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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조동화의 세월과 시간
20대 홍안의 나이에 철도에 부임한 조동화는 어느덧 70을 넘어 황혼의 시절을 맞이했다.
조동화의 벗님들도 어찌할수 없이 시간에 쫏기여 황혼의 시절을 맞이하였구나.
젊은 시절 건강관리를 잘못하여 저세상으로 떠난 사람도 있고, 100년 친구(아내)관리를 잘못하여 인생을 하직한 사람도 더러 있고 망친친구들이 있지요.
100년친구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살면 않되지요.
집안이 화목하고 잘될라면 큰며누리가 잘 들어와야 된다는 말이 있듯 남자는 여자 손바닥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네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다.
어릴 때는 시간과 에너지는 많지만 돈이 없고, 젊어서는 돈과 에너지는 있는데 시간이 없고, 늙으면 시간과 돈은 있지만 에너지가 없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돈은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고, 에너지는 건강관리로 더 얻을 수도 있지만 시간만큼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시간은 뭘까.
시간은 지나갈 거야.
웬 세월이 빨리 흘러 갔을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저녁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찾아오고, 그날이 그날 세월은 도둑놈이여.
하루하루가 흘러가다보니 홍안의 시절 모습은 간데없고 황혼의 계절이 되었다니 서글프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명한 말이 있다.
이세상은 돈이 기본이지.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여.
70을 넘어 노년기에 접어든 친구들아!
내말 들어봐.
나이들어보니 마트에 들어가 휘졌고 다녀보면 별로 살것이 없지.
내말 틀렸는가.
건강이 제일 큰 재산이여.
황혼의 노년기 70이 넘어가 보니 건강이 제일이여.
친구들이여 여가와 건강하고 행복해야지요.
"9988234" 라는 말이 있다.
플어보면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가 죽자. 이런 뜻이여.
인생 만사 새옹지마와 같다.
살다가 보면 어려운 상황과 행복한 일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새길 일이다.
남은 인생 여정 긍적적으로 살아야지요.
세월을 붙잡을수도 없고 원망할수도 없고 그러네요.
현명하게 "이또한 지나가리라" 위안 삼으며 2024 기쁘게 맞이합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네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 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월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 미국, 1856~1939)
1950/7/11 14:00 익산기관고 UN군기
오폭사고 조동화의 처 외삼촌 강휘영님 산화
1950.6.25 전쟁와중에 이리에서 제일 큰 건물인 이리기관고가 폭격대상이 되어 1950.7.11. 오후 2:00경 미공군B29기의 오폭사고로 대전철도국 이리운전사무소 직원 59명이 갈기갈기 찢겨 폭사했다.
이당시 조동화의 처 외삼촌 강휘영님께서 이리운전사무소에 근무했는데 1950년7.11 미군의 오폭사고로 딸둘을 남겨놓고 돌아 가시었다.
익산기관차사무소 청사 부근 우측에 세워진 순직비와 익산역 적십자회관앞에 세워진 위령탑명단에 처 외삼촌 강휘영 이름도 세겨져 지금도 구천을 멤돌고 있다.
전쟁통에 아무리 오폭사고라고 주장한들 아무 보상도 없었으니 가족들의 어려운 처지는 이루 말할수 없었으리라.
1950년 7월 11일 오후 2시~3시 30분 사이 전라북도 이리시 창인동에 있는 이리기관고, 송학동 변전소에 미 극동공군 소속 B-29 중폭격기 2대가 폭탄을 투하하여 이리역 근무자, 이리역 이용자, 이리역과 변전소 인근 거주민 등 100여명이 죽었다.
이리는 7월 19일 인민군에게 점령당했다.
1977년11/11 익산역 폭팔사고의 기억
1977.11.11 21:15 익산시 일원은 이리역 폭팔사고로 인해 생지옥을 연상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폭팔당시 나는 11/19일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처가에 들러 별채 방에서 아내와 이야기하며 누워 있는데 심한 폭팔음이 울리고 있었지요.
내가 느끼기에는 어디 군부대에서 폭팔물이 터졌나보다 생각했으나, 오늘 출근시간이 저녁 10:30이므로 서둘어 시내뻐스로 익산뻐쓰터니널에 도착하니 시가지는 온통 유리조각으로 뒤덮여 전쟁터를 방불하고 있었지요. 나와 같이 철도에 부임한 본과 입사동기생 엄상호친구는 기관차에 올라 폭팔물의 위력도 모르고 불이난 곳을 바라보다가 폭풍으로 사망, 유복자를 남겨두고 이때 한 많은 세상을 떠가갔지요.
