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 백승현

[東昊 풍란]

문학의 향기-소청(小靑) 조희관(曺喜灌)

백승현 편집장

porum88@naver.com  

발문>

조그만 시냇물 목 맺혀 울고/금잔디 속잎 나는 깊은 골짜기/진달래 발가스름 피었으렸다/송살땀 씻으며 넘던 그 산길/아, 내 고향 두메의 봄이 그리워//수건 쓴 새색시 괭이를 들고/푸른 빛 자라나는 보리밭 머리/종달새 비비배배 지저귀렸다/길 신발 끌면서 예던 그 들길/아, 내 고향 두메의 봄이 그리워 - <내 고향> 전문-

영광 남천리 172번지 소청 선생의 은행나무집에 들른다. 화단에 내린 숫눈이 낯설고 하늘은 희부옇게 내려앉아 동백나무 가지까지 내려왔다. 수필가 조희관(曺喜灌, 1904~1958) 선생의 글을 정리한 <소청 조희관 문학과 인간> 책자가 내린 눈에 젖었다. 물기 어린 눈 속에 중절모를 쓴 소청 선생의 큰 눈을 들여다본다.

비가 모처럼 온다. 온종일 운애가 끼고 바람이 불다가 밤이 되자 호붓이 빗발이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창을 연즉 그 동안 뜰에 싸였던 등꽃이 비에 젖어서 불빛에 빛난다. 자연의 아름다움. 고요함. 나는 얼마나 독한 사람의 입김에 후들리며 그리고 다시 얼마나 자연의 부드러운 입김에 소생하는가. 간밤 비바람에 송화(松花)가 날려 와서 뜰에 물이 잦아진 자취 그대로 노란 무늬를 그렸다. 시절이 이처럼 깊었던 것을 그것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 「전원일기」 중에서-

‘송화가 내려 뜰에 괸 물에 노란 무늬를 그렸는데, 시절이 이처럼 깊었던 것을 비로소 알았다.’ 절묘하고 놀라운 대목이다. 조희관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아차! 하며 놀라다가 다음엔 애처롭고 마지막엔 쓰리다. 그 시대 순전한 우리 남도 텃말과 모국어로 이렇게 솔직하고 순정하며 견결한 뜻이 고스란히 드러낸 수필을 쓴 사람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란다. 수필에 드러난 남도 사람들의 4, 50년대 삶의 핍진함이 애처롭고 그리고 이런 수필가가 아직 우리 문학사에 편입되지 않은 시대적 상황이 쓰리다. 남도 문학이 이처럼 깊었던 것을 이이로 하여 비로소 안다.

소청(小靑)이라는 호처럼 맑고 푸른 삶을 견지하며 글삶 외에는 다른 세상 명리를 도외시했던 문인. 우리 글말, 입말을 목숨처럼 아끼고 살리던 국어학자. 남도 정서의 수필 문학의 새싹을 키우던 앞선 수필가. 청빈하고 겸손하며 따뜻했던 교육자가 소청이었다.

소청 조희관은 1905년 9월 6일 전남 영광 영광읍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영광은 시조시인 조운(曺雲, 1900~?)이 1920년대부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지역 문예운동을 선구적으로 주도했던 곳이었다. 문학소녀 박경순(朴花城, 1904~1988)은 1922년 영광중학원에 부임하여 조운 시조시인을 통하여 1925년 「추석 전야」로 <조선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조운과 친척 간으로 5살 터울이었던 소청은 영광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1920년 5년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이어 1925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합격했다. 배재와 연희전문은 수재들만이 모이는 명문이었고 재력이 있지 않고서는 수학이 힘든 학교였다.

연희전문 시절 소청은 고향인 영광에 방학 때면 내려와 봉사활동을 펼쳤다. 동국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한 정종 박사(1915)에 의하면 소청은 죽창 김형모(1900~1933)와 함께 어린이들을 위한 <카나리아회>를 조직하여 1927년 11월 4일 ‘한글날’을 기해 기념식을 올렸고 이때 어린이 회원들이 한글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소청의 나이 22세, 1926년 그날을 <가갸날>로 정하고 국어연구가들이 신민회 주최로 축하 기념식을 연 그 이듬해 지방으로서는 최초로 영광에서 선진적인 행사를 치렀던 것이다. 소청의 모국어 사랑은 이때부터 싹텄다.

