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이제 흑인음악을 들어온 지도 대략 5년이 넘어가고 귀가 많이 뻥뻥 뚫리기도 하였으며
성향에 많은 변화가 있기도 하였다. 물론 이걸 보고 "겨우 그것까지고"라고 비웃으실 선배님들에게는
한참 수줍을 뿐이지만 흑인음악 아니 그중 랩뮤직에 애정을 쏟아부으며 나름대로 음악관과 문화관념에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뭐처럼 내 지금껏 주의 깊게 들어왔던 음악나무의 굵직굵직한 줄기를 한 번 되짚어 보려한다.
장장 25년 가량 되어가는 랩뮤직의 히스토리에 있어 비중 있었던 뮤지션에 대한 소개와 나의 소견 그
리고 음악에 대한 감상평을 긁적겨려 볼테니 한번 봐주십시오~
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미국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지식이 없다. 평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난 그래도 메이져 씬이 좋다. 국내에 꽤나 포진해 있을 미국 언더그라운드 씬 팬들에게는 양해를 구한
다.
sugahill gang
슈가힐 갱.. 난 이들의 음악을 라디오방송에서 처음 접했던 것을 기억한다.
힙합 더 히비 더 히비 투더 힙힙 합 앤 예 돈 스탑!!
아마 랩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선두에 서는 이들일 것이다.
79년 이들의 데뷔싱글 "rapper's delight"은 할렘을 강타했으며 랩의 존재를 선포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미미한 랩 분자들이 존재했었다만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한 이들이야말로
랩 더 나아가 힙합이라는 영역으로의 개척자가 아닌 듯 싶다.
afrika bambatta
아프리카 밤바타 ..물론 랩을 무기삼아 나온 그들이지만
많은 이들은 그들을 랩 뮤지션이라기보다 펑크 뮤지션이라고 칭하길 원한다.
그들의 튕기는 비트와 뿅뿅거리는 신디사이져 소리는 죠지클링턴, 펑카델릭의 그것이었으며
무대 컨셉 또한 그러했다.
역사에 기리기리 남을 만한 명곡 "planet rock"은 알만한 사람을 다 알만한 그런 곡이며
전세계 비보이들과 팝퍼들에게 있어 밥과 같은 곡이었다.
kurtis blow
슈가힐 갱이후의 랩씬은 다소 활성화 되었다.
이제 게토의 흑인들은 소울/알엔비 보다는 펑크나 랩계열의 음악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스튜디오에서는 이미 랩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시기 즈음 하여 꽤나 랩 잘하는 말끔하게 생긴 흑인 청년이 앨범을 냈으니 그가 바로
커티스 블로우이다.
약간 설익은 듯하였던 슈가힐 갱에 비해 커티스 블로우의 랩과 비트는 그나마 탄탄했으며
그의 넘버원 송이자 힙합 의 첫 신호탄 격인 "the breaks"는 상큼한 기타리프에
Clap ya hand everybody!! if you got~~라는 전설적인 구절을 탄생시켜 크나큰 인기를 얻
었다.
하지만 그는 그게 끝이었다.
Run D.M.C
누가 이 세 젊은이들의 데뷔를 "혁명"말고 다른 어휘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83년 이들의 데뷔는 21세기는 "힙합의 세기"라는 다소 과장된 예견을 불러일으키기 어렵지 않았다.
이들은 전세대의 슈가힐 갱이나 커티스블로우, 그외 펑크를 표방한 많은 여타 랩그룹과는 달리 음악에있
어 소울/펑크/알엔비등의 조미료를 과감히 삭제시켰다. 샘플 조각들은 찾기 힘들었으며 그들은 새롭디
새로운 힙합으로서의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시켜버렸다. 그것이 그들의 데뷔가 더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슈
가힐 갱이나 커티스블로우의 음악에 비해 그들의 음악이 조악하고 촌스러워보이는 원인일 것이며 그 원인
원 80년대초중반 힙합사운드의 전형을 일군다.
둔탁해보이는 드럼머신 비트위에 그들은 펑크식 기타리프보다는 차라리 락에 쓰이는 일렉트릭기타 리프를
사용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는 비보이들이나 여타 댄서/디제이들에게 춤추기 쉽고 관중을 감동시
키기 수월한 팁을 제공해버린다.
전설적 히트 싱글 "It like that"은 지금 들으면 귀엽고 아기자기 하기 이를 때 없지만 그 당시에
는 플로어를 화끈하게 달구어놓았다고 한다.
3번째 앨범에서 그들의 성향은 극에 달했으며 혹자는 가장 위대한 힙합앨범으로 그들의 3집
Raising hell을 꼽기도 한다.
