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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랑방 스크랩 서울시계(市界)종주 5·6구간, 겸재 정선·구암 허준 만나고 봉수대와 한강나루터 지나쳐
최영기 추천 0 조회 29 10.06.24 13: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시계(市界)종주 5·6구간

 

겸재 정선·구암 허준 만나고 봉수대와 한강나루터 지나쳐

대부분 야트막한 산… 근린공원·고갯길 많아

 

 

 

 

서울의 동쪽과 북쪽이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 등 산으로 둘러쳐져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면 서쪽과 서북·서남쪽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겸재 정선 기념관, 허준 박물관 등과 야트막한 산에 조성된 근린공원 등이 특징을 이룬다.

▲ 서울시계종주팀이 양천 궁산공원을 내려오며 활짝 웃고 있다.

제일 앞이 총부대장 유상헌씨, 바로 그 뒤가 올해 65세인 전윤정 대장.

 

야트막한 산은 기본적으로 고개를 갖고 있다.

서울에는 문헌상으로 230개 이상의 많은 고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현재 서울은 택지나 도로 개발로 상당수의 고개가 없어졌으나 아직도 예전 그대로 혹은 흔적이 남은 고개들이 있다.

북악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에 고개가 많다.

삼선교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동소문고개, 서울대 부속병원과 창경궁 정문 북쪽 사이에 있는 박석고개(薄石峴), 동대문경찰서 부근에서 종로5가로 넘어가는 배오개고개(梨峴) 등이다.

인왕산 서사면에서 뻗어 나와 북서쪽 통일로로 통하는 무악재 외에도 풀무재, 미아리고개, 망우리고개, 진고개 등이 있다.

이러한 고개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모되었지만 무악재, 남태령, 미아리고개, 망우리고개 등 몇몇 큰 고개는 그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고개들은 없어졌지만 그 이름은 지금도 동네 이름으로, 또는 지하철역 이름으로 남아 우리에게 친숙한 느낌을 준다.
고개 이름이 동명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인현동(仁峴洞)·송현동(松峴洞)·아현동(阿峴洞)·만리동(萬里洞)·무악동(毋岳洞)·망우동(忘憂洞) 등이다. 지하철역 이름으로는 3호선 무악재역, 4호선 남태령역·당고개역이 있다. 5호선의 애오개역, 6호선의 버티고개역, 7호선의 장승배기역 등도 지명 유래를 전한다.

고개는 기본적으로 도적 떼나 호랑이가 출몰하기 쉬워 길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고개를 넘을 때 모여서 가거나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넘곤 했다.

따라서 고개 주위에는 주막이 있었다. 길손들은 고개를 무사히 넘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은 서낭당을 만들어 빌었다.

이 서낭당이 나중엔 마을의 안녕과 풍요까지 기원하는 장소로 확대됐다.

지방에 가면 서낭당을 쉽게 볼 수 있으나 서울에서 현재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서낭당은 12곳으로 전한다.

서낭당이고개, 서낭당고개, 사당이고개, 도당재 등으로 그 자취를 알 수 있다.

유난히 야트막한 산이 많은 서울시계종주 제5·6구간을 이번에도 거인산악회·54트레킹동호회 회원들과 같이했다.



[5구간]


지축역~앵봉(서오릉)~벌고개~봉산~수색교~가양대교~구암근린공원(허준박물관)~궁산~겸재 정선기념관~마곡체육공원~방화역 21.9㎞


이번 구간은 강북에서 만나 한강을 건너는 대장정 구간이다.

대장정이라고 하기엔 가소로운 거리지만 한강을 건넌다는, 그것도 북쪽 끝에 가까운 지축역에서 만나 한강을 건넌다고 하기에 굉장히 먼 거리로 느껴졌다.

지축역에서 오전 9시에 일행을 만났다. 모이는 회원들은 구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 줄었다.

1구간을 시작할 때는 그 추운 날씨에도 3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10명이 채 안 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다들 60세를 바라보거나 60세를 훌쩍 넘겼는데…. 아마 ‘걷기의 달인’ 경지에 오른 분들 같다.

