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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에 맞서다]① 강원도 산골의 '출산율 기적'…"애 키우기 더 좋은 곳 없어"
이상학입력 2023. 5. 15. 07:00수정 2023. 5. 15. 08:01
'산후조리부터 대학교육까지' 파격과 혁신의 돌봄·교육 지원
원어민 교사 지원에 공짜 해외연수…"다리 하나 놓는 것보다 인재 투자 중요"
출산율 1.4명, 전국 지자체 중 다섯번째로 높아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화천군 키즈 영어 아카데미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화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가장 큰 고민인 아이들을 위한 복지가 이곳 화천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해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에서 36년간 직업군인을 하다가 2019년 전역한 윤기초(59) 씨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화천에 정착한 이유는 바로 '자녀를 위한 복지' 때문이다.
화천군 전경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자녀 교육비 중 가장 큰 부담은 대학 학비와 외지 생활비.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윤씨의 아들은 4년 전액 장학금에 월세까지 화천군의 지원을 받는다.
고등학생인 둘째 딸의 대학 진학도 걱정 없다.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자녀에게 학비가 지원되기 때문이다.
최근 둘째 딸이 화천군에서 선발해 지원하는 해외 어학연수 관련 계획을 짜느라 들떠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화천에 정착한 윤기초 씨 [촬영 이상학]
인구 2만 3천명에 불과한 초미니 지자체인 화천군은 주민보다 군인이 많은 접경지역이다. 접경지역의 이중·삼중 규제에다 변변한 산업기반조차 없어 일자리도 부족하다. '소멸 위기' 얘기가 나올법하다.
하지만 지난해 화천군의 합계 출산율은 전국 지자체 중 다섯번째인 1.4명을 기록했다.
인접한 춘천(0.9), 원주(0.94)를 웃돌고, 전국 평균(0.78)의 두배에 육박한다. 평균 출산 연령(30.3세)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화천군의 '출산율 기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화천군 주민들을 만나 그들이 왜 화천군에 사는지,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이 다른 지자체와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출산과 보육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직접 들어봤다.
화천군 공공 산후조리원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함께 키우는 '공동체 보육'…공공 산후조리에 가사 서비스까지
경상도에서 생활하다 결혼과 함께 화천에 정착해 최근 넷째 아이를 출산한 박지영(39) 씨는 '감동'이라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산후기간을 보냈다.
셋째까지는 인근 도시에 나가 출산과 산후조리를 하느라 매번 300만원이 넘는 돈을 써야 했다. 화천에 남아 있는 어린 자녀들을 돌보지 못하는 부담감도 컸다.
넷째 출산을 앞두고 고민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화천군이 개원한 공공 산후조리원은 이러한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줬다.
임신과 출산부터 대도시 민간시설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화천군 공공 산후조리원에서 TV를 시청하는 박지영 씨 [촬영 이상학]
박씨는 "공공 산후조리원 덕분에 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고 피부와 건강 관리까지 꼼꼼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며 "출산의 기쁨이 두배가 돼 군청 게시판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활짝 웃었다.
화천의료원 옆에 있는 공공 산후조리원의 이용자 만족도는 98%에 달한다. 100명 넘게 예약이 몰리면서 연말까지 빈자리가 없다. 외지 임산부도 서비스를 받기 위해 화천군으로 '전입'할 정도다.
화천에 1년 이상 거주하면 2주간 180만원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퇴원 후에도 산모 가사 지원을 신청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세탁, 취사 등 가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박씨가 누린 돌봄 지원은 출산 후에도 이어졌다.
소아·청소년 민간 전문의를 고용한 화천의료원에서는 저렴하게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어린이 전용 도서관, 장난감 대여소, 키즈놀이센터의 프로그램 수준도 기대 이상이었다.
첫째 아이가 5살이 넘자 원어민이 참여하는 '키즈 영어 아카데미'에서 조기 외국어 교육을 받고, 놀이체육 등을 즐기는 '키즈 문화 아카데미'도 이용할 수 있었다.
박씨는 "아이 셋이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인데, 수년간 지켜본 결과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 참 잘 갖춰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화천군 운영 키즈 아카데미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초·중등생은 방과 후 교육 완비…"맞벌이 부모 부담 크게 덜어줘"
다섯 자녀를 둔 이송미(41) 씨는 3년 전 남편 직장을 따라 화천으로 왔다. 남편은 "화천군의 교육환경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대부분 오길 꺼리는 강원도 산골인 화천 근무를 자원했다. 이씨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실제 살아보니 만족도는 '최상'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아이들에게 필요한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과 체육 활동이 다양하게 갖춰진 것은 그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학교 1학년인 이씨의 셋째 아들은 2년째 중국어 아카데미에 푹 빠져 있다. 수업료는 공짜다. 이씨 입장에서는 흐뭇하기만 하다.
화천군 스마트 안심셔틀 버스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초등학교 4학년인 넷째 아들은 농구와 수영에 더해 쉽게 접하기 힘든 클라이밍까지 배우고 있다. 어린 나이여서 체육시설에 오갈 때 불안했지만, 화천군이 운영하는 '초등학생 전용 안심셔틀' 덕분에 근심이 없다.
