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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하라
마태복음 6장5-8절 / 김병삼 목사
➤“5. ¶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6.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7.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異敎徒)들과 같이 헛된 반복의 말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KJV)
오늘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이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짧게 나누게 될 텐데 제가 또 여러분들 또 목사님 만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다가 만나하면 좋겠습니다. 자 요번 부흥회 기간을 통해서 제가 조금 제가 생각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들 성경에서 나오는 우리가 놓치는 그런 부분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하나하나 나눠 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주제는 제자입니까? 라는 주제고요. 오늘 여러분들과는 기도에 대한 올바른 생각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기도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나의 목적을 이루고 싶어서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답은 우리들이 다 알아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들이 기도하는 우리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목적보다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할 때가 참 많은 거 같아요.
기도가 쉽지 않아요. 제가 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고 저희 교회는 평신도 묵상 팀이 있어서 제 설교 원고를 이렇게 나누어 주고 피드백을 주세요. 했더니 한 분이 이 기도에 대한이 설교 원고를 듣고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많은 사람들이 나도 기도를 좀 잘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얼핏 우리들에게 드는 게 고급 어휘를 사용해서 유창하게 기도하는 것 그것이 기도가 그것이 기도를 잘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는데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다 보니까 진짜 기도는 나 중심이었던 기도가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로 변화될 때 그것이 제대로 하는 기도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지요.
기도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소통을 경험합니까?
일방적인 기도들을 합니까? 이 소통이라고 하는 것 여러분들 미국 와서 사시면서 여기에 태어난 분들도 간혹 있겠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온 분들이 꽤 있지요. 저도 30살 때 미국에 왔어요. 영어가 너무 힘들어요. 공부하는데 영어만 잘하면 뭐든지 할 것 같아 제가 미국 사람들 보면 그땐 거지도 부러웠어요. 미국 홈리스는 어떻게 저렇게 영어를 잘하나 근데 진짜 제 생각에는 홈리스들이 구걸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됐어요. 영어를 저렇게 잘하는데 왜 구걸할까? 저에게 된 그 영어에 대한 소통되지 못하는 것들 제가 시카고에서 2년을 이렇게 공부하면서 그때 이제 조금 더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이제 데이트 내 박사과정을 하는지 오게 되었는데 제가 센터빌이라고 하는 곳에 살았어요. 그런데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센터빌이라고 하는 그 지명을 센터빌이라고 안 하더라고요. 그래요 제가 자동차 라이선스를 일리노이에서 오하이오로 바꾸려고 이제 운전하는데 갔는데 이제 주소를 물어보는 거예요. 그 직원이 그래서 제가 듣던 대로 셋업이로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직원이 저한테 왓 그러는 거예요. 제가 셋업인 그랬더니 왓 그래요. 너무 당황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제가 또박또박 센터빌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직원이 아 셋업이에요.
전 지금도 거의 한 30년 가까이 지나갔는데 그 미스터리 야! 이거 이 언어라고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하는 게 참 힘들다 근데 저는 기도를 우리들이 언어로 생각할 때 진짜 우리들이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알아들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들려지는가? 그런데 이런 고민이 우리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있었던 거야! 그리고 또 우리들이 기도할 때 아주 당황스럽게 우리들의 신앙생활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정말 풀리지 않는 숙제가 우리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가 참 많은 것이지요.
어떤 기도는 응답이 되고 어떤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고 어떻게 기도해야 기도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 겁니까? 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뭐예요? 주기도문이에요.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냐면 기도의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벌써 먼저 말씀해 주고 계신 거예요.
오늘 말씀이 중요할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의 장애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첫 번째가 뭐냐면 “위선적인 기도 종교적인 기도가 되지 않도록 해라.” 오늘 목사님이 5-6절만 읽어 주셨는데 사실 본문은 5-8절까지 이어지게 될 거예요. 6장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장5절 “5 ¶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1. 외식하는 자의 기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외식하는 자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 하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다.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위선적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하여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 그런데 그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적인 기도였다 위선적인 사람들을 성경에서 얘기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을 우리는 뭐라고 얘기를 하냐? 하면 종교적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구분이 분명했으면 좋겠어요. 종교적인 사람이 있고 신앙적인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신앙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그런데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자꾸 종교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중요하게 이 종교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을 그분은 무엇일까? 저는 요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종교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데 세속적이에요. 신앙적인 사람은 영적이에요. 자 그럼이 구문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종교적인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뭔가 세속적인 것을 자꾸 얻으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앙적인 사람은 복음적인 사람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해요. 지금 여러분들이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오늘 우리는 이 예배하는 이 자리에서 찬양을 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데 우리는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서 우리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가? 사실 우리 신앙의 이 기준이 반듯하게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의 이 행위들 예배하는 것들이 종교적이 될 수 있고 위선적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 위선적인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과 같다. 너희들의 겉모양은 예배하고 있지만 너희들의 속에는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다. 말씀이 굉장히 무서운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가? 우리는 신앙적인가?
