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ToArmee.wma
사실 이 사운드랑 이번챕터는 어울리지 않지만
여러 시간 끝에 9편까지는 대충대충 집어넣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물론 나중에 쓰고 나서 수정할겁니다.[챕터가 늘어날 수도 있어요.]
뭐……. 한 챕터[이탈리아편]만 다 쓰고 잠시 보류할 예정입니다
8개월 뒤에 만납시다!
[*-광고:8개월간 잠수 후 AAR연재동시 인물열전 개봉박두]
…….였으면 좋겠지만 역시 안 되려나…….
[Out!]
레온 트로츠키[가명]
[Lev Davidovich Bronstein]
[1879.1.7~1940.8.20]
레프 다비도 피치 브론슈타인
적백내전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중 하나
페트로그라드를 수복하려던 케렌스키의 군대를
풀코프에서 격퇴, 요격함으로써 그를 좌절시켰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지도자였으며
1917년에서 1924년까지 소련 외무 및 군사 인민위원을 지냈다.
그러나 1929년 레닌이 죽은 뒤 일어난 권력투쟁 과정에서
조셉 스탈린[영길리식]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추방당하였다.
그러나 당대의 거대한 혁명가인 트로츠키를 받아줄 제3국들은 없었다.
결국 멕시코공화국의 요코아칸에서 1940년 스탈린의 추종자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해외에서 반(反)스탈린 세력을 지도했다.
"아 왔는가! 지금 유리와 함께 축배를 들고 있다네! 적백내전에서 연방이 승리한 기쁨을 위해서 말이야!"
'…….연방이 해체된지도 벌써 십년이 지난일인데……. 이렇게 느긋하게 축배를 들다니…….로마노프'
"아 그래! 유리동무가 자네에게 적백내전 이후의 평의회연방의 행적에 대해
얘기를 해준다고 하더군. 그렇지 않나? 동무?"
'…….저 바보 때문에 오늘 연구도 못하겠군! ㄱ-…….'
"예 그렇습니다만 동무……."
"그럼 빨리 시작하도록 하게 동무 난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네! 둘이서 이야기 잘해보게!"
"…….Comerad[동무]…….난 그렇게 오래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특별히' '로마노프'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것일세……."
[3시간 전]
"응헉! 떠움캉!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전에 한번 했으면 됐지 이번엔 뭘 원하는 거야!"
"이번에도 수고 좀 해줘야겠어. 유리 설명하지않겠다고 답하면
사이킥 차폐실 안에서 영원히 가둬버리겠다!"
"이렇게 하면 내가 순순히 할 줄 알아? 출연료를 달란 말이다![버럭버럭]"
"뭐 어쩔 수 없지 로마노프한테 늬가 이중장부로 빼돌린 연구자금이랑 성과물 다 얘기할테다"
"응헉! 타협하자! 알았다! 내가 할께 젭라 그건 하지 마! 살려줒메 젭라 님 매너해주셈 젭라 [굽신굽신]"
그렇게 단 몇 초 만에 유리의 체면이 다 구겨졌던 것이었다.
'네 이놈!!! 떠움깡! 잊지 않겠다! ㄱ-…….'
"뭐 그러니까…….적백내전이 끝나고 난 뒤에……. "
Anno Domini 1921.January
1918년 여름에 시작된 적백내전과 이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군사적인간섭에 대처하기 위하여
소련은 무자비한 전시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한 결과, 극단적인 인민수탈정책에 반발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농지에 불을 붙여 곡물을 태우거나 작물을 갈아엎어버렸다
이렇게 대항하여 나온 결과는 정부와 인민사회 둘에게 극심한 식량난을 가져 왔고,
생산은 위축되어 소련 경제는 파탄에 직면하게 되었다.
레닌은 각지에 연설과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좌익소아병'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극좌적 경향을 최대한 억제하고, 적백내전이 적군의 승리로 종전된 후
1921년 레닌은 전시공산주의를 중단한 뒤,
열강들의 무역고립과 전쟁 후로 인한 경제파탄을 수습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대폭 도입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NEP' 말인즉 신경제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전시공산주의 체제하의 강제적이었던 식량징발제를 중지하고 일정한 식량세금제로 바꾸는 한편,
잉여농산물의 자유판매 및 사적 소경영의 영리활동의 허용하였다.
즉 민간인 차원에서 다시금 사유재산 소유를 인정하였고,
국영기업의 부흥, 외국자본의 도입 등으로 말미암아 소련 경제는 살아나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1925년에 이르러 소련 경제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으로 대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
1922년 5월 레닌이 처음으로 뇌출혈을 일으켰을 때,
결국 누가 러시아 지도자 자리를 계승할 것인가가 긴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작은 불씨가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레닌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전부터 매듭짓지 못한 일들을
또 다시 대립으로 분화시켜 당내의 파벌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권력투쟁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정치국은
지노비예프, 레프 카메네프, 스탈린으로 이루어진 3두정치를 비공식 지도체제로 선택했다.
