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없는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표입니다.
성경본문 : 잠언 14: 19-22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20.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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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잠언 14:19-22입니다
잠언 14:19 : “악한 사람은 반드시 선한 사람 앞에 절하고, 불경건한 이는 의인의 문 앞에 서게 된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선한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사랑을 원리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단순히 상대를 사랑하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사랑을 원리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태도로 드러납니다
좋아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늘 아버지께서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과 비를 골고루 주시는 것처럼, 성도의 사랑 역시 그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잠언은 이러한 사랑을 원리로 삼는 선한 사람이 항상 최후에 주권을 지니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최종적으로 진일보 하여, 오랜 동안 주인의 역할을 행사했던 악한 자들이 기꺼이, 아니면 원치 아니한다 할지라도 사랑을 행하는 자에게 그들 자신을 낮추게 될 것임을 밝힙니다
오히려 그 악인들은 의인이 들어가고 나갈 때에, 그 문 앞에 서서 그들에게 수여되어질 선물들을 기대하여(시 37:25), 서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요셉을 팔았던 악한 형들이 요셉의 긍휼함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 예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의 약함을 조롱하였던 시므이 사건 역시 이 교훈을 명백히 합니다(삼하 16:7, 19:19)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가난한 사람은 심지어 그의 이웃으로부터도 미움을 받는다
그러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미움과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그러니 돈을 벌어라?
잠언은 이 슬픈 현실에 대하여 이것이 인간본질의 슬픈 구석임을 밝힙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상황이 좋을 때, 우리는 우리 주변의 많은 친구들을 모두가 다 진짜가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냉철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해지어 혹 이전의 우정이 사라지게 될 때에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이란, 하나님에게서만 기대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 때문에, 우리의 장점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점 투성이지만,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즐거히 여기셔서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만일 장점을 지닌 순으로 인간을 선택하셨다면, 우리는 혹 그 자리에 불림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또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우리들조차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가? 부자를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 배운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마치 자신을 높이는 것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타락한 본성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1: “그의 이웃을 경멸하는 자는 누구나 죄를 범한다.그러나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하여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누구나 그 위에 복이 있기를!”
성도는 우리 곁에 두신 사람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위치해 놓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같은 기원(origin)을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고상한 목적지를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는 혹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사랑해야만 하는 의무 아래 자신이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가 그의 이웃을 경멸한다면 이런 점에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그 사람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 놓는 것, 부당한 것입니다
성도는 이웃에게 향하는 이 영예와 사랑을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받아 들입니다
마치 자식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심정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자식에게만 박수 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웃을 측은히 여길 때에 그의 이웃의 필요한 상황을 고려할 뿐이지 그의 도덕적 가치에 의해 결정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가치 없음은 오히려 우리의 측은히 여김을 두 배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스데반 집사님은 기도하며 순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웃 사랑을 명하실 때에, 측은히 여길 사람과 여기지 않을 사람을 구분해서 우리에게 명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편견없는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표입니다
22: “악을 고안하는 자들은 길을 잃지 않겠는가?”
“그리고 선을 고안하는 자에게 자비와 진리가 있지 않겠는가?”
의문문은 강조를 위한 것입니다
분명 악인을 길을 잃을 것이며, 의인에게는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자비와 진리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을 고안하는 자는 길을 잃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여행시에 길을 잃는 것처럼 낭패를 당할 것이라 말합니다
집 잃은 개처럼, 악인은 희망없이 방황하며 떠돌 것이다, 결국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항하였던 하만이 자기 꾀에 빠져 죽임을 당했음을 그 전적인 예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에 7:10)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반면 선을 계획하는 자는 정직하고 계속적인 따듯한 접대를 받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선을 고안함에 있어서 열심과 결심들을 보이고 있는 지 스스로 물어야 하겠습니다
혹 우리 자신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의도를 받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지을 마음이 있었지만,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그의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왕상 8:18)
말씀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삶은 이것입니다
내적인 의도로부터 편견없이 사랑하고자 의도하는 삶인 것입니다.
출처: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