3호선 지축역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했다. 한마음미용실의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곳이다.

조금 내려오니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다. 이곳도 뉴타운 건립 예정지라 허허벌판에 각종 건축자재들이 쌓여 있다.

그 사이에 있는 시경계 도로를 따라 걸었다. 2차선도 건너고, 4차선 도로도 넘고, 통일로도 지나서 앵산 자락 임도로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앵산이 서울과 경기도 고양의 경계를 이룬다. 앵산 자락 오른쪽(서쪽)으로는 골프장과 서오릉이 있다.

서오릉(西五陵)은 5개의 왕릉으로 구성된 사적 제198호로 지정된 유적지다.

세조 3년(1457) 세자 장(璋:후대에 덕종으로 추대)이 사망 후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곳에 모셔진 것이 시초다.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敬陵),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무덤인 창릉(昌陵),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무덤인 익릉(翼陵), 21대 영조 원비 정성왕후의 무덤인 홍릉(弘陵)까지 다섯 왕과 왕후의 능을 모셨다.

경기도 구리에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 왕실의 가족 무덤이다.


 

▲ 강장골산 초입에 있는 좁은 길엔 개나리와 벚꽃, 후박나무 등이 활짝 피어 걸음걸이를 더욱 가볍게 한다.


서오릉은 조선 왕실 가족 무덤

조선시대에는 품격에 따라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의 생모·왕세자 빈의 무덤은 ‘원’, 대군·공주 등의 무덤은 ‘묘’로 구분해 불렀다.

서오릉에는 5개의 능 외에도 조선 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인 순창원이 있으며,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무덤도 있다.

서오릉 방향으로는 능선에서 철제 펜스로 문화재구역을 보호하고 있다.

앵봉과 응봉(244m)을 거쳐 벌고개로 가는 길이 시경계다. 벌고개엔 서울시와 경기도를 가르는 이정표가 있다.

사실 서오릉 뒷산의 명칭은 조금 애매하다.

잘 닦인 등산로 덕택에 많은 주민이 이용하고 있지만 이 산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이 산 전체가 앵봉산”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응봉과 앵봉의 구분은…”이라며 얼버무렸다.

여하튼 야트막한 봉우리들은 벌고개가 있는 서오릉을 지나 수색까지 계속 되며,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이룬다. 

벌고개는 갈현동의 옛 자연부락인 궁말에서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풍수지리상 이 고개는 덕종과 덕종비 소혜왕후 한씨의 능인 경릉의 좌청룡 줄기에 걸쳐 있다.

그런데 지반이 낮고 약해 사람이 지나다니면 더욱 낮아질 염려가 있어 통행을 금지시켰다.

만일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큰 벌을 준다고 해서 벌고개(罰峴)라 이름을 붙였다. 

응봉에서 내려오면 서오릉로와 접한다.

도로를 건너기 위해서는 서울 방향으로 50m쯤 내려와 횡단보도를 지나 다시 시경계를 찾아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올라가 다다르는 산이 일반 지도에 표시된 봉산이다.

봉산(205m)은 정식명칭이 덕산(德山:일명 거북산)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서북쪽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앵봉, 응봉을 거쳐 벌고개에서 끊어진 산은 다시 덕산에서 일어나 갈현동, 구산, 역촌, 신사 등으로 이어져 수색까지 약 7㎞ 연봉으로 이어진다. 

덕산은 서울 서북부 주민과 고양 동남쪽 주민들의 휴식처이면서 체력단련장이기도 하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쉴 만한 곳에 이르면 정자와 운동기구가 구비돼 있어 많은 주민이 활용하고 있다.

이용 주민은 대부분 서울시민인데 고양시에서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약수터도 10곳이 넘는다고 했다.

처음 나온 정자인 ‘봉수정(烽燧亭)’에 앉아 쉬고 있는 등산객들에게 이 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
“전체 산 형세가 거북이 모양을 닮아서 거북이산이라고 한다”고 했다.


 

▲ (위)종주팀이 출발하기 직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래)꿩고개 길 중 진달래꽃이 만발한 곳을 종주팀이 걷고 있다.

