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유월)에 관한 시모음 43)
6월, 기억의 편린 앞에 /은파 오애숙
6월의 해말갛던 청명함
한강의 온화한 그 물결
오늘따라 이역만리에서
윤슬 유난히 반짝거린다
초록빛 여울 스치던 6월
그 옛날 그 푸르른 산야
골짜기마다 핏빛 물들여
사금파리 가슴 찔러대던
흑역사 앞에 숨죽여든다
아, 6월의 해맑은 푸른들
별안간 허리케인 불어와
선혈 낭자한 비극의 바람
동족상잔 빗발치던 총탄
혼돈의 흑암 어찌 잊으랴
6월, 산야와 주택단지에
붉은 산나리 두 동강 허리
선혈의 낭자함의 얼룩진 피
잊지 말라 점으로 각인하고
짙은 향 휘날려 상기시키나
6월 앞마당의 붉은 산나리
조국 위한 선혈 낭자함의 한
조국이여, 열국 빛으로 높이
태극기 휘날려라 부르짖누나
6월도 가네 /藝香 도지현
꽃 보라는 곱게 피어나도
늘 가슴은 아팠던
그 6월도 이젠 간다 하네
수많은 꽃들은 파랗게 멍들고
질식할 것 같은 아픔
이젠 다 놓아두고 간다고 하네
화려한 계절이라 누가 그랬나
아리고 아픈 기억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계절인걸
그래도 간다 하니 아쉽기는 하네
별똥별
긴 꼬리 드리우고 사라져 가듯
그렇게 6월도 간다 하니
미련이야 없겠냐 만 허망하다
유월의 노래 /신석정
감았다 다시 떠보는
맑은 눈망울로
저 짙푸른 유월 하늘을
바라보자.
유월 하늘 아래
줄기줄기 뻗어나간
청산 푸른 자락도
다시 한 번 바라보자.
청산 푸른 줄기
골 누벼 흘러가는
겨웁도록 잔조로운 물소릴
들어보자.
물소리에 묻어오는 하늬바람이랑
하늬바람에 실려오는
저 호반새 소리랑
들어보자.
유월은 좋더라, 푸르러 좋더라.
가슴을 열어주어 좋더라
물소리 새소리에 묻혀 살으리
이대로 유월을 한 백년 더 살으리.
유월 어느 날 /이태수
나무들이 허공으로 팔을 뻗는다
키 큰 계수나무 언저리에는 배롱나무들이,
날씬하고 아담한 주목 곁엔
꽃이 다 지고 난 철쭉들이,
그들 틈새에 낀
쥐똥나무들도 팔을 뻗는다
커다란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목단, 너무 처참하게
고개 부러지는 능소화 꽃잎들,
마른하늘에는 한바탕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스물아홉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월*이, 역시 그 나이에
죽긲지 노래 부르며 버티다
세상을 떠나간 배호**가
왜 이리 선연히 떠오르는 걸까
유월 하루 유난히도 목마른 날
고월 시 속의 플래티나선과 같은 결과
배호가 애타듯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나서다 보면
꽃 지는 허공에
나도 자꾸만 팔을 뻗는다
* 고월 : 시인 이장희(1900~1929)
** 배호 : 가수(본명 배신웅, 1942~1971)
6월, 들판에서 /은파 오애숙
가파른 삶의 버거움
삼동 지나 새봄 찾아오면
온누리 초록 너울 써 보란듯
해맑게 웃음 짓는다
신은 우리 인생에게
삭막한 겨울만 있지 않고
인내의 숲에서 잘 곰삭인 다면
희망 꽃 핀다 말하는가
들판의 꽃 자기 색채
제 향으로 희망 속삭여
봄은 봄만큼 여름은 여름만큼
초록빛 영광 휘날린다
고집스러운 만년설도
자연의 이치에 녹아내려
행복 선사하매 평화의 물결
희망의 연가로구나
6월의 피아노 /조 원
마흔네 번째 건반이 소리를 잃었다
고음이 되기 전 먼 길을 떠났다
당신의 악보는 유독 중간 음을 선호했으므로
대가리와 꼬리를 쳐내고
내장을 쓸던 손길로 청어를 굽다가
당신은 건반에 몰입했다
소스테누토 페달*을 밟는 순간
아카시만큼 향기롭던 선율이 곤두박질치는 오후
혈관 뒤엉킨 중음의 노곤함으로
습원을 날아오르는 기러기처럼
저음과 고음 사이를 집중적으로 몰아쳤다
솟대도 없는 음표 자리마다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이 끊임없이
중년의 혈선을 자극했다
한 옥타브씩 건너뛰고 싶은 욕망
편협한 악보가 굉음으로 변주되어
고음에 닿으려할 때
당신은 가엾은 음정 하나를 돌연사 시켰다
선율의 율은 남아있고 빈약한 선만
영안실을 맴돌던 밤
당신이 지정하는 악의 세계로
숨 가쁜 음을 몰아넣더니
끝내 울림통엔 곡소리만 남았다
빈자리, 조율사가 유사한 음 하나를
무심히 놓고 간 6월 어느 날.
