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연중 제10주일
창세기 3,9-15 2코린토 4,13─5,1 마르코 3,20-35
영적 투쟁에서 싸워 이겨 주님께로 나아가자.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통한 복음 선포의 활동이 진행될수록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의 오해와 비난의 강도도 높아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몇몇 율법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마르 3,22 참조)라고 예수님을
모함합니다. 베엘제불이란 우두머리 마귀의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말은
예수님께서 ‘마귀 들렸다'', ''미쳤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내고 있다고 재차 모함합니다.
예수님의 병자 치유와 구마행위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며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제시하며 사탄의 힘을 빌려 사탄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탄을 묶어놓는 이는
사탄보다 더 힘센 이, 곧 하느님 능력을 드러내는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수행하시는 일을 사탄의 것으로 돌려 예수님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하느님 편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로 돌아서기를 거부하는 죄입니다. 하느님을 반대하는 세력의
인격화된 표현들이 마귀·사탄·악마·유혹자·원수 등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 그런 세력들이
언급돼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기에 신앙생활에서도
그들과의 영적인 싸움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전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기도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성인들,
그리스도 자신이 기도란 일종의 싸움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인간에게 기도를 외면하게 하고, 인간과 하느님의 일치를
깨뜨리려는 유혹자의 계략에 맞서는 싸움이다. (?)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을 위한 ‘영적 싸움’은
기도의 싸움과 분리될 수 없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25항 참조)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물리쳐 이기신 분이니 하느님의 반대자들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영적 투쟁에서 우리가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과의 보다 더 깊은 일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충실하게 기도생활을 실천해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제라는 표현은 오늘날 근동 지방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나 가까운 친척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이란 그분의 친척들로 이해됩니다.
그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해 들은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냐며
오히려 반문하십니다. 그런 말씀이 어머니에게 불효하라거나 친지들과 반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의 강조점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우선이며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기준이 분명히 제시되었습니다. 교회는 혈연관계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세워졌고, 하느님 뜻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더 자주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담긴 하느님 뜻을 실천해
일상의 영적 투쟁에서 승리하여 하느님과 더 깊은 일치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서울대교구 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2024년 6월 9일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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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연중 제10주일
창세기 3,9-15 2코린토 4,13─5,1 마르코 3,20-35
어머니와 어느 교우의 편지
대만에서 자취 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시절, 나의 몸과 마음이 너무나 엉망이 되어버린 때가
있었다. 다급했던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들 신부를 위해 대만으로 넘어오셨고, 주방도 없는 단칸방에서 나를 위해 손수 식사를 챙겨
주셨다.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공항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두 통의 편지를 건네주셨다. “신부님, 여기 두 개의편지가 있어요. 하나는 내가 신부님에게
어머니로서 쓴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신부님을 가장 사랑하는 교우가 쓴 편지예요.
여기서 읽지 마시고 집에 가셔서 읽으세요.”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적혀 있는 첫 번째 편지 봉투부터
조심스레 열고 읽어 보았다. ‘아들아, 엄마야! 우리 아들 많이 힘들지? 엄마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단다. 나는 네가 공부를 끝마치지 않아도, 훌륭한 사제가 아니어도 전혀 상관없어.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돌아와도 괜찮아. 엄마는 우리 아들이 그냥 건강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신부님을 가장 사랑하는 어느 교우가’ 라고 적혀 있는 또 다른 봉투를 열었다.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들 신부님, 신부님은 누구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제라고 생각해요. 어서 빨리 한국에 돌아오셔서 신자들에게 좋은 말씀도 들려주시고
착한 목자로서 살아가기를 늘 기도드립니다. 신부님 힘내세요!’
어머니는 그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사제를 위하는 교우로서,
두 가지 마음을 두 통의 편지로 남겨 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다. 그런데 성모님은
‘나 예수님의 어머니야’ 라고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그냥 들어가셔도 될 법한데, 밖에서 조용히
예수님을 찾으신다. 예수님을 찾아온 성모님의 두 가지 마음을 묵상해 본다.
우선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아들이 미쳤다.’ 라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있음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여인으로서의 마리아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모님은 아들 예수가 걱정도 되었지만,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방해가 될까 봐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형제들과 밖에 서서 예수님을 찾고 계셨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으신다는 말씀을 듣고 군중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 3,34-35). 예수님에게 있어서 성모님은 당신을 낳아 기르신 어머니이시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가장 잘 실행한 여인이시다.
언젠가 미사 중에 “오늘 미사 중에 제 어머니가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계십니다.” 라고 말하니
신자들은 누가 본당 신부의 어머니일까 두리번거렸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미사에 오신 여러분이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오늘 미사에도 어머니가 나를 찾아오셨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며 오늘 미사에 나오신 본당의
모든 어르신들이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나의 어머니이시다. 대만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교우가 쓴 편지의 내용처럼 나에게 맡겨진 어머니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더욱더 사랑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리고 나 또한 하느님의 뜻을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며
‘예수님의 형제’ 라 불릴 수 있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해 본다.
춘천교구 조철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24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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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펠릭스 신부
연중 제10주일
창세기 3,9-15 2코린토 4,13─5,1 마르코 3,20-35
성령을 거스르는 죄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8-29)
다른 모든 죄는, 심지어 신성을 모독하는 경우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데,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으니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고 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화시키고, 구원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일을 악이 저지르는 일로 생각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의 빛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색안경을 끼워 구원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구원의 빛을 어둠으로 보게 만든다면 참으로 빛이신 분을
어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을 더러운 영으로 모독하는 이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오늘 율법 학자는 이런 비뚤어진 죄악의
시선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성령마저도 악령으로 바라보았고,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하느님의 일마저 마귀 우두머리의 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자신의 색안경을 다른 사람에게도 끼워주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색안경은 참된
용서를 거부하고 참된 주님을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열심 할수록 빛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악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그는 용서를 청할 수조차 없으며 영원히 자신의 죄에 매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색안경을 쓰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드러난 일로서, 열매로서 나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일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행위로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병자는 치유받고, 마귀 들린 이는 구마되고,
죄인은 참회하며 돌아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내시는 열매들은 그분이 참된 주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우리도 생각이나 말만이 아니라,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행위를 통해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참된 하느님 자녀임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열매(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갈라 5,22-23)
가 맺어진다면 나는 주님의 형제, 자매, 가족입니다. 우리는 이 열매를 잘 맺고 있는가
주의 깊게 살피며 주님의 길 안에 머물도록 노력하고 매번 사랑의 삶을 살아
이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합시다.
대구대교구 최재원 펠릭스 신부
2024년 6월 9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평화를 빕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8-29) 아멘
ㅡ < 강론 본문 참조 함. > 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