2. 은밀한 기도에 대하여
두 번째 우리가 경계해야 될 기도의 동기에 대해서 은밀함에 대한 문제를 말씀해 주고 계시다고요. ➤마태복음 6장6절 “6.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은밀하게 기도한다고 하는 이 은밀한 기도의 유일한 동기는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기도는 그 동기가 무엇인지가? 분명히 보이는 것이지요.
다시 이야기하면 종교적인 사람은 내가 이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뭔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조금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럼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기도하는 모습들이 나오는데요. 바리새인들의 금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어요. 사람들이 금식하는 게 아주 오랜 금식이 아닙니다. 하루 금식합니다. 여러분들 금식해 보셨어요. 하루 금식하면 우리의 모양이 어떻게 될까요? 아무 변화가 없어요. 하루 금식한다고 살이 빠지거나 이런 것 없습니다.
이거 해봤어야 하는데 이거 참 근데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하루를 금식하는데 아무 변화가 없으니 누군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 사람들은 금식할 때 일부러 세수도 안 하고 오늘 화장도 안 하고 꾀죄죄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왜 왜 모양이 그 모양이에요. 그러면 아 제가 급식 중이라. 뭐 이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모습이 바리새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있는 거야!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성 은밀한 관계 속에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이 기도를 통해서 얼마나 영적인 존재인가? 이런 것들을 드러내고 싶을 때가 많이 있는 것, 제가 부끄러운 고백이 있는데 할까요?
새벽 예배를 제가 3년 동안 금식하며 인도했는데 목사님은 절대로 그런 것 하면 안 돼요. 왜 3년을 인도하는데 제가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몸이 많이 망가졌어요. 그런데 제가 새벽 예배를 인도하면서 이렇게 하루 이틀 3일 이렇게 지나가는데 여러분들 금식해 보시면 금식해 본 분들은 알지만 그렇게 4일 5일 이렇게 지나가면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배가 이렇게 누우면 아파요. 뱃가죽이 이렇게 달라붙는 것처럼 저희교회당 영상에 제가 이렇게 설교하는 모습을 보니까 한 3일 4일 되니까 이렇게 볼이 이렇게 쏙 들어가는 게 보여요. 제가 생각해도 진짜 은혜로워요.
모습이 근데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3일 4일 지나가면서 저에게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목사님 금식하는데 어쩌면 목사님 얼굴에 광채가 나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실 저는 배고파 죽겠는데 얼굴이 광채가 난다고 하는데 제 마음에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교인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힘든 걸 알아주는 게 아니라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하니까 이걸 어떻게 예배 시간에 힘들다고 말도 못 하고 그때 제가 40대 초반에 그 기간들을 지나가며 제가 정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뭐냐? 하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고 싶은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생각이 나면서 부끄러웠어요.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이 기도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 내 모습인가였던 것입니다. 요즘 제가 목회자로서 가장 간절하게 기도하는 때는 언제인가? 생각을 해봐요. 제일 간절한 때 저는 매주 설교원고를 준비를 위해 저희 교회당 조용히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실이 있어요. 그럼 원고를 가지고 가서 설교하기 전에 진짜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할 때가 늘 언제냐면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때 나는 늘 간절한 거예요.
그 간절한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닌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친밀한 관계 때문에 늘 기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나에게서 간절함이 있을 때마다 기도가 나오는 우리가 물어야 될 중요한 질문이에요. 하나님은 나에게 유용한 분이신가? 이런 표현 하나님은 나에게 유용한 분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은 나에게 진짜 아름다운 분이신가? 내가 기도할 때에 내가 진짜 하나님이 좋아서 우리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필요한 것 때문에 우리들이 기도하고 있는가? 이 기도의 동기를 우리들이 분명히 보라는 거예요.
