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정
투어일자: 2018.4~5.
참석자: 통통한 토끼
투어목적지(경로): 대전> 세종> 천안> 평택> 수원, 장안문 북안문> 용인 와우정사> 여주> 양평 용문사> 341, 345도로
> 홍천> 청평호> 37번도로> 포천> 연천 재인폭포> 백의면(1박)> 비둘기낭폭포> 담터계곡>고석정
> 직탕폭포> 도피안사> 노동당사> 육단리> 복계산, 매월대폭포> 수피령 56번 도로> 461지방도>
화천> 꺼먹다리> 파로호 461번지방도> 46번 국도> 양구> 두타연> 31번국도> 광치계곡>
인제> 한계령> 둔전계곡> 진전사> 양양> 주문진> 강릉> 동해> 삼척> 울진> 36번국도>
불영계곡> 봉화> 영주> 예천> 문경> 문경읍(1박)>상주> 보은> 대전
2. 감상 및 투어 포인트:
4월은 잔인한달이라고하고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올해의 나의 4월과 5월은 워크숍과 출장 그리고
바이크 투어가 혼재된 그런 날이다. 이유인즉슨 4월말 5월초 수원에서의 워크숍과 주말이 끼고 바로 다음주
문경에서의 워크숍이 연달이 있기에 당연히 교통수단을 바이크로 정하고 원없이 달려보기로 한다. 하루 1500km를
작정했지만 둘러보고 사진찍고 감상하느라고 1200km에 그쳤다. 허나 후회는 없다. 남북정상회담의 순풍을 따라
나도 자연스레 그런 행사를 축복하듯이 휴전선 일대의 라이딩코스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라이딩을 했으니
난 복이 많다.
휴전선 155마일을 곰곰히 보면 강화군, 옹진군 김포파주시를 제외하고, 연천군,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을 하루만에 다 돌아봤으니 기분이 뿌듯하다. 강화도는 따로 가볼일이고 김포와 파주시를 언제 한번 날을
잡아 문재인대통령 투어코스로 임진각을 서울시티투어와 묶어서 가 볼일이다.
봄이다. 어딜 가든 안좋은 그런곳이 어디 있겠는가? 한반도의 봄은 서러우리 만치 아름답다. 꽃잔디가 이쁘고,
울긋불긋한 연초록이 아름답고, 아침이슬이 싱그럽고 힘차게 달리는 나의 애마가 사랑스럽다.
휴전선 155마일을 군부대 없이 국립공원처럼 꾸며진 한반도의 허리를 그리고 멀리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두만강과 간도를 넘어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는 그날이 어서 오길 꿈꿔본다.
3. 견문 및 사진 기타 기록:
<사무실에서 워크숍 출발전....한가한 시간을 내서 산책하는 중에 만난 봄꽃>
<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버려진 옛집에 있는 이런 장독들이 유독 눈길을 잡는다. 아련하기도하고 서글프기도한
세월에 그 모습이 애닮다. 그래도 혼자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위로해주고 발길을 돌린다.>
< 행사담당이라 내맘대로 워크숍을 행사를 준비해본다. 아울러 투어준비도~~~ㅋㅋㅋ>
<은행나무잎은 가을을 꿈꾸고 있겠고~~~>
< 첫번째 워크숍은 본사주관 워크숍이라 도심에서 진행된다. 수원화성이 훤히 모이는 숙소는 맘이 든다.>
<숙소가 1인실이라 호텔 느낌이 난다. 숙소는 잘 잡은듯~~~>
<워크숍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저녁회식을 뒤로 하고 먼저 서둘러 놔ㅘ서 장안문을 둘러보고 화성을 둘러본다.>
[수원 화성]
축성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수원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뒤주 속에서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 자리인 화산으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한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당쟁이 극심했던 정세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로 건설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극진한 효심을 기반으로 군사, 정치, 행정적 목적까지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화성의 건설에 당대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성과가 총결집되었고,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 번암 채제공과 실학의 거두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화성은 근대 초기 성곽건축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성벽의 외측을 쌓되 내측은 자연의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화강석과
벽돌을 함께 축성의 재료로 사용한 전석교축, 목재와 벽돌의 조화로운 사용, 거중기·활차(滑車)·녹로 등 근대적 기기의 발명과
사용 등 기능성과 과학성,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절정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축성의 전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홍수 등을 거치며 일부 파손되고
손실된 부분을 복원한 화성은 약 6km에 달하는 육중한 성벽을 따라 마흔 개 이상의 시설물을 갖추고 있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팔달문(八達門)과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을 포함한 4대문, 화성행궁의
중심이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르기도 했던 봉수당(奉壽堂), 방화로 소실되었다 두 번 복원된 서장대(西將臺),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춘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독특한 시설물인 공심돈(空心墩), 군사적 목적의 이름으로는 동북각루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자체 방어시설까지 갖춘 봉수대인 봉돈, 샛문인 암문 등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원시는 매년
10월 화성문화제를 개최해 정조의 효심과 화성을 기리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2016년 1월 수원화성 일대
약 1.83㎢가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출처] 수원 화성 [Suwon Hwaseong Fortress, 水原 華城] (두산백과)
<조명을 받는 성문이 멋지게 보인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누문(重層樓門). 수원성(水原城)의 북문(北門)이다. 하나의 홍예문(虹蜺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쪽에 둥근 옹성(甕城)을 갖추었다.
