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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온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신정호수관광지는 20여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온양온천역에서 내려 도로를 건너지 않고 좌측으로 돌면
버스 승강장(신한은행)이 바로 나옵니다.
운행하는 버스도 자주 있는 편이고요.
신정호(神井湖)는 1926년 농업용저수지로 축조된 인공호수입니다.
축조시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에 왜인들이 미곡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하였습니다.
당시 미곡수탈이 극심하여 식량난이 심해지자 1920년대부터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추진하면서
아산지역에서 제일 먼저 축조된 저수지가 신정호입니다.
해방 후에 1984년 국민관광단지가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계절 휴양지가 되었지만
저수지의 축조배경에는 식민지 민중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원지이기도 합니다.
호수의 둘레길은 4.8km입니다.
고향이 대전인 나는
이 곳 온양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포천의 산정호수는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더 가까운 온양의, 이름마저 비슷한 신정호수는 불과 몇 년 전에 알았습니다.
이상하기도 하지요?
고향이 온양이신 분을 일 때문에 만나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데
만나면 가끔씩 신정호수 자랑을 늘어 놓으셔서
오늘 온양에 내려온 김에 마음먹고 호수 둘레길을 한 번 걸어 보려고 합니다.
같이 나서 볼까요?
기온은 그렇게 춥지 않았지만
지난 추위로 호수는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폭설을 예고했던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은 잔뜩 흐렸다가 맑은 하늘을 보였다가
가끔은 아주 조금씩 눈발도 흩날리다가
변덕스럽기가 예닐곱 소녀와 같습니다.
일요일이어선지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걷는 가족들이 많이 보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에서도 부러움과 미안함이 교차합니다.
나는 아이들이 저만한 나이 때 잠자는 모습도 겨우 보았는데,
왜 그렇게 살아야 했었을까 하는 회한과 함께....
늦게나마 철은 들었지만
이제, 다가가기엔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제 놈도 익숙하지 않아 어색했을 행동에
도무지 곁을 내어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아부지, 그냥 하던대로 하세요~"
"에라이~ 무심한 놈아"
물론 뒤에 말은
속으로만 중얼거려 보는 독백입니다.
마산정(馬山亭)입니다.
신정호의 본래 이름은 마산저수지였습니다.
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에는 ‘마산’이라는 마을이 있었답니다.
저수지 건설로 주민들은 이주하고 전답과 가옥들은 수몰이 되었지만
없어져 버린 마을의 이름을 따서 마산저수지라 불렀습니다.
훗날 저수지 주변을 개발하여 유원지를 만들면서
경남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던 신정관의 부속시설이 있던 자리라 하여
신정호로 이름을 변경하게 되었고,
저수지의 명칭변경으로 옛 마을 이름이 사라지게 될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이 곳에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을 마산정이라 명하게 되었답니다.
강이나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수변에는
십중팔구는 민물장어나 민물매운탕을 파는 식당들이 자리하지요.
이 곳 신정호도 다르지 않아 제방 옆으로 민물장어를 파는 식당이 보입니다.
한 때 이런 형태의 식당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테이블 하나만 들어갈 수 있도록 독립공간의 작은 방을 만들어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 신경쓰지 않고
편하고 자유롭게(?) 식사도 하며 술도 마시고,
남는게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은
가끔씩 화투판도 벌이고 하던......
저 아래 보이는 방갈로에서도
온양의 선남선녀들 술 꽤나 마셨을 분위기 입니다.
창 밖으로는 호수의 풍경이 운치를 더하고,
고소하고 기름진 장어구이에 술 잔도 부딪치며
사업 이야기도 나누고, 연애도 꽃피우고 했겠지요.
그 덕에 결혼까지 해서
아이들 낳고 잘사는 부부도 있을 테고....ㅎㅎ
제방에서 보니 넓게 펼쳐진 호수가 제법 크게 보입니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오니 네 시 반쯤 되었습니다.
석양을 받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서쪽으로 잔뜩 기운 하늘은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위로,
앙상한 버드나무 가지와 갈대숲 사이로
눈이 시린 풍경을 연출합니다.
이렇게 4.8km를 걸어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신정호수로 알려졌지만
본래의 명칭은 저수지 건설로 수몰된 마을의 이름을 따서 마산저수지였답니다.
마산저수지는 당시 온양에서 온천과 신정관(神井館)이라는 숙박시설을 운영하던
경남철도주식회사(지금의 온양관광호텔)에서 저수지에 정자를 세우고 휴식처를 제공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신정호로 불리게 된 것도
경남철도주식회사에서 신정관의 부속시설로 이용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답니다.
호수 외곽으로 야외음악당, 잔디광장, 음악분수공원,
생활체육공원 및 생태수상공원 등 친환경적인 테마별 공원을 구성하고 산책로를 조성하여
시민과 관광객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야외수영장을 비롯한 33종의 체육단련시설은
운동과 놀이의 공간으로 인기가 있으며, 수상생태공원의 산책로는
청소년들의 자연학습공간이나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지금까지 온양의 신정호수 관광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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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버스를 타고 다시 전통시장으로 갑니다.
호수공원에 갈 때는 20여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로 되짚어 가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5분 남짓 주행했나 싶었는데 벌써 온양온천역에 도착했습니다.
못다 본 시장도 마저 둘러보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올라갈 생각입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한참을 걸어
전통시장의 끝에서부터 온양온천역 방향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의 끝에 뭐 대단한 볼거리가 있어서는 아니었고요,
그저 동선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둘러보다가 역 가까이에서 저녁 먹고 전철타면 적당하겠다 싶어서였지요.
온양의 전통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큽니다.
