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무엇을 방관하며
무엇에 침묵하는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 것입니다...()...
방관과 침묵의 대가
보스턴 대학살 기념관 밖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그 유명한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나치는 처음에 공산주의자를 숙청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기에 침묵했다.
마지막에 그들이 내게로 다가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시비(詩碑)를 도심에 세운 것은
‘침묵은 잠시 침묵자의 통행증이지만,
결국 침묵자의 묘지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시시각각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 마르틴 니묄러는 1892년에 독일 립슈타트에서 태어난 독일의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였다. 니묄러는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히틀러의 등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주장하자, 니묄러는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반대하는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니묄러와는 달리 독일의 성직자들은 나치의 위협에 굴복했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니묄러를 매우 싫어하여 그를 체포했으며, 결국에는 작센하우젠과 다하우 강제 수용소 등에 감금했다.
니묄러는 연합군에 의해 1945년에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독일에서 성직자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국민들을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대변자로서 활동했다. 그의 시는 잘 알려져 있고 자주 인용되며, 흔히 특정의 조장된 두려움과 함께 시작되어, 이윽고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집단적인 적의를 띰으로써 나타나는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을 묘사하는 데 인기가 있는 본보기이다.
[출처] 방관과 침묵의 대가|작성자 유석산 융제
첫댓글 우리사회가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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