홍예는 안쪽이 바깥쪽보다 높이나 너비가 조금 크게 만들어졌는데 안쪽 홍예는 높이 19척, 너비 18척 2촌이다. 안쪽 홍예 좌우로는
무사(武砂)라고 부르는 네모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사다리꼴의 돌출면을 만들고, 양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여 누각으로 오르도록 하였다.
바깥 홍예에는 두 짝의 판문(板門)을 달았으며, 안팎 홍예 사이의 천장에는 구름모양을 그린 개판(蓋板)을 대었다. 홍예 위로
4개의 누조(漏槽)를 설치하고, 성벽 위에는 안팎에 총구(銃口)를 갖춘 여장(女墻: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쌓았다.
누각은 다포식(多包式)의 화려한 공포를 짜고 우진각의 기와지붕을 덮었다. 공포는 내외삼출목으로 양끝에 섬세한 장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였다. 벽면에는 모두 판문을 달았는데, 앞쪽과 양 측면에는 짐승 얼굴을 그리고 뒤쪽에는 태극을
그려넣었다.
옹성은 문 바깥쪽에 전(塼)으로 반원형을 그리면서 쌓았으며 한 가운데 홍예문을 내었다. 홍예 위에는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다섯 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문의 좌우로는 성벽이 이어지며 문에서 53보(步) 되는 곳에 각각 적대(敵臺)가 마련되었다. 적대는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한 높은
대로, 적을 좌우에서 살필 수 있고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 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규모나 구조가 서울의 남대문과 매우 비슷하지만, 옹성·적대와 같은
남대문에는 없는 새로운 방어용 시설을 갖춘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18세기 이후 성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학자들이 주장한 바를 실천에 옮긴 결과이며, 특히 실학파 학자들의
적극적인 제안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수원시의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렸으며,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조선 전기에 세워진 서울남대문에 필적할 만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었고, 남대문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방어시설을 갖춘 진일보한 성문건축이다.
[출처] 장안문 [長安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원화성은 수원의 자랑거리이기도 하고 산책위한 공원이기도하고...역사책이기도 한듯 하다.>
<수원 워크숍이 끝나고 다음날 바로 용인 와우정사로 달려 간다.>
[와우정사]
대한 불교 열반종의 총 본산으로 1970년 실향민인 해월 삼장법사가 민족 화합의 염원을 담아 세운 사찰이다. 누워 있는 부처상인
와불(臥佛)과 철로 만든 불두(佛頭)로 유명하다. 이 와불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길이가 12m,
높이가 3m에 이른다.
