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단편문학선에 실린 단편 소설, 명작 중 명작 소나기에 대해 읽어보았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어느 날, 늘 지나가는 징검다리에 어느샌가부터 한 소녀가 와 논다. 처음에 주인공인 소년은 다리를 지나가고 싶은 마음에 성가셔한다.(워딩이 세서 그렇지, 이정도도 아니다) 어느 날은 소녀가 갑자기 소년에게 "이 바보!"라 하면서 조약돌을 던지고 간다. 그 이후에 소녀는 하루, 이틀, 계속해서 오지 않고 소년은 내심 그녀를 그리워하며 조약돌을 간직한다. 이후, 다시 소녀를 만난 소년은 산, 들로 같이 놀러 다니며 추억을 쌓는다. 그러던 중 새 인물 농부 아저씨가 등장해 곧 소나기가 올 것이니 조심해라라고 경고하고, 아니나 다를까 소나기가 온다. 그 날 이후, 소녀는 어째서인지 나오지 않는데, 그것은 그날 걸렸던 감기 때문이었다. 소년과 소녀는 한동안 못 만나다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되는데..
소녀는 그동안 왜 못 왔었는지, 그리고 그 날 놀았던 추억을 같이 회상하고, 자신의 옷에 검붉은 진흙물이 물든 것을 보여준다. 소녀가 그 날 도랑 건널 때(소나기가 와서 길에 물이 찼음) 날 업어줘서 생긴 것 같다고 말하자 소년은 낯부끄러워 한다. 이후, 자신의 집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과, 사정이 생겨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한 뒤로 그들은 헤어진다. 소년은 병이 좀 나으면 언제 한번 또 이 개울가에서 만나 놀자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 말을 하지 못해 아쉬워한다.
다음 날, 소년이 닭을 잡아 어디론가 가는 아버지에게 무엇에 쓰냐고 물어본다. 아버지는 서당골 윤 초시 댁(소녀 가족 댁)에 간다 말하고, 제사를 지내려는구나 싶어 소년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 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던 얘기
"허, 참, 세상일두....."
"윤 초시 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든 전답을 다 팔아버리구, 대대루 살아오든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드니, 또 악상꺼지 당하는 걸 보면..."
"증손이라곤 기집애 그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애 둘 있는 건 어려서 잃구......"
"어쩌믄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두 변변히 못 써봤다드군. 지금 같아서는 윤 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든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소나기를 읽던 도중 눈에 띄던 것은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던 짓이였다. 소설의 제목인 소나기는 절정이 발생하는 사건의 매개체가 되어 주고, 소년과 소녀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소녀가 소년에게 주는 조약돌, 호두, 소년이 소녀에게 주는 꽃들은 서로를 상징하며, 그 둘이 곁에 없을 때도 서로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작중 등장하는 꽃 하나의 이름은 마타리로, 미인, 잴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렇게 글 중간중간에 단어, 어구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도, 재미있던 감상 방법이었다.
작중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맘에 들었다. 소년과 소녀가 뒷산에서 놀며 호감을 쌓는 사건->내용의 절정에 다다르는 소나기 사건을, 새로운 인물인 농부 아저씨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내용의 흐름을 바꾸었다. 원문을 살펴보며 파악해보자.
"저기 송아지가 있다. 그리 가보자."
누렁 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송아지에 대한 이야기. 소녀와 소년이 즐겁게 놀고 있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쥐고 등을 긁어주는 첫 후딱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농부 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릇이 긴 농부는 소녀 편을 한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내면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꾸지람 X, 내용의 흐름 변경, 소나기의 등장 암시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랓빛으로 변했다. 대놓고 암시
사실 난 소나기를 다 읽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 주변에도, 소나기 속의 소녀처럼 몸이 아픈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친구다.). 겉으론 밝고 명량한 척했던, 그 친구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씁쓸하고 고달픈 인생 이야기를 생각해보며, 오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