이 정도 인구 규모의 도시에서 이렇게 큰 시장 유지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시장 한편으로 푸드 트럭도 보이고,
온양시장 입구를 알리는 아치위에 '중년나이트 캬바레' 라는 문구가 시선을 끕니다.
언제 적 캬바레인데 아직도 이런 게 다 있구나 싶었구요
예전에 드라마 같은데서 시장바구니 들고 캬바레 출입하는 장면을 종종 봐 왔던 기억도 납니다.
재래시장과 캬바레..... 누구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당한 설정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병치라고도 부르는 병어입니다.
잡히는 즉시 스트레스로 인해 죽기 때문에 활어의 상태로 만나기가 어렵지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서 주로 잡히는 병어는
어물전에서 사철 구입할 수 있지만 5-6월이 제철로 맛이 가장 좋다고 하지요.
잔뼈와 내장이 적고 살이 많아 조림, 구이, 찌개로 조리하며
뼈가 부드러워서 싱싱한 선어상태의 병어는 뼈째 썰어 회로 즐깁니다.
예로부터 남도지방에서는 병어찜을 제사장에 올릴 정도로 귀한 생선이었고요.
30cm가 넘는 큰 병어는 작은 병어와 구분하여 ‘덕자’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병어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가격은 2-3배 이상 비싼 ‘덕대’ 라는 생선도 있답니다.
덕자, 덕대, 생선 이름이 어째 어릴 때 시골 친구 놈들 이름하고 비슷하기도 합니다...ㅎㅎ
사실 병어는 구이나 찌개보다도 조림으로 많이 즐깁니다.
조금 연식이 있다싶은 남도지방의 어지간한 식당들은
메뉴판 마다 병어조림이 턱~하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저처럼 술안주로 즐기는 사람들에겐 뼈째 썬 병어회가 최고이구요.
병어는 살아있는 활어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선도가 좋은 선어상태의 병어를 뼈째 썰고, 미나리 대를 손가락 길이로 잘라
갖은 양념을 넣고 버무린 된장쌈장과 함께 먹어야 제격이지요.
물론 입맛이야 뭐 자기 취향 따라 제각각이지만 말입니다.
귀한 민물새우가 다 보입니다.
얼큰하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매운탕의 부재료로 많이 사용하지만
민물새우를 주인공으로 무우나 호박과 함께 조리하는
민물새우탕은 애주가들에게는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음식이지요.
예전엔 동네 저수지마다 흔했는데
요즘엔 점차 사라져서 어쩌다 한 번 맛이라도 볼라치면
귀한 몸값을 지불해야 하지요.
젊은 가장이 귀가하는 길에 한보따리 시장을 봤습니다.
요즘 전형적인 한국 가장의 모습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이 곧
체통이라는 신념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부인의 카톡 한 방이면
목록대로 실수하지 않고 빠짐없이 장을 봐야하며,
어쩌다 한 가지 빼 먹기라도 하면
주렁주렁 모양 빠지게 시장바구니 들고 온 수고는 옆집 개나 줘야 하지요.
시키지 않았어도 뭘 먹고 싶을지 점쟁이 같은 촉으로 알아내서
옥수수나 호떡 같은 주전부리라도 챙기는 센스를 발휘해야
겨우 겨우 낙제점도 면탈할 수 있지요.
그럼, 어부인께서는 언제 시장에 나오냐고요?
궁금해요?
아까 그 시장입구에 있는 캬바레 가실 때만 한번씩 나온답니다......ㅋㅋ
시방, 뭔 소리하냐고요?
우리집 얘기니 너무 발끈하지는 마세요.~ㅎㅎ
앞에서 못다한 천안이야기를 마저 해 봅니다.
여러분은 '천안'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천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호두를 식재한 고장이기도 합니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던 ‘유청신’이
어린 호두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광덕사 보화루 앞에 처음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천안 광덕면에 자리한 천년사찰 광덕사에는
지금까지도 그 당시 ‘유청신’이 심었다는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구요,
1988년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답니다.
천안하면 호두과자를 빼 놓을수 없습니다.
호두과자는 1934년부터 천안역 앞의 어느 제과점에서 개발하여
판매하였다고 하니 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표적인 간식거리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기차역의 플랫폼이나 객차에서 주로 판매했지요.
새마을호나 KTX가 생겨나기 전에는 모든 역마다 정차하는 완행열차가 있었습니다.
좌석 사이 좁은 통로를 간식거리가 가득 담긴 카트를 밀고 다녔고,
지역의 특산품을 들고 다니며 객실에서 영업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물건을 팔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홍익회’라고 해서 아마도 철도청 자회사 형식의 노동자들이 영업을 했지요.
그 당시만 해도 정부 부처 산하의 철도청에서 철도를 관리했구요.
“자~~,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호두과자~~~~~~”를 외치며
통로 저만치서 다가올 때면 말없이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 보곤 했지요.
주머니를 뒤져 지페라도 꺼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지금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호두과자를 외치는 모습도 사라졌고,
기차역에서 호두과자를 사는 것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더 흔한 간식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천안하면 호두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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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저물고 주변이 어두워졌습니다.
오늘 온양온천에서의 저녁은 오삼불고기입니다.
맛집이라고 후기가 꽤 올라오는 식당인데
여기까지 내려 왔으니 확인은 한 번 해 봐야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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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온양온천 신정호수와 온양온천시장이 한눈에 쫘악~~들어옵니다.
현장에 있는듯한 생동감이 살아있네용~^^
오랬만이시네요~ㅎ
수석 되신거 늦었지만 축하드리고요~
멋진 데뷔무대 치러야 하는데 요놈에 코로나 땜에 우짠대요?
볼수록 읽을수록 상상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왕이면 좋은 상상이었으면 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