 

허준의 호 따서 구암근린공원 조성

아마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야트막해서 사람들이 정식명칭을 알려고 하지 않아 그러려니 싶었다.

실제로 이 산 이름을 정확히 아는 주민은 현장에서 만난 4명 중 한 명도 없었다.

이어 덕산 정상(205m)에 도착했다.

정상은 군부대가 철조망을 치고 차지하고 있어 접근이 금지돼 있고, 바로 그 밑에 ‘고은정(高恩亭)’이 등산객을 맞았다.

낮은 산이라 등산로는 외길이다. 간혹 동네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로 두세 갈래 정도 나뉘기는 했다.
마침 사거리가 나왔다. ‘←중산생활체육광장, 산책로↑, 덕산약수터→’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었다.

덕산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했다.

은신정, 수향정을 지나 저 멀리 한강이 보이는 수색까지 나아갔다. 이제부터는 평지로 걷는다.

수많은 차량과 소음을 견뎌야 한다. 울퉁불퉁하지만 그래도 산길이 걷기엔 훨씬 낫다.

최고령인 우리의 전윤정 대장은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전 대장은 올해 65세인데도 등산과 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 덕분인지 50을 갓 넘긴 사람처럼 아직 피부가 탱탱한 편이다.

열심히 운동한 결과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친구들은 모두 꼬부랑 할머니가 다 돼 같이 다닐 사람이 없다고 한다.


 

▲ 1 종주팀이 궁산 우수 조망대에서 한강과 방화대교, 행주대교를 바라보고 있다.

2 종주팀이 소나무숲 사이로 난 등산로를 걷고 있다.

3 종주팀이 모두 모여 정확한 위치와 지명을 지도에서 확인하고 있다.

4 방화대교와 행주대교, 한강을 배경으로 종주팀이 포즈를 취했다.


수색교를 넘었다. 다리 아래로는 경의선 철로가 지난다. 철로차량기지도 겸하고 있어 수많은 열차가 정차해 있다.

차량기지 담벼락 너머로 차들이 쌩쌩 달렸다. 왕복 10차선은 될 법하다.

잠시라도 말을 하느라 입을 열면 입 안에 뭔가 씹히는 기분이다. 찜찜하다.

바로 앞에 한강을 두고 동쪽에 난지도 노을공원이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악취가 뉴스의 초점이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 억새가 우거진 연인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장소가 되었다. 참, 세상은 모를 일이다.

강변북로를 건너 가양대교로 한강을 지났다. 강폭만 1㎞에 달한다. 한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 위로 걸은 거리는 총 2㎞ 정도 됐다.

한강에서 부는 바람을 맞고 전경을 구경하며 강 위로 걷는 기분이 새삼스러웠다.

강에는 청둥오리가 무자맥질을 하며 연방 먹이를 찾고 있고, 햇빛에 반사된 강 표면은 여기저기서 반짝거렸다.

다리를 건너니 바로 강변아파트로 연결됐다. 도로 위 이정표는 오른(서)쪽으로 ‘허준박물관 500m’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우회전하지 않고 뒤로 돌아 구암근린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계는 한강이니 조금 더 가까이 가기로 한 것이다.

‘근데 왜 구암인가?’ ‘허준박물관은 또 왜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암은 허준의 호이다.

그의 호를 따서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또한 <소설 동의보감>과 TV 드라마 ‘허준’ 등에 경기도 파주와 전남 장성·영광, 경남 산청 등으로 그의 출생지가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경기도 김포군 양천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의 강서구 능촌동 능곡마을이다. 그래서 허준박물관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박물관 내부는 그의 일대기와 약탕 체험기, 약초 식별법 등 한의학과 관련한 다양한 시설로 채워져 있다.

허준박물관에서 50m쯤 거리에 공암나루터(孔巖津址)라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양천과 행주를 잇던 나루터, 일명 북포(北浦)나루라고 하였다”는 글로 그 옛날 이곳이 나루터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지금 주변은 온통 아파트와 주거단지로 변했다. 나루터의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주변엔 커다란 바위에 동굴 같은 구멍이 뚫려 있어 공암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짐작케 했다.