절 입구에 돌로 불단을 쌓고 그 위에 모셔 놓은 높이 8m의 불두는 차차 시주가 모이면 전체를 완성시킬 예정이다. 세계 각국의
크고 작은 불상들을 전시해 놓은 세계만불전, 백두산과 히말라야, 불교 성지 등에서 가져온 돌과 세계적인 고승들, 불교 신자들이
가져온 돌을 쌓아 만든 통일의 탑도 흥미롭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마치 공원처럼 꾸며진 와우정사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출처] 와우정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마로니에북스)
중국불교의 종파
<대웅전 올라가는 길....맨위로 가면 와불이 있다.>
<돌에 새긴 부처님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섬세하다.>
<한가로이 노니는 남생이들>
[열반종]
대승불교의 《대반열반경》을 연구 ·강경(講經)하며 모든 중생은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증득(證得)하여
나타낸 것이 열반이라고 하는, 열반의 적극적인 핵을 종지로 하였다. 421년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대반열반경》(40권)을 번역하여 근본경전으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보다 앞서 여산(廬山)의
혜원(慧遠:335~416)과 장안(長安)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의 문하생인 도생(道生)은 일찍이
‘일천제(一闡提:절대 성불할 수 없다는 대죄인)성불설’을 주장하여 당시 불교계에 파문을 던졌는데, 이 경전이
번역되어 ‘일천제성불’이 명시됨에 따라 도생의 탁견이 칭송되었고, 석가의 가르침 중에서도 궁극적인 교설이라
하여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잇따라 도량사(道揚寺)의 혜관(慧觀) 등이 담무참의 북본(北本) 《대반열반경》(40권본)과 그 이전에 법현(法顯)이
번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을 대조해가면서 36권본(남본)으로 새로이 편찬한 이후 강남의
건강(建康:현재의 南京)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유송(劉宋)의 혜정(慧靜) ·정림(靜林), 남제(南齊)의
승종(僧宗), 양(梁)나라의 보량(寶亮) ·법운(法雲), 진(陳)나라의 경소(警韶), 수(隋)나라의 혜긍 ·지취(智聚) 등이
잇따라 강경(講經) ·주석을 하였다. 또한 북방에서도 북위(北魏)의 담회(曇淮) ·혜광(慧光), 북제(北齊)의 법상(法上),
후주(後周)의 도안(道安) 등이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수나라 혜원(慧遠:523~592) 문하의 선주(善胄) ·동진(童眞)
·법청(法聽)은 수대의 열반종주가 되었다.
이와 같이 《열반경》은 수대(隋代)에 이르기까지 남북 각지에서 강경 ·연구가 추진되어, 육조시대의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지의(智顗)가 《법화경(法華經)》을 근거로 새로이 천태종(天台宗)을 일으켜 열반의
교지(敎旨)를 천태에 흡수한 후 당나라의 법상종(法相宗) ·화엄종(華嚴宗) 등 여러 종파의 확장세에 밀려 점차
소멸하였다.
<열반종을 아까 간단히 살펴봤지만 내가 보기엔 여러불교가 혼재된 느낌이다. 화려한 반가사유상>
<12지신도 도열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없으나 금강력사 아닌가 싶다.>
<동남아시아에 흔희 볼수 있는 불상도 있다.>
<깨진 기와조각들>
<용인에서 점프해서 양평의 용문산 자락>
<유명한 은행나무>
[용문산]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龍門山, 1157미터)은 경기도에서 가평군에 있는 화악산, 명지산 그리고 국망봉 다음으로 높다.
북쪽의 봉미산, 동쪽의 중원산, 서쪽의 대부산을 바라보고 있는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빼어나며, 골이 깊어서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으로 이름이 높았다. 용문산이 언제부터 용문산이라고 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며, 용문산의 옛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다. 「대동여지도」나 「동국여지도」에는 용문산으로 나오지만, 그보다 앞선 신경준의 『산경표』에는
일명 ‘미지’라고 부른다 하였고,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용문사는 미지산에 있는데, 그 산 이름은 용문이라는 절 이름으로
부른다”라고 밝혔다.
『용문사 중수기』나 이색이 지은 『대장전기』 또는 「정지국사비문」이나 「원증국사비문」에도 미지산 용문사, 미지산
사나사로 표기되어 있다. 그 미지산을 승려들은 “용문산의 고승대덕들의 덕풍지광(德風智光)이 충만해 있었다”라는 말로
풀이한다. 그러나 우리말 어원으로 풀어보면 미지란 바로 미르, 곧 용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양평군은 “용문에
의지하고” 있는 곳이며, 용문이란 곧 용문산을 의미한다. 양평의 진산인 용문산을 두고 조선시대의 시인 이적은 “왼쪽으로는
용문산에 의지하고, 오른쪽으로는 호수를 베개 베었다”라는 시를 남겼다.
산세가 지리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북한강과 남한강이 산을 에워싼 채 흐르고 사방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에 계곡들이 깊고
도처에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절경을 이룬다.
