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시니어기자단=정경학기자)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자 법궁이다. 서울문화 예술대는 서대문구와 연계 프로그램으로 6.22(토)10-12시 조선의 심장 경복궁에서 여행을 위한 인솔자 양성교육 현장 실습을 김주훈 전문강사 해설로 우천불구 참석한 30여명의 수강생과 함께했다. 일반적 인지하고 있는 내용 외에 강사의 해설 위주로 경복궁 이야기 시작한다.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경회루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아미산 이어서 부설 민속 박물관 순이다.
고려를 잠재우고 성리학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조선을 창업한 태조는 새나라 상징의미로 천도를 결정하여 창업 약4년만인 1395년 경복궁을 창건하여 천도를 한다.
창건당시는 방수기준 390여칸에 불과 하였으나 방향별로 4대문을 두었다. 정문은 광화문, 동쪽문은 건춘문, 서쪽문은 영추문, 북쪽문은 현 청와대쪽 신무문이다. 주로 왕실 친척들이 출입한 문은 건춘문이다.
정문인 광화문을 들어서면 왕의 의전행사가 집행되는 근정전 까지는 두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1문이 흥례문이다. 본래는 홍례문 이었다. 중국풍을 벗어내기 위해 개명했다.
일제는 이곳에 조선 총독부를 건축 했었다. 흥례문은 4대문에 속하지 않으며 궁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있던곳 이다.
흥례문과 근정문을 연결하는 금천교 난간에는 하늘의 사슴 천록이 있다. 천록은 경복궁의 성서로운 상징적 동물 해태 기린 용과 함께 주술적 영역이다. 천록은 궁궐에 들어오는 불길한 기운을 막아 준다고 한다. 참고로 광화문앞 해태는 백운대에서 볼때 관악산이 화의 기운으로 이를 예방하는 차원이라 한다. 금천교 밑에는 물이 흐르지 않으며 영제교라고도 한다.
제2문 근정문이다. 이문을 통과하면 조선의 전반 의전 행사가 이루어졌던 근정전 광장이다. 근정전의 바닥은 울퉁불퉁한 강화도 박석(돌)이 깔렸다 이유는 걷는데 장애가 되는 햇볕의 반사를 막고 배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또한 고관대작들의 거들먹 거리며 걷는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이라 한다.
우측은 일화문 좌측은 월화문이 있다. 일화문으로는 문관이 월화문으로 무관이 출입하던 문이다. 참고로 조선시대 신분별 거주를 보면 근정전 기준으로 우측 궁밖 북촌에는 문관 고위관리가 거주했던 것과 방향이 같다. 그외 무관은 동촌, 중인 상인등 기술계층은 서촌에 거주했다.
근정전 왕이 주관하는 국가 행사가 있던곳이다. 정1품 종1품_정9품 종9품까지 표지석이 있다.
정.종 2품은 되어야 그늘막 혜택이 있었다. 그늘막, 차양막을 지지하는 고리로 근정전앞 2품 라인 광장에 있다. 3품까지는 당상관이라해서 대감마님 이라했다. 그 이하는 나으리 호칭이다.
측면 건물은 높낮이로 구분된다. 이는 안에서 밖으로 구배를 뒀음을 의미한다. 물 흐름을 위해서이다. 이러한 형태는 경복궁 전체에 적용 되었는데 창건시 대수의 원칙이다. 창건이래 불에는 수회 탔어도 물로 화를 당한 기록은 없다. 근 현대에 이르러도 아무리 큰 홍수가 났어도 경복궁내로 물이 찬적이 없다.
궁궐로 잡귀들의 접근을 막는 잡상은 본래 10개가 있었으나 복원시에 7개로 했다. 중국 수나라 삼장(현장) 법사와 손오공 일행을 의미한다. 즉 이는 건축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잡상을 설치했다는 설이다. 궁과 왕을 지켜주는 일종의 주술 잡상이라 한다.
