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조성순
앞만 보고 가는 모든 존재는 이상주의자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허허바다를 즐겼던 전사들이
언 몸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살을 에는 된바람은 수만 리 달려온 역정을 돌아보게 하는 종소리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영혼의 후원자
산비탈 덕장에서 창공을 향해 줄지어 서 있는 자들은
전장에서 잡혀온 포로들이 아니다
허연 백지
흰 눈밭에 전향서 따위나 쓰는 나약한 패배자가 아니다
서설이 내리는 예감 모양
은하계 저 편을 유영하는 꿈이 밤마다 베갯머리를 찾아온다.
무간지옥 같던 깊은 바다 밑이나
끝닿을 때 없는 난바다의 꿈도
이젠 시들하다
어둠이 검은 천으로 세상을 가린 밤이 오면
낡은 천 사이로 다른 세상의 불빛이 보여, 별빛이 보여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이곳 허브에 왔다, 모였다
허허바다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고
캄캄바다는 가슴 설레는 미래이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는 현주소
미래로 가는 터미널
바람과 햇살로
몸에 묻은 나약한 기운을 씻으며
전사들은 수행중이다
다음 세계로 가기 위해
저 안거가 끝날 즈음이면 우주에 새 별자리가 생길 것이다
거미
조성순
장맛비 잠시 그은
칠월 초순의 하오
방이동 생태공원 습지
반짝 햇볕이 장날이라
그물 난전 곱게 치고
손님 기다린다.
모기 한 마리
하루살이 두엇
돌풍에 푸른 심줄 드러낸, 허리 잘린 왕버들 이파리 하나
가녀린 줄에 의지하고 있다
가끔 오가는 탐방객의 무심한 눈길
느릿느릿 천하태평 구름그림자
짝 찾는 은근한 뻐꾸기 울음소리
줄에 걸려 가만히 있다
난전 편 주인은 보이지 않고
―숨어서 계산서를 살펴보고 있을 거다
장난기 있는 아기 바람
여린 손으로
슬쩍 줄을 튕겨 본다
은은하다
태곳적 음률
조성순
2004년 《녹색평론》, 2008년 《문학나무》로 등단.
nakedbei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