효과적인 두 가지 약과 같아서
상호 협력적으로 (치유력이) 강화되기에,
이것을 바르면 영혼이 완전히 낫는데도 말이다."
12-68,4
오로지 자기의 성화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거룩함과 힘과 사랑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니,
오, 얼마나 비참해지겠느냐!
이런 이는 제 비참의 무게를 속속들이 느끼기에
자기와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살아가기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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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드 푸코Re: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의 모든 피조물과 자기 자신에서 초연해지는 일/ 이탈(천상의 책)
위무위추천 0조회 355 20.03.03 22:10
Re:{천상의책 6권 52장} / 거내영의 최고 목표-하느님 뜻 안의 삶-이탈에 대해서
(문호영 신부님)|★영 성
무화|등급변경▼|조회 260|추천 0|2019.05.06. 22:44
이탈에 대해서
‘자신과 피조물을 위하여’는 행하지 않음(=사욕을 없앰!)
(문호영 프란치스꼬 신부님께서 만드신 하느님 뜻의 영성 교재 제2부 p136에서)
1. 피조물(=지상적인 맛이 나는 일체)에서 이탈
<루카 14,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마태 13,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1-39,2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피조물로부터, 심지어 나 자신으로부터도 완전히 이탈하여,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이와 같이 하면 나의 내면이 언제나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고, 그분에 대한 생생하고 아름다운 애정을 지닐 수 있어지므로, 그분께서 나의 모든 행위를 흐뭇하게 보시며 내 마음 안에 항구적인 거처를 잡으시게 된다. 1-5,2 너를 애워싸고 있는 이 작은 세계, 곧 피조물에 대한 생각과 애착과 망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네가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온전히 네 마음속으로 들어 갈 수 없고, 따라서 네 마음을 영원히 차지할 수도 없다. 1-28,7 얘야, 나는 네가 나의 것이 아닌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참 좋겠다. 달리 말하자면, 지상적인 맛이 나는 일체를 쓰레기나 오물로 여기고 쳐다보는 것조차 딱 질색인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세속적인 물건들을 곁에 두고 흐뭇해하며 바라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얼어붙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8 … 절대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네 안에 들어오게 해선 안 된다. 나는 네게서,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거나 소유하지 않는 참된 마음의 가난을 원하기 때문이다. 2-89,3 내가 한 영혼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내 집을 짓기 위해 주요한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이다. 이것이 없고서는 내가 그 영혼 안에서 살 수 없을 뿐더러 내 집을 지을 수도 없다. 영혼이 모든 것을 나가게 한 후라야 내가 들어가서 그 영혼의 의지와 더불어 집을 짓는 것이다. 10-8,2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반면에, 단호하고 의연한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다. 아니 숫제 녹여 없앤다. 2. 자신에게서 이탈(자기 비움, 무화) <루카 9,2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1-10,5 그러니 이제는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없애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너 자신에 대한 집착을 없애야 한다. 곧 네가 오로지 내 안에서만 살고자 한다면 너 자신에 대해서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 3-93,6 그런데, 영혼이 다만 헐벗었을 뿐만 아니라 바싹 말라 가늘어지기도 했을 때라야 내 마음의 좁은 문으로 들어올 수 있고, 내 안에서 나의 길을 따라 내 생명으로 살 수 있다. 사실 내 마음은 지극히 넓어서 경계를 초월하는 무한한 것이지만, 그 문은 매우 좁아서 모든 것을 벗어 버린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6-17,5 … 나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하는 선한 영혼들이 숱하게 있다. 그렇지만, 내게 모든 것을 주기 때문에 나 자신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자애심을, 어떤 이는 자만심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 설사 (그 대상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 버리지 못하는가 하면, 약간의 허영심이 있는 사람, 세상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는 사람, 이해관계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있다. 요컨대, 어떤 사람은 이것을, 다른 사람은 저것을, 모두가 그들 자신의 것을 얼마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지장이 되어 그들 내부의 모든 것이 신적인 것으로 변화되지 못한다. 8-55,2 딸아, 사람이 자기 마음속에 나를 태어나게 하는 최상의 방법은 모든 것을 비우는 것이다. 