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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여성시문학의 사적 고찰 1980년대
1980년대 한국현대여성시의 전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980년대의 이 땅의 시대상황을 일별해 볼 때 우리는 이 연대가 극도의 양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탄압과 저항, 허위와 폭로, 보수와 진보, 한계와 가능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엇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탄압시대인 5공 시절과 88년 종반기 해금시대로 요약해 볼 수 있는 이 시대는 그 만큼 불행하면서도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전환기적 성격을 지닌다.
우리가 80년대 시를 논의한다고 할 때 흔히 일컫는 70년대 시인, 80년대 시인 등 10년 주기의 시대구분 명칭은 비록 편의적인 구분 기준이지만 이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단 이래로 6.25와 4.19, 유신정변, 5.18등 이 땅의 정치사적 격변이 대략 10년 주기로 묶여지는 것도 이러한 편의상 연대구분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80년대 시인들이란 대체로 80년대에 등장하여 활약하기 시작한 세대를 말한다. 따라서 이들 신진 시인들은 80년대적 감수성과 현실인식을 첨예하게 반영하는 시대의 촉구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요한다. 80년대 시인들은 대체로 50년대 중반 내지 60년대에 출생한 세대가 주류를 형성한다. 이들은 특히 그 인격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가 정치사적으로 <겨울>에 해당한다 할 수 있는 70년대로부터 80년대에 걸쳐 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 매우 억압된 세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재정권의 강압정치와 그에 대한 반동을 떠나서 이 세대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특히 80년대는 저<광주의 5월>을 전후하여 이 사회가 전반적인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에 전환기적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갈등과 혼란, 생성과 모색이라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다. 아울러 젊은이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대체로 이들의 세대적 특성이 반동적, 저항적인 진보성향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0년대 시인들은, <광주의 5월>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70년대 유신시대의 압제적인 성격과 분단 후 이 땅의 파행적인 역사 전개과정에서 누적되었던 모순과 부조리가 폭발한 것이 80년 초의 광주 민중항쟁이다. 80년대 시인군들은 대략 이 무렵을 전후해서 신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통 또는 저항의 몸부림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형식으로든지 반영하게 될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시인들의 문학은 내용적인 면에서 민중지향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며 양식사적인 측면에서는 해체. 저항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된다. 특히 이들은 기존 문예지가 지나치게 보수적인제다가 계간지들마저도 강제 폐간되는 80년대 초의 상황에서 마땅히 지면을 얻기 어려운 것은 물론 그들의 성향과도 맞지 않는 경향이었기 때문에 무크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무크지는 기존 문학에 대한 저항성, 파괴성과 함께 진보적인 이념지향성을 형상화하는 데 적절한 형태일 수 있었다. 80년대의 열악한 상황에서 무크지는 젊은 시인들의 울분과 욕구를 해소하는 데, 다소나마 기여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무크지 운동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을 공동체 이념을 함께 표출하고 갖가지 방식을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시대는 그 시대에 알맞은 가치관과 감수성의 체계를 지닌다. 그렇지만 그러한 시대정신이란 전 시대를 올바로 부정하고 창조적으로 극복하려는 치열한 노력 속에서 생명력을 확보하게 된다. 바로 이 점에서 80년대의 시는 60 - 70년대 시와 시사적 연계성을 지닌다.
60년대의 시는 크게 보아 전통적인 서정시와 언어적인 실험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4.19의 영향으로 참여시가 서서히 대두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특히 70년대는 유신정변으로 말미암아 시가 사회, 역사적인 현실과 깊은 대응관계에 대한 자각을 지니게 되었다. 잘못된 사회구조와 각종 모순 및 불합리로 인하여 시의 정치성이 더 우위에 놓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에도 답습, 지속됨으로써 시가 정치적인 상상력 또는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에 지배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80년대의 문제는 그리 단순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분단 이래 누적되었던 체제적 모순의 문제와 함께 남북문학의 문학적 파행성에 대한 저항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온 국민의 열화 같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서 사회의 제반 문제가 조금씩 해결돼 가는 추세에 놓여지게 되었다. 올바른 시의 시대란 이 점에서 바로 참된 인간의 시대이며 역사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을 보여준 것이 80년대 시의 참된 의미라 하겠다. 결국 80년대 시는 한국시가 지녔던 폐쇄성을 극복하고 좀더 열린 시야를 획득해 가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상 80년대 시는 그 기간이 대략 10년밖에 되지 않지만 분단 40년 동안 겪은 일들보다는 더 많은 충격이 있었으며 그에 따른 다양한 병화가 일어났다고 하겠다. 80년대에 민중시와 실험시가 급격히 부각된 것도 이러한 변모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임은 물론이다. 특히 80년대 시에서 문학전반에 걸쳐 대두되기 시작한 부정정신과 비판정신이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전대에는 볼 수 없었던 진보적 성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장르혼합형식, 변두리양식의 중심화문제, 장르해체, 도시파 시의 본격적 대두현상 등은 이러한 80년대 부정정신과 파괴정신이 강력히 작용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해체시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한 것도 한 특징이라 하겠다.
