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비유, 차이성
티스토리/ 예쁜 장미 이미지
② 이미지와 비유의 종류
이미지의 종류도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감각의 종류에 따라,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이미지로 나누는가 하면, 언어의 성질에 따라 고착 이미지와 자유 이미지, 묘사적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P. 활라이트는 신호나 기호와 같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지시성을 갖는 언어를 고정상징이라고 하고, 그 의미를 완전하게 규정할 수는 없고 의미의 초점과 문맥에 탄력성이 있는, 가변적 언어는 긴장상징이라 구별했는데, 그렇게 보면 ‘고정 이미지’, ‘긴장 이미지’란 말도 성립된다. 개성이 강한 현대시인이라면 응당 긴장 이미지를 즐겨 쓸 것이다.
하지만, 지각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 셋으로 나누는 것이 교과서적인 분류라 할 수 있다.
지각적 이미지란 감각기관을 통해서 성립되는 이미지. 그것은 명암, 색체, 동작 등 이미지로 나누어지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열도심상, 냉각심상, 감촉심상) 그리고 기관감각, 근육감각 이미지로 세분되기도 한다. 기관감각 이미지란 고동과 맥박, 호흡, 소화 따위의 감각을, 근육감각 이미지란 근육의 긴장과 이완 등에 의한 감각 이미지이다.
비유적 이미지는 유추의 원리에 의해 성립된다. 두 가지의 다른 사물이나 사실의 비교를 통한 유추이다. 리처즈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둘 중 하나를 주지(主旨, tenor) 또는 원관념, 다른 하나를 매재(媒材, vehicle) 혹은 보조관념이라고 한다. 비유란 주지와 매재, 이 둘의 상호작용에 의해 성립되는 이미지들인 셈이다.
실제로 이미지란 모두가 비유적 기능을 한다. 별 의미 없는 듯한 지각적 이미지도 감각을 앞세워 어떤 특정의 의미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고 시에서의 특정 분위기란 시적 의미에 다름 아닌 것이어서 모든 이미지는 주제를 갖는 매재로서 비유적 기능을 한다고 할 밖에 없는 것이다.
상징적 이미지란 일반적으로 특정 시인의 작품에서, 혹은 문학 전통이나 시대적 경향 속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나거나 반복해서 나타나는, 함축적 의미를 갖는 이미지 또는 양식(pattern)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역시 주지는 잠재되고 매재만 표면에 나서는 비유의 원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비유에 의하지 않는 언어가 시 속에 쓰일 수는 없는 셈이다. 시에 쓰인 언어는 모두가 이미지를 생성하고 주지(主旨)를 갖는 비유의 기능을 하게 돼 있는 것이다.
일견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지각적 미지지 위주의 시 한 편을 들어보자.
끝물고추 같은 고추잠자리 한 마리
어쩌다 거미줄에 걸려 바둥거린다
아하, 허공에도 그물이 있구나
하느님 부처님 한꺼번에 불러보지만
속수무책, 맨손이었을 것이다.
거미가 몹시 배가 고픈 날에는
새벽달이 먼저 발자국소리를 죽인다
아침 이슬마저 조심조심 풀잎에 앉는다
어쩌다 잘못 앉은 이슬 몇 방울
눈 밝은 산새가 반짝 물고 날아간다
―한경동, 「풍경 3」 전문
짧은 시이지만 시각, 운동감각, 청각, 기관감각 등 지각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들 감각 이미지는 미적 표현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거미줄로 상징되는 예측불가의 삶의 함정들, 새벽달이며 이슬이며 조심스레 걷고 앉는 불안과 공포, 산새의 먹이활동으로 상징되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등 이미지들 모두가 자연의 섭리, 나아가 현대 인간사회의 근원적인 수탈체계를 주지로 머금고 있는 비유체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이렇게 특정 의미를 거느리거나 특정 문맥의 형성에 기여한다. 발견적 맥락은 시의 생명이요, 이미지는 그 맥락을 이루는 필수 요소라 할 것이다.
불연속적이거나 의미 파괴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시도 없지 않으나 그 역시 필연에 대한 우연, 통합에 대한 해체라는 특정의 의미를 구축하고자 한다. 모든 이미지는 비유적인 언어라는 말로도 대체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비유는 특수한 사물, 정황, 사실 등을 표준적 격식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사물, 정황, 사상, 사실 등에 견주어 특수한 의미를 나타낸다. 프라이(N. Frye)가 비유의 동기를 “인간의 마음과 외부 세계를 결합하고 마침내는 동일화하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 데에서도 알 수 있듯 비유는 전달의 불완전성을 해소하고 특수 정황을 보다 적확하게 일반화하고자 하는 언어전략이다. 독자는 개개의 이미지와 상호 연계된 이미지 군(群)을 조명함으로써 그 맥락과 미를 읽게 한다.
두루 알다시피 비유에는 특정 의미 즉, 주지(主旨, tenor)와 그를 바꾸어 표현하는 매재(媒材, vehicle)가 있어야 한다.
