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신앙의 변증법, 그리고 평신도
벌써 열흘 가까이 확진자가 1400여 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점차 주위에서 백신 접종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고, 그래서인지 마음가짐이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좀 해이해진 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감염자가 속출할 줄이야.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런 식으로 주기가 되풀이된다면 코로나 역병은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 같고, 따라서 그만큼 교회도 장기화 하는 비대면 상황에 더욱 촘촘하고 적극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처해야 할 듯하다. 여러 형식들이 실험될 수 있겠지만,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개인의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소모임을 만들고 개인들이 추구하는 ‘진선미’를 본당에 구애됨 없이, 특히 지역적 한계를 훌쩍 넘는 온라인 상에서 실현해 보는 것도 비대면 시대에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방식이지 싶다. 얼마 전 한 수녀회의 플랫폼을 빌어 시작한 ‘독서클럽’은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이를 본 칼럼과 관련해 말한다면, 신앙을 인문학적으로 좀 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평신도들이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기쁨을 나누는 교회, 그런 공동체를 이룬다는 실천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생태운동과 신앙의 빛으로 탐색해 본 첫 그룹에 이어, 이번 독서모임은 구한말 ‘신축교안’ 또는 ‘제주항쟁’으로 불리는 역사 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읽고 나눈다. 1901년에 일어난 이 사건이 올해로 120년이 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제주 시민단체뿐 아니라 제주교구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시사성뿐 아니라, 차제에 평신도의 눈으로 이를 살펴보자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참가자들이 크게 공감한 부분 가운데 한 대목은 역사와 신앙의 문제에 대한 한 작중 인물의 시각이었다. “교리책에 쓰인 말과는 실지가 영 딴판이더라 이거여. 천주십계를 열심히 수계(守戒)할 생각은커녕 도리어 욕되게 허니, 그런 개망나니들이 천당 가는 교라면, 난 죽어서 지옥불 속에 떨어질지언정 그런 교는 못 믿어... 교당이 어찌 이 꼴이 되었는가. 봉세관 꼬붕이로 나서설랑 갖은 농간질로 민폐를 끼치는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협잡질, 도적질, 간음,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허니, 그게 천주 십계를 지키는 도리여?”("변방에 우짖는 새", 2013, 245-246)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제국 프랑스의 선교사를 등에 업고 마을 비신자들을 핍박한 이른바 ‘교폐’(敎弊)의 주체인 교인들을 보면서 이미 예비신자로서 곧 세례를 받겠다고 한 다짐을 (목숨을 거는 일이기에) 매우 신중하고도 결기 어린 비장함으로 번복하는 대목이다. 이 짧은 인용문에는 화자의 신앙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아가 역사와 무관한 것이 아니며, 개인의 구원과 공동체의 구원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오랫동안 천주교에서는 이 사건을 교인들이 곤경과 박해를 당했다는 뜻으로 ‘신축교난’(辛丑敎難)으로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천주교 측 사망자가 300여 명을 헤아리기 때문이었다. 다른 역사 사료와 함께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이 대목을 어떻게 볼지가 이번 그룹의 큰 숙제다.
신축교난이라는 호교론적인 표현은 조선과 프랑스의 외교적 분쟁에 초점을 둔 신축교안이라는 용어가 쓰이면서 교회도 현재 이 말을 공식 사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선교와 순교의 문제를 다룬 국문 소설은 ‘만남’, ‘흑산’, ‘조선백자 마리아상’, ‘중국이여, 중국이여!’, ‘검은 꽃’ 등 적지 않다.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면서도 역사적 사실 복원을 중심으로 ‘사건의 원형을 왜곡할 것 같은 분방한 상상력을 가능한 삼간’ 작품은 찾기 쉽지 않다.(물론, 이런 특징은 거꾸로 이 작품의 한계일 수 있다.) 사람의 정서를 파고듦으로써 감정이입이 좀 더 용이한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한 이런 토론식 독서모임이 어쩌면 ‘딱딱한’ 사회교리 강좌보다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역사와 신앙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어느덧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흥분, 슬픔, 아픔, 분노, 고뇌 등의 감정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되고 부지불식간 나와 하나가 되며, 종국에는 일종의 통쾌함으로 감정이 역전되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됨으로써,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깊이 각인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미다. ‘나는 놈 위에 즐기는 놈이 있다’지 않는가! 어쨌든, 이번 그룹은 더 만나 나가야 하겠지만 이미 한 번의 만남에서 ‘신앙인 됨’에 대해 곱씹어 보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평신도 교육’이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강좌식 교육’과 같은 뜻으로 굳어진 현실을 고려할 때, 쉽지 않지만 스스로 읽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고 나누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문화’로 바꾸는 일은, 혼돈의 시기에 평신도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일과 동시적으로 이뤄 가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여겨진다.
