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도시
최문자
“선생님, 우린 붉은 신호등이 나타나면 차를 멈추고 키스를 했어요. 정지된 모든 사물들 앞에서. 누군가는 푸른 사과를 깎는 중일텐데...... 태연하게 다음 신호등이 빨갛게 다시 나타나고 믿을 수 없게 우리는 또 키스를 했어요. 먼 구름 사이로 달빛이 쏟아졌고 그 속을 헤엄치고 싶었어요. 차차 사라지는 붉은 빛 신호등 차는 무엇이 금지된 줄도 모르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어요. 도시는 충분히 붉어져가고 있는데 누가 여긴 꿈 속이라고 말했어요.
여전히 정지하여 지킬 것이 있나봐요
사랑은 붉은 색으로 도시를 만들어요.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붉은 신호등을 선채로 세워나요.
붉은 빛이 엄청나게 쏟아져요.
다른 색들이 일제히 붉은 색 도시를 노려봐요.
“선생님, 그 사람이 어디로 갔을지 모르지만 붉은 신호등 앞 거기 꽃을 두고 왔어 요.
살아나라
살아나라
죽어버린 사람과 죽은 키스들아
“선생님, 모든 색이 안보여서 멈출 수 없어요 8월에도 가고 겨울에도 가요
붉은 신호등 앞으로
죽은 새와 바람이 키스하는 붉은 색 도시로
웹진 『시인광장』 2024년 1월호 발표
최문자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등이 있음. 박두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신석초문학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 협성대 문창과 교수, 同 대학 총장, 배재대 석좌교수 역임.
[출처] 붉은색 도시 - 최문자ㅣ■ 웹진 시인광장 2024년 1월호 신작시 □ 2024년 1월호 ㅣ2024, January ㅡ 통호 177호 ㅣVol 177|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