3. 종교적인 기도의 특징
세 번째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종교적인 기도의 특징 중에 하나가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기도다. ➤마태복음 6장7절 “7.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異敎徒)들과 같이 헛된 반복의 말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이교도(異敎徒)들 종교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한다고요? 하나님은 기도를 좀 많이 해야 들어주실 것 같아서 그러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이만큼 노력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기도할 때 우리들이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서 이렇게 기도의 하나님이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조금만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기도하고 많이 노력해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좋은 분이 아니에요. 우리의 노력한 것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지요.
또 달리 이야기하면 내가 좀 하나님을 설득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많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해요. 횡설수설(橫說竪說)을 해요. 말을 많이 해야 되는 이유는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님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야! 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대표 기도를 하신 집사님 기도를 너무 정말 잘해주셨어요. 그 내용 조목조목(條目條目) 그런데 목회자들이 참 힘들어하는 것 중에 그리고 회중들이 예배를 드릴 때 참 힘들어하는 것 중에 여러분 옛날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 신앙생활 할 때 예배 할 때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어요? 장로님들 대표기도 아니었어요.
제 기억엔 그 참 힘들었던 기억들 장로님들이 한번 기도를 하면 얼마나 오래 기도하는지 몰라요. 그 장로님들이 한번 대표 기도를 하면 일단 한번 다 훑어야 하나님이 다 들으실 것으로 생각하고 다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만나교회 담임목사가 됐을 때 그 옛날에 큰 강대상 있잖아요. 그 강대상에 제가 이렇게 빨간 글씨로 두껍게 대표 기도는 3분 이내에 이렇게 써 붙였어요. 그리고 혹시 장로님 중에 기도를 너무 오래 하면 그땐 제가 30대 후반에 참 담대했지요. 장로님한테 장로님 기도하셨기 때문에 다음 기도는 패스합니다.
왜 그랬냐면 예배를 드리는데 그 기도 시간에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장로님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기도 가운데 사람들이 잠깐 졸기 시작하면 설교 시간에 잠이 들어요.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거야? 아니 기도가 잘못된 게 아닌데 기도가 참 중요한 일인데 기도가 예배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거야? 여러분 이게 정말 웃을 일인데 진짜로 있었던 일이에요. 지방 집회에 가서 이렇게 설교를 하는데 예배 시간에 장로님이 대표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가 끝나지를 않더래요. 그래서 강사 목사님이 나와 가지고 종을 땡땡 치면서 장로님 기도하고 우리는 말씀 시작합시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했대요.
여러분 진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기도가 우리들에게 뭔가 우리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가? 제가 만나기 위해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 청년사역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교회들은 되게 그랬던 것 같아요. 청년들이 그때는 한 100여 명 정도 이렇게 될 때였는데 청년들이 교회학교 봉사하고 또 찬양대 봉사하고 점심을 먹고 청년 예배가 2시 반에 시작을 해요. 그때그때 처음 청년 예배 올라왔는데 설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이미 반쯤은 다 지쳐서 졸고 있어요.
옛날에는 기도할 때 이렇게 예배 시작할 때 종 땡땡 치고 다 같이 묵도함으로 예배를 시작합시다. 그랬던 거 기억나지요? 묵도 할 때 살짝 잠이 들고요 대표 기도할 때 깊은 잠에 빠져요. 사실 그게 많은 패턴들이었어요. 저에게는 그런 의문이 생긴 거야? 왜 우리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기도가 하나님과 우리 의사의 예배에 방해 요소가 되어 버렸는가? 기도가 참 중요하기는 한데 우리들이 올바른 기도 필요한 기도를 하고 있는가? 어찌 보면 우리의 기도가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굉장히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도 있다는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시편 37편4절 말씀이에요. ➤“4. 너는 또 {주}를 기뻐하라. 그분께서 네 마음에서 소원한 것들을 네게 주시리라.”