그렇게 빈 공간을 보면 내가 그 안에 나의 모든 재산을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소유인 그 모든 것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내가 그 안에 영구적으로 머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집에 살러 간다면 자기의 소유물을 전부 옮겨다 놓을 공간을 보아야 기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쁠 턱이 없다. 나도 그렇다. 12-135,5 사욕이 없는 사람은 가장 앞서서 나아가는 사람이다. 앞서서 나아가기 때문에 내 은총의 바다가 그의 등 뒤에서 넘쳐흐른다. 그러니 그는 미처 자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이 은총의 바다에 완전히 잠겨 있게 된다. 3. 이탈하는 방법 1) ‘자신은 허무’라는 ‘자기인식’ 1-10,7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나의 자기 부정에 대해 더 많은 깨달음의 빛을 주시면서, “너 자신을 단지 하나의 그림자로 간주하여라. 네가 붙잡으려고 하면 재빨리 달아나는 그림자 말이다. 그게 바로 너다. 그러니 네가 내 안에서 그럴 듯한 사람이 되려면, 언제나 너 자신을 허무로 여겨야 한다. 2-54,1 네가 너 자신을 죽이고 너의 허무를 알수록, 나의 인성이 더욱더 빛살을 내뿜으며 내 덕행들을 너에게 줄 것이다. -자기 인식은 영혼에서 자기를 비우고 하느님으로 채운다. … 자기 자신을 알고 하느님으로 차 있는 영혼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차라리 부서지기 쉽고 썩은 내 나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불결한 부패물이 - 세상에 보이는 사물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십분 조심한다. … 자기 인식은 또한 세상 사물에 대한 인식도 함께 가져온다. 그러므로 헛되고 덧없는 모든 것과 단지 선의 탈을 쓰고 있는 악 및 피조물의 기만과 변덕 등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사물을 본연의 실상대로 알게 된 영혼은 그것이 자신 속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2) 거룩한 무관심 1-25,6 나는 네가 네 주변 사물을 거룩한 무관심으로 대하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수행함으로써 항상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정신을 모으기 바란다. 1-39,4 그분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이<=이탈>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마음 쓰지 않고 언제나 거룩한 무관심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들의 찬성이나 반대에 구애하지 않고 언제나 올바르고 아주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20,18 옆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네가 마음 쓰며 보고 있는 한, 내 마음대로 너에게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16,3 … 그런즉 너는 사람들의 칭찬이나 조롱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3)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주님을 ‘위하여’만 생각함 (사랑, 영광을 위하여) 1-9,6 … 네 눈을 내게 고정시킨다면 네가 그 어떤 사람도 판단하지 않게 될 것이고, 그 일이 고통스러운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 혹은 쉽거나 힘든 것인지 따위를 살피려고 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6-55,4 …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네 마음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일을 많이 하고 있는지 아닌지, 괴로운지 즐거운지 따위를 알려고 너 자신을 보지 마라. 네 안이건 밖이건 보지 말아라. 그런 모든 것은 네 안에서 없어져야 한다. 5 너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 모든 일을 힘자라는 데까지 하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만 눈길을 집중해야 한다. 11-28,2 딸아, 영혼이 자기를 잊으려면 그가 하거나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일을 마치 내가 그 영혼 안에서 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3 만약 기도하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고자 하신다.’ 하고 말할 일이다. 그러면 내가 그와 함께 기도한다. 일을 해야 할 때에도 ‘예수님께서 일하고자 하신다.’ 하고 말하고,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걷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식사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일어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자 하신다.’ 등 삶 속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일이다. 4 이와 같이 할 때라야 비로소 영혼이 자기 망각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기 때문에 하고, 또한 나 자신이 그것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니 말이다. ⇒ 이것을 실천하는데 의견의 은사가 아주 도움이 된다. 4. 자신에 대한 생각과 사욕이 주는 해악 7-73,2 딸아, 어떤 사람이 몹시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대단히 믿고 있다는 표다. 