엄상호친구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누워게시다 돌아가시고............폭팔의 순간 최재산입사동기생은 대전에서 출발하여 익산역에 도착한 동차역차 도착 점검중 폭팔음이 울리는 순간 맨발로 뛰어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요. 이날 저녁은 몹시도 싸늘한 날씨였으나 추위도 잊은채 엄상호친구의 주검을 여러명의 승무원과 같이 시신이 있는 장소 기관차사무소 목욕탕으로 옮겼지요.
구비 구비 인생구비 46년전 익산역 폭팔사고를 회상하며 추억 해 보았습니다.
현 철도공사사장 한문희님은 조동화의 정년퇴임 당시 전북본부장으로 근무했었다.
2009-12-29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에서 거행된 퇴임식에서 한문희전북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환송사를 하였다.
현재 철도공사사장으로 철도공사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퇴직자부부일동은 한문희본부장을 가운데로 단체기념사진을 남기었다.
환 송 사
어느덧 2009년 한해를 청산하고
새로운 변화의 한해를 맞이해야 할 이때
저희는 이 추운 날씨만큼이나 시린 마음으로
지난 수십여 성상을 철길을 달리듯
철도인으로서 한결같은 세월을 보내시고
이제 저희들 곁을 떠나시는
여러 선배님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저희 후배들에게 늘 큰 힘이 되어 주시고
항상 사랑과 헌신으로
저희와 직장을 위해 힘써 주셨던
김동연 선배님, 문영식 선배님, 박영식 선배님,
송준철 선배님, 전병수 선배님, 조동화 선배님
조호연 선배님, 최재산 선배님!
1천여 전북본부 가족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바쁜 일정속에서도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해 참석하여 주신
가족.친지 여러분과 직원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철도를 천직으로 알고
한 평생을 철도에 몸담고 계시다가,
퇴임을 맞이하신 이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난 시절의 회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리라 생각됩니다.
칠흑 같은 밤 밀려오는 졸음을 애써 참아가며
철야근무 하시던 일,
천재지변으로 사고복구 하느라 동분서주 했던 일,
남들은 편히 쉬는 명절이나 휴가철에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는 커녕
오히려 긴장 과 격무 속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던 기억 등,
어찌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만,
선배, 후배, 동료들과 철길에서 나누었던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추억만 가져가시고
힘들고 고단했던 기억은 이제 훌훌 털어 버리십시오.
선배님들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늘 이처럼 영광스러운 퇴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님들의 이 자리가
한없이 빛나고 우러러 보이는 것은,
지난 시절
열악한 근무환경과 수많은 역경속에서도
직장에 대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해오셨기 때문 아닐까요.
또한 가족여러분의 크나큰 사랑과
아낌없는 내조 덕분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가족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과
큰 박수를 보냅니다.
선배님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철도는 제2의 변혁기를 맞고 있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조직을 효율적으로 탈바꿈시키고
영업수입을 흑자로 전환하여
코레일을 정상화의 반석에 올려놔야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최근의 경기불황과 내수침체로
흑자전환은 더욱 도달하기 힘든 높은 산으로
느껴지실지 모르나
우리 코레일은 충분한 저력이 있습니다.
공사전환 이후
기업형 체제로의 성공적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난 9월에는
한국경영대상 녹색산업 부문상을 수상하고,
코레일의 대표 브랜드인 KTX가
‘2009년 3분기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 중에서
37위로 급상승 하는 등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입증해 왔습니다.
또한, 새정부의 정책기조인 ‘저탄소 녹색성장’은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인 철도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범사회적인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와
철도 110년의 저력을 바탕으로
변혁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 하였던가요.
오늘 이 자리는 이별의 자리가 아닌
또 다른 만남을 약속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오며,
지금이야말로 높은 경륜과 깊은 지혜를 지니신
선배님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평생의 정열과 시간을 모두 바쳐 오신
철도를 결코 잊지 마시고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가지시고
좀 더 자유를 누리시면서
저희 후진들을 이끌어 주시고 지켜 주시며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남은 저희들은
물려주신 훌륭한 업적과
오랜 경륜을 이어받아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반으로 21세기를 주도하는
세계 1등 국민철도를 만들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기업으로서
그 동안 쌓아놓으신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퇴임하시는 여러 선배님!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퇴임을 계기로 그동안 미루어 두셨던 일,
마무리 지으실 일들을 정리하시면서
지금 이대로의 건강과 젊음을 평생 지니시고
행복한 여생을 가꾸어 나가시길
저희 모두는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12. 29.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장 한 문 희
인생의 의미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입니다.