영등포공고를 지나 궁산으로 갔다. 궁산은 해발 100m도 안 되는 정말 야트막한 산이지만 조선시대 양천고을의 진산으로 통했다.

한남정맥의 끝자락으로 안산·수리산에서 북행하여 증산(甑山)이 되고, 낮은 구릉이 한강으로 끝나면서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강을 따라 서쪽의 개화산 등과 더불어 한강 남안에 솟아 강변의 절경을 이룬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에 “성산(城山)에 고성이 있는데, 그 둘레는 약 218m이고, 지금은 성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궁산의 이름은 파산(巴山)·성산·궁산·관산(關山)·진산(鎭山) 등 다양했다.

파산은 삼국시대에 주변의 지명인 제차파의(齊次巴衣)여서 연유된 것이며, 성산은 성이 있기 때문에, 진산은 양천고을의 관방설비가 있어 그렇게 불렸다.

관산은 바로 건너에 있는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을 빗장(關)처럼 지킬 수 있는 산이란 의미다.

궁산은 양천향교가 있어서 궁(宮)으로 표시했던 것으로 공자를 숭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 표준 명칭도 궁산이다.


행주산성과 마주보는 궁산, 이름도 다양

 

▲ 까치울이 있는 능고개로 종주팀이 올라가고 있다.

궁산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임진왜란 때 전라창의사 김천일, 전라소모사 변이중, 강화의병장 우성전 등이 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 등지의 의병들을 이끌고 이 산에 진을 치고 있다가 한강을 건너 권율 장군을 도와 행주대첩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들 수 있다.

양천현감들은 매일 저녁 궁산에 올라 강 건너 피어오르는 봉화를 바라보고 국가의 안위를 살피기도 했다.

사적 제372호로 지정된 양천고성지도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 등과 함께 한강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산성이었다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다.

궁산 한강변의 뛰어난 절경은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岳陽樓)에서 바라보는 경치에 버금간다 하여 이곳에 소악루(小岳樓)라는 정자가 있다.

영조 때 이유(李楡)가 이곳에 와 소악루를 짓고 명사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

겸재 정선은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뒤 매일 이곳에 올라 소일하면서 한강변의 그림을 그렸다.

그 작품집 <한수주유(漢水舟遊)>는 오늘날 한강변의 옛 모습을 전해주는 귀중한 자료다.

겸재 정선의 그림이 안내도와 함께 한강을 바라보는 우수 조망자리에서 탐방객들을 맞고 있다. 

궁산 정상은 6·25전쟁 때 군부대 진지가 구축되었다.

인근 주민들이 평평한 꼭대기의 솔밭 사이에서 산책과 경치를 즐기고 있다.

한강의 아름다운 전경과 수많은 다리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펼쳐진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우리의 전 대장이 다시 한 말씀 하신다.

“어휴, 저 다리를 보니 내 다리가 불쌍하다.”

궁산공원을 지나 이젠 5구간 끝인 줄 알았는데 아직 끝이 아니다. 궁산을 내려가 아파트를 지나니 겸재 정선기념관이 나왔다.

겸재 정선은 65세 때인 영조 16년(1740) 양천현감으로 발령받아 부임했다.

정선은 이곳에서 5년간 머물면서 한강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며 종래의 남성적 산악미 위주에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여성적인 표현까지 겸비하게 된다.

그의 진경산수화를 더욱 원숙한 경지로 끌어올린 곳이 바로 양천현인 것이다. 지금은 강서구로 바뀌었지만. 그래서 이곳에 그의 기념관이 있다.

겸재기념관에서 마곡레포츠센터를 지나 강서공고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방화역에 도착했다. 이젠 정말 끝이다.

이날은 오전 9시 지축역에서 만나 방화역까지 꼬박 21.9㎞(GPS 거리)를 걸은 끝에 오후 5시에 도착했다.

정말 다리가 불쌍할 정도로 고생했다.


 

▲ 수색을 지나 시계를 따라 가양대교를 건너고 있다.