보배다 자랑이다 우리네 한글/온 천하 많은 글 중에서 으뜸이다./우리네가 인류 앞에 받드리는/귀여운 한 선물/반가운 날, 이 가갸날/거룩한 한글이 세상에 나오신 날 - <한글날 노래> 1절 -

연희전문 2학년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하고 있던 소청은 1928년 북경 호스톤대학교에 입학했다가 3년 후인 1930년 영광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1929년 겨울의 고국에서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 소식을 듣고서였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소청은 193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 25살에서 40살까지의 나이를 고뇌와 우수의 안개 속에서 보낸다. 1934년 4월 영광에서 창립했던 ‘영광 체육단’, ‘갑술구락부’가 조직 공인되고 있었는데, 영광의 선구적 지식인들이 1934년 4월 영광 시민운동회를 개최하고 올림픽 영웅 손기정과 남승룡을 초청하여 간접적인 배일사상을 고취 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놀란 일경은 9월 16일 밤에 ‘동방 약소민족 옹호’,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쓰인 벽보를 자신들이 써서 전봇대에 붙여놓고 이 범인을 색출한다는 구실로 체육단 주도층을 검거했다. 이것이 조운과 해인 위계후(1884~1944), 이을호 등 영광의 지식인과 항일 투쟁 경력자들을 일망타진하여 구속한 ‘영광 체육단 탄압 사건’이었다. 이때 소청은 잠깐 체포되었으나 공무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곧 풀려났다. 1930년대 하반기부터 소청은 영광군청과 면사무소, 그리고 염산면장으로 근무했다. 일제시대의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지내야 한다는 우울이 그의 수필 <전원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고, 일제 말의 극심한 사상 통제를 견디며 해방을 기다렸다. 44년 영광유치원의 원감을 맡으며 농번기 농촌 탁아소를 경영하던 정종 박사의 유치원 교육을 뒤에서 돕기도 했다.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던 소청의 숨은 방패막이가 돼 주었다. 다정한 말투와 따스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었다. 1922년 소청은 정금옥(1903~1939)과 결혼했으나 조호현과 조한식을 낳고 결혼생활 17년만에 상처한 뒤에 김매실(1916)과 1942년 속현한다.

하루는 그 푸나무에 푸진 낫질을 하다가 낫 끝에 손가락을 베었다. 아차! 하고 지금 베인 손가락 끝을 한손으로 단단히 잡고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을 보고 앉았었다. 그런 내 앞에 한 계집애가 나타났다. 그 밑의 골짜기에서 단 한 채의 집을 짓고 사는 초가집의 계집애다. 항상 떨어진 조끼마냥 치마 하나만 거머두르고 웃통을 내놓고 사는 계집애다. 내 앞에 주춤 선 계집애는 낫에 손을 베었느냐고 물었다. 그렇노라고 했더니 그의 몸뚱이에 묻은 것으로는 가장 호사스러운 허리 끄나풀을 끌러서 좌르르 찢어가지고 한 가닥으로 내 손끝을 동여매 주었다. 그리고는 그가 지금 질근질근 먹고 다니던 무엇인가의 산 열매의 가지에서 열매 몇을 따서 나한테 주었다. ‘개불’이라는 산 열매라는 것이었다. 내 손가락을 동여매주고 그 개불을 나한테 준 계집애는 바로 또 아래 산골짜기 올벼 논에 새를 쫓으러 바람처럼 달려가는 것이었다. -베었거든 동여매라. 동여맸거든 맛있는 것을 먹고 잊어라. 잊었거든 일어나서 일을 해라. 나는 나 갈 데로 간다! 더구나 그 필요를 인정만 하면 제 몸에 따른 무엇이건 아낄 것이 없는 그 싱싱한 태도! 이러한 데서 나는 새로운 것을 배고 싶다. 새로운 내 태도를 얻고 싶다. -「개불」 중에서 -

소청의 수필 중에 <새 인간> 論이 피력된 부분이다. 소청은 식민지 시기 내내 어린이를 위한 민족교육을 도우며 글을 쓰고 재혼을 했지만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그 점에 대해 깊은 자책과 오뇌의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삶의 태도와 지조를 갖춘 ‘새 인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해방 후의 소청의 열정적인 삶으로 이어졌다. 소청은 해방 후 광주사범 교사와 목포상고 교감으로 부임했다가 목포항도여중(현 목포여고)에 1947년 7월 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때부터 1950년 11월 한국전쟁으로 교직을 떠날 때까지 교육자로서의 소청의 꿈이 영근다. 예향 목포의 르네상스 시기가 열렸다.

소청은 일제 암흑기에 억눌려 있던 천재와 열정을 교육에 바쳤다. 교장에 부임하여 맨 처음 한 일은 한자로 된 학교 간판을 한글로 고치고 교훈도 ‘한송이 들꽃을 보라/남을 시새워하지도 아니하고 한껏 제 빛을 나타내나니’라고 손수 지었다. 식민지 시대 설움 받던 우리 모국어를 다시 닦고 슬기롭게 되살려 쓰기 위한 교육이 선진적으로 시도됐다.

