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2. 주일예배설교
시편 105편 1~10절
당신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 지난 9월 3일, KBS에서 하는 <‘전국노래자랑’ 군산시 편>이 방송을 탔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구희아’라는 아이가 셋인 엄마 출연자 때문이었습니다. 출연자가 노래를 세 곡이나 부른 것도 이례적인 데, 그 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오늘 예배 끝나고 찾아보시면, 흥이 폭발한 ‘환희+삼바의 여인+너는 내 남자’ 세 곡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분이 지난 10월 19일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유퀴즈>에도 출연한 것을 보면,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정말 흥이 넘치는 분입니다.
저는 이분의 흥을 보면서, 다윗 왕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면서 너무 기뻐 춤추던 다윗 왕, 무엇보다 바지가 벗어진 것도 모를 정도로 흥에 취했던 다윗 왕이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으면 그랬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이 그렇습니다. 감사 가득해서 기쁘고 흥겨운 고백이 찬양이 되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거룩한 흥에 취해보고 싶습니다.
■ 금방 읽었지만, 1~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어떻습니까? 흥이 나지 않습니까? 한 절, 한 절 지날 때마다, 1절에서 2절로, 2절에서 3절로, 그렇게 6절로 갈수록 흥이 점점 고조되는 것이 느껴지시죠?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는 차오르는 흥, 점점 높아지는 흥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못 느끼신 분을 위해, 1~6절을 다른 번역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차오르는 흥, 점점 높아지는 흥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려라! 그 이름 부르며 기도하여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분이 행하신 일을 알려라!
그분 위해 노래하여라. 힘차게 찬양하여라!
그분의 기적들을 음악에 실어라!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그 거룩하신 이름에
할렐루야로 경의를 표하여라. 행복하게 살아라!
눈을 열어 하나님을 찾고, 주님의 일을 주목하여라.
그분 임재의 징후들을 주시하여라.
그분께서 행하신 세상의 놀라운 일들,
많은 기적과 친히 내리신 판결들을 기억하여라.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들아,
오, 그분께서 택하신 야곱의 자녀들아.
어떠셨습니까? 흥이 차오르면서, 점점 높아지는 흥을 느끼셨죠? 좋습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이렇게 흥에 차 찬양하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점잖지 못하게 왜 이랬을까요? 언약,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8절입니다.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언약 때문에 흥에 찬 찬양과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약속, 그저 소소한 약속이었는데도 이랬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그 어느 것이든 흥이 날 이유는 충분합니다. 오히려 넘칩니다. 그렇지만 시편 105편에 흥을 부으신 언약은 대단한 언약이었습니다.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이라는 언약이었습니다. 천 대 전에 하신 언약을 천 대 내내 기억하신 언약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내가 너를 끝까지 구원하리라! 너는 영원히 내 사랑이다!’라는 언약이었습니다.
천 대 전에 받은 하나님의 이 약속이, 천 대가 지나는 동안, 그 어떤 순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변함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천 대가 흐른 지금도 이 구원의 약속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흥이 나지 않겠습니까? 혹시 ‘뭐, 당연하고 익숙한 것 가지고 이러느냐?’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생각 안 하시길 바랍니다. 이 구원의 약속은 감사의 호들갑을 아무리 떨어도 오히려 부족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은 엄청난 일입니다.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것 하나만 가지고도 엄청난 것인데, 이것 때문만이 아니기에 엄청난 일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약속에서부터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전과정을 책임지시는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그의 판단”이 무엇인지, “온 땅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판단”이란, ‘다스리심’입니다. 그러므로 “온 땅에 있다”는 것은, 온 땅을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온 땅을 다스리신다는 것’과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구원을 끝까지 책임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이 8절까지였는데, 9절 이후를 읽으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내용은 세상의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을 천 대에 걸쳐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를, 짧지만 사실에 근거해 분명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서술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너를 위한 구원을 약속을 따라 이루어가고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펼치시는 역사(歷史, history)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일하신 흔적입니다. 그렇기에 역사인 history는 his story 그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는 이야기’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구원사’로 읽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역사 읽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과 결과로서의 읽기입니다. 그러므로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문과 불안? 결코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삶이라면, 그 어떤 경우, 어느 상황에서도 의문을 갖거나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이 구원이니, 구원에 감사하고 찬양할 뿐입니다. 혹시 의문이 들면 감사하면 되고, 혹시 불안이 오면 찬양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적 태도는 전적인 신뢰입니다. 구원에 대한 전적인 의지입니다.
이 전적인 신뢰, 전적인 의지에 필요한 또 하나의 태도는 4절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새번역) “야훼를 찾아라, 그의 힘을 빌려라.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마라.”(공동번역개정판) “눈을 열어 하나님을 찾고, 주님의 일을 주목하여라. 그분 임재의 징후들을 주시하여라.”(메시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해주신 일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이 상황을 놓고 기도하다 보면, 해주신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영혼 깊이 내려 두었던 기억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지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나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찬양하게 됩니다. 거룩한 흥분이 일어납니다.
참으로 기도는 기억의 문고리요 성소 안내자입니다. 그러므로 의문과 불안이 시작되면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기억의 창고의 문을 열어 은혜의 성소로 안내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내 받은 은혜의 성소에서 여러분이 누리게 될 은혜는, 단순히 기억의 회복을 통해 의문과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회복이고, 앞날에 대한 자부심의 부활입니다. 8~10절입니다.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여러분은 8~10절의 말씀에서, “영원한 기억”과 “영원한 언약”을 만나셨습니다. 무엇에 대한 기억이고 언약인가요? 그렇습니다. 구원입니다. 구원에 대한 영원한 기억, 구원에 대한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억과 언약은 현재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시대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지금 이후의 삶에도 쭉, 나만이 아닌 내 후손 천 대에 이르기까지 쭉, 참으로 영원히 쭉, 이 구원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우리 모두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절의 권고를 함께 다짐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바라는 거룩한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와 내 후손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해 감사하는 일이 갈수록 더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의 찬양과 고백이 날로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이 다짐이 절정을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흥이 넘치는 추수감사주일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