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9.연중 제10주간 수요일 강론>
<마태5,17-19>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율법은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의 어둠을 비추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해줍니다. 회개할 준비를 시켜줍니다.
율법의 완성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어둠을 식별하게 해준 율법을 보완해서 어둠을 몰아내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어떻게 율법의 완성인 주님의 은총에 도달할까요?
인간과 신의 경계인 무지의 구름을 뚫어야 하며,
인간의 경지를 넘어 신의 경지로 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사랑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 나무로 완성하십니다. 수직으로는 하늘과 땅을, 즉 하느님과 인간을 잇고, 수평으로는 인간과 인간을 잇는 사랑의 다리가 됩니다.
우리 자신도 에고인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즉,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갖고 정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의 완성이 완덕이며, 예수님께서도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고 명령하십니다.
완덕의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완전 의탁과 완전 정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사랑에 도달입니다.
방법은?
1.완전 의탁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1)성사
(1)세례 : 세상에 대해서 예수님으로 옷을 입고 새로 태어 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지체가 됩니다. 한 몸이 됩니다.
(2)성체성사 : 미사 중에 봉헌과 함께 우리의 육신 정신 영혼을 에고와 함께 봉헌합니다. 미사 성제 때 사제의 몸을 통해 주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 정신 영혼과 에고를 당신의 것으로 삼아서 아버지 하느님께 십자가상에서와 같이 당신의 육신 정신 영혼 마저 비우셔서, 우리 육신 정신 영혼과 에고를 대신해서 당신의 육신 정신 영혼과 우리 에고 대신에 성체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돌려주십니다.
(3)화해성사 : 원죄는 사해졌지만 죄로 기우는 경향이 남아 있기에, 예수님으로 사는 데 실패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예수님으로 살 수 있도록 회복하게해주는 성사입니다.
믿음이 바탕이 된 이 세가지를 통해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는 것입니다.
2)기도
구송기도, 묵상기도, 정감기도, 단순기도 등과 같은 능동적인 기도의 단계
3)정화
내 욕구와 반대되게 행동을 합니다.
생활 안에서 점점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점점 예수님을 위해 희생을 하려고 하는지 살펴봅니다.
내가 예수님이 된 모습을 하루에 50번~500번 떠올립니다.
2.완전 정화
세례, 성체성사, 화해성사를 했지만, 예수님께 드릴 선물인 덕을 마련하려고 완전 정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1)능동적인 기도 및 정화
(1)능동적인 기도
ㄱ.구송기도: 몸으로 소리내어 드리는 기도(묵주의 기도), 온 몸으로 드리는 기도.
ㄴ.묵상기도: 복음을 2-10번 읽고, 성령께 의탁하여 등장인물 중 한 인물이 되어 영화를 보듯이 그 장면을 상상합니다. 예수님을 만납니다. 대화도 합니다.
ㄷ.정감기도: 내 마음에 우러나오는 감정을 가지고 자유로이 기도하는 것.
ㄹ.단순기도: 지성으로 예수성심이 눈 앞에 계시다고 믿고, 기억을 마음으로 내려놓고 예수성심과 일치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의지로 내 기억을 사랑자체이신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30초~1분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2)능동적인 정화
생활 안에서 예수님께서 옆에 계심을 믿고 함께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
2)수동적인 기도 및 정화
(1)수동적인 기도
ㄱ.주부적 관상기도: 기억이 제로가 된 상태입니다. 기도 중 옛날과 같은 뜨거움과 달콤함은 없어지고 무미건조 하지만 주님 앞에 머무르고 싶어지며, 저 밑에 주님을 향한 기쁨이 있습니다. 기억이 정화됩니다. 하늘의 지혜가 점점 더 열리며 베드로 사도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라고 고백한 단계입니다.
ㄴ.고요의 기도: 지성이 제로가 된 상태이며, 베드로 사도가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9,33) 라고 말한 단계입니다. 세상적 가치에 대한 계산이 없어집니다. 세상과 떨어져 산속에서 기도만 하고 싶어집니다.
ㄷ.단순일치: 기억과 지성이 제로가 된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려는 단계 입니다.
ㄹ.순응일치: 기억 지성 의지가 완전히 제로가 된 상태입니다. 예수님과 영적인 약혼 상태이며 탈혼의 경지로 의지마저 하느님께 빼앗긴 단계입니다. 즉, 의식이 정화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지성 기억 의지가 완전 정화 되어 끊임없는 기도의 상태가 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아직 유혹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끊임없는 기도가 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합니다. 이 단계는 에고가 죽지 않으면, 루카 22장 33절에서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하고 말하고 다짐해도 에고가 있는 상태에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루카 22장 31절에서"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라고 하시며, 루카 22장 32절에서는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라고 하시며 수련하려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ㅁ.변형일치: 영적인 결혼의 상태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우리는 하느님의 속성을 살게 되었습니다” 라는 단계이지요. 마리아의 기도 상태로 완전히 하느님과 일치된 상태이고, 마르타로는 자신의 소명을 받은 상태이지요. 2베드 1장 4절에서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베드로 사도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이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2베드1,5-8)
변형일치의 상태까지 가게되면, 세 가지의 소명중에 하나를 받게 됩니다. 즉, 사막의 안토니오 성인처럼 굴 속에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든지, 소화데레사나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 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일치해 병에 걸려 세상 구원을 위한 대속의 삶을 살거나,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나 요한 비안네 성인처럼 사목을 하는 데 정신 없이 바쁜 사람이 됩니다.