일찍이 나는 어려서 절간에서 한여름을 지낼 때 물방울 소리에 몰려드는 시내의 파리떼를 보고 비누를 쓰지 못하고 세수를 하던 일이며 잡목을 뒤감은 다래덩쿨의 밑둥을 잘라다가 지팡이를 만들던 밤에 그 잘린 다래덩굴의 수없이 뻗은 넝쿨의 수없는 잎새들이 낱낱이 여인의 얼굴들이 되어서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는 꿈에 소스라쳐 깨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런 그 시들한 기억이 끝내 가시지 않는 만큼 내 생활 태도의 이모저모는 내내 어리기가 짝이 없다. 나는 일지기 어린 학생들에게 한 송이 들꽃을 배우라고 한 일이 있다. 말없이 제 빛깔대로만 피라는 말이었다. 어느 여학원의 아이들이 부러진 정원수의 가지를 손수건으로 찢어서 동여매주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교육의 기쁨을 느끼던 것도 나였다. - 「꽃 있는 마을」 중에서 -

유능한 교사를 초빙하여 항도여중을 목포의 명문이 되게 했다. ‘부용산’으로 유명한 국어교사 박기동(1917~2002), ‘엄마야 누나야’ 작곡자로 알려지게 되는 남평 출신의 음악가 안성현(安聖絃, 1920~2006) 등과 같은 뛰어난 교사들을 초빙해 우리 식 정서와 교육 방법으로 학생들을 교육했다. 풀꽃과 같은 겸허한 인품과 덕성을 지닌 여성, 그리고 생명력이 왕성하고 내면으로 향기로운 여성이 되라는 시적 교훈이었다. 고결한 인격과 온화한 품성을 가진 소청의 교육관이었다. 6.25 때 입국한 안성현을 보살폈고, 작사가이던 박기동 선생을 경찰에서 귀찮게 할 때 병원에 입원시켜 시달림을 모면하게 해주었던 이도 소청이었다. 항도여중의 「새싹」이라는 잡지와, 1949년에 조 교장의 발의로 목포 평화극장에서 3일에 걸쳐 3일 동안 열린 학생종합예술제는 전국 최초의 고교 학생예술제였다. 소청의 절정의 수필도 해방과 전쟁 이라는 시대적 격변 속에 꽃피웠다. 슬프고 아름답고 진지하면서도 솔직한 글들이었다.

이 비친 데가 밝고 어둠이 서린 데를 어둡게 하라. 콩 심은 데 콩낙 팥 심은 데 팥이 나게 하라. 나는 이렇게 빈다. 미쳐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기만을 비는 것이다. 어느 어미가 미쳤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헛소리를 치고 손뼉을 치며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그 두에는 어린 자식 둘이 따라와 있었다.

“어메…, 어메….”하고 어린 오누이가 울면서 따라간다. 미친 어미는 그것 저것 알 길이 없이 휑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손뼉을 치고 웃다가 울다가 할뿐이다. 그래도 자식새계들은 그렇게 저희를 사랑하고 먹여주고 입혀주던 어미인 것을 알고, 그저 울면서 그 여인을 따라 다닌다. 나는 그때 호인 집에 들어가서 빵 한 봉지를 사서 그 가엾은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오죽 배도 고팠으련만 그래도 그 아이들은 그것을 먹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울면서 미친 어미만 따라가는 것이었다. 미쳐도 어미, 성해도 어미, 어미는 하나뿐인 어미이기에 그 자식새끼들은 서러워도 배가 고파도 그저 어미의 뒤를 따를밖에 없던 그 모양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일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 「믿음」 중에서 -