길가에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집니다.
- 출처 : 벨루가 -
황혼 인생(人生) 스스로 찾아서 살자
예순,일흔 줄 인생은 백전노장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황혼을 맞았다.
깃발 펄럭이던 청춘은 추억일 뿐
가슴에는 회한과 아픔만 남았다.
아무리 노년의 즐거움과 여유를 강조해도
우리들 가슴에는 낙조의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더구나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 또는 모두가 옛날 같지가 않다.
삼삼오오 허물없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에는 자연히 건강이다.
나의 청춘만은 영원하리라 믿었는데
어느새 고개 숙인 남자의 대열에 끼이게 된다.
노년은 쾌락(탐욕)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덕의 근원인 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로마의 대 철학자 키케로가
죽기 전에 쓴 '노년에 대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던 과연 우리 노인들은
버림 받은 것일까 해방된 것일까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순리에 따라
우리가 좀 늙었을 뿐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해답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버림 받은 것이
아님은 확실하지 않는가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나이
남의 눈치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원숙의 경지에서 더 이상 잘 난체 아는 체
가진 체 할 필요도 없이 내 멋대로 살면
되는 것을 어느 한 곳이 불능이래도
다른 곳 다 건강하니 축복 은혜라 여기며 살자.
스스로 절망과 무기력의 틀 속에
가두어 두지 말고 어느 곳에 있을
자신의 용도 즐거움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인생은 70부터 고목에도 꽃이 핀다 했는데
그까짓 회춘이라고 안 된다는 법도 없는 것!
지금부터라도 걷고 뛰고 산을 오르면서
젊게 산다면 인생 60~70에는 연장전
20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자유롭고 여유 있고 슬기로운 해방의 시기를
즐기며 사느냐 울며 사느냐는
당신의 몫이고 선택입니다.
- 좋은글 -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이 소중한 것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인생? 암에 걸려서 3개월 후에 죽는다는 판정을 받은 친구가 와서 손을 잡고 울고 위로하고,
그 불행을 슬퍼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한 시간밖에 못살 사람이 3개월이나 살 사람을 불행하다고 위로해 주고 갔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 수많은 인생에 대한 명언 중에서도 막시무스가
최고의 명언 5개를 골라보았다.
1. 인생이란 불충분한 전제(前提)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인생이 충분한 전제에서 결론을 내리는 일이라면, 우리가 사는일이 이렇게 서툴고 실수투성이는 아닐 것이다.
인생은 도대체가 전제(前提...먼저 내세우는 것)가 없는 놀이다.
막시무스가 인생에 대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는 영국의 소설가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의 말이다.
2. 인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당신은 살아 나가지 못할 테니까.
막시무스가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해주고 싶은 얘기다.
아무리 심각해도 인생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없다.
넥타이 풀고 살자.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엘버트 허바드(Elbert Hubbard, 1865~1915)가 남긴 멋진 말이다.
3. 당신은 여기 잠깐 들른 것이다.
서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마라.
그리고 가는 길에 꽃향기도 꼭 맡아보아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쓴 천상병의 세계관과 비슷한 인생관을 담고 있는 글이다.
우리는 여기 잠시 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여행자처럼 살자.
살아 있을 때는 지금의 타이거 우즈만큼 유명했던
하겐(Walter Charles Hagen, 1892~1969)이라는 미국의 프로 골퍼가 한 이야기다.
4. 인생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많아도 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별로 없다.
살면서 욕심이 날 때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뭔가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하는 말이다.
인생에는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작가 겸 삽화가였던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 1928~ )의 말이다.
5.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고 그게 전부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이 막시무스의 생활만 돌이켜 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을 기억하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노력해 본다.
단 하루라도 제대로 말이다.
독설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65~1950)의 인생 관찰이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
아일랜드의 천재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명에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훌륭한 번역가들이 "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라고 번역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말하고자 하는 묘비명의 그 글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일까?
무엇이던지 하고자 하면 당장 시작해보라,
바로 실천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죽음에 임박하여 자기 삶을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것이다.
그러지요.
한번뿐인 인생 우물쭈물하면 후회하지요.
먹거 싶은거 먹고, 하고 싶은일하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하고 미루지말고 실천하며 후회하지 말아야지요.
죠지 버나드 쇼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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