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호랑이보다 강한 이유>
(창세기 21:14-20)
가끔 제가 저희 아들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도 아들 이야기를 좀 하면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둘째가 큰아이와 3살 터울입니다.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오직 저희 집안에 유일한 아이였기 때문에
사랑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누구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러던 중 2020년 8월 11일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둘째에게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고
이걸 느낀 첫째가 질투를 시작했습니다.
본능적으로 둘째가 먹고 있던
분유를 친다든지
자고 있으면 울린다든지
이런 일을 하더라구요.
물론 지금은 너무 사이가 좋아요
특히 첫째가 둘째를 엄청 아껴요.
오늘 말씀에도 저희 큰 아들이 겪었던 것과
동일한 일이 나옵니다.
첫째 아들로 지난 13년 동안 살아오다가
갑작스럽게 둘째가 등장해요.
그로 인해서 생기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서
이삭을 얻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아들이 있긴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이삭을 기다리다
85세 쯤 되었을 때 아내와 상의를 했습니다.
아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몸종 중 하나를 그에게 주며 대를 잇자고 했죠.
그래서 낳게 된 아들이 바로 이스마일이었어요.
아브라함은 86세에 얻은 이스마엘을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한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이스마엘의 엄마인 하갈과 사라와의
갈등이었습니다.
하갈의 고향은 애굽이었습니다.
이전에 애굽 왕에게서
노비와 가축들을 받을 때
같이 온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하갈의 고향은 애굽이었습니다.
문제는 하갈이 사라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눈이 높아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주인이었던 사라에게
함부로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나중엔 이게 터져서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하갈이 견디다 못해 도망칩니다.
임신한 상태로 말이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하갈을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
즉 ‘하나님이 들으신다’로 지으라 하십니다.
이 사건 이후 하갈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아이를 낳아 잘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 십여 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주인 안방 마님의 배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
아주 예쁜 아이를 났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이삭입니다.
그의 뜻은 ‘웃음’이었어요.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젖 될 시기가 나옵니다.
중동 지방에선 3살 정도에 젖을 떼면
잔치를 합니다.
유아들이 살아남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그랬죠.
문제는 바로 그날 일어났습니다.
9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라고 말해요.
원어로 보면 ‘핍박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삭은 3살 이에요.
이스마엘은 이보다 14살이 많으니까
17세 정도 되었을 거 아닙니까?
우리로 치면 고등학생이죠.
이제 수염도 조금씩 나고
목소리도 굵어졌을 거예요.
그런데 동생이 자기의 사랑을
다 빼앗은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는 모른 척하고
이삭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스마엘은 이삭을 데려다가
핍박한 거죠.
17살짜리가 세 살짜리를 한 대만 쳐도
어마어마한 거 아닙니까?
이 광경을 사라가 보고 말았어요.
상상을 해 봤습니다.
아침드라마 같은 데 보시면 그런 거 있잖아요.
사라가 갑자기 하갈을 불러요.
“하갈 너 이리로 와.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니?”
하면서 별말을 다 쏟아냈을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도 말했습니다.
하갈을 쫓아내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일로 인해 심히 근심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세요.
“걱정하지 마.
이 아들도 너의 씨니까 내가 지켜줄 거야.”
이 말씀을 믿고 아브라함은
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식량과 물 부대 하나를 줍니다.
이게 약 15L 정도 된다고 해요.
그렇게 이들은 브엘세바 광야까지 떠납니다.
이곳은 연간 총 강수량이
약 200mm 이하입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으니 물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하갈이 이 길을 선택했던 이유는
여길 지나야 애굽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갈은 애굽 출신입니다.
그녀는 20여년 전에 떠났던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제 자기를 받아 줄 때가
어디도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길을 잃었어요.
아무리 가도 뜨거운 햇살과
타는 듯한 목마름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상황이 본문 15절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제까지 나를 지켜주던 그 물이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마다 이건 다를 거예요.
어떤 사람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집이 될 수도 있고, 재산이 될 수 있고,
인간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자녀나 부모가 될 수도 있죠.
이런 나의 물이 어느 순간 똑하고
떨어진 겁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갈은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요?
또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 힘으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광야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 인생의 물이 떨어졌을 때,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는 그 순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절망의 시작’과 같은 이 시점에서
하갈이 했던 행동이 16절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21: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죽는 것을
더 이상 바라 보지 못해 관목덤불 밑에 두고
화살 한바탕 거리에 떨어져 앉았어요.
이게 약 250-300m 정도입니다.
그리곤 생각했을 겁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그녀의 문제는 교만함이었어요.
그녀가 주인처럼 행세하려고 했던 교만함은
사라의 마음에 독을 품게 했습니다.