해체시란 굳어 있는 정신과 낡은 양식의 해체를 통해서 새로운 정신의 탄력과 생명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텍스트를 합목적적으로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언어와 정신의 혁명을 성취 하고자 하는 안간힘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민중시와 실험시는 이 점에서 하나의 저항시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보겠다. 이러한 실천적인 저항과 함께 해체의 몸부림과 안간힘 자체가 실상은 80년대 시대정신의 부정정신과 비판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임은 물론이다.
우리 나라의 현대사회에서 80년대는 중요한 획을 긋는 연대이고 80년대의 현대문학은 또한 주위의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그 어느 시대보다 시문학의 활성화를 보여 주었다. 날카로운 현실인식에 눌려 처연한 서정성이 밀리기도 하였던 80년대의 시인 가운데 고정희는 속칭 여성시를 깨뜨리면서 보다 넓게 역사와 역사 속에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자 자신의 문학으로 노력하였던 시인이었다.
43세의 아까운 나이로 고정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열권의 시집과 여성해방문학에 관한 뚜렷한 이론은 남아 그의 문학세계를 고찰하는 것을 어지러웠고 다양하였던 80년대 문학의 정리가 될 것이다. 또한 현대문학사에 여성주의적 시문학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발전하였는가를 가늠 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 그의 시각은 비판적이었으며 비판에 대한 비판의 부정적인 것을 넘어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가장 바탕적인 것으로는 인간적 사랑을 공유하고 있다.
고정희는 그동안 10권의 시집을 통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한국의 민요조를 원용하여 한국시가의 새로운 모습을 현대시로 보여 주고자 했으며 상당한 부분의 정치시와 함께 여성해방의 시를 통하여 모순된 제도와 비합리적인 현실에 대한 준열한 이의를 제기하는 실천적인 행동문학의 한 유형을 나타내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고통. 고독의 시가 그의 내면세계의 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정치, 경제, 사회참여, 투시와 비판은 외면세계의 한 양상이다.
우리 시대의 문학적 위기와 지성의 뿌리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족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명증한 투시는 1984년 <또 하나의 문화>창간 동인이 됨으로써 더욱 활발해진다. <또 하나의 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남성중심의 문화라고 규정하고 남녀가 평등하고 진정한 벗으로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며 하나의 대안적 문화인 여성중심의 문화를 사회에 심음으로써 유연한 사회체제로의 변화를 이루어 나가는 여성문화운동이다. 변화의 대안은 창조적인 참여 속에 있고 의식의 실천을 통해서 확인되어야 한다는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생활화하여야 한다는 뚜엿한 목적의식으로 활동하는 문화동인이며 동인들이 모두 여성이다.
고정희는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 됨으로써 현실문제와 정치문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현실과 예술의 혼을 따로 떼어 좋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서는 잘못된 역사의 회개와 치유와 화해 문제를 표현하였고 더 적극적으로 <광주의 눈물비>에 이르면 역사적 정의와 진실이 불편함이 된 시대에 ’문학적 은유와 알레고리는 거짓 시대를 고수하는 충실한 시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고뇌하면서 최초로 역사적 진실에 대하여 절제하기 어려운 노여움을 품게 되었고 소망, 신념, 대상에 대하여 회의를 갖게 되었다고 밝힌다.
호박이 익었다.