에어로스미스의 곡을 리메이크 함과 동시에 그곡에 에어로스미스를 참여시킨 "walk this way"와 브
레이크 댄싱 비트의 품격을 한층 높힌 "peter piper"등 이 앨범은 그야말로 "최고"일 수 있었다.
그들이 활기치던 이시기야 말로 힙합황금기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LL.COOL.J
캥골 벙거지 모자와 쇠사슬같은 금목걸이,
아마 걸어 다니는 랩의 전설 엘엘쿨제이하면 떠오르는 단편적 영상일 것이다.
이 패기넘치고 당당한 청년의 도전장 "Radio"는 그야말로 라디오 씬을 후려쳤고
그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I can't live without my radio"는 잊혀질수 없는 고전이었으며
필자도 이 곡을 처음들었을 때 신경세포하나하나가 전율함을 느꼈다.
그 당시의 음악 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런 그의 랩과 비트에는 "에너지"가 있었으며 그 긍
정적인 에너지는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특히 그것도 여성팬들에게
귀공자같이 잘생기고 섹시한 그의 외모와 간혹 랩발라드곡에서 들려지는 그의 달콤한 목소리는 흑인여성
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으며 그는 한 잡지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10명안에 드는 랩퍼
로서는 생소한 기록까지 세워버린다.
너무 부드럽다는 칭찬이 거슬렸는지 그는 세기의 역작 "Mama said knock you out"이라는 다소
깜찍한 제목의 앨범을 발매해 자신의 남성다움과 박력있는 모습을 자랑하였으며
이 앨범의 표지에서도 그의 심경변화를 느낄수 있다.
그의 이러한 시도 역시 대중과 힙합 씬은 감사하게 수긍하였으며 그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전성기 때에 영화와 시트콤에 너무 혼을 쏟았는지 그의 5집은 폭삭망해버렸고 그는
슬럼프에 퐁당 빠져버린다. 그 슬럼프에서 힘차게 점프하여 예전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준 앨범이 바
로 그의 6집 "Mr. smith"이다. 자신의 본명을 앨범제목으로 명명한 만큼 자신감이 녹아있었고 그
자신감은 어느때보다 신중했다.
그 신중한 자신감은 다시한번 힙합씬과 그의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고 "Hey lover"는 그가 다시
랩계의 섹스심볼로 힙합황태자자리에 오를 수 있는 충전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지금에야 "노장"이란 호칭이 항상 따라 다니는 그이지만 나에게나 힙합팬들에게나 그는 언제나
"왕자님"이시다.
public enemy
이름에서도 의미심장한 기운이 감돌지 않는가?
번역하면 익숙한 "공공의 적"이다.
87년 데뷔한 이 단체는 그야말로 반정부주의 테러단체같은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목에 걸고 있기 힘들것같은 커다란 시계와 요상한 선글라스, 척디의 푹눌러쓴 야구모자,
그들의 1집은 그들의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너무나도 딱맞아떨어지는 센세이션이었으며
커다란 호평을 받아버린다.
뒤이어 나온 그들의 2집, 그들 사운드의 전형인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달리는 듯한 비트, 긁어대는 스크
래칭,등이 한데 어우러져 진수성찬을 펼친다. 플랩의 "예~~~~~~~~~보이"라는 어구는 이제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샘플링의 단골메뉴가 되었고 우렁차고 씩씩한 척디의 랩과 목소리 톤은 쩌렁쩌렁 흑인
들을 호령했다.
첫 두앨범에 너무 큰 기운을 쏟았는지 그들은 차차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그 곡선의 각도는 여전하다.
eric B & rakim
그룹 이름 정말 멋지지 않는가? 데뷔앨범 paid in full 자켓에서 라킴의 헤어스타일 또한 멋지
다.
디제이 에릭 비와 엠씨 라킴 이 듀오의 앙상블이야 두말할 것 없고
라킴씨의 가사가 관건인데. 솔직히 내가 외국인이 아니니 이부분은 뭐 어찌할 수가 없다.
가사해석해놓은걸 보고 감동을 느낄 수밖에..
하지만 1집의 1번 트랙 "I ain't no joke" 의 제목 해석만으로도 충분한 전율은 느낀다.
"난 농담한해"라는 진지한 한마디가 라킴의 이미지 메이킹을 책임질수 있으며
이후로도 가사의 신이라 불리는 이분의 작사능력은 훤하다.
그의 가사스타일은 그 이후나온 랩퍼들의 작사과정에 커다란 동기부여를 해주었고
이는 곧 "내 랩에 맞추어 놀고 춤추자"가 아니 "우리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라는 분위기를 다지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의 솔로앨범 the 18th letter (18번째 문자)의 해석을 볼 수 있었는데 완전 이슬람 성경책을
쓰셨더라.