근정전의 어좌는 일월 오봉도와
천정에는 왕을 상징하는 발톱 7개 짜리 용 두마리가 있다. 중국은 용의 발톱을 5개이상 허락치 않았다. 조선의 독자성과 중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선의 의지를 볼수 있다. 왕이 입는 관복 흉배부위에 그려진 용은 발톱이 5개, 왕세자는 4개가 있다. 신하들은 문관은 학그림, 무관은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나라의 교지하달 외교사절 행사 왕주관 각종 어전회의 왕 및 왕세자의 경연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불을 지피던 기구로 이름은 정이라 한다. 근정전 주변 요소요소에 위치해 있다.
근정전에서 수정전 방향으로 이동하는 석단옆에 있는 가마솥 모형 물체는 건물 화재에 대비하여 방화수를 보관하는 드므라 한다.
집현전은 세종때 한글을 연구 창제 반포한 곳이다. 집현전의 본래 이름은 수정전이었다. 경복궁은 세종이 가장 많은 국가 문화유산 그리고 역사적 유물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조선 최고의 연회장 경회루 현판은 세종의 큰형 양녕대군이 썼다. 조선 제10대왕 연산군이 가장 많이 애용하던 곳이다. 채홍사를 두어 천여명의 처녀를 증발하여 관기로 등록시키고 그중 선별하여 300명은 흥청을 만들어 기거케 하며 시중을 들게했다. 흥청 망청은 여기서 유래한다. 그들에게는 녹봉과 토지도 지급했다. 당시 이름을 남긴 여인은 장녹수 이다.
1997년 준설을 위하여 경회루 물을 모두 뺐을때 청동용이 나왔다. 크기는 길이 145×높이 65cm였다. 문헌을 보니 흥선 대원군이 재건시 과거 자주 불났던 것을 막기 위하여 물위에 용의 형상을한 용 두마리 만들어 넣었다고 알려지나 아직 한마리는 못찼았다. 찿은 용은 현재 박물관 보관중 이다. 경회루의 물은 흐르는물로 설계되어 비교적 늘 깨끗하다. 북쪽 향원정과 그위에 북악산에서 물이 내려오고 일정 수위를 넘는물은 청계천으로 빠지는 구조다. 따라서 거의 동일 수위를 유지 한다고 보면 된다.
경회루 좌측에 보이는 누각은 화장실 아니고 현대의 대통령이 낚시를 하기 위하여 만든 곳이다.
왕이 실질적 집무를 보던 곳으로 생각 사자의 사정전이다. 조선 600년의 수많은 역사 고뇌가 이곳에서 결정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7대 세조는 조카를 폐위 시키고 왕위를 찬탈한다. 이때 반대를 하다 죽은이가 사육신, 사로 잡힌이가 생육신이다. 그중 성삼문 박평년 두사람은 세조가 친국을 사정전에서 했다. 두 임금을 모실수 없다해서 이곳에서 사약을 받았다. 1453년 계유정난의 한 현장이다.
왕의 베드룸 침실 강녕전이다.
사정전 바로 뒷쪽이며 강녕전 뒤에는 중전이 머무는 교태전이 있다.
강녕전에서 왕이 왕비를 찿아서 가기 위해서는 양의문을 통과한다.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여 양의라 했다.
교태전은 중전이 머물던 곳이다. 왕이 이곳으로 와 합방 했으며 왕비가 합방을 거부 할시는 빗장을 걸었다고 한다.
교태전 뒷마당 후원 화단으로 이름은 아미산이다. 경복궁 공사시 퍼낸 흙으로 조성했다. 이곳 4개의 굴뚝은 국가 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경복궁 후원 부근에 위치한 민속 박물관은 조선인의 일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살펴볼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놓았다. 사진은 정월 대보름 행사 오곡밥과 달맞이 내용이다.
조선의 멋을 볼수 있는 화려한 조선의 등불이다. 물고기 범종 전각 악기 꽃 형상이 다양하다.
정갈하게 빚어 만든 떡과 술상 조선 반가 선비의 술상인것으로 보인다.
