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온다 기약했던 그날이 마지막 날일 줄은 몰랐다
오인동 | 등록:2021-01-18 14:48:17 | 최종:2021-01-18 15:16:10
한 해외동포의 평양 일기 5 2013 - 2017 오인동
2013년9월, 1992년부터 쌓여온 정 때문인가, 떠나는 날엔 매해 문 병원장은 조선민속 예술품이나 고려인삼 등을 선물해 줘 내 서재엔 보배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번에는 명주에 춘,하,추,동의 저고리와 치마의 조선 미인도와 북의 독특한 양면수예품을 안겨줬다. 숲 속의 백학을 천연색실들로 수놓았는데 앞면과 뒷면이 똑같이 아름답다. 그리고 장선배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병원 앞뜰에 나와 손에 손을 잡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다 보니 문득 La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나눈 이래 가까이 지내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울컥 내 가슴을 쳐 올렸다.
2013년9월: 평양의학대학 문상민병원장으로 부터 받은 조선특유의 예술작품들.
북의 독특한 양면수예품의 아름다움도 기막히더군요.
‘13년 9월: 내가 떠나는 날엔 늘 그랬듯이 평양의학대학병원 앞뜰에서 다음 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작별하는 평의대원장, 원로장선배님과 굳게 손잡고 그리고 과장들과 간호원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강연과 수술하고 헤어졌지만, 동포들로부터의 이런 감동을 느낀적이 없다. ‘그래! 난 우리 형제들에게 만은 따뜻한 사람이었기 바란다’. 그동안 나와의 여정에 통일관료들과의 연결이나 소통도 재치있게 도와줘 온 지칠 줄 모르는 동행, 리화일동무의 손짓에 차에 타니 손 흔드는 저들을 밀어내듯 공항으로 달렸다. 또 온다 기약했던 그날이 마지막 날일 줄은 몰랐다.
‘09년 5월부터 나의 수술일정을 도우며 오후에는 평양의 여러 사적지며 박물관, 인민대학습당 등에 안내해 주었다. 병원관련일 말고도 나의 통일문제 원고들까지도 관련부서들과 연계시켜주는 등 참으로 내 체재 기간이 모자랄 정도로 도와주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일 들을 재치있게 기회를 마련해 주는 등 지칠 줄 모르는 나의 동행, 리화일동무와 이별하게 되었다. 그녀는 은퇴 뒤에도 내가 만수대에서 명예박사증 받았을 때 꽃다발을 안겨줬던 그녀였다.
빗발이 조금씩 내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윤동주언덕]에서 이정록 시인은 <윤동주 시인상>, 나는 <윤동주민족상>을 박영우회장으로부터 받으며 윤 시인이 남의 나라 일본 유학시절,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 한것이 광복의 염원이었다면, 나 또한 ‘해외동포의 한시적 특권’을 헛되게 하지 않기위해 ‘통일의아침’을 앞 당기려 노력하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 자리에 안혜숙 소설가, 임헌영, 도종환, 유성호, 강성도, 이재봉 교수도 함께했다. 원광대서 강연하고 정세현 총장과 만나 맹경일부부장의 안부를 전하니, 그가 “맹-맹--그 맹-경일”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판문점에서 그와 수 십 번 만나 싸웠다며 깊은 회상에 잠기더군요.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서로 자국을 위해 치열하게 다퉜던 상대가 20여 년 뒤 2018년 4.27판문점 남북정상선언 뒤풀이에서 반갑게 재회 했기 바란다.
좋은 자료라 퍼 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