기독교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이 말씀이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사실은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기뻐하는 데 있어요. 창조주를 기뻐하는 자들의 소원을 하나님이 틀어 주시는 창조주를 기뻐하는 자들의 소원은 세속적이지 않아요. 우리들이 창조주를 기뻐할 때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오늘 5-6절 말씀을 유진 피터슨이 메시지 성경에서 이렇게 풀어냈는데 참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 읽어 드릴게요. ➤“또 너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연극하지 마라. 너희는 이렇게 하여라. 하나님 앞에서 연극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라.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 자리에 있어라. 그러면 초점이 너희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그분의 은혜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초점이 옮겨지기 시작할 때 기도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주기도문을 알려 주시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기도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기 기도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기도의 출발점이 있다. 그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가 가장 중요한 도전을 드린다면 기도하는 여러분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그 믿음이 있는가?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야고보서 4장3절에 “3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이라고 하는 이 의미를 just ask라고 하는데 한국말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두란노에서 나온 책입니다. 여기에 정욕을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간음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기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우리들이 기도하는데 간음을 저지른 사람들처럼 이 기도 먼저라는 책에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어요.
제가 지금 읽어 드릴게요. 여기 미성년자들은 없지요? 이거 너무 또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네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남자를 상상해 보라 결혼하면 내 성적 요구를 들어준다고 약속한 것 기억하고 아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남편이 계속해서 말한다. 지금 내 성적 요구는 당신의 친구를 만나는 것이요. 당신의 친구와 자리를 주선해 주겠어? 아내가 이 요구에 응할 리 없다. 아내는 간통을 용인하고 맹세한 적이 없다. 아내는 부부 안에서만 성적 욕구를 들어주겠다고 맹세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우리를 부부의 관계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묘사하는 일이 많이 있고요. 성경은 아주 적나라하게 우리들에게 영적 간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런데 그 약속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이 찾아야 될 기쁨과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이 찾아야 될 만족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지 하나님과 우리를 사이에 관계를 벗어난 영적 가늠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기도할 때 정욕으로 구하는 것
영적 간음 상태에서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 속에서 이 기도를 구하여 우리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들이 분명히 체크해 봐야 되는 것이 있어요. 하나님과 우리를 사이에 정결한 관계 속에서 우리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정욕 안에서 영가름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 구분이 우리들에게 분명히 있어야 되는 ➤로마서 8장 27-28절 “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들에게서 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뭐예요? 사랑의 관계가 아닌 거예요. 우리들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부르심 가운데 있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지금 일어나는 일 우리의 기도의 내용들 가운데 이게 선을 이루는 것인가?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되는 그게 뭐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에 대한 론파리팔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말씀이거든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어디를 향하고 있냐면 로마서 8장29절을 향하고 있어요. 우리들이 잘 보지 않아요.
➤“29.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모습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그 기도의 결과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가? 오늘 여러분들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그 응답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들의 영상을 닮아가고 있으면 오케이예요. 그런데 오늘이 기도가 우리들에게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관계가 없다. 그럼 그 기도는 어떤 기도예요.
정욕대로 우리들이 잘못 구하고 있는 기도다.
나의 지금이 기도가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는 분명한 그 의도 의지가 우리들에게 있는 기도인가? 오늘 우리들의 삶의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가? 저는 이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들이 신앙생활 할 때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되는데 그렇게 수십 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우리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요.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는데도 너무나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봐요.
그래서 우리들이 혼란스럽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어! 아니요.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적인 생활을 저에게는 늘 그런 의문이 들고 우리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저를 바라보면서 그래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년수가 오래되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우리의 성품이 좋아져야 되는데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좋은 성품 바뀌어 가고 있는가? 사람들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 설교하는 사람이니 하나님 설교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까? 누가 자신 있게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누구도 자격으로 여기 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제가 여기 설 수 있는 이유는 아니 제가 마지막까지 설교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다면 제가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이라도 성품이 나아지는 것 제 아내가 여기 있는데 제가 가끔 물어요? 내가 옛날보다 좀 낮은 거 같지 이렇게 끄덕끄덕 제가 물어봐요? 두려운 거예요. 저와 가까이 살고 있는 제 아내 설교하고 있는 남편인 목사를 바라보며 설교하고 있는데 성품이 나아지지 않아요. 그러면 얼마나 힘들까요? 여러분들 신앙 공동체에서 중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 예배하는 사람들한테 여러분들의 성품이 나아지지 않아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도전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조금 아까 얘기했던 제이디 그리어 라고 하는 사람의 책에 보면 또 이런 재밌는 표현이 있어요. 한 친구는 내게 만약 하나님이 남녀관계에 관한 자신의 모든 요청을 들어주셨다면 지금 7명의 부인과 결혼했을 것이라고 한번 생각해 봐 저도 이제 제 아내가 있는데 제가 아내 만나기 전에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제가 지금 아내와 못 만났을 것 같아요. 그러면 얼마나 내가 불행했을까? 안 믿는 눈치세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때는 하나님이 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가 있는 무엇에 기반을 듣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거든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내 삶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내 목적대로 되지 않는 곳에 하나님은 내 삶의 베스트라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요. 하나님이 내 기도에 왜 이루어 주시지 않았어!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에 어떤 목적이 있는가를 우리들이 살펴보기 시작해요. 그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가는 거야!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들의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선하신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질서의 하나님이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실 때 어떻게 기도하셨어요.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목적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이 잔이 너무 무거운 거예요. 아버지 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목적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목적대로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그 힘든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께 천사를 보내서 그 기도를 도와주세요. 저는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우리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도우시는 분,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제가 요렇게 한 문장을 써 봤어요.