명절또는 제사등 큰 행사가 있을때 했던 전통 시루떡 그 옆의 정한수는 기도의 대명사 이자 필수水 였다.
비료가 넉넉치 않던시절의 비료 대용 농기구 외국인들은 인분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의 우리민족 조선인의 풍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자의 서당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따라서 조선의 서당앞도 은행나무가 의식적으로 심어져 있었다 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효시 성균관 대학교 교내에도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
닭이 혼례상 위에 있는것은 회를치면 귀신을 쫒는다는 유래에서 이다. 닭 울기전에 제사를 모시는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하나 부화시 알안에서 병아리가 톡톡하면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서 깬다. 이를 사자성어로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은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다시 말하면 내부적인 역량과 외부의 환경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부부협동 백년해로를 의미 한다고 할수있다.
50대이상은 초등학교시절 연말연시 손수 근하신년 연하장을 만들어 친분 있는 지인들에게 보낸 기억이 있을것 이다. 추억의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 만날수 있다.
금성 하이파이 전축 실물이다. 60-70년대 인기있던 레코드판 전축 전시실에 잘 보관되어 있다.
경복궁은 2001-2011복원공사를 하였다. 그리고2012- 2045년까지 지속적으로 계획에 따라서 공사중에 있다.
서두에서 언급 했듯이 경복궁은 태조 창건시는 390여칸 이었다. 흥선 대원군이 당백전 발행등으로 재건하여 7천2백칸에 이른다. 현재의 면적이라 보면 된다.
경복궁 창건 200여년만인 1592년 임진왜란때 완전 화재 소실 되었고 그후 약 200여년간 방치했다. 그 기간 동안은 창덕궁에서 때론 경희궁을 정궁으로 이용했다.
경복궁내의 국가 유산청 인증대상 유산은 총12개로 경복궁, 수정전, 향원정, 풍기대, 사정전, 경회루, 자경전, 아미산굴뚝, 근정전, 십장생 굴뚝, 근정문 행각 등이다. 나도 국가유산 해설사 앱을 이용하여 경복궁 유산을 두루 인증할수 있다.
민속 박물관은 상시 무료 개방이니 꼭 둘러 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향수와 애환 그리고 겨레와 민족의 슬기 그리고 탄생과 죽음이 공존한다.
북쪽문 신무문으로 나가면 청와대앞 그리고 춘추관 이어서 삼청동길 삼청동 칼국수집등 맛집을 만날수 있다.
민속 박물관 관람후 출구를 따라 나오다 보면 동쪽 소 출입구가 있다 이곳으로 나오면 현대 미술관 그리고 송현 녹지 안국동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시간이 더 허락하면 삼청공원길 따라 계동길 북촌 전통한옥 마을을 둘러 볼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지하철 이용의 경우 3호선 경복궁역 5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경복궁내의 고궁 박물관앞으로 편리하다.
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국가유산탐방 향후 일정은 7.13(토) 남산 한옥마을, 8.3(토)는 서대문 형무소이다. 시간은 동일하며 참여시 전문가의 주옥같은 해설을 들을수 있다.
남산한옥마을은 충무로역 3번출구, 서대문형무소는 독립문역 5번출구 이다.
정경학 시니어기자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탐방가
국가유산 문화예술전문 기자
서대문구 구정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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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복궁의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진으로 미쳐 알지 못한것도 알게 되었네요
전문해설사와는 처음 이었는데 기사외에도 더 많은 비하인드가 있었어요 잼있고 유익한 투어 였습니다.
글 잘 봤습니다~!
경복궁의 역사적인 해설을 들으며 탐방하신 귀한소식 전해주신 정기자님 감사합니다 ~**
넵 감사합니다.
경복궁은 멀지 않아 버스 잠깐만 타면 가는 곳이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궁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일은 쉽지않습니다.
현장을 보지는 않아도 올려주신 글이 공부잘하는 학생이 선생님 곁에 바짝 붙어서서
열심히 적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문장력도 돋보이고요. 잘 읽었습니다.
대단히 과찬이십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