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8
(대한민국 건국 이야기는 부활주일 이후에 계속해서 나눌 것입니다.)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못박히신 십자가 앞에
오늘은 주께서 성도들과 백성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 종려주일이고
이번주 금요일이,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성금요일입니다.
이번 한 주간뿐만 아니라,
우리는 평생,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잊지 말고,
주께서 유언하신대로,
그것을 성찬식으로 기념할 뿐만 아니라
매일 찬양과 감사로 그 사랑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종려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 고난주간 1주일에 있었던 주님의 행적을,
마가는 일자를 구분해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종려주일. 마가복음 11:1-11. 나귀를 타시고 군중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십니다.
월요일. 11:12-19.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화요일. 11:20-13:37. 다양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수요일. 14:1-11. 마리아의 향유 부음 사건.
요한복음은 이 사건이 "유월절 엿새 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요일. 14:12-31. 이날 저녁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일몰 후부터 시작하니까요.
주께서 그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만찬, 성만찬을 나누시며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금요일. 14:32-15:47. 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이 흐르도록 기도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입니다.
토요일. 안식일. 16:1.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다"는 말씀 외에, 안식일의 사건 기록은 없습니다.
부활주일. 16:1-11. 주님이 부활하셔서 맨 처음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종려주일, 무리의 환호속에 떠들썩하게 입성하신 우리주님의 자취는,
그 주간 금요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토요일까지 죽음 속에 잠기고,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3년여에 걸친 나사렛 예수의 메시아 운동은 그렇게 허무하게 종언을 고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절망스러 일이 닥쳐오든,
그게 끝이 아님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메시아의 죽음은 메시아의 나라의 시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나라는 속죄 받아 죄를 씻은 자들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므로
주께서 먼저 죄를 속하시려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이 한 주간에 있었던 일을
3가지만 간략히 살펴보려 합니다.
1.
종려주일에 있었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실제로 자신이 메시아,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그 일은, 우리의 임금으로서,
하늘보좌에 오르기 위한 한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그 때 예루살렘 성안의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각자가 생각해 봅시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주님을 열렬히 환영했을까요?
아니면 그냥 구경꾼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을까요?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호산나 찬양을 부르고 주를 노래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며칠 후에 있을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설사 지금 곧 메시아의 나라가 세워질줄 알았다 하더라도,
즉,
우리의 영적 지식이 심히 부족하고, 때로는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은 그 눈물의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날의 예루살렘 군중 속 한 사람이 되어,
우리의 임금이신 주님,
우리의 왕이신 주님을 소리높여, 눈물로, 감사와 감격으로 찬양합시다.
주께서 바야흐로 죽음으로써 우리를 위한 사랑을 입증하시고,
부활승천하실 터이니까요.
그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주님을 노래합시다.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참 아름다워라
주예수 나귀타고 시온성 드실 때
2.
베다니 마리아 집에서의 만찬과 성만찬
마가는 요한과 달리,
이 일이 고난주간 수요일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만찬을 베풀 때
값비싼 향유를 부어
주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울면서 그 향유를 부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모한 낭비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마리아의 그 헌신과 사랑의 향유부음은
죄용서받은 데 대한, 그리고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은 데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와 찬양이었습니다.
향유는 예수님의 머리에도 부어졌고 발에도 부어졌습니다.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풀어헤친 자신의 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에 흐른 향유를 닦았습니다.
이것은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을 향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이 기이한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남의 눈에, 향유낭비처럼 보이고,
미친 행동으로 보였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그 사랑을 길이길이 기억하기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복음과 함께 그녀의 사랑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를 아주 작게 사랑한다 하더라도,
주님은 그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천국에서 그 사랑은 영원의 빛을 발할 것입니다.
한편 목요일 저녁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떼어주시며
이것이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몸이고, 너희를 위해 흘리는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밤에 주님은 이로써 자신의 죽음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죽음으로 보이신 그 사랑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있는지요?
그 사랑을 언제나 찬양하는지요?
오 거룩하신 주님 그 상하신 머리
145
이 찬양의 영어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O Sacred Head, now wounded,
With grief and shame weighed down
Now scornfully surrounded,
With thorns, Thine only crown
오 거룩한 머리여 상처를 입으시고
슬픔과 수치로 고개를 숙이셨네
가시로 엮어 만든 모멸의 관 쓰셨으니
당신껜 그것이 면류관이 되었다네
O sacred Head, what glory,
What bliss till now was Thine!
Yet, though despised and gory,
I joy to call Thee mine.
오 거룩한 머리여, 임의 영광 행복은
지금껏 당해오던 수치와 저주뿐!
온갖 학대 고문에 유혈이 낭자해라
그럼에도 난,
당신님을 기쁘게 내님이라 부른다오
3.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야기는 골백번도 더 들었거나 읽었겠지만,
우리는 항상 그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들어야 합니다.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236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가룟유다가 데리고 온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에게 붙잡혀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로 끌려갑니다.
거기서 심문을 받을 때
하속 하나가 주님을 폭행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결박당한 채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이끌려갑니다.
가야바는 공회(산헤드린) 회원들을 모아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막 14:61-62.
이에 산헤드린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사람들은 주님께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며 손바닥으로 가격하는 등
몹쓸 짓을 저지릅니다.
그 새벽에 이어서 공회는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그를 사형시키기 위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비록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지만, 누군가를 사형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아 예수님을 심문했으나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무리의 외침과 강력한 압박, 즉 여론에 밀려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넘겨주는데,
그 전에 모진 채찍질을 가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에서 묘사한 그 참혹한 채찍질을
우리는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시가 달린 무시무시한 가죽 채찍에 맞아 거반 죽은 몸으로
온몸에 피를 흘리시는 주님을 붙들고
로마의 병사들은 총독 관저의 뜰에서
온 군대를 모아서 희롱의 대관식을 거행합니다.
임금이 입는 자색옷을 예수님께 입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갈대로 주님의 머리를 때리며 머리에 모욕의 침을 뱉고
주님 앞에 꿇어엎드려 희롱의 절을 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희롱과 모욕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주님이 진정으로 왕이시라는 뜻이었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사실상 우리 주님의 대관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죽음을 통해 부활승천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죽음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속하시고 자기 백성을 얻으심으로써,
자기 백성의 왕이 되실 수 있었으니까요.
이 절차가 끝난 후 주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을 패에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요
그 글은 헬라어, 히브리어, 로마어 3개 국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누구나 그 패를 읽을 수있게 하기 위한 조처였고,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서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가, 참된 임금입니다.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그 시각이 유대시각 제 3시, 로마시각, 즉 오늘날의 시각으로 오전 9시였습니다.
그로부터 세 시간이 지나 정오가 되었을 때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캄캄해졌습니다.
그 현상이 오후 3시까지 역시 3시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날은 음력으로 보름날입니다.
그 날 해가 빛을 잃은 것은 일식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보름에는 일식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빛을 가리신 것입니다.
어쩌면 태양 스스로가 초자연적으로 빛을 가렸는지도 모릅니다.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우리 주님은 오후 3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시고,
또한 "다 이루었다"고 소리치시며
큰 소리를 지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을 버리신 그 순간은, 우리 주님께,
그 어떤 인간의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극한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버림받음이었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시고 돌아가신 것은,
또한 주님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
너와 나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샬롬.
2024. 3. 24. 종려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