대단하시다. 필자는 이 앨범을 무척 즐겨 듣는데
이 앨범엔 기라성같은 세기의 프로듀서들이 모두다 참여했다 .
디제이 프리미어, 피트락, 클락켄트, 쇼비즈, 등등 뉴욕의 요점들이 정성을 다해 제작한 앨범이었다.
힙합씬과 그의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명반이었지만 그리 커다란 차트성과나 앨범 판매성작은 거두
지 못했다고 알고 있다.
필자가 처음 기대에 부풀어 1987년 paid in full을 통해 라킴의 랩을 들었을 때 라킴의 나즈막
하고 코막힌듯한 목소리가 약간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반복 또 반복 하여 음미하였을때의 그 감
동이란..
위에서 언급하였던 I ain't no joke의 말끔한 프로듀싱과
우리에게 익숙한 I know you got soul의 동동 구르는 비트위의 라킴의 너그러운 랩.
그리고 시대의 명장 Marley marl의 수려한 비트메이킹과 라킴의 랩이 빛을 바라는 Eric B is
president.등등..
그에게는 스킬이 있다. 에릭 비 앤 라킴 시절에도 그랬고 그의 첫 솔로데뷔앨범 때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the 18th letter와 the master앨범 모두 뛰어난 명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그의
명성을 되찾기엔 무리가 있었는 듯 싶다.
게다가 얼마전까지 팬들을 설레이게 했던 닥터드레와의 공동작업설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하니..정말
오 마이갓 !! 랩의 신 라킴의 재기를 기대하며...
KRS One with Boogie Down Production
전도사!! 아마 힙합에 몸담아온 그의 반평생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짧고 명쾌한 단어일 것이다.
힙합의 4대 요소를 정의하기도 하고 MC SHAN과의 배틀로 후대 배틀랩의 디딤돌을 다져놓았으며 대학
강단에 서서 힙합의 본질에 대해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는 1987년 boogie down production 이란 그룹을 이끌며 데뷔해 "Criminal minded"
(범죄심리)을 발표해 커다란 획을 그었다. 당시 라킴의 지적인 플로우로 열광하던 힙합씬은 이 그룹의
데뷔에 또 다시 집중한다.
이 앨범에서 케이알에스원은 Poetry란 곡을 통해 자신의 랩은 운과 율이 융합된 시와 같으며 또한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외치고 있으며 앨범제목과 동명타이틀곡 Criminal mineded에서는 게토의
어둡고 험난한 삶을 그대로 묘사해 90년대 힙합 씬의 갱스터식 작사기법의 토대를 마련한다. 잘한
일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으나 그의 시도는 꽤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는 런디엠씨에 이은 하나
의 혁명이라고 명명되기도하였다.
케이알 에스원... 필자는 한때 이분에게 푹빠져 살았었다.
그의 앨범을 구하려 추운 겨울날 압구정 거리에서 상아레코드를 찾아헤매며 얼어가는 내 손과 얼굴조
차 잊어가던 추억을 나는 되새긴다.
고생 고생하여 상아레코트에서 구입한 그의 1집 Return of the boom bap을 책상위에 앉아 포
장을 뜯고 씨디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시킬 때 그 휘몰아 치는 감동을 그대들은 알 것이다.
1집은 나의 보물 1호가 되어버렸고 수십번 수백번도 더들었다.
특히 아련한 느낌의 10번트랙 Brown skin lady는 정말 귀가 닳도록 들어댔다.
몇 달후 구입한 2집의 수록곡인 MC's act like they don't know는 내 고막이 멍해질때가까
지 들었다.
그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곡에서는 그의 동반자 디제이 프리미어가 비트를 제공했고 물만난 고
기처럼 여유롭고 교과서적인 훌륭한 랩핑을 구사한다.
디제이 프리미어이 스타일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곡이기도 하고 그의 전매특허인 스크래칭이 세련
되고 깔끔하게 조합되었다. 비트의 질감 역시 디제이 프리미어 케이알에스원 양자간 최고의 명곡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ICE CUBE
지금 까지 이스트코스트에만 편중하듯 싶다.
지금 소개할 아이스큐브는 정말 알만한 사람다알 것이다.
심지어 드렁큰 타이거 팬이나. 영화팬들조차도 익숙한 이름일테니.
흔히들 찡그린 그의 험악한 얼굴과 영화에서 간간히 비추어지는 조연쯤으로 기억할 듯 싶은데
힙합씬에서의 그의 비중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무겁고 비중있었다.