더불어 이스마엘도 질투와 시기에 눈이 멀어
동생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결국 죄가 쌓이다 보니 이런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죄가 계속 축적되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살아왔는데
그걸 잊고 교만해지면
목마른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찬양을 들을 때 눈물도 나고,
기도를 하면 막 부르짖을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안에 그런 영적인 물이
떨어져 버린 겁니다.
기도도 시원찮고, 찬양을 해도 감흥이 없는
그런 상태 오지 않으셨습니까?
바로 이것이 죄 문제로부터 야기된 것임을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하갈이 이런 문제에 있었지만
회개했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아요.
이게 비극이죠.
이스마엘이 그렇게 이삭을
희롱하고 때렸을 때
잘못했다고 한마디라도 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가 계속 쌓였을 때
회개 하지 않으면 바로 이와 같아요.
점점 그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영적인 목마름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방금 읽었던 말씀처럼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갈은 부르짖었어요.
소리내어 울었어요.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하갈의 그 울음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기도할 때 보면 알잖아요.
처음에 기도할 때는
그냥 힘들어서 기도하는데,
점점 우리의 죄가 생각나고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게 됩니다.
결국엔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는 기도를 하게 되죠.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찾아온
물이 떨어진 이 아픈 시간은
사실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위한 마중물입니다.
오늘 혹시 정말 고통 속에 살아 계시는 분
계십니까?
물이 떨어져서 괴로워하시는 분 계십니까?
내 인생의 앞뒤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고 계신 분 계시나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는 때임을 믿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초청 하고 계십니다.
“부르짖어라. 기도해라.”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에 대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제까지 많은 기적 중
교회를 세우게 된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목사님께서 개척하시고 무료로 상가에 있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습니다.
돈도 없고, 땅도 없었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나요?
그 때 목사님께서는 더 기도하셨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게 하셨고,
이 땅에 교회를 세워 주셨지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녀의 부르짖음 그 울음은
놀라운 기적으로 가는 시발점이었습니다.
17절, 1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21:17, 18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스마엘은 있는데
이스마엘이 없는 것 같은 상황아닙니까?
하나님이 들으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들으심이 없는 이 상황 속에서
부르짖고, 울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셨답니다.
하갈은 보잘 것 없던 여성이었지만
그녀에겐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것을 원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부르시기 힘들 때도 있죠.
정말 한마디도 나올 수 없는 상황말입니다.
욥이 바로 그러한 인생 살지 않았겠습니까?
욥의 인생을 보면 참 기구합니다.
그는 원래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지요.
자녀들이 혹시라도 매일 범죄 했을까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 드렸던 의로운 욥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자녀들이 다 죽죠.
심지어 아내도 떠나죠.
자기 몸에는 종기가 생겨서
온몸을 벅벅 긁고 있었습니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과 같이 되어 나아오리다.”
이해할 수 없는 시험과 고난이 올지라도
우리가 바라볼 븐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 소리를 듣고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게 있어요.
19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여기 보면 하갈의 눈을 하나님이 밝히셨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
주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여시면
이제껏 보이지 않던 샘물이 보입니다.
이미 예비되었던 샘물이 보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이미 숫양이 준비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소설가 마르셀 프로스트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담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샘물이 보이지 않아서,
똑 떨어진 물 부대를 보며
답답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이 떨어졌어?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구나!
샘이 보이지 않잖아?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실 때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이미 예비 해 놓으신 그 길이 있습니다.
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담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제목이
혹시 뭐였는지 기억하십니까?
<토끼가 호랑이보다 강한 이유>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런 이야기를 제가 보았습니다.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토끼가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
땅과 총이 있기 때문이다
깡충깡충
1세기 성도들은 토끼처럼 약했지만
호랑이 로마 황제보다 더 무서웠다
믿음의 깡과 복음의 총으로
갖가지 고난과 맞짱을 떴다
그들 뒤에서 계신
호랑이 사냥꾼 예수님만 의지하며
버티며 견디고
부활을 꿈꾸며 깡총깡총 전진했다
쉽사리 세상의 으르렁에 굴복해 버리는
우리들과는 달랐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다 하갈처럼
광야를 걸을 때 있고
물이 떨어질 때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 인생 길 속에서
1세기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도 담대 할 수 있어요.
우리 뒤에 계신 호랑이 사냥꾼 하나님,
그 주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때로 우리 인생 길 속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오고,
또 내가 죄로 인해서 생긴 그 문제로 인해서
내 안에 단절이 오고
또 목마름이 찾아올 수 있어요.
하갈도 죄로 인해서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녀와 이스마엘도 지켜 주십니다.
하물며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수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세상의 으르렁 앞에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믿음의 깡과 복음의 총으로
승리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