[출처]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다음생각)
<용문사의 기와와 용문산 정상의 군사통신시설>
<갑자기 나타나서 죄송합니다.~~~~>
<세월의 흔적과 그간의 흔적이 고스란이 몸에 새겨진 나의 애마~~~다음 투어땐 15만km를 주파할듯~~>
<홍천 서면의 어느 길가에서>
<어둑어둑해지는데 연천 산골짜기에서 멋진 폭포 재인폭포를 만난다.>
<유리전망대와 내려가서 구경하기 좋게 계단을 멋지게 만들어 놨다.>
<주상절리를 바로 밑에서 구경할수 있다.>
<재인폭포 아래쪽....흡사 제주도 엉또 폭포같기도하고 천지연폭포 같기도하다>
<위에서 본 주상절리>
<백의면 5사단앞에 아주 저렴한 여관에서 1박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부대 바로 옆이어서 그 감회가 새롭다. 유명한
열쇠부대>
<휴전선 투어를 하다며면, 3군단과 1사단, 3사단 백골, 5사단 열쇠, 6사단 청성, 9사단 백마, 12사단 을지, 17사단 번개, 25사단 비룡, 28사단 태풍 등등....부대넘어 부대가 휴전선 투어의 일상이다.>
[5사단]
5 보병사단은 서기 1948년 4월 29일 경기도 수색에서 제 5여단(대령 김상겸 : 3,4,9 연대)으로 처음 창설 되었고 후에 여단
주둔지를 전남 광주로 옮기면서 1949년 5월 12일, 제 5보병 사단 (초대 사단장 준장 송호성 : 15,20연대 예속) 으로 승격되었다.
1949년 7월에는 백선엽이 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사단은 제15연대를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에 주둔시켜, 공비토벌과 부대 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고, 제주도 4.3사건과
여수·순천 사건을 진압하였다.
이후 1950년 6월 25일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육군본부의 소환으로 서울 용산에 올라와 북한군 남하 지연작전에 참여 하였다.
1950년 7월 1일부터 시흥으로 지연전을 전개하며 철수하게 되는데, 철수하는 도중 대부분의 병력이 분산되어 17일 사단이 해체
되었다. 이후 1950년 10월 8일 대구에 주둔 중이던 27연대, 마산에 주둔 중인 35연대, 부산에 주둔 중인 36연대를 근간으로
대구에서 제 5 보병사단을 재창설 하였고, 이 연대들이 지금까지 이르게 된다.
다시 재창설된 5사단은 이후 수많은 전투를 치루게 되는데, 그중에서 특히 피의 능선 전투와 가칠봉 전투가 유명하다.
피의 능선 전투란 종군기자들이 신문에 (Bloody Ridge)라는 이름으로 보도하면서 부터 생겨난 이름으로,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983고지·940고지·773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를 일컫는 것이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미군 2사단과 국군 5사단이 북한의 12사단,
24사단과 치열하게 맞붙어서, 전투 끝에 한미 양군 1개 연대 규모와,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를 내고 한미 양군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 전투는 6.25전쟁 사상 단일전투에서 최대의 성과를 올린 전투로서, 당시 이 승전보를 접한 이승만 전대통령은
5사단에 천하무적 사단이라는 칭호를 부여 하였다.
가칠봉 전투는 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군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5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27사단과 12사단의 2개사단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치열한 격전끝에 결국 5사단의 승리로 전투가 끝났다.
이후 5사단은 1952년 10월에 강원도 351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강원도 전선을 북방으로 밀어 올렸고, 이 전선은 지금 강원도에
그어진 휴전선의 일부가 되었다.
휴전이 성립되고 1953년 강원도 화천에 주둔했던 5사단은, 전북 남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 되었고
이후 1954년에 강원도 철원, 1960년 경기도 포천, 1971년 경기도 양평을 거쳐 1978년 4월 1일 경기도 연천에 이르게 되었다.