갱스터랩의 효시였던 N.W.A의 실질적 중추와 마크였으며 국내에도 유명한 WEST SI~~~DE!!구절의
원조이시기도 하다.
N.W.A의 랩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박력있고 강렬한 그의 랩핑스타일은 그와 사뭇다른 스타일의
EAZY E와 묘한 향연을 뿜어내 갱스터적인 이미지를 마음껏 발산했고 솔로1집Amerikka most
wanted를 발표해 그야말로 현상수배범의 마스코트를 창조해낸다.
90년대 웨스트코스트 씬을 스눕과 드레가 지배하긴 했어도 그와 같은 어깨높이엔 항상 아이스큐브가 든
든히 있었다.
그는 2집에 Black korea라는 한국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발칙한 곡을 수록해 소심한 한국인들을 당황
케하기도 하였다.
96년 현 웨스트코스트계의 거물 Mack 10, W.C와 함께 Westside connection을 발족해
앨범 bow down을 내놓는데 이는 앨범을 발매한 그들에게나 westcoast의 몰락에 안타까워하던
팬들에게나 시원하고 달콤한 청량음료역활을 톡톡히한다.
이 앨범에서 물이 오를대로 오른 3명의 갱스타엠씨의 격렬한 랩핑과 그와 어우러지는 묵직하고 음산한
비트는 가히 웨스트코스트씬의 이상향이었고 침체되었던 LA힙합씬에 활력소를 불어넣어준다.
EAZY-E
위의 아이스큐브와 함께 N.W.A의 공식적 리더였고 야무지고 독해보이는 그의 외모는 컴튼지역의 상징이
된다. 아이스 큐브의 굵직한 목소리와는 달리 그는 여리고 여성스런 목소리의 소유자지만 그의 랩핑은 언
제나 힘에 넘치고 강했으며 그는 그가 갱스터 랩의 죽어버린 전설로 불리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좀 불쌍한 양반이기도한데 N.W.A가 해체된 이후 그의 활동은 하강곡선 그대로였다.
솔로앨범에서의 몇몇 히트곡들이 배출되긴 했다만 스눕과 드레의 데뷔이후 그들에게 조롱과 씹힘만 통쾌
하게 당하고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반격도 거세게 하였다만 대중과 힙합씬은 스눕과 드레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도 그는 클리브랜드의 랩그룹 본덕스앤하모니를 발굴해 이들을 성공시켰으며 95년 꽤 의미심장한
베스트 앨범 Eternal.E를 준비해 그의 랩인생을 중간점검하려했다.하지만 운명은 그를 그대로 놔두
지 않았고 그 앨범은 끝내 유작이 되어버린다.
그의 사인은 에이즈 였고 에이즈로 죽은 흑인랩퍼에대한 대중의 태도는 차가웠다.
드레 아저씨가 그의 장례식에서 친구였다며 눈물을 뚝뚝흘렸다는데 뭐 울것까지야...
Marley marl
다시 동부로 돌아와서.
이젠 프로듀서 한 명을 짚고 넘어가자.
말리말..아마 앨범사고나서 자켓크레딧을 유심히 보는 성격의 분이라면 이 이름을 수백번도 더봤을 것
이다.
MC Shan, Biz markie, kool G rap, Heavy d, Eric b & rakim, LL Cool J,
TLC, Big daddy kane,등등 수많은 뉴욕랩퍼들의 비트를 제공해주었으며 87년~92년도쯤 까지의
뉴욕힙합신은 거의 그가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퀸즈출신의 힙합크루 Juice crew의 리더이자 두뇌였고 런디엠씨 식 올드스쿨힙합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그야말로 투박하고 Raw한 스타일의 순수힙합 스타일 비트를 창조한 그의 업적은 기념비적
이었다. 건조하고 흐느적거리는 드럼비트에 거친 스네어,감각적인 샘플링, 그리고 난무하는 스크래칭을
버무린 그의 아름다운 프로듀싱 기법은 이후 Pete rock이나 Showbiz등 많은 신진 프로듀서에게 교훈
을 던져주었으며
올드스쿨랩퍼들에게는 말리말의 프로듀싱이란 곧 앨범의 성공을 뜻하기도 하였다.
엘엘쿨제이역시 그가 프로듀싱한 Mama said knock you out으로 화려하게 재기하였고 그의 비트
덕택에 kool g rap은 뉴욕의 제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얼마전 매니아들의 영양소연재물인 비트제네레이션씨리즈에도 초청되 RE entry를 발매해 그의 건재
함과 자신이 비트의 연금술사임을 과시한바 있다.
