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사(守國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사찰로 서울 구산동 태화산 자락에 위치해 있음.
규모는 작으나 보물이 소장되어 있어 전통사찰로서 가치 있음
●1992년 재건축된 황금 사찰로 유명해진 사찰이며, 다른 전통사찰에 비해 건물이 거의 없고, 기본적으로 있는 (일주문이나 삼성당 같은) 시설물도 없다.
【창건이야기】●세조대왕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懿敬世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이에 임금은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1459년(세조 5)에 능 근처에 정인사(正因寺) 창건이 시초다
※성종2년(1471년) 덕종의 부인이 되는 인수대비가 “이 절을 처음 지을 때 급히 지어 재목이 좋지 못하고 쓰임새가 정밀하지 못하다”하여 판내시부사 이효지에게 명하여 중창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궁중에서 절약한 물품을 쌀과 베로 계산하여 내수사(內需司)에 주어 경비에 보태 쓰도록 하였다.
●이후 연산군일기에 의하면 연산군 10년(1504년)에 화재로 소실된 이후, 몇 번의 중수를 거쳐 광무1년에 당시 북한산성 총섭(摠攝)으로 있던 월초거연(月初巨淵)스님이 진관사에 들러 불공을 올린 일이 계기가 되어, 다시 중창불사를 하게 되었다.광무4년(1900년) 고종의 내탕금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하고 수국사로 개명했다.
【중창 관련 이야기】 ●광무 4년(1900년) 세자로 있던 순종의 병이 위독하였는데, 다급한 고종은 월초스님에게 세자의 쾌차를 빌도록 명함.●이에 스님은 청도 운문사의 사리암에서 백일 나반존자기도를 드렸는데, 기도를 드린지 80여일만에 세자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어디가 아픈가?”하며 금침을 한번 놓는 사이 세자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고 함. ●이에 크게 기뻐한 고종이 월초스님에게 벼슬과 녹봉을 내리려 하자, 스님은 출가한 자가 국가의 녹을 받으면 안된다며 사양하고, 대신 서오릉 옆 수국사가 퇴락하여 향화(香火)가 끊어진 것이 애석하니 근교에다 정사(精舍)를 내리시길 청하자, 어명을 내려 수국사를 중창하게 하였다고 함.
●전성기 새로 중창한 절의 규모는 총 119칸으로 단청이 아름다워 봉선사(奉先寺)와 쌍벽을 이뤘다고 하며, 이후 수국사는 덕종, 예종의 원찰로서 오랫동안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음. ●그러나 6.25동란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역대 주지스님들이 계속하여 중창불사를 거듭해오고 있으나 여전히 규모는 크지 않음,
※김수온이 지은 고양정인사중창기(高陽正因寺重創記)에 의하면 처음 절을 지은 이는 판화엄대선사(判華嚴大禪師)인 설준(雪峻)스님으로 법당 등 모든 설계를 도맡아 했다고 알려짐.
●보물로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580호)이 있으며, 서울시문화재로 서울 수국사 아미타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제242호)/서울 수국사 십육나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3호)/수국사 극락구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4호)/수국사 감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5호)/수국사 신중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6호)/수국사 현왕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7호)등을 보유하고 있음.
●근대들어 1907년에는 불상의 개금과 불화 13점 등이 왕실의 발원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등 수국사는 서울 근교의 명찰로 이름을 드날림.
●1992년 새로 중건한 대웅보전은 규모가 매우 큰 법당으로 실제 금을 입혀 지은 황금사찰로 유명세를 탐.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유일한 금으로 칠해진 황금법당으로, 외9포, 내15포, 108평 규모에 청기와로 된 전통 목조법당이며, 안팎을 기와 이외에는 100% 순금으로 개금 불사했다.
※전체가 금이 아니라, 목재로 지은 건물 겉을 페인트 대신 순금 금박(33키로그램)으로 도색한 것임
●건물로는 황금보전과 대웅전, 관음전,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절은 왕실의 비호를 받았고, 서울과 가까운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이름 있는 학자들과 문필가들이 이곳을 찾아 많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특징】 ●예전에는 산 입구에 있는 절이었으나 도심개발로 바로 옆까지 주택가가 치고 올라와, 최근에 생긴 도시사찰 같은 느낌이 들며, 사찰의 고즈넉하고 조용한 풍경은 기대하기 힘듬.
●주택과의 뚜렷한 경계선도 없으며, 바로 옆으로 등산로가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이 듬
●특히 건물도 다른 사찰과 달리 많지 않으며, 대웅전등 한두개를 제외하고는 빈 터에 현대식 건물을 자꾸 짓고 있어서 외형으로는 전통사찰로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 함. 일주문이나 범종 같은 것도 없음.
●보물과 서울시문화재가 7점 존재한다고 안내하고 있으나 보물은 찾을 수 없음, 대웅전을 중심으로 미륵불입상과 관세음보살입상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 봉안된 4점의 불화는 1907년 왕실에서 발원하여 태자와 태자비, 의친왕과 의친왕비, 영친왕 등의 안녕과 천수를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조선 후기의 불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함.
●접근성이 뛰어나서 템플스테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함.
▲대웅전 아래 있는 개금법당
▲대웅보전 전경. 규모가 매우 크다. 금박을 입혀 티브이에도 나왔다.
▲대웅전 내부 불상과 탱화
▲대웅보전 전면
▲미륵보살 입상
▲지장전
▲염화미소전
▲염화미소전 내부( 다른사찰의 나한전인 듯하다) 내부에 나한상이 잔뜩있다.
▲풍경...서까래. 처마의 금색에 맞춰 풍경도 금색이다.
▲대웅전 불상들과 탱화
▲산신도
▲삼성전락전 내부 산신도
▲삼성전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