(2)수동적인 정화
생활 안에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으로 사는 것.
<Matthew5,17-19>
17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come not to abolish but to fulfill.
18 Amen, I say to you, until heaven and earth pass away, not the smallest letter or the smallest part of a letter will pass from the law, until all things have taken place.
19 Therefore, whoever breaks one of the least of these commandments and teaches others to do so will be called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whoever obeys and teaches these commandments will be called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
<책 소개>
나는 공동 합의성이 시작된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싶습니다. 사도들이 의견이 갈리는 문제가 생기면, 함께 모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까. 예컨대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그리스도인이 되면 할례 같은 유대 민족의 법과 관습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두고 그들은 토론하고 기도했고, 대로는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은 후, 그들은 하느님이 비유대인을 통해 보여준 징표와 기적을 숙고(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193)/
한 끝에, 비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는 유대인의 법을 지우지 않는 것이 “성령과 우리에게 좋은 듯”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사도행전 15장 28절]
그 결정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새로운 시작이엇습니다. 하느님은 하나의 민족, 즉 유대 민족에게 구원을 약속했지만, 그리스도는 그 약속을 되살려내며 인종과 민족과 언어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약속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리리스도교는 특정한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민족들은 각각 고유한 문화를 통해 하느님의 은사를 경험하게 되고, 따라서 그들의 문화에는 교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보편성Datholicity, 즉 다채로운 어굴의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시노드를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 극단에서 위태로운 긴장 관계에 있으면서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공의회와 협의회를 통해 돌파구가 마련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194)/
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화합입니다.
(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195)/
—//—
165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아멘”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우리를 신앙의 증인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아멘.”, 곧 “네,” 라고 말합니다. “아멘.”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과 구원 활동에 기쁘고 자유롭게 동의하는 것입니다.(1061-1065]
아멘(amen, 히브리어로 ‘확고하고 믿을 만함’이라는 뜻의 ‘aman’에서 유래)
구약 성서에서 ‘아멘’이란 단어는 ‘그렇게 도기를 빕니다’라는 의미로 쓰이며, 그로써 하느님이 행동을 취해 주시길 바라는 소망을 강조하거나 하느님 찬양에 동참하게 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종종 기도의 내용을 강조하며 끝맺는 말로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당신 말씀이 지닌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니다.(2코린1,20)
히브리어 단어인 ‘아멘’은 ‘믿음’뿐만 아니라 ‘견고함, 성실, 신뢰’의 뜻을 지닌 한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멘을 말하는 것은 서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당신의 신의와 성실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이것만을 근거로 아무런 제약 없이 “네.”라고 응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그 자체로 하느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인간의 동의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최종적인 동의를 드러내는 표상이 되십니다.->527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149)/
—//—
“아멘”
->1061 신경은 성서의 마지막 책과 마찬가지로(묵시22,21 참조) 아멘(Amen)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430)/
이라는 히브리어로 끝맺고 있다. 이 말은 신약성서의 기도문 끝에 자주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자신의 기도들을 아멘이라는 말로 끝맺는다.
->1062 히브리어의 아멘은 ‘믿다’ 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그 어원은 견고함, 신뢰성, 성실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멘’ 이라는 말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성실과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다.
->1063 이사야 예언서에는 “진리의 하느님”, 곧 문자 그대로 “아멘의 하느님”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그분이 약속에 성실하신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미쁘신 (아멘의)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리라”(이사65,16). 우리 주님께서는 자주 이 “아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며(마태6,2.5.16 참조), 때로는 두 번 거듭 사용하시기도 하는데(요한5,19 참조), 이는 당신 가르침에 대한 신뢰성과 하느님의 진리에 바탕을 둔 권위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1064 그러므로 성경 끝의 “아멘” 은 첫머리의 “저는 믿나이다.” 라고 하는 말마디를 되풀이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믿는다’ 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과 계명에 대하여 “아멘” 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무한한 사랑과 완전한 성실성의 ‘아멘’ 이신 분께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매일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례 때 “저는 믿나이다.” 고 한 신앙 고백에 대한 ‘아멘’ 이 될 것이다.
신경은 여러분에게 거울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고백한 모든 것을 정말 여러분이 믿고 있는지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기뻐하십시오(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58, 11, 13: PL 38, 399)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431)/
->1065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아멘”(묵시3,14)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성부의 사랑에 대한 결정적 ‘아멘’ 이시다. 그분은 성부께 대한 우리의 ‘아멘’ 을 받아서 완성하신다.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며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2코린1,20)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기도 마침 영광송, 표준판(바티칸 1970), 455. 460. 471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432)/
예수님 어린 시절의 신비
->527 예수님의 할례는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이루어지는데(루카2:21 참조),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계약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 표시이며, 율법에 속하는(갈라4,4 참조) 표시이고, 당신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의 예배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표시이다. 이 표시는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의 예형이다(콜로2,11-13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