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글/ 구자선
비 내리는 오후, 홀로 차 안에 앉아 지붕 위로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요즘 읽고 있는 줌파 라히리의 『로마 이야기』를 생각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흑인의 삶을 생각한다.
작은 꽃집을 운영하던 아빠는 밤늦게 찾아온 청년들에게 피가 터지도록 얻어맞고 꺼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가 부러져 단단한 음식은 먹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거의 일 년을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부끄러워했다. 결국 변두리 펜션에서 정원을 관리하고 주인의 말을 돌보고 포도원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래도 아빠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 보다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외곽에서 지내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나는 간간이 펜션에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고, 뒷정리를 하는 것으로 아빠 일을 돕고 있다. 며칠씩 머물다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곳의 정원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깨끗한 공기와 저녁노을이 그리울 거라는 말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고 인사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또 내일 도착할 새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첫 번째 이야기 [경계]이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야 하는 로마의 흑인 이야기이다.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여인과 흑갈색의 머리와 짙은 피부를 가진 여자 교수는 친구이다. 일 년 만에 만난 두 여인은 식당에 들어갔다가 금발의 여인은 상냥한 인사를 받지만 흑갈색의 교수에게는 말도 걸지 않고, 마주 앉은 사람은 자리를 떠나는 일과 마주한다. 화장실에 가려고 할 때 길을 막고 있는 아이에게 비껴줄 것을 요구하지만 못들은 체 외면하는 일과 못생겼다고 대놓고 말하는 아이를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모욕을 느껴야 했다. 그녀의 직업이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이 일상인 도시, 로마는 여러 인종이 공존하며 살아가지만 절대 하나 될 수 없는 차별의 도시. 변두리 이방인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두 번째 작품 [재회]의 모습이다.
P의 파티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일 때문에, 사랑 때문에. 기분 전환으로,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즐기고 있다. 새로운 바에 앉아 있다는 것이 하나의 출발이고 하나의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P의 파티, 그곳에서 남자는 한 여자를 알게 된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행복해 보이는 여자였는데, 잠깐의 대화가 있은 후에 함께 돌아가는 춤의 대열에서 춤을 추게 된다. 잠깐의 스침과 잠깐의 눈 맞춤이 있었을 뿐인데, 한 순간 그녀는 이 남자의 우주가 된다.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거리를 걸어도 온통 그녀의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리고, 불륜 아닌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혼자만의 외도, 결국 남자는 모든 걸 잃게 된다.
사랑이 사랑을 덮을 때 누군가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고통을 겪게 된다. 나만 아는 진실 같지만 결국엔 그 마음 다 들키고 만다. 아이를 잃고 가정을 잃고 혼자 떠돌아야 하는 사랑의 끝, 그 끝에는 그녀도 그 남자도 거기 없다.
일과 사랑, 가난한 노동자와 부를 누리는 사람들의 일과 사랑. 그 사랑으로 모든 걸 잃고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하는 고단한 일상. 그 속에서 다시 단비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굴레, 터널. 긴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어디에 있든 그것이 로마 시내의 한복판이든 멀리 사람이 많지 않은 외곽이든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제 길을 간다. 잠시 책을 통해 나도 이방인이 된다.
책은 내가 너를 만나는 길이다. 이 길 끝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깨진 항아리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삶의 여정. 그 끝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책은 또 하나의 나이다.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첫댓글 글을 읽고 이렇게 생각을 적는 일이 왜 안되는지 반성 합니다.
잘~돼야 할텐데 말입니다~
조만간 봇물 터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