1922~23년 겨울, 어느 정도 회복된 레닌은 트로츠키에게 3두 지배체제의 잘못 특히 대외무역정책과 소수 민족의 처리, 관료정치 개혁의 오류를 바로잡을 것을 요청했다.
1922년 12월 레닌은 비밀 유서에서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트로츠키를 '비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고
기질적으로 업무의 순수한 행정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매료되어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1923년 3월 마지막 뇌출혈을 일으켜 침묵 상태에 빠지기 직전
레닌은 트로츠키를 불러 스탈린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나,
트로츠키는 지노비예프에 대항한 동맹결성을 계획하면서 때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이 그를 져버린 것일까
그의 기다림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스탈린은 1923년 4월 제12차 당 대회에서 급속도로 중앙위원회의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가을이 되자 비밀경찰이 당 내부에 침투해
군사인민위원회에 대한 자신의 통제권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사실에 놀란 트로츠키는 당 지도부에 대항하기로 결심했다.
10월 경 그는 중앙위원회가 특히 당내 민주주의를 위반했으며
적절한 경제계획을 개발하는 데 실패했음을 강조하면서
중앙위원회를 광범위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당은 그에 대한 개혁을 약속하였다.
트로츠키는 중앙위원회가 취해야 할 태도를 자세하게 적은 서한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것은 트로츠키와 그의 지지자들을 당파주의와 기회주의에 근거해
반격을 가하는 대규모 선전의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결정적 순간에 트로츠키는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는 열병에 걸려 권력 투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스탈린은 조직적인 통제를 통해 쉽게 당의 지도권을 장악했으며,
소련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1주일 뒤 일어난 레닌의 죽음은 확정된 트로츠키의 고립을 확인해 주었을 뿐이었다.
흑해 연안에서 요양 중이었던 트로츠키는 레닌의 장례식 날짜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권력의 주역은 스탈린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제 명실 공히 제1의 권력자였다.
[* 이후 병까지 겹쳐 고생하던 트로츠키는 계속되는 스탈린의 핍박 아래에서
힘겹게 살아갔으며 그나마 있었던 중앙위원회직에서 마저 퇴출당하게 된다.
이후 함께 퇴출당했던 지노비예프와 함께 혁명 10주년 기념식에서 시위를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 결국 당내에서 축출되었고 공산당 명부에서는 제명되었다.
이후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반 스탈린 파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
그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멕시코공화국 내에서 가장 믿고 있던 측근 2명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
잔인했던 권력투쟁을 뒤로 승리를 차지한 스탈린 서기장은 본격적으로 소련내부를 다져나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또 다른 피를 부르게 되었다. 바로 반대파를 숙청하기위한 수단이 되었던 것]
그 첫 번째 걸음으로
Anno Domini 1928. June
트로츠키 축출이후 신경제정책으로 부흥한 네프맨 들을 제거해나가며
농민들의 사유재산권을 다시 회수하였고 점차 Nep를 폐기하기에 이른다.
'강한 소련'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1차공업과 경공업보다 중공업위주로 공업 재편을 하게 되는데
이를 5년간 중앙정부 계획 하에 경제계발[1차 경제 계발 5계년 계획]을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이때까지는 전제독재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볼셰비키 내에서는 내부적인 알력이 남아있어
극심한 반발은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상 1차 경제계발 5개년계획은 실패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까지는 삐걱거려서
불안했던 소련 당정치 내각과 외부요인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1932년 이후로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대 평원에 대기근이 들며[Голодомор]
식량사정이 더더욱 악화되어가고 기아와 혼란 속에서 인민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사실상 중공업을 중요시한 1차 경제계발계획은 실패하게 되었다.
[물론 볼셰비키 정부는 대기근 속에서 죽어나가는 이에 대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소련을 공업화시키면서 국방력도 늘려 나가게 되지
물론 권력을 잡으면서 반대파들을 조금씩 제거해 나가기도하지만…….
사실 혁명이후에서 1936년까지는 소련의 성장기이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 보면
공산주의의 몰락기의 시초가 되었지 Nep를 폐지하면서 사실상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면 소련을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쳐두고
당장 자신의 권력과 성장을 위해 국가자본주의 성향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소련은 스탈린주의의 괴이한 체제 아래에서 수십 년간 정체 되어 버리게 되지.
뭐 해외 적으로는 일본이 만주-시베리아지역에서 소규모 국지전을 벌이기 시작하고
거대한 소련시장을 원했던 미국과의 교역이 재개되었지……. 그 외에도 많기는 하지만…….
뭐........ 어쨌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평의회 연방은 열강과 전 세계가 세계대공황에서 허둥대는 동안
경제적인 부흥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지 1936년부터는
스탈린동지의 본격적인 독재가 시작되지만 말이야……."
"그리고는 ……."
"아 시원하다 동무 우리 유리랑 대화는 잘 나누었나? 잠깐 유리 동무랑 어디 갈 데가 있어서 말이야
나중에 또 만나 보세!"
[덥썩 후다닥]
'뭥미...'
첫댓글 음....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