우리나라 땅에서만 자라온
토종호박들이
불볕 더위 아래 이리 딩굴 저리 딩굴
한 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면서 자신의 뚜렷한 세계관을 보여주었던 고정희는 메시지화된 그의 시문학을 남기고 떠났다. 앞으로 그의 시는 다각적인 분석이 가능하겠으나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그는 한 부분의 특성에 구속된 시인이 아니다. 그의 시는 현실인식의 비판시와 여성해방의 목적시, 그리고 처연한 서정성을 노래한 다양한 기법과 내용을 보여 주었다. 다양성의 논의와 폭넓은 시문학적 접근이 문학작품 읽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승자는 8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방법론적인 거칠음과 두드러움, 현실을 부정 파괴함으로써 가지는 새로운 창조적 정신, 욕설과 비판이 가지는 전혀 새로운 강렬성을 던지는 신선한 충격파의 시인이다. 그는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으며 1981년 첫시집 <이 시대의 사랑>, 1984년 <즐거운 일기>, 1989년 <기억의 집>, 1993년 <내 무덤, 푸르고>를 발간하여 처절한 비극적 파괴성과 강렬한 부정적 증언성, 그리고 가련한 사랑의 서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된 현실 속에서 치유될 수 없는 여성적 삶의 한계와 과격한 자기폭로와 부정적 인식을 통한 평등한 삶의 패턴을 희구하고 시어의 과격성을 통한 소외된 삶의 극복 에너지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어두운 시대의 비관주의적 맞섬이라는 현실대응의 맥락을 가진다.
그는 이성복. 황지우 등의 형태적 과격성과 내용적 과격성을 함께 가진다. 최승자의 시는 철저한 자기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그의 시는 자기고발, 자기증언이다. 형이상학적인 환상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시의 적절한 비유는 딱 부러지는 거칠고 황폐한 자기 벗기기에서 노래된다. 때문에 그의 고통스러운 사랑 속에서 키워지고 지켜지는 우리 시대의 현실적인 사랑이 있다.
김치수는 <이 시대의 사랑>의 해설에서 최승자 시의 철저한 부정 의식을 들어, 그것은 철저한 긍정의 바램 때문에 가능하며 자기 삶의 비관주의적 방법론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하였다. 언제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에서 그의 정직성은 드러난다.
(전략)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최승자의 시문학은 증언적 체험을 통한 자기해체에서 시작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들의 노래 이전에 ‘나의 이야기’를 하며 비극적 삶의 양상과 버림받고 망가진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확실한 감동에의 여파를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최승자의 시세계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가지는 도시 문명인의 좌절과 비극적 인식에 닿아 있다. 과거보다는 어둑 불안과 공포는 가중되고 인간의 욕구는 섬세하게도 다양화되어 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두려워할 것이 감소되었음에도 공포의 습관은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최승자는 <희망의 감옥>이라는 역설을 통하여 이 시대의 희망을 갈구하는 시인이며 일반적인 안주 위주의 행복론에서 보다 자극적이고 적극적인 행복을 위하여 기존의 체재와 존재를 파괴하는 행동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는 80년대의 강렬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미학의 무조건 희생이라는 과격성을 가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강렬하게 전혀 낯설다. 그리고 포근하고 따뜻하다. 여기서 최승자 시의 매력이 있다. 또한 탄력적인 시적 긴장이 유지된다.
최승자는 전혀 새로운 시인이다. 감수성의 전통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여성시인이면서도 그 저변에는 사랑과 그리움의 따뜻한 물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죽음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죽음 즐기기라는 전혀 역설적인 방법을 통하여 이 시대의 사랑과 이 시대의 결코 즐겁지 않은 일기를 시로 표현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문학적 기교나 예술지상주의의 낭만성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적이고 처절한 자기 삶의 증언적 구체화를 통하여 진실로 맞물려 가는 체험을 보여 준다.
그의 시는 고통과 고독으로 절여져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고독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시대의 삶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한 방법론에 있어 비극적 파괴성 서정성을 강렬하게 나타냈을 뿐이다. 그의 시는 앞으로도 변모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따뜻해질 것이라는 미래지향적인 방법론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시는 70년대의 영장선 상에 놓이면서도 연작시 형태의 과감한 서사적 내용의 수용과 보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내용이 그 뿌리를 착실히 안착시켰다. 최승자는 더 나아갈 데가 없을 만큼 강렬해진 비극성을 열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전체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통한 철저한 절망은 철저한 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비극정신의 자유이기도 하다.
1980년대 활동한 시인들로는 서경온, 실필주, 박진숙, 고정심, 박귀례, 안초근, 이충희, 정은영, 허영선, 최문자, 안혜경, 서복희, 정은희, 정재희, 홍주희, 황영순, 이해영, 차옥혜, 김명자, 김관숙, 김명리, 우미자, 이은미, 이정림, 최승자, 김혜순, 김현숙, 김정숙, 김영주, 김정희, 음예원, 이신강, 염명순, 이필분, 최계석, 최영장 등이 있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 여류시는 한. 사랑. 이별, 기원이 그 주제를 이루고 최근에 오면서 언어의 절약적인 한 특성과 장시와 연작시, 그리고 산문시 등의 형식적 변화가 오고 있으나 차츰 철학적이고 역사인식적인 면을 수용하는 등의 다양성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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