아 이게 저녁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제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이게 얼마나 정말 대단한 문장인데 여러분들 이걸 듣고도 이렇게 반응이 없으면 제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관해서 고민할 수는 있어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들이 기도에 관해서 고민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관하여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질서에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오늘 페이스북에 이렇게 떠는데 달라스에 있는 어떤 교회 목사님이 그런 글을 썼더라고 정말 오랜만에 교인들이 야유회를 가려고 하는데 비 소식이 뜬 거예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여기가 지금 가뭄이라면서요. 하나님 가뭄인지는 알지만 될 수만 있으면 비가 안 오게 해 주세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스의 가뭄이 해갈될 수 있다면 아 또 감수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이게 비가 오라는 얘기인지 말라는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가 오든 안 오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유익이 있고 나에게 유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가 많이 힘들 사람들이 많이 기도해요 근데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 코로나가 이 교회만 벗어나게 해 주세요. 아니 하나님 그런 기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비가 오는데 우리가 야유회 하는 요기만 싹 안 오게 해 주세요. 아니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세요.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질서의 법칙 가운데 그 가운데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거죠 종종 교인들이 저하고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목사님 목사님만 만나면 어쩜 이렇게 날씨가 좋아요.
제가 그에게도 그런 얘기하면 저 이단으로 이단 교주 만드는 겁니다. 어떻게 저를 만난다고 날씨가 좋아지겠습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우리들이 좋은 관계라면 목사님! 목사님 하고 만날 때는 어떤 날씨라도 괜찮습니다. 노사연 씨라고 가수 아시지요. 제가 이 노사연이 무서운 그 부부하고 식사 약속을 하는데 제가 뭘 먹을까요? 그랬더니 저에게 카톡으로 이런 문자가 왔어요. 목사님과 함께라면 좋습니다. 이해가 되세요. 함께라면 좋습니다. 만나는 게 좋은 거예요. 무엇을 먹든 라면을 먹든 무엇을 먹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 우리들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한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우리들이 동행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들에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장미란 선수, 장미란 역도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어떻게 장면에서 아세요. 장미란 선수가 저희교회당 근처에서 연습할 때 이제 저희 교회당으로 나와서 예배를 하는데 정말 착해요. 너무너무 성품도 좋고 장미란 선수가 태능 선수촌에서 연습할 때 제가 이제 선수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하는데 저는 깜짝 놀랐어요. 장미란 선수가 피아노 반주를 해요. 그런데 너무 안 어울리는 것은 딱 피아노 의자에 앉았는데 그냥 완전히 다 가려요. 장미란 선수피아노 반주를 해! 제가 참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마음의 감동을 준 것은 사실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마지막 올림픽에서 큰 팍 들으려고 하다가 그 실패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모습이었어요. 장미란 선수의 위대함은 금메달을 땄을 때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든 순간에도 무릎을 꿇었던 그 모습 가운데서 우리는 그래야 신앙입니다.
우리들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한이 시간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우리들이 기도할 수 있을 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리들이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들의 기도가 달라지지 안 사랑하는 세미한 교회 성도들의 삶에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기도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깊이를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세미한 교회 성도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기도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참 풀리지 않는 수습과 기 같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지 답답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큰 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며 선한 곳으로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한테 오늘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는지 내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지 우리는 그동안 기도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내 욕심껏 내 욕망으로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오늘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분, 오늘이 믿음 확신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앞에 신앙적인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기독 가운데 살아가는 귀한 세미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람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나아가는 주의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을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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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