*소스테누토 페달: 그랜드 피아노의 가운데 페달, 필요로 하는 음만을 지속시키기 위한
연주상의 요구에 대응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유월의 망초 /조수일
나는 유월이 낳은 바람 붉은 젖가슴이면 어디든 날아들지요 젖멍울 비집고 꽃으로
피지요 흔하디흔해 쉽사리 눈에 띄나 마음의 점선 밖으로 금세 밀려나고 마는 한 철
짧은 노래이지요 말갛게 아침을 씻기는 이슬이 유일한 치장 빨갛고 노란 화려한 유
색인종의 교태는 언제나 나를 앞지르는 선구자들 이어 수줍게 흔들리거나 건들리는
것이 내 몸이 부리는 유일한 수식이지요 몸에 길을 내려 수 세기의 푸른 허밍의 바람
은 나를 들쑤셔요 터벅터벅 물결을 새기며 걷는 한량한 낙타의 걸음새가 어쩌면 나인
지도 몰라요 짝을 이루며 노을 진 덤불 속으로 드는 날짐승들의 천진은 언제나 황홀히
꿈꾸는 먼 지점이기도 할까요 들판 가득 한 무리를 이루며 세기를 앓듯, 시절을 앓듯
불어오는 방향에 몸 맡긴 채 흔들림을 먹고사는 닿을 수 없는 망중한처럼,
당신의 들판 가득 희게 피겠습니다
6월비 상념 /未松 오보영
시름시름 내리는
이 빗줄기가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숲
걱정으로 인해
눈에 고여 저절로 흘러내리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기를 바라고-
속절없이 내리는
이 빗줄기가
숲 위해 목숨 바친 영혼들
잊혀져가고 버림받는 현실에
서러움이 북받쳐
몰래
소매 깃 적시며 흐느끼는
아픔의 눈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젖어드는
땅바닥만
무심히
내려다본다
6월의 풍경 /정연복
바람에 출렁이는
이파리들
허공에
초록 물결 일렁인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빛 하늘에도
끝없이 너른 바다
펼쳐져 있다.
6월 초순의 이른 무더위
심술을 부린다지만
오늘은 바람 불어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유월을 전지하다 /손익태
말로하다 안 되니
이젠 잘라내는 거야
이 푸른 세상
푸릇 크는 아이들을
어린 유치에 교정틀 끼운
유월의 미색 잇빨이
햇살에 찔려 눈부신 날
옹기종기 무리지어 하늘 우러러
내일을 살고싶어 기도하는 풀잎들을
왜 솎아 내는거야
잘린 햇순 풀밭에 널부러져
쇠갈고리로 끌려 갈 때
함께 몸 부비며 살아온
풀벌레 울음소리
허공의 벽에 바수르지다
6월 접시꽃 사랑 /정심 김덕성
하늘빛 빛나는 6월
해맑고 화사하게 아롱다롱 피어난 꽃
무더위에 제 모습 잃지 않고 피어
함초롬히 웃음 짓는 접시꽃
분홍빛 붉은색 하이얀
둥그런 얼굴로 마주보는 접시 닮은 듯
환한 고운 얼굴로 활짝 웃는
화려하고 풍성한 듯싶다
키다리처럼 높이 솟으며
층계마다 서로 열렬한 사랑 이어져
하나의 사랑으로 핀 아름다움
볼수록 신기한 접시꽃
편안과 다산을 준다는
단순한 사랑 더하는 6월의 접시꽃
보는 이마다 풍요의 축복을 주는
사랑의 접시꽃이여
유월비 /이규리
중앙내과 2층 회복실에서 링거주사 맞는다
유리창은 비 맞는다
창틀에 모여 머뭇거리다 떨어지는 비
주사기 대롱 속의 비
혈관으로 들어와 섞인다
사이랄까, 틈이랄까
링거주사 맞을 땐 몸속으로 주사액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한 땀 한 땀 간격이 들어오고
톡톡 소리가 들어온다
한 잠 푹 주무세요, 의사가 쓸데없는 곳을 만져 잠을 깨우지 않아도
간격과 소리 사이에서 잠이 툭 끊어진다
손짓 하나, 바라보는 눈짓 하나
한 꽃 피는 시간이나 따끔했던 연애도
끊어지지 않는 것 어디 있더냐
유월비도 저렇게 끊어질 듯 내려와 닿고
한 생애를 위해 수만 컷의 필름이 서로 앙물려 있을 텐데
끊어지지 않는다면
목숨인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 건가
앞의 비가 뒤의 비를 마중하듯이
유월이 오는 걸까 /윤봉택
올레* 끝 마파람이
출렁이면
머 흐려진 시간 새이로
븽새기* 웃는
인동고장*
날래* 너는 소리에 놀란
하늘이 새파랗다
* 올레: 골목의 제주어
* 븽새기: 방긋의 제주어
* 고장: 꽃의 제주어
* 날래: 멍석에 곡식을 건조 시키는 행위
6월의 장미 /은파 오애숙
작열한 태양 열기로 기 받아
환희 날개 펼쳐 불꽃으로 피어
연인들 속에 사랑을 꿈꾸게 하려
화사한 게 웃음 짓고 있는가
서로가 아귀다툼할 때마다
불 같이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정시 한 송이
피우라 행복을 선사하는가
그대 사랑 코끝에 스민 들녘
그대에게 받았던 장미 한 송이
그 옛날 설렘 속 마음의 고백 결코
변치 않게 되길 다짐하노니
가시덤불에 또다시 찔려도
활화산처럼 뜨꺼운 그대의 사랑
가슴에 불 붙여 승화 시킨 사랑으로
온누리 휘날려 살아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