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 기자] "박세리의 눈물"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스포츠에서 성취를 이룰수 있다. 재능에 더해 가족의 지원이나 희생이 뒷받침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은 처음 우승을 맛보거나 정말 오랜만에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자신을 위해 고생한 가족을 떠올리고는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내 여자 골프만 봐도 그렇다. 1부 투어에 데뷔한 지 7년 만인 지난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처음 우승한 배소현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다.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1부 투어 데뷔 5년 만에 생애 첫 정상에 오른 노승희도 인터뷰를 잘하다가 부모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곧바로 울먹였다.
26년 전, 그러니까 1998년 5월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챔피언십 정상을 밟으며 미국 무대 진출 첫 해에 곧바로 첫 승을 거둔 박세리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아다. 당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박세리의첫마디가 "아빠, 좋지?" 였다고 한다.
박세리가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훈련은 혹독했다. 한겨울에도 매일 새벽 15충 아파트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고, 매일 저녁 스윙과 퍼트 연습을 1000번이나 해야 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박세리가 세계적인 골프 스타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LPGA챔피언십 이후 한 달 반 뒤 US여자 오픈에서 박세리는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한다. 박세리는 태국계 미국 선수이자 아마추어였던 제니 추아시리폰과 정규 72홀 무승부에 18홀 플레이오프 포함, 무려 20차라례 연장전을 벌인 끝에 우승했다.
특히 플레이오프 마지막 홀에서 '감동의 맨발 샷'을 보여 줬다. 티샷이 왼쪽 개울가 언덕밑으로 떨어졌다. 공이 물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스윙 자세를 잡기 힘든 상황이었다. 누구나 벌타를 받고 드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박세리는 양말과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 공을 페어웨이로 빼내며 기사회생했다.
위기에서 벗어나 결국 우승한 박세리는 눈시울을 붉혔고 응원 온 아버지. 어머니를 부등켜안았다. 국제통화기금 (IMF)에 시름하던 우리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 희망을 선물한 박세리의 맨발 샷은 한국 스포츠사의 명장면 중 하나다. 그 명장면을 빚어낸 것은 박세리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최근 박세리가 다시 눈물을 떨궜다. 박세리희망재단이 자신의 부친을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희망재단은 박세리의 부친이 새만금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사업에참여하려는 과정에서 재단 인장응 위조해 사용했다며 고소 절차를 밟았다. 재단 이사장인 박세리가 이사회에서 먼저 의견을 냈다고 한다. 오랫동안 부친의 채무 문재로 속앓이를 해왔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박세리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보기 좋았는데 안타깝다.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막을 수 없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는 기자회견 내내 꾹 참았더 감정이 복받혀 올랐다. 성공을 거둔 스포츠. 대중문화 스타가 가족과 불화를 껶는 경우가 종종있기는 하지만 이번엔 박세리가 그러하다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박세리가 기자외견에서 그저 신세 한탄만 한것은 아니다. 골프 유망주를 키워 내고 희망을 주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개인적인 문제로 헛된 시간을 낭비해서 안 된다.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더 굳건해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박세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영광의 나날을 함께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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