 

[6구간]


방화역~개화산~김포공항~오쇠삼거리~강장골산~서서울호수공원~고강보도육교~안산~우렁고개~온수역 22.4㎞

이번 구간은 주로 평지라 만나는 시간을 오전 10시로 조금 느긋하게 잡았다.

오전 10시. 이구 대장이 어김없이 먼저 와 있다. 참여한 거인산악회와 54트레킹동호회원들은 더 줄었다. 총 8명이 단출하게 출발했다.

방화역 2번 출구에서 국립국어연구원 방향으로 곧장 따라 올라갔다.

국어연구원을 오른쪽에 두고 돌아 꿩고개근린공원으로 진입했다. 간단한 체육시설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아담한 공원이다.

공원 입구엔 꿩고개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안내판에 의하면 예로부터 꿩이 유난히 많았기에 꿩고개인데 꿩을 의미하는 여러 한자 적(翟), 궉(     ), 분(曷鳥), 치(雉) 중 특별히 꿩치자를 쓴 것은 군사적 의미가 있다며 이렇게 전한다.

“꿩고개 앞을 흐르는 한강은 예로부터 물류수송의 운반로이며, 군사적으로 이동·보급로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개화산에서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발견되고, 조선시대까지 봉수가 있었던 곳으로 강 건너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수로를 차단할 수 있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이에 꿩고개는 개화산의 오른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예로부터 산성방어벽의 끝이었으며, 돌출된 부분을 이를 때나 성곽의 끝, 담장을 이르는 한자 치(雉)는 꿩치(雉)자와 같은 글자를 사용했으므로,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군사적 의미보다 정감 있는 새 이름 꿩에 대한 의미가 더 강해져서 현재 이곳을 꿩고개라 부르고 있다.”


 

▲ 1 허준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공암나루터를 확인하고 있다.

2 종주팀이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다.

3 양천고성에 있는 정자인 소악루에 올라 한강을 가리키고 있다.

4 양천고성 정상에 있는 성황사.


꿩고개에서 개화산으로 연결

이 꿩고개를 한자로 치현산(雉峴山)이라고도 부른다.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 듯 산책로는 반들반들했고, 진달래가 활짝 꽃을 피워 봄기운을 만끽하게 했다.

바로 앞에 행주산성이 강 건너 손에 잡힐 듯했고 행주대교와 방화대교가 양쪽으로 있었다.

치현산(꿩고개)은 바로 개화산(128.4m)과 연결됐다. 서울 서쪽의 끝에 있는 개화산은 일명 주룡산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 한 도인이 주룡선생(駐龍先生)이라 자칭하며 이 산에 숨어 살면서 도를 닦고 세상에 나오지 않다가 늙어 죽었다.

그가 이곳에 살 때 매년 9월 9일에 동자 두세 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飮:구구절에 용산에 올라 술을 마시다)’이라 했다 해서 주룡산이라 이름 붙었다고 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에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이 산을 개화산이라 일컫기 시작했다. 지금의 개화사가 주룡선생이 살던 옛 터라고 한다.

<양천읍지>에 개화산의 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동해의 산경은 백두산을 조종으로 하여 태백산에 이르고, 서쪽으로 굽이쳐 속리산이 된 다음, 북행하여 청계산이 된다.

여기서 맥을 나누어 일맥은 북쪽으로 관악산을 이루고, 다시 북쪽으로 떨어져 양화도 선유봉이 되며, 일맥은 서북을 향하여 안산의 수리산, 인천의 소래산으로 이루어져 북행해 와서 본현에 이르러서는 증산(甑山)이 된다.

증산은 산 모습이 예뻐서 군자봉이라고도 하니, 이것이 한 고을의 조봉(祖峰)이 되며, 일맥이 북향하여 주룡산이 된다.

일명 개화산이라고도 하는데, 코끼리 형상으로 사자 형상인 행주산과 더불어 한강 하류의 양쪽 대안에 포진하여 서로를 바라보며 서해안을 통해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한성에서 흘러나오는 재물을 걸러서 막아주는 사상지형(獅象之形)이라고 한다.”

