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26일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내 아들 이평화는 그러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의 공부를 위해
서울에 올라온 울 아들은 거의 우리가 운영하는 서예학원의 누나들의 손에 의해 이쁨을 받으며 자라난다. 누나들이야 모두 초등학생이다. 좀 자라서는 아파트 곳곳을 다니며 논다. 황비홍2 영화를 많이 본 탓에 보이는 막대기는 다 손에 잡고 황비홍 흉내를 낸다. 자전거, 바퀴가 달리 물건에는 재주가 없는지 삼발 사발 자전거 어느 하나 제대로 타는 게 없다. 그러나 누나들의 귀여움을 받는 이유는 등에 업힐 나이에서 벌써 놀이방에서 틀어주는 비디오로 인해 영어 알파벳을 습득? ㅋ 언제나 누나들이 질문공세에 척척 답을 하는 수준이었다. 놀이방을 졸업할 즈음에는 집에서 오전에는 황비홍2를 반복적으로 보았다. 하루에 2번 매일 매일 비디오가 닳도록 삼국지 드라마를 테이프로 빌려 보고 황비홍을 보고 혼자 무술을 하고 하얀고무신에 막대기를 휘두르는 꼬마황비홍 이평화는 그렇게 자라간다. 공부는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학습을 하지 않아서 초등학교 진학하고는 받아쓰기는 물론이고 학습태도가 산만하여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러서 진지하게 유급을 권유하였다. 1살 빨리 진학을 했으니 휴학을 1년 하여 유급을 하는 게 어떤지 물어왔다. 세상은 미국의 무역센터 911테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주 어지럽게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 다음 해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의 붉은 악마를 탄생시키며 전 국민을 붉은 악마 축구 열풍으로 몰라가다. 그 월드컵을 뒤로하고 고민하던 아들 휴학을 결정한다. 아빠가 중국 하얼빈으로 그림공부를 하는 가는 것을 계기로 과감하게 내가 권유한다. 1년만 아이를 데리고 중국 곳곳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유급을 하자고! 그리 시작된 이평화의 중국행 그것이 조기유학이 되었다.
유학중 참으로 많은 일이 발생하였다. 유학생이 별로 없던 시기인지라 중국학교에서도 유학생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고 나 또한 정보가 미미하여 실수도 많았다.
여튼 잘 적응한 이평화는 2009년 9월에 하얼빈1중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3년후 2012년 9월에 청화대학 전자과에 입학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ㅋ 2017년 6월에 졸업을 하고 2018년 1월 8일에 국방부의 부름을 받고 양산희망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도우며 복무를 하고 2019년 12월에 제대를 하고 대학원 준비에 들어간다. 하필 얼마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전세계는 팬더믹 상태로 빠지고 유학의 길은 멀어지고 나의 권유로 한국의 대학에 우선 지원을 하는데 서울대학에 인턴으로 2021년 2월에 들어간다. 6월에 청화대학의 입학 소식으로 서울대학은 접고 2021년 9월 23일 개학을 지나서 코로나 백신을 접종 완료하고 북경 비행기에 올랐다.
아들은 엄마인 나에게 많은 행복을 주었다. 잘 건강하게 자라줘서 행복했고 세속적인 욕망을 채워줘서 고맙고ㅎ 엄마의 세속적 욕망은 자식이 명문대학 가는 것 하하 대학원 진학은 엄마의 경제력을 생각하여 중국정부 장학금 신청을 하여 장학생으로 공부하게 되어 고맙다.
농구를 공부보다 더 좋아하는 아들 평화. 대학원 진학하고 얼마되지 않아 벌써 병원을 다녀왔다.ㅠ 농구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ㅠ 운동과 공부를 즐겁게 하고 대학원 생활 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