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평창, 정선 일대를 휘감고 흐르는 동강은 65km에 달하는
길이 만큼 길고 긴 이야기들을 품에 안고 흘러왔다.
댐 개발로 인해 크게 훼손될 뻔했던 동강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었다.
동강에 가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과 암석들,
하늘과 산 능선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강물,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동강의 물길이 닿은 곳들 중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지니고 있는 곳이 많다.
덕산기 계곡은 12km에 달하는 에메랄드 물빛을 지키고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숨은 비경을 살며시 드러내는 계곡에는
비가 많이 올 때 폭포를 이룬다하여 강원도 말로 “비와야 폭포”
라고 불리는 폭포도 있다.
맑은 계곡에는 상류로 향하려는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고,
크고 작은 생물들이 자연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1급 청정수인 계곡은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 그리고
비경과 생명을 선물한다.
동강의 굵은 줄기가 내려다보이는 백운산,
그 곳을 오르는 현윤기 씨 일행을 따라가다 보면,
세월이 흘러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회동굴과 동강 변에서
환경의 변화에도 때 묻지 않은 강의 줄기들이,
맑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면 길고 긴 세월의 흔적을 돌의 형태로 담고 있는 동굴들과
깊고 맑은 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2부. 북동리 사람들
산골 깊숙이 살고 있어 자연과 닮은 사람들이 있다.
경사가 가파르고 732m에 달하는 문치재의 구불구불한 길을 넘어가면,
만나게 되는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
함바위골에 살고 계시는 최재규 할아버지는 한국전쟁도 겪어 내며
60여년 북동리에 살고 있다.
재 넘어 다니며 옻이 올라 고생하던 사람들의
부스럼을 치료해주던 옻물내기 약수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긴 끈으로 새를 쫓던 파대치기는
생활의 지혜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북동리에는 서로에게 기대어 옛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장윤지씨와 함영순씨 부부는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호흡도 잘 맞는다.
함영순씨는 추억 속에만 남아있을 디딜방아와 맷돌을
여전히 일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나무주걱과 손 때 묻은 가마솥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부부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황기막걸리를 담그거나 옥수수밥을 지을 때면
마을 사람들과 모여 담소를 나누고, 그 사이 따뜻한 정도 함께 오간다.
구불구불한 길 따라 숨어 있는,
산이 품고 있는 북동리 마을, 밥 짓는 냄새가 향수를 자극하는 그 곳으로 간다.
3부. 동강에 살어리랏다
깊고 깊은 산 속, 오지마을이라 불리는 곳에는
시끌벅적한 도시와는 전혀 다른 물결처럼 잔잔한 시간이 흐르는 마을과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강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는 가정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줄 배.
수없이 오고가는 수고로움이 가정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총 7명이 모여 사는 이 곳 사람들은 서로가 가족 그 자체다.
귀농 4년차인 ‘처녀 뱃사공’ 과 이웃친구인 정상중씨는 서로 돕고
밭일 할 때 말벗이 되어준다.
최근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하는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밭을 나누기 보다는
함께 일구며 서로 돕는 품앗이를 한다. 함께 하기에 밭일 후의 보람이 배가 되고,
막걸리 한 잔과 식사가 꿀맛이다.
고향이 좋아 떠나지 않고 사는 사람과
고향이 그리워 돌아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
가정마을과 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인 거북마을에는
정용회, 정용화씨 형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자연에 섞여 살고 있다.
사이좋은 형제와 어머니는 거북마을의 유일한 가구인 거북이 민박을 운영하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푸근하게 맞이한다.
야생화로 꽃차를 만들고, 약초를 캐러 다니는 형제는
자연을 소중함을 알아, 꽃과 약초를 향한 손길과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1년 중 7월 하순에서 8월 초까지만 볼 수 있는
보랏빛 칡꽃은 정용화씨의 손에 거쳐 꽃차로 탄생하기도 한다.
꽃향기와 푸근한 정이 휴식과 위로를 건네는 깊은 산 속의 자연.
맑은 동강 변에 핀 야생화처럼 자연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강원도의 오지마을을 향한다.
4부. 강변의 국수잔치, 메밀과 옥수수
서강의 발원지인 흥정계곡이 위치한 평창의 봉평은 소설 <메밀 꽃 필 무렵> 의 고장.
‘이효석 문학의 숲’도 조성되어 있어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의 이야기가
숲길 따라 펼쳐진다.
봉평의 별미인 메밀 비빔국수는 옛날 어르신들이 마을의 경사가 있을 때,
함께 모여 만들어 먹던 정이 담긴 음식이었다.
지금도 만들어 먹는 국수에는
옛날의 그 따뜻했던 정과 손맛이 여전히 담겨 있다.
강원도 사람들에게 강과 밭은 평생을 함께 살아 온 가족같은 존재
고지대가 많은 강원도는 논보다 밭을 가꾸기가 좋고,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땅은 감자와 옥수수 등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쌀보다 옥수수가 많았던 시절의 올챙이국수는 주린 배를 채워주던 양식이었다.
지금은 편리하게 길이 뚫려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지만
정선과 평창은 험준한 고개가 사이에 있어 한참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수없이 오르내렸던 고개는 정선. 평창.
사람들이 삶을 위해 넘어야 했던 고개이기도, 삶에 의해 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고개를 넘어 강을 건너 아우라지가 위치한 여량리에 가면
박순덕 ,장만기 부부는 오랜 시간 해오던 방식 그대로 올챙이국수를 만들고 있다.
매일 새벽 부부는 동이 트기 전부터 옥수수를 솥에 끓여
장에 나가 판매할 국수를 만든다.
입소문을 타고 오랜 시간 정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국수는
불과 몇 시간만에 팔리고.
없던 시절 가족들과 먹던 그 기억을 더듬으며 어르신들은 잊지 않고
매번 장에 나와 먹기도, 휴가에 맞춰 내려온 자식들을 위해 양 손 가득 사가기도 한다.
5부. 태고의 시간 속으로
영월을 가로지르는 동강이 흐르는 자리는
5억년 전에는 바닷물이 유유히 흐르던 곳이었다.
태고의 기억을 간직한 물살은 흐르고 흐르며 묵묵히 세월을 담아냈다.
그 세월의 흔적을 동강 부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월군 문곡리에 위치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천연기념물 413호로,
4억 4천만년에서 4억9천만년에 형성되었다.
지질학상 최초의 생명 활동의 흔적이며,
태고의 신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장기근씨는 오랜 시간 영월, 태백 등지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해 온 화석을 개인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삼엽충, 암모나이트 등에 대해 친철하게 설명해 준다.
수주면 무릉리에는 물이 흐르다가 돌며 구멍을 내어놓은 돌개구멍과
선녀가 머문다는 요선암이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비경을 보며 옛 기억을 회상하는 할아버지와
이장님에게 그 곳들은 추억이자 선물이다.
강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그 안의 물고기들을 지키고 있는 조성장씨가
강의 생태를 살피고 있다. 다양한 보호어종들이 서식하고 있는
동강을 "늘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나게 하는, 마을을 배부르게 하는 강" 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동자는 맑은 동강과 어딘가 닮아있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강, 건강하게 흐르고 있는 강을 찾아간다.
억만년 전 바다였던 곳,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 추억을 품고 있는 곳,
그 곳에는 오늘도 동강과 서강이 고고하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