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근무자
이면우
먼 길 걸어 온 내게 저녁은 의자 하나 내어줍니다 그런데 거기 아직 온기 남아 당신이 방금 길 떠난 줄 알았습니다 의자에 앉아, 허공에 던져진 둥근 공 지구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애닯고도 웅장한 선율 한 대접 냉수처럼 몸속으로 흘러들어옵니다 그래요, 이 음악이 아니면 당신이 어떻게 밤길 그토록 멀리 다녀오겠습니까 지구가 제 음악에 취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오래, 쏜살같이 태양 둘레를 돌겠습니까 세상엔 밤낮으로 일하는 이들 번갈아 쉴 의자가 있습니다 그들 위해 교대근무자 없는 지구는 허공을 거침없이 뚫고나가며 연주를 계속합니다 자바의 원시림, 아마존강, 아직 뱃길 닿지 않은 바다와 고비사막 돌개바람도 잠시 때를 놓고 지구를 깊이깊이 들이쉽니다
그런데 이 소리 없는 음악은 몸 전체로 들어야 취한다지요
꿈 없는 잠처럼 듣고 나면 금방 잊어버린다지요
<11월을 만지다> 작은숲. 2016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