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제도란 근로자·사용자가 근로시간이나 근로장소 등을 선택·조정하여 인력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근무시간·장소·업무량·업무연속성 등을 기준으로 유형구분이 가능하다. 이중 근무시간과 관련된 유형으로는 근로기준법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
제, 사업장 밖 근로시간제, 재량 근로시간제 등이 존재한다.
산업과 기업 차원에서는 특성이 각기 다르고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통된 운영방식은 없으며, 공통 적용이 가능한 직군별 운영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연근무제, 직군별 운영방식 필요
외근이 잦은 영업직 | ‘사업장 밖 근로시간제(간주 근로시간제)’가 적합하다. 출장 등의 사유로 사업장 밖에서 업무를 수행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관리직 |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상대적으로 적합하다. 1일 8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1일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
연구개발직군 | 재량 근로시간제가 적합하다. 업무성격상 업무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맡길 필요가 있는 경우 노사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R&D 업무처럼 근로자의 재량범위가 큰 경우에 효과적이다.
생산직 |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적합하다. 업무가 많은 주(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일)의 근로시간을 줄여 평균적으로는 법정근로시간내로 근로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이는 주기가 일정하고 업무수행 내용의 변동성이 적은 업무에 적합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연근무제도는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대한 대증적(對症的) 처방일 뿐이므로 좀더 높은 차원인 패러다임 전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
업무수행 측면 | 업무수행 측면에서 워크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하여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원장은 해야 “할 일 리스트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피력하였다.
단순반복적인 저가치 업무는 이제 사람이 할 필요가 없다.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와 같은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워크 다이어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도입으로 인력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RPA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다른 IT 프로젝트 대비 짧은 구축기간, 저렴한 비용과 명확한 ROI 등 장점이 커서 2014년 이후 글로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국내에서도 2016년 이후 은행·보험·카드사 등 금융권을 중심으로 계약관리, 보험증권 처리, 정보조회 등 현업실무 업무에 도입되었다. 2017년 주52시간 근무제도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제조·물류·공공 등 전체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직문화와 구조 측면 | 기업은 조직문화와 조직구조 측면에서 애자일(Agile) 방식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애자일이란 2001년 발표된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문’에 등장한 개념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유래 되었다. 선언문에서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요소는 ‘개인과 상호작용’,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고객과의 협력’, ‘변화에 대응하기’ 등으로 애자일 방법론의 핵심개념은 협력과 피드백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애자일 방법론이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 그치지 않고 조직구조와 문화, 경영철학으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구글, 아마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인 스포티파이(Spotify) 등과 같은 기업은 애자일 방식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창출하였다.
GE와 같은 제조기업도 2012년 패스트웍스(Fastworks)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 조직도 애자일 방법론에 기반한 조직이다.
2019년 신년사에서 애자일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국내 CEO들이 많아졌는데, 이는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따른 생산성·업무효율성 저하를 염두에 둔 것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브로드밴드는 2018년부터 기존 업무수행 프로세스를 대신하여 프로젝트별 소규모팀을 구성하는 ‘애자일 시스템’을 운영중이기도 하다.
조직구조 차원에서는 최근 ‘데브옵스(Dev-Ops)’라는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데브옵스란 소프트웨어의 개발(Development)과 운영(Operations)의 합성어로 원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정보기술 전문가 간의 소통·협업 및 통합을 강조하는 개발환경 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커뮤니티’라는 의미이다.
이를 확산하여 IT·R&D·생산·마케팅 등의 부서에서 전문인력을 선발하여 하나의 팀으로 운영함으로써 분야(기능)별 협력을 통한 시너지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하는 방식이 기능 중심에서 제품·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만도는 2018년 말 마케팅·영업·기술 등 기능 중심의 부서 체계를 브레이크, 스티어링(Steering), 서스펜션(Suspension) 등 주요 제품별 책임경영 조직체계로 전환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서비스 중심 조직으로 개편하여 엔지니어링·마케팅·재무 등 여러 기능을 한 팀으로 통합한 다기능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장비와 온라인·클라우드 등의 서비스가 어우러져 하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루기 때문에 ‘협업’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협업효과 뿐 아니라 부서간 소통(업무협조 프로세스)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에 업무처리 시간도 줄어드는 부가적 효과가 발생되고 있다.
리더십 변화가 필수 | 일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서는 리더십의 변화가 사전적이면서도 필수적이다. ‘모호한 지시 → 엉뚱한 방향의 보고서 작성 → 보고서 수정’의 악순환은 상사의 모호한 지시에서 출발한다. 더 큰 문제는 모호한 지시보다 해당 지시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부하의 질문에 대한 리더의 반응이다.
부하의 질문에 명확히 답변하는 대신 권위를 앞세워 질책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부하는 확인질문을 하지 않게 되고, 이는 상하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연결된다. 결국 이러한 관행이 누적되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고착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권위를 앞세운 불통의 리더십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소위 말하는 ‘꼰대 리더십’을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며,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는 과감히 교체할 필요가 있다.
국내기업도 주 52시간 근무제도와 유연근무제도 운영에만 초점을 두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도모하는 촉진제로 활용, 이를 계기로 애자일 방식의 조직운영 및 문화구축을 위한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