겸재 정선은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열수팔경도’의 하나로 ‘개화사’라는 제목으로 개화산과 절, 오솔길의 소나무숲과 그 아래 버들숲이 우거져 있고 전답이 있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지금은 개발제한구역과 군사시설이 있어 자연 그대로의 숲이 제법 울창해진 것도 개화산의 자랑이다.

개화산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산신제를 지낸다.


개나리가 만발한 등산로를 지나 개화산 봉수대를 가리키는 비석에 다다랐다.

이곳은 옛 양천 지역의 이름인 파릉(巴陵) 8경의 하나로 ‘개화석봉(開花夕烽)’에 해당한다.

개화산의 저녁 봉화가 평화로운 한강변 경치를 한층 아름답게 꾸몄던 것을 표현했다.  


부천과 서울 경계 넘나들어

▲ 개화산 정상 군부대 밑에 있는 개화산 봉수대.

행주대교 남쪽 끝자락에 ‘행주나루터’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강변 쪽에 있던 행주나루는 강서구 개화동 갯모랭이마을 앞에 있던 나루터의 이름이다.

행주대교가 놓이기 전에 개화동에서 예전의 고양군 지도읍 해주리로 건너가던 나루터였다.

갯모랭이는 갯가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강 하류는 인천만의 바닷물이 들어와 섞여지므로 소금기가 있어서 강변이지만 갯가라고 했다.”

행주나루터 비석에 새겨진 문구다.

개화동에서 강서농수산도매시장까지 가는 6647번 버스 종점이 지나는 길에 있다.

개화역에 다다랐다.

여기에서 시경계는 논두렁 사이와 김포공항 뒤쪽으로 죽 돌아서 가야 하지만 그 길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 공항 앞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메이필드호텔(맞은편이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이고 농수산물공사 강서지사) 앞을 지나 오쇠삼거리까지 죽 내려갔다.

외발산동에 있는 오쇠삼거리가 부천으로 넘어가는 시경계 지점이다.

외발산동은 발산(鉢山·72.3m)의 서쪽에 있는 동네를 말한다.

발산은 밥주발을 엎어놓은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발산은 파려산 또는 수명산(壽命山)이라고도 한다.

수명산은 화곡동과 발산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수명장수를 비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평지에서 시경계를 찾아가는 길이 더 어렵다.

산길은 능선이 명확히 드러나지만 주거단지나 아파트엔 경계가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먼저 답사한 팀들이 있어 그들을 따라 신월아파트 사이와 뒤로 나와 육교로 도로를 건넜다.

육교 위에서 부천시 경계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보였다.

양원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좌측 광영문화관 앞으로 100여m 가다가 엄마분식을 앞두고 다시 우회전으로 돌았다.

서울금융고교 담벼락을 끼고 걷다가 정문을 지나 신원중학교를 통과했다.

지역아동복지센터 앞쪽에서 우회전해서 곧장 올라간다. 시경계를 넘어 부천으로 접어들었다.

고강아파트 단지 사이로 들어가 뒤로 나오는 길이 시경계이지만 뒤쪽은 언덕으로 막혀 있다.

단지 앞으로 가다가 새로나마트에서 좌측으로 돌아 고강아파트 8동과 고강리치빌 1동 사이로 난 계단길로 올라가는 코스로 잠시 부천시로 우회했다.

좁은 길은 만개한 목련과 비슷한 후박나무꽃과 개나리, 벚꽃 등이 가로수처럼 활짝 펼쳐져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했다.

조그만 능선엔 강장골산, 능골산 등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들이 있다. 밀양 변씨 가문에서 세운 비석들이다.

조그만 능선은 서서울호수공원으로 연결됐다. 공원엔 대운동장과 체육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이어 경인고속도로를 건너는 길과 접속이 됐다. 이른바 고강보도육교다.

육교 아래로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각종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길을 건너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대목동병원까지 운행하는 6624번 버스 종점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앞에는 높은 기동대 담벼락이다.


평지서 경계 찾기 더 힘들어

넓은 길을 따라 가는 길이 서울 양천과 경기도 부천을 구분하는 도로다. 양쪽으로 빌라 단지가 가득하다.