Slick rick
1985년 세상은 이 능구렁이와 같은 미끄러운 플로우를 구사하는 랩퍼slick rick과 비트박스의 시초
격되는 doug. e fresh의 "LA DI DA DI"란 싱글에 주목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이 랩퍼는 The great adventure of slick rick 이란 앨범으로 멋지게 데
뷔한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쯤 되는 chidren's story는 storytelling이란 혁명적 작사기법
을 전파시키는 데 일등공신역활을 한다.
이 곡에서 슬릭 릭은 특유의 미끌미끌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한 편의 일기를 천재적 플로우와 라임으로 소
화시켰으며 긴장감있는 비트 위에 어우러진 그의 랩은 후배 랩퍼들에게 크나큰 영감을 제공하기에 충분
했다. 후세의 스눕독이나 제이지,큐팁,탈립콸리 등 부드럽고 말랑 말랑한 랩을 구사하는 랩퍼들의 표본
이 되었던 슬릭릭은 이로부터 2년후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물론 그 이후에도 옥중 2개의 앨범을 더 발표했고 출소 후에도 신작을 발표했건만 대중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고 그의 랩퍼로서의 인생은 그저 전설적이 랩퍼라는 평을 받는데 종지점을 찍는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전설로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화려한 스킬과 스토리텔링기법의 작사실력,
그리고 잊혀질 수 없는 매끄러운 플로우가 너무나도 찬란히 빛났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Big Daddy Kane
섹시하고 쿨한 외모의 대명사인 엘엘 쿨 제이에 버금갈만한 슈퍼스타가 한명있었으니
바로 이 빅대디케인이다.
엘엘쿨제이가 럭셔리하고 섹슈얼하긴 했지만 다소 느끼했던 반면에 빅대디케인은
약간 더 할렘스럽고 지나치게 담백하였다. 그 역시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다만
글세 엘엘 쿨제이와는 사뭇 다른 남성미를 뿜어냈다.
그는 90년대 플랫탑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키기도 하였으며 중절모와 커다란 색안경은 그의 트레이드 마
크이다.
그는 말리말이 이끌었던 퀸즈 - 쥬스크루의 핵심멤버였으며 그의 화려한 랩스킬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는 랩뮤직의 황금기가 저물어갈 무렵 함께 저물어갔으며
여전히 건재한 엘엘 쿨 제이에 비해 한없이 초라해져가고 있다.
(자꾸만 엘엘쿨제이에 비교하게 되네..)
그의 넘버원 송 Very Special을 매우 즐겨듣는데 상큼하고 잔잔한 랩발라드위에 얹어진 빅대디케
인의 굵직한 랩핑은 언제나 멋지다.
A Tribe called Quest
1991년 까다롭고 도도하던 흑인음악 잡지 소스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름을 필두로 한 A tribe
called quest(이하 ATCQ)의 2집 "the low and theory"에게 마이크 5개 만점에 빛나는
경이로운 점수를 부여한다.
ATCQ는 1989년 1집을 발표하였으며 당대 선풍적으로 일어나던 "Native tongue"열풍의 핵이기도
하였다. De la soul, Brand nubian등 재즈-랩계열의 뮤지션들이 앞장섰던 이 캠페인성향의
운동은 랩의 지적 퀄리티를 상승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사운드의 소재에 있어어도 신선하고 고
급스럽게 힙합씬에 어필하였으며 한 세대 뒤에 부상한 the roots나 common, mos
def,talib qwelki 등 지성파 랩퍼들의 방향을 제시하였었다.
ATCQ의 음악적 색깔은 추상과 전위(아방가르드)란 단어로 함축되며 앨범전체의 분위기는 "몽환"이
다.
추상화같은 앨범자켓스케치와 몽롱한 분위기의 사운드
대다수 ATCQ의 팬들이 열광하는 ATCQ의 감상포인트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목소리의 큐팁이 뱉어내는 환상적인 플로우와 라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파이프의 활기찬
랩핑은 아련하고 몽환적분위기의 재지한 비트와 맞물려 재즈랩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증명한다.
그리고 이들의 시도가 얼마나 신선했는지는 현재까지도 랩영웅대열에 당당히 합류해있는 큐팁의 랩 적
지위만 되짚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리드머에서 멋진글 이미 접했습니다만 여기서 또 뵙게되니 반갑습니다..
전 힙합명반에서도 접했었죠. 유익한 글이였습니다.
오늘은 과제때문에 다못읽네요 ㅠ.ㅠ 내일와서 읽어야지
리드머, 힙합명반카페분들, 역시나 여기에서도 뵙는군요 저도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한 울타리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한것같습니다. 이 나스카페에서도 활동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파트 또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