6.25가 지난 뒤부터 소청은 출판 문화운동을 주도한다. 「전우」와 「갈매기」의 주간, 항도출판사 사장을 맡아 혼자서 글을 쓰고, 인쇄를 하고, 책을 만들어나갔지만 이것은 곧 가난과 궁핍한 생활의 시작이었다. 교육계로의 복귀나 서울 중앙 문단으로 나오라는 유혹도 받았지만 소청은 목포를 떠나지 않았다. 향토 문예 운동에 고군분투했다. 예향 목포 시절 소청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은 문인이나 제자는 없었다. 극심한 생활고와 전후의 문화 궁핍기에 힙겹게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쓴 글들이 묶여 나왔다. 1952년 <취미의 국어 샘>은 우리 말본 교육자료이며, 1954년 수필집 <철없는 사람>을 펴냈다. 우리말로만 된 현대문학 사상 최초의 수필집이었다. 1956년에는 목포문화협회(목포예총의 전신)를 조직했다. <고하도의 달>, <새 날이 올 때> 등과 <세계동화선집>을 출간했다. 한땀 한땀 솔직하고 쉬운 문체와 우리말로 전후 궁핍한 우리 삶의 서러운 생활상을 담아낸 일기와 수필을 써내고 또 발표했다. 김매실(1916)과 사이에 낳은 한승, 월진, 수향, 향진, 한영 등의 가족과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눈을 뜨면서 집 걱정과 돈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에서 들리는 여인들의 말소리에 귀를 종구고 있는 나였다. 이웃집이라야 거적 한 장 밖이다. 그 거적 틈으로는 아침볕과 무명 껍데기 같은 연기도 잘 새어든다. 돌솥 아궁이에 풀무질을 하는 이웃집 과부가 어디서 온 젊은 여인과 주고받는 말이다. “… 아짐이 어째 나를 그런 디로 중마했던가 원망스럽소이.” “금매 주가 그 댁네가 그런 줄 알았던가배, 자네 친정 가는 꼴도 못 본다제?” “친정이고 뭐이고는 우선 그만 두고 어째 그리 메강스럴 것이요!” 뒷말은 무엇이라고 따라나오건 나는 그 ‘매강’이라는 말에서 문득 흥미가 솟아서 생각이 나한테로 돌아왔다. ‘메강스런 시어머니’란 정말 현대의 어감에 찰삭 들어맞는 어휘로구나 했다. 메마르고 강파르다는 말이 줄었겠지… 하고 이 말의 세상에 파고 들어가면서 모두를 잊어버리고 누웠는 나였다. 나는 아마 쥐새끼가 꽃송이를 물고 나가는 날에라야 이 방을 비켜나서 다른 방에 혹은 다른 거적 밑에서 살려나 보다. - 「철없는 사람」 중에서-

소청은 지역 문인들을 발굴해 등단시키고 문학수업도 시켰다. 그리고 자상하게 보살폈다. 그의 가르침을 후배들은 잊지 못한다. 차범석(극작가), 이가형(평론가), 김승우(수필가, 덕성여대), 김효자(수필가, 경기대), 김정숙(시인), 최하림(시인), 권일송(시인), 최일환(시인), 이생연(시인), 김시라(품바 작가), 백두성(소설가), 강무창(소설가), 윤금초(시인), 박문재(시인), 허형만(시인, 목포대), 고정희(시인), 천승세(소설가), 이동주(시인), 차재석(수필가) 등이 그들이다. 남농 허건 선생과 소영 박화성 소설가는 그의 오랜 동지였다.

1958년 9월 9일 소청은 사랑하던 유달산 발치 서산동 판자촌에서 운명했다. 발인을 할 때 소청과 같은 교육자가 빈민촌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사실을 동네 사람들은 몰랐다고 한다. 어느 평자의 글처럼 ‘한매(寒梅)와 같은 삶’이었다.

1984년부터 유족 특히 딸 조수향 씨의 지원으로 목포예총 주도로 ‘소청 문학상’이 만들어져 소청의 문학적 삶을 기렸다. 조수향 씨는 늘 참석해 아버지를 그리는 글을 낭독해 모인 사람들을 애달프게 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자상하셔서 매일 우리들 얼굴을 씻겨주시고 이도 닦아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함께 광주로 나와 성빈여사나 이일성로원 같은 곳에서 자라 궁핍하게 지냈지만 자랑스럽게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저를 보면 아버지 소청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분인데 딸은 그렇지 않더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이를 깨물고 공부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1996년까지 13회에 걸쳐 소청문학상과 ‘추모 문학의 밤’ 행사를 열었다. 1990년도 소청 문학비를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무산됐다. 소청 문학상은 유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계속되지 못했다. 2000년 동아인재대학에서 <소청 조희관 문학과 인간>이라는 책자를 냈다. <철없는 사람>의 수필들과 회고담을 담은 책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발표글과 일기가 아직 발굴되지 않는 자료로 남아 있다. 안성현 작곡집(1948년)에 실린 시들과 목포중앙여중, 여고 등의 우리말 가사 등 시에서도 탁월한 필력을 보여주었다. 영광 은행나무집은 지금 보존되어 있어 문학기념관으로 만들어나가기에 충분하다. 소청 전집을 낼 수 있는 자료가 풍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청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 소청을 그리고 있다.

따서 먹지도 못하는 것이면서 여름 산길에서 정 지치면 하나 따서 깨물어 본다. 눈이 찔금 감긴다. 이것이 풋머루다.

어떻게 잘 살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잘 사랑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사는 일이란 사랑하는 일이다. 일찍이 이런 믿음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언제이건 산에 돌멩이와 함께 풀꽃이 되어서 그 자리에 내가 쓰러져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혼자의 기쁨에 차가지고 숲속을 걷기도 하던 때였다.

이제는 아주 모든 일에 해탈을 해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종래에 이르던 사랑 그것보다는 훨씬 강력한 것이 아니면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이 하도 미련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도 길 가다가 우는 애 하나 달랬으면 그것을 그 날의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사랑이란 강한 것이기 때문이냐? 내가 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냐? -「풋머루」 중에서- 김수영 시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