1961년 5월 19일 당시 5사단장 이였던 채명신은 연대장 정봉욱(대령 포병참모)과 함께 사단을 이끌고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기도
했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비둘기낭 폭포 주차장>
<재인폭포가 수려한 중년여인이라면 비둘기낭은 새색시 같은 느낌~~~위에 사진은 재인폭포>
<6사단 신병훈련소.....>
제6보병사단(第六步兵師團, The 6th Infantry Division, 별명: 청성부대)는 1948년 11월 20일에 창설된 대한민국 육군 보병
사단이다. 상징이 청성(靑星, 푸른 별)이기에 흔히 청성부대라고 불린다. 청성부대라는 명칭은 6.25전쟁 당시 UN군이 사단을
'Blue Star'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에 착안하여 1951년에 사단에서 제정하였다.[1] 경례 구호는 '필승'에서 '17.04.01.부로 청성으로
전면 개정 되었다. 특히 전군 최초로 전체동기제가 시행된 곳이기도 하다. 휴전선 중부지역에 주둔하며, GOP연대 2개(2, 7)
와 예비연대(19)와 포병연대 및 직할대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지휘관으로 김재규 중장(박정희를 바로 그사람)과 장도영(두번째 육군참모총장)등이 있다
<담터계곡 탐색중>
<담터계곡은 주변의 많은 유락시설로 계곡이 훼손된듯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
<비둘기낭폭포의 수수한 모습>
<비둘기낭 공원에서 바라본 출렁다리...요즘 지자체 마다 출렁다리 만드는게 유행인가보다.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관광아이템이 아쉽다. 한탄강 그 자체가 매력인데 인위적인 출렁다리가 필요할까 싶다.>
<소박하고 아담하게 흐르는 저 비둘기낭폭포는 바로 앞 한탄강과 합류한다.>
<근접해서 보기 좋은 데크가 있지만 입장퇴장시간이 있다. >
<한탄강의 여울>
<화적연과 한탄강>
<전방지대인지 이런문구가 낯설다.>
<산정호수 주변 구름교>
<삼부연 폭포>
<2012년 당시 삼부연 폭포>
<고석정>
<직탕폭포.....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던데 모습은 그렇지만 규모는 아닌듯~~ ^^;>
<애마+한탄강+ 그리고 봄>
<직탕폭포 바로위로 밋밋한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가 있고 바로 윗쪽에 진천 농다리와 유사한 돌다리가 있다>
<철원 투어라면 꼭 오는 곳~~~~ 노동당사>
<복계산을 잠시 오른다. 매월대 폭포를 보기위해서 20분 가량 올라가야 한다.>
<올라갈땐 땀을 삐질삐질 흘렸지만 막상 도착하면 속까지 시원하다.>
<인증은 해야겠고 인물은 안되고~~~ 아몰랑~~~>
< 화천에 꺼먹다리를 잠시 보고 멋진 파로로를 끼고 달리면 바로 춘천이 지척이다.>
<양구에 오면 두타연을 꼭 권해주고 싶다. 허나 바이크는 출입이 안되고 입장퇴장시간을 확인하고 가길 바란다.>
<금강군 금강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양구로 쏟아진다. 두타연을 보고 을지전망대와 땅굴 그리고 해안면 펀치볼을
구경하면 양구의 안보관광을 다 봤다 할수 있다.>
<강원도 계곡의 봄>
<인재 내린천의 봄, 인제에서는 내린천을 홍보할때 하늘이 내린 천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아래와 같다.>
[내린천]
홍천군 내면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인제군의 기린면 소양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지명은 내면의 '내'자와 기린면의
'린'자를 따서 내린천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1872년지방지도』에서 고을의 중앙을 내린천이 흘러나가 소양강과 합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북동쪽의 합강정(合江亭)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인제읍 합강2리에 있는 정자로서 소양강 상류인 내린천이 기린 방면에서 흘러내리고 서화강이 한계천과 원통에서 합류된 데서 연유하여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조선지도』에서는 동남쪽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내린천이다
[출처] 내린천 [內麟川, Naerincheo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라이더의 답사 1번지.....한계령>
<오랜만에 개방됐다는 둔전계곡.... 설악산 대청봉 능선으로 바로 올라가는 곳중 하나인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또 출입이 금지되어있었다. 바로 오른쪽이 설악동쪽이고 왼쪽이 한계령 가는 계곡이다. 그 사이가 둔전계곡>
<둔전계곡 진전사에서 바라본 설악산 능선, 바로 앞이 설악저수지>
<시간도 그렇고 체력도 그렇고 예전만 못하다. 양야에서 봉화까지 안쉬도 주구장장 달린다. 논스톱으로 250km주행하니
<다시 시작된 문경의 워크숍으로 문경읍내로 온다. 멀리 주흘산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주흘산]
문경을 지켜주는 영산, 주흘산 *
주흘산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높이 1,106m로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또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남쪽의 중부내륙고속도로나 3번 국도를 타고 진남교반을 지나 마성면 너른 들판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기세 당당한 산이 하나
버티고 있다. 한눈에 비범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이 후련할 정도다. 양쪽 귀를 치켜세우고
조화롭게 균형미를 갖춘 산세에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이 산의 기세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옛 기록에는 영남(嶺南)이니 교남(嶠南)이니 하는 명칭이 다 이 산과 관련된 것이라 적고 있다. 영남(嶺南) 지방이라 할 때
영남이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鳥嶺)을 기준으로 영(嶺)의 남쪽에 있다하여 영남이라 불렀다. 또한 교남(嶠南)이란
중악(中嶽)인 주흘산 남쪽의 지방을 일컬어 교남이라 불렀다. 조령과 주흘산이 큰 산줄기에 함께 위치하고 있어 영남이나
교남이나 같은 의미로 영남지방을 뜻하는 말로 보면 된다. 옛 기록에는 주흘산은 돌산이 치솟아 그 기세가 웅장하고 뛰어나며,
영남의 산천은 성질이 중후하여 명현(名賢)을 배출한 동방인재의 부고(府庫)라고 말했다.
