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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은 경남 영덕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 또는 강월헌이다. 종7품 선관서령膳官署令 벼슬을 하던 부친 영해부인寧海府人 아서구牙瑞具와 모친 영산군인靈山郡人 정鄭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선사는 1340년 나옹의 나이 20세 무렵, 이웃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 무상감에 방황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혜근은 주위 어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이 질문에 제대로 해결해주는 분이 없었다. 혜근은 답답함을 풀고자 경북 문경의 공덕산 묘적암에 주석하고 있던 요연了然에게 출가하였다.
혜근은 스승과 헤어져 운수납자로 여러 곳을 유행하였다. 25세 무렵, 경기도 양주 첩보산 회암사로 들어가 4년간 장좌불와하며 용맹정진하였다. 마침 이 절에 일본 승려 석옹石翁이 머물고 있었는데, 석옹이 법문을 하다가 선상禪床을 치면서 말했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나옹이 일어나 게송으로 답했다.
“선불장 가운데 앉아서 성성역력하게 보아라. 보고 듣는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로다[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혜근은 회암사에서 4년간 수행한 뒤 겨울[29세], 눈이 쌓인 뜰을 거닐다가 조금 일찍 꽃핀 매화를 보고 깨달았다.
1347년, 혜근은 29세에 원나라로 건너갔다. 스님은 연경燕京 법원사法源寺[당시 고려 사찰]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승려 지공指空을 찾아갔다. 지공이 먼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편으로 왔느냐, 육로로 왔느냐, 신통으로 왔느냐?”
“신통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신통을 내게 보여 주시오.”
그러자 혜근이 지공 앞에서 두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지공이 다시 물었다.
“고려에서 왔으면 동해를 보고 왔는가?”
“안보고 어찌 올 수 있겠습니까?”
“12개 방자房子를 다 가지고 왔는가?”
“네 가져왔습니다.”
“누가 이렇게 너를 오게 하였는가?”
“제가 스스로 이렇게 왔습니다.”
“무얼 하러 왔는가?”
“후인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법거량을 통해 혜근은 지공 문하에서 2년을 머물렀다. 혜근은 지공 문하에서 자신이 닦아온 수행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지공 스님은 인도 마갈타국(磨竭提, Magadha) 왕자로서 출가하여 선종 법맥 108대 조사이다. 그는 당시 중국으로 건너왔고, 충숙왕忠肅王 때에 고려를 다녀간 적도 있다.
이후 혜근은 지공 문하를 떠나 선지식을 찾아 다녔다. 혜근은 강소성江蘇省 항주杭州 정자사淨慈寺의 평산 처림(平山處林, 1279∼1361) 문하에 이르렀다. 혜근이 승당에서 거닐고 있으니 처림이 물었다.
“대덕은 어디서 왔는가?”
“대도(연경)에서 왔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고?”
“서천 지공화상을 만났습니다.”
“지공화상은 일용에 뭘하던고?”
“지공은 천검千劍을 쓰나이다.”
“지공의 천검은 차치하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와봐라.”
나옹은 좌복으로 선사를 내리쳐서 넘어뜨린 다음, 다시 처림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릴 수도 있다.”
처림은 나옹의 법기를 알아보고, 그에게 법을 전했다.
혜근은 몇 년간 유행한 뒤 다시 법원사의 지공을 찾아갔다. 혜근은 자신이 고려로 돌아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의 앞길을 물었다. 지공은 혜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처三山兩水處를 찾으면 불법이 흥하리라.”
이 삼산양수처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는데, 인도의 나란타대학이 있었던 곳과 유사하다고 한다.
1358년 39세의 혜근은 10년 만에 고려에 귀국했다. 혜근은 오대산 상두암象頭庵에 은신해 있다가 공민왕의 청으로 해주 신광사神光寺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지도했다. ...........
이후 혜근은 수선사[송광사]에 머물렀다. 1371∼1373년, 2년 동안 수선사의 사주를 역임하였으며, 이어서 혜근의 제자인 무학 자초(1373∼1375)와 환암 혼수(1375∼1376)도 수선사의 사주를 역임했다. 만년에 혜근은 지공이 말했던 ‘삼산양수처’로 회암사를 생각하고, 회암사에 머물며 도량을 정비하고 낙성회를 베푸는 등 회암사를 중수하였다.
첫댓글 스승 지공 외국스님과 제자 나옹스님의 특별한 법연
입적후에도 해외에서 공양 받으시다
고국으로 환국하시는
지공 나옹스님
스승과 제자의
영원한인연
중생귀의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