어떤 빌라는 서울이고, 또 어떤 빌라는 경기도다. 매일, 하루에도 수 차례 경기도와 서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빌라 단지 끝에 있는 한신빌라와 한신마트 앞에서 좌회전으로 돌아 길을 따라 100m쯤 가다가 등산로 초입이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안산체육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체육공원 등산로 이정표를 세운 관할구가 양천구 신월동에서 부천시 오정구로 금방 금방 바뀐다.

서울과 경기도 사람들이 모두 이용하는 시설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정확한 이름이 궁금했다. 산책객들은 “지양산”이라고 했다.

지도엔 ‘안산’과 ‘지양산’을 혼용했다. 여하튼 등산로를 따라 계속 내려왔다.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 듯 길은 외길로 잘 닦여진 상태였다.

온수연립과 우정고개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계속 나아가서 처음으로 조금 헷갈리는 삼거리가 나왔다.

‘← 1㎞ 온수초교, 온수공단 600m ↑’ 이정표에서 온수공단으로 향했다.

콘크리트길로 잠시 이어지더니 이내 다시 능선으로 올랐다. 잠시 이어진 콘크리트길이 작동(鵲洞)고개길이다.

주변엔 까치울이 있고, 까치울초등학교도 있다. 까치가 많아서 유래된 것 같다.

능선을 따라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온수공단으로 계속 가니 한국아파트가 보인다. 다시 평지로 돌아오며 만난 첫 아파트다.

한국아파트 입구에서 왼(동)쪽으로 50m쯤 내려가 손오공문구공장과 강서건설기계 정비공장에서 좌회전한다.

다시 50m쯤 직진하다 삼영기계공업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새마을금고 앞에서 우회전하면 이번 구간의 종착역인 온수역이 나온다.

오전 10시에 방화역에서 만나 하루 종일 걸어 오후 5시쯤 온수역에 도착했다. 무려 22.4㎞를 7시간 걸려 걸었다. 다리에 감사할 뿐이다.

 

 

 

▲ (좌)겸재정선기념관. (우)구암근린공원의 허준 동상.


[서울시계종주 5·6구간 가이드]

양천현감이었던 정선, 양천에서 태어난 허준의 유적 등 둘러볼 곳 많아

이번 구간은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역까지였기 때문에 따로 교통편을 안내할 필요가 없다.

다만 개화역에서 굳이 시경계를 돌지 않고 도심화물터미널로 도로를 따라 내려온 것은 시경계로 도는 길이 다소 위험하기 때문이다.

메이필드호텔 앞 삼거리에서 오쇠삼거리까지 가지 않고 바로 양원초등학교로 가는 길도 있다.

이런 길 정도만 감안하면 종주 길 안내에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구간에선 볼거리가 몇 군데 있다.

특히 겸재 정선기념관과 허준박물관, 양천고성 등은 사전 정보를 알고 가면 그만큼 더 잘 볼 수 있다.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겸재 정선기념관은 그의 초기 작품부터 말년까지 다양한 작품이 망라돼 있어 진경산수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상시 큐레이터도 있어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준다. 매주 월요일 휴관. 평일은 오후 6시, 주말은 오후 6시까지 개관한다. 어른 1,000원, 청소년 및 군경 500원.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겸재사생대회도 5월 14일 개최한다. 참가 문의 02-2659-2206.

강서구 가양2동(허준길)에 있는 허준박물관은 출생지부터 가계도까지 허준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

<동의보감>뿐만 아니라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벽역신방> 등 다양한 저서도 전시돼 있다. 양천현의 변화상도 한눈에 설명돼 있다. 입장료는 성인 800원, 어린이 500원.

사적 제372호로 지정된 양천고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산성으로 임진왜란 중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둘 때 권율 장군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데 요긴했던 산성이기도 하다.

양천고성 남쪽에는 서울시 기념물 제8호이자 많은 인재를 양성한 산실 양천향교가 복원돼 있다.

양천고성 정상부에 성황신의 위패와 신물을 모신 성황사 건물 한 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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