안심셔틀은 아이들을 학교, 도서관 등 자주 이용하는 시설까지 무료로 데려다준다. 앱을 통해 호출하면 차량이 온다. 지난해 하루 평균 150여명이 이용했다.
넷째 아들은 "안심셔틀이 생기기 전에는 엄마 차를 타고 가거나 버스 시간에 맞춰야 했지만, 이제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호출하면 대부분 10분 안에 버스가 도착해 신기하고 편하다"고 말했다.
하반기 준공 예정인 화천 돌봄센터 [촬영 이상학]
올해 하반기에는 초등학교 1학년 막내딸을 하교시키는 부담도 없어진다.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인 방과 후 돌봄을 위해 화천군이 223억원을 투자해 화천초등학교 내에 만든 '돌봄센터'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방과 후 7시까지 운영된다. 스터디 카페, 공연장, 돌봄교실, 체육관 등으로 이뤄져 학습·체육·예체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자녀 교육을 화천군이 대신해주자 이씨도 최근 학교 보조교사로 취업해 단절됐던 경력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그의 만족도가 '최상'으로 올라간 또 하나의 이유다.
화천군 공공학습관 [촬영 이상학]
공공학습관 운영에 '공짜 해외연수'까지…외지서 고교 입학생 몰려
고교 1학년생인 박영욱(17) 군은 학교가 끝나면 집이 아닌 '화천학습관'으로 간다. 대도시 못지않은 강사진의 수업을 듣고 입시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의료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박 군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물어볼 수 있고,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의 멘토링도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사회인이 되면 후배와 지역을 위해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화천학습관에 모인 학생들 [촬영 이상학]
화천군이 2009년부터 운영 중인 화천학습관은 중3부터 고3까지 한해 66명의 학생을 선발해 최선의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서울 유명강사 출신 교사가 수시로 공부와 생활을 지도한다. 온라인으로 '일타강사'의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소그룹 학습이나 토론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됐다.
졸업생 221명 가운데 154명이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 또는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은 화천군이 지원하는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신청해도 된다. 부담액은 '0원'이다.
화천군 지원 청소년 벨기에 배낭여행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은 고교 입학생 증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까지 중학교 졸업생보다 고등학교 입학생이 적었지만, 2019년에는 중학교 졸업생 대비 고등학교 입학생 비율이 106%를 기록했다.
이후 올해까지 매년 중학교 졸업생보다 고교 입학생이 많은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지로 가지 않고 대부분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에 더해, 외지에서 화천지역 고교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다는 뜻이다.
전국 첫 '대학생 무상교육'…"SOC 예산 줄이고, 교육투자 늘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정하영(21) 씨는 학비 걱정이 없다. 집안이 넉넉해서가 아니다. 화천군이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등에 시간을 쓰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2019년 대학 등록금 지원자 기념 촬영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세 살부터 화천에서 산 정씨는 화천군의 교육복지 혜택을 톡톡히 봤다.
초등학생 때는 원어민 선생님이 가르치는 영어 아카데미에서 회화 능력을 키웠고, 중학생 때는 화천군 지원으로 3주간 캐나다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고등학교 때는 화천학습관에서 공부하면서 원하는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정씨는 "화천군의 지원에 항상 고마움을 갖고 있다"며 "특히 해외 어학연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은 경험으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화천군의 지역 출신 대학생 지원은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파격적이다.
인재육성재단을 설립해 부모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대학생 자녀에게 등록금 전액은 물론 월세(최대 50만원)까지 지원한다. 외국 대학에 진학하면 유학비까지 지원한다.
부모가 3년 이상 화천에 거주 중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지원액도 한도가 없다. 매년 소요되는 30억원 안팎의 장학금은 인재육성재단의 기금과 주민이 낸 기부금으로 마련한다.
화천군 도심 초입에 있는 안내판 [촬영 이상학]
화천군의 올해 전체 예산은 4천200억원으로, 교육복지 관련 예산으로 매년 250억원이 넘게 투입된다.
기초지자체 처지에서 적지 않는 금액이지만, 대형 SOC 사업비나 행사성 경비를 줄이고 공모사업을 통해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다리 하나 놓는 것보다 미래 인재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 화천군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2015년 전국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교육복지과를 신설하고, 2017년에는 '아이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2021년 아동 1인당 인프라·서비스 예산은 83만1천원으로, 서울 중구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는 돌봄센터, 공동육아 나눔터, 장난감 은행 등 아이를 위한 인프라와 서비스에 투입한 예산을 말한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아이들에 대한 보육·교육 지원은 학부모, 학생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의 부담을 줄여 정주 만족도를 높이는 화천군만의 지속 가능한 지역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열악한 재정 형편이지만, 교육복지에 대한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은 '지역소멸 위기'를 '지역발전의 기회'로 바꿀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학생을 응원하는 최문순 화천군수 [화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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