* 주흘산의 다양한 볼거리 *
주흘산의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다. 산기슭에는 혜국사(惠國寺)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聞慶關門)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해발 520m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개창한 고찰로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절이다
[출처] 주흘산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문경새재 길을 오르며>
<찻사발 축제가 있어서 다기며 사발이며 구경한다.>
<다기와 다도 체험 기회과 있었는데 행사 진행자라 사진만찍고 이후 일정을 챙긴다.>
<푸른 다기가 너무 이쁘다. 멋스럽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딸아이 시집갈때 저런 그릇을 사줘야겠다.>
<굿이 액자가 없어도 봄풍경이 창문에 걸려 있다.>
<38구경 탄환>
<하탄이 많이 났네용.....군에서 쐈다면 성적에 연연했을텐데....난 민간인이니 쿨하게 즐깁니다.>
<클레이 사격, 25발에 17000원.....어깨견착만 잘하면 나머진 그냥 팡팡 쏘기만 하면된다.>
<문경은 희양산의 봉암사, 문경새재, 김룡사, 대승사, 황정산 말고도 가은의 석탄박물관, 불정의 관광사격장, 짚라인,
진남역, 단산 활공장, 문경온천 등등 구경할 곳이 많으니 날잡아서 문경투어도 한번 해볼만하다.>
<알뜰하게 쓴 앞타이어...다음 투어를 위해서 어서 갈아 놓자~~~ 총총~~~>
일정은 2박 3일인데 하루 꼬빡 달린거리가 1200km 간만에 원없이 달렸다. 한동안 장거리를 좀 쉬지 않을까 싶다.
멀리 빨리가는게 아니라 이제는 진득하게 깊고 찐하게 알아가는 그런 투어도 한번 계획해 본다. 회사 워크숍에
바이크를 타고 가면 호기심 반 우려반으로 나를 쳐다보는 회사분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바이크 문화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한편으론 내가 너무 별종인가 하는 우려감에 휩싸이기도하지만 바이크......20대부터 타기시작한
나의 가장 애정깊은 취미가 아닌가 싶다. 늙어서도 멋지게 라이딩할수 있는 체력과 재력....그리고 같이 달릴수 있는
라이딩 버디를 갖고있다면 그또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남북정산회담에 진한 감동과 2018년 봄 휴전선155마일투어는 기억이 많이 남을듯 하다.
첫댓글 또한번 멋진사진과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지금은 전쟁기념관에 걸려있는 휴전선 155마일을 그림으로 그리신 금원선생도 직접 스케치를 일일이 하셧다는 말은 들엇는데 그후로 155마일이라는 안면있는 글을보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
다 날라버린 진사가 재미 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그리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쩐일로 모자까지 벗으시고 ~
엄청 여유로운 모습에 편안해 집니다.
이번투어는 워크숍과 워크숍 사이에 있던터라 일상도 한번 슬쩍..올려봤습니다
@통통한 토끼 저도 세미나 도중 몰래 빠져나와서 촬영하고 온적 있었습니다.
아주 꿀잼 이었죠.
하하하~♬
멋지시네요
잘 감상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월대는 제가 아끼는 피서지 입니다~^^
멋진 투어기 늘 고맙습니다~~
그렇게 좋은곳을 만끽하셨군요..폭포 밑에 넓은 바위도 있던데..
@통통한 토끼 그곳은 밥상 이에용~^^
선명한 사진들이 보기 좋아요
네..사진의 90%가 폰카라는게..함정입니다..ㅋㅋ 미국투어후기도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