관념(주지)을 직접 진술하지 않고 다른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은 구체물인 정황, 의미(주지)가 갖는 특수성을 보다 적적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동시에 예술적 효과를 거두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일반적인 산문에서는 ‘어두운 밤에 홀로 슬퍼했다“는 정도의 진술에 그칠 문장도 여러 특수한 정황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밤의 장막이 목을 조른다.”
“어둠의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침몰하는 어둠의 시위(示威)”
“얼음장 같은 밤이 가슴을 찌른다.”
“밤의 어둠이 모래처럼 흘러내려 내 숨길을 막고 있다.”
“아니, 어둠이 너무 눈부셔서 나는 웃고 말았어.”
등등…
수많은 비유 언어가 동원될 수 있다. 이것이 비유의 기능이자 언어의 새로운 용도이다.
비유도 매우 다양하게 분류된다.
M. H. 에이브럼즈는 비유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단어의 축자적(逐字的) 의미에 뚜렷한 의미의 변화를 가져오는 ‘말의 비유’가 그것이다. 의미의 비유로는 직유·은유·상징·환유·제유·활용·풍유·인유·성유 등을 들 수 있고, 말의 비유로는 도치·과장·대조·열거·반복·영탄·반어·역설·모순 어법 등등 전통 수사학상의 변화법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의미의 비유이든 말의 비유이든 모든 수사적 장치는 특정의 의미를 대신하거나 암시하거나 최소한 왜곡하거나 특수화하는 비유의 기능, 의미 변환과 분위기 변환의 기능을 한다는 건 분명하다.
쉬클로프스키(Victor Sklovskij)는 비유의 기능을 설명하면서 ‘산문적 비유’와 ‘시적 비유’ 둘로 나누었다. 정보 전달이 위주가 되는 산문적 비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는 반면에, 시적 비유는 독자의 습관적 반응을 차단하여 낯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시적 비유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자의 원활한 독서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장치의 하나인 것이다. 이는 시의 차이성 지향과 산문의 동일성 지향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진술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유형론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보통 인지언어학적 관점을 앞세워 유사성에 입각한 ‘은유(의인, 직유 등 포함)와 인접성에 입각한 ’환유‘(제유 포함), 둘로 나누는 것이 통념이 되고 있다.
야콥슨이 비유를 이루는 주지와 매재의 관계를 근본적인 언어활동과 관련하여 관찰한 결과 대표적 유형으로 은유와 환유 둘로 들고 이 둘은 모든 언어 생성에 두 축이기도 하다고 논한 것이 대표적인 시발점이다. 유사성을 기준으로 주지와 매재가 선택되는 은유와, 인접성을 기준으로 주지와 매재가 결합되는 환유가 언어의 시적 기능의 대표적인 양식이자 비유생성의 두 축(軸)이라 파악한 것이다.
은유는 통상적인 차원에서는 연관성이 없던 언어들에서 기능적 상황적으로 어떤 유사성을 연상하여 선택하는 활동이라면, 환유는 공간적으로, 논리적으로 인접하는 매재에 주지를 대입한다.
부슬비가 내렸다
실직한 경자 아버지를 불러내 한 잔 해야겠다
담배 한 갑도 사서 같이 피우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IMF 주범들을 입에 넣지 않겠다
희미한 불빛 아래
철원 분지 떠도는 염소 이야기나 하며
―안수환, 「실직」 전문
IMF 주범들을 입에 담고 있느니 실직한 경자 아버지(IMF 당시 흔한 실직 근로자를 대신하는 예시적 환유)나 불러내 술이나 마셔대는 것이 속 편한 일이다. 시비를 따져보아야 자본과 권력이 판을 치는 세상, 위로를 줄 수도 위로를 받을 수도 없다. 철원 분지 풀밭을 떠도는 염소(은유) 이야기나 하면서 자연 또는 자유와 평화의 시공을 꿈꾸기나 해보자고 한다.
실직한 경자 아버지, 한 잔, 담배 한 갑, IMF 등의 매재들이 실직사태와 술 마시기, 흡연, 경제 파탄 등의 주지에 논리적으로 인접하는 환유라 한다면, 부슬비, 철원 분지, 염소 등 매재들은 특정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평화, 자연 등의 주지를 연상케 하는 은유라 할 것이다.
은유란 사물을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고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 말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시 쓰기나 읽기에 있어서는 다른 사물을 연상하여 표현하는 것이나 다른 사물과 결합시켜 지칭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얼마간 연상적이며 얼마간 인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위 시의 대표적인 환유인 ‘술 한 잔’만 해도, 반드시 ‘술 마시기’만을 뜻하는 환유(제유)가 아니라, ‘카타르시스’나 ‘정 나누기’를 연상케 하는 은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를 대표하는 비유로는 은유와 환유 둘을 드는 것이 일반화되긴 했지만, 모든 비유를 ‘은유’의 원리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고, 환유나 제유 중 하나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고대 수사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특정 개념을 그에 가까운 매재로 전이하여 지시적 맥락의 동일화를 이루고 그로써 청중과의 동일화를 이루고자 하는 즉, 동일성의 원리에 입각한 유추라 할 것이다. < ‘차이나는 시 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 9. 8. 화룡이) >
첫댓글 시론 정리하시니라 수고 하셨습니다
새벽에는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조심하십시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 건필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