그런데 자기 안에 나약과 비참밖에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3 반면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표다. 하느님을 의지함으로 인해 그 자신의 비참과 나약이 하느님 안에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1) 하느님(의 생명)으로부터 벗어나게(달아나게)된다. 6-55,6 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언제나 자기를 찾는 그들 자신의 의지로 참된 신앙을 왜곡하고, 지극히 거룩한 일들을 모독하고 있는지! 사람이 거룩한 일에서도 자신의 방식과 취향과 자기만족을 찾는다면, 그렇게 자꾸 자기를 찾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니 그분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6-127,3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을 벗어나서 그 자신 안에서 살려고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자기를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선의 외양을 취하고 있더라도 결코 미덕이 아니다. 언제나 악덕이다. 11-24,9 … 사람이 그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면, 비록 덕행에 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자아를 살찌워 하느님의 생명으로부터 달아나게 된다. 10 반면에 영혼이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나에 대한 것만을 생각하면, 그 자신 안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끌어당기게 된다. 11-34,3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곰곰 생각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비록 선한 일 속에서일지라도 사랑 안에 여러 개의 빈 구멍을 만드는 격이어서 내 생명이 그 영혼을 완전히 채울 수 없게 된다. 내가 마치 옆쪽으로, 구석 쪽으로 밀려 있는 듯하니, … 4 이에 반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법이 없고 오직 나를 사랑할 생각만 하며 나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를 완전히 충만하게 한다. 2) 영혼이 꼬부라지고 무기력하게 되며 불행해진다. 11-34,5 딸아,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영혼들이 안다면! 그런 생각 때문에 그들의 영혼은 꼬부라지고 무기력하게 되며 자꾸 자기 내면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6 그렇게 자기를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인간적인 것에 기울어지고, 곱씹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기의 비참한 점들을 더욱 느끼게 되어 불행해지는 것이다. 7 반면에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고 나를 사랑할 생각만 하며 모든 것을 내게 맡길 생각만 하는 이들은 그 영혼이 올곧아진다.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줄곧 나만을 봄으로써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자라나는 것이다. 8 나를 보면 볼수록 점점 더 거룩해지고, 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부유하고 힘차며 용감해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테파노 곱비 신부의 성모님 메시지 39-5> 아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법이 없다. 제 엄마를 뚫어지게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엄마도 자기 아기를 바라본다. 보면서 엄마는 이런 말을 한다. “아이 예뻐라. 귀엽기도 하지! 넌 정말 착하구나!” 5. 이탈의 결과 2-17,3 … 자신을 벗어 버리는 정도에 따라서 내 빛이 온통 스며들게 된다. 4 … 그들은 …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적인 것도 입게 된다. 초탈한 영혼들 독특하고 각별하게 돌보는 것이 나의 섭리인 까닭이다. 나의 섭리가 어디서든지 그들을 감싸 주기에,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6-52,2 … 모든 것에서 이탈한 사람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그 자신 안팎에서, 또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완전히 이탈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 바뀐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영혼은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관상하고, 감촉하고, 포옹하기도 한다. -비어 있는 영혼만이, 자신 속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진리에 따른 사실들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고통의 소중한 가치, 참된 선인 덕행, 홀로 영원하신 분만이 필수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6-105,3 이와 같이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해서는 죽은 상태가 되면, 바로 그의 본성이 부활 때에야 풍성하게 얻게 될 특별한 은혜를 선취(先取)하게 된다. 즉, 영혼이 참여하게 될 모든 선들 외에도 스스로 영화(靈化)되고 신화(神化)되어 불멸을 입게 되었음을 지각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하늘에서 얻게 될 독특한 영광도 입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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