황사평 순교자 묘지를 찾아간 평신도들. 이곳에 신축교안으로 희생된 교인들이 묻혀 있다. ⓒ정현진 기자
'교회헌장'과 하느님 백성
쓰다 보니 서두가 길어져 본론으로 돌아가기가 애매해진 점이 없지 않지만, 사실 이번부터 몇 차례에 걸쳐 평신도 신원에 대해 쓰기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이번 칼럼은 ‘오늘의 평신도는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해 말문을 여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평신도’라는 용어의 기원은 ‘일반 사람들’을 뜻하는 그리스어 라오스(laos)와 또 현재 쓰이는 평신도의 의미에 가까운 용법으로서 지배자나 지도자 그룹에 대조되는 ‘집합적인 무리’(laity)를 뜻하는 라이코스(laikos)에 있다고 본다. 이런저런 과정 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세속적이고 반성직주의적인 사상이 가미되면서 19세기와 20세기에도 평신도라는 용어는 ‘속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그러다가 전교회 구성원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규정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와서야 이러한 부정적 시각이 결정적으로 바뀐다. 공의회의 대표 문헌 가운데 하나인 '교회헌장'에는 다양한 교회상을 소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백성’(9-17항)의 교회론을 복원하여 대표적 교회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야말로 ‘평신도 신학’의 중요하고도 든든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곧 더 이상 교회를 성직자 중심적이고 교계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순례하는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볼 것을 공식 제기했다. 나아가 '교회헌장'은 교회 구성원이 모두 하나라며 하느님 백성 사이의 평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선택된 하느님 백성은 하나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지체들의 품위도 같고, 자녀의 은총도 같고, 완덕의 소명도 같으며, 구원도 하나, 희망도, 하나이며, 사랑도 갈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또 교회 안에서는 민족이나, 국가,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결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통된 품위와 활동에서는 참으로 모두 평등하다.”(32항, 강조 필자)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인간 공동체로 규정한 점과 그 안에서의 평등을 강조한 교회론의 원천은 구성원 모두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데에서 온다. 이것이야말로 보편 사제직을 직무 사제직에 앞서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성경 여기저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과 세례 성사에 대한 강조는 평신도 신학을 전개하는 신학자들에게서 자주 목격된다. 이브 콩가르는 세례 성사를 평신도 신학의 전거로 삼는다. 평신도는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며 하느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며 그럼으로써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수행하는 신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교회헌장' 31항을 제시한다. 그는 공의회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평신도가 ‘성직자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닌 중간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례로서 축성된 이들로서 바로 그것 때문에 사명이 주어졌다고 본다. 이 말은 평신도 신원 규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콩가르는 사도직의 기본 자격이 교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례성사의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존재 자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신도의 사명, 사도직의 목적 달성을 위한 신비체의 모든 행위가 다 사도직이라고 함으로써 이 사명의 수행과 사도직을 통일시켰다’('평신도 교령' 2항)고 본다. 곧, 그는 사명(mission)과 사도직(apostolate)이 각기 라틴어와 그리스어라는 다른 어원에서 왔지만 같은 뜻이라고 단언한다. 사명이 사도직의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사도직은 12사도와 관련되어 그리스도가 보냈다는 점을 다르게 비출 뿐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1)
아시아 신학자 피터 판 역시 세례성사를 평신도 신학의 바탕으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제직과 관련해 그것의 신학적 근거는 세례성사이며 이 ‘세례 사제직’(baptismal priesthood)이야말로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엄성을 말할 수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근거로 본다. 예수 생애 당시에는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사제였으며, 당시 열두 제자를 포함해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세례를 통해 모두가 근본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강조한다.2)
(계속)
1) Y. 꽁가르, “제2차 바티칸과 평신도”, '신학전망 6', 1968, 6-7 참조.
2) Peter Phan, “The Laity in the Early Church Building Blocks for a theology of the Laity”, Journal of Vietnamese Philosophy and Theology 4. no. 2, 2002, 41.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