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해를 바로 바라보아도 눈이 덜 아프다.
햇살의 위력도 덜하지만 남쪽을 치우쳐 돌아 서편으로 지는
겨울 해로부터 햇살은 더 이상 직사가 아니라 곡사 광선인 탓이다.
백야가 지속되는 북극 하늘의 해처럼 지평선과 으 자를 만들며
잠들어야 할 때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을 만들진 않아 다행이다.
해의 영양분을 죄다 뺏어가던 푸른 잎들이 다 사라졌는데도
나무 아닌 다른 것들이 덥혀지기 어려운 때가 겨울이다
스스로의 에너지 발전을 통해 견뎌내야 하는 게 겨울이고
사람 사이의 에너지 소비가 이루어질 때 마다 생기는 연료 고갈의 조급증으로
사람의 마음도 시선도 말투도 짧아지고 투박해지는 건 아닌가 싶다
해가 지면 달이 뜨는 배워온 대로의 자연현상이 편한 나이다
겨울 하늘에 해지기 전 달이 먼저 떠 있어도
해 지기 전까지는 달에 눈을 그리 주지 않는다
달의 역할은 비로소 해가 진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드러나는 세월의 모습들을 자연스레 바라보고
주어지는 역할들은 인정하고 수긍하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겨울이었으면 한다.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되면 또 그에 맞는 역할들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처럼
여행은 돌발적이되 계획된 내용이 좋다.
가장 힘들고 영양가 없는 여행이 내용과 행로가 정해지지 않아
잦은 선택과 행로 재 수정을 해야 하는 경우이다
무얼 할지 어딜 갈지 어떻게 보낼지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면
깨진 박으로 물 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줄줄 새는 기분과 열정이 여행 종반에 이르러 바닥이 나면
여행을 통해 무엇이 남았는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딜 다녀왔는지 어떤 감흥이 있었는지 되짚어보기 조차 어려워지기도 한다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던 꼭 한번 가고 싶던 여행지가 있다면
늘 보고 싶고 느끼고 싶던 감흥을 사진으로만 보던 곳이 있다면
돌발적으로 떠나라, 계획된 감흥은 자연스러움을 경감시킨다.
마음속에 떠나고 싶은 곳 하나 없다면 사랑을 하라
사랑은 그 사람을 데리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행이 사랑을 깊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정점상에 반드시
위치하는 추억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마저 어렵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쫓아 떠나는 여행
그런 여행도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여 갈 길을 잡는
새로운 동기 유발이 될 수도 있다
겨울에 떠나는 여행에 긴 거리의 이동은
정해진 볼거리가 없다면 야간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짧은 가시 시간 탓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겨울 여행의 장점이다.
따듯한 옷차림에 머리 기댈 곳 있다면 규칙적인 진동이 보장되는 차 안은
쉬이 잠에 빠져들 수 있다는 매우 커다란 장점 있다.
마치 요람 같은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음악이 있을 경우이다
뽕짝을 틀고 가는 지화자 차량 안에서 잠을 이룰 수 있다면 강적이다.
이런 묘미는 운전석이 아닌 보조석 혹은 기차에서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러나 잠을 잔다고 해서 몸의 편안함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편안한 몸을 통해 얻어지는 교훈이나 습득은 잠결에 다 날라갈 정도로 가볍다
기차는 엉덩이가 아플 때 자주 엉덩이를 들썩 거려야 하는 번거로움과
휴게소의 따듯한 호도과자에 커피를 마시는 특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공공의 시설이라 음악이나 제법 큰 대화나 흥얼거림도 불가하며
중간에 서서 쉰다는 것이 절대 불가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원하는 곳에 거의 정시에 데려다 준다는 장점과
섬을 나오는 마지막 뱃시간 처럼
멀리 떠나 시간이 지나면 차편이 더 없다는 단점 아닌 특장점이 있다.
이쑤시게 같이 속속들이 파고들 여행이라면
이제는 신발 같아진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해가 뉘엇뉘엇한 겨울 오후
아이는 순수의 느낌, 어른은 활력의 모습, 노인에게선 여유의 아름다움이라면
해거름의 모습은 여유에 합당하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고, 비었던 곳은 다시 채워지며 불 켜진 집들마다
돌아온 사람들의 소리로 따듯하다. 사람들이 정한 일년 열두달 그 끝나가는 즈음이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온길 되돌아 보고 갈길 걱정 하는 것이 순리이다
12월 중반에 접어들면 송년모임도 끝나가고 마음은 반가운 얼굴에 화색이지만
그 반은 알코올 복용의 효과 일뿐 몸은 지쳐만 간다.
몸과 마음의 여유와 휴식이 찾아오도록 바쁨을 피해 다니는 기술의 연마가 필요하다.
그 안에 하나, 여행이 있다
내심 휴식 같은 여행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차를 몰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기 전까지 보여지는 붉은 기운은
떠날 때 찾아 드는 묘한 설레임으로 대체되고
휴식은 동작의 정지가 아니라 움직임이 편해지는 건 아닐까
요즘 리바이벌된 붉은 노을을 흥얼거리며 궤변가가 되어본다
노래를 만든 사람은 떠나도 노래는 남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세대를 거쳐 물 들이고 있는걸 보면
새삼 기록물의 대단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아니 끄적거릴 수가 없다
여행 사진보다 더 극적이고 기억 추적에 도움되는 것이 글임을
새삼 더 느끼게 된다.
사진은 단편적이고 일시적이지만 글은 묘사적이고 감정을 담기 때문이다
6시 즈음이 되면
서울의 길중에 가장 밀리는 곳 중 하나가 서부간선 도로이다
서울 서편에 위치한 길로 안양천과 함께 남향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와 곧장 이어지며
영등포, 목동, 인천, 안산, 판교, 평촌, 부천, 신도림, 구로, 광명, 안양으로 빠지는
램프들이 줄줄이 있어서 가히 출퇴근 시간 때는 그 막힘이 방송 내내 언급 되는
인기 도로, 밥벌이 차량이 줄을 서는 도로이다.
이른 출발의 하행 길인데도 금천교에 이를 때까지 상행선에 늘어선 차량의 행렬
그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지나는 기분 여간 짜릿하지 않다
서울서는 단 십여분의 출발 차이가 한시간까지 이동시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어느새 해의 흔적조차 오간 데 없고 사방 천지가 어둠이다
어둠이 깔리면 모든 사물의 소리가 같이 사라지는 느낌이며
오감은 가시거리 이내의 사물이 내는 소리와 동작에 집중된다
가능하면 선택과 집중은 밤을 통해 하라
상대가 딴짓을 들킬까 나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지루하지 않게 하라
이동 중 차 안에 있을 때는 음악도 듣고 이야기 거리도 만들어 놓는
소풍 전날 가방 싸두기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할거 없으면 여행 여정의 계획 같은 것도 좋다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 라면 무엇이건 좋다.
여행가서도 혼자 떠들고 올 거 라면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낫다
무얼 버리겠다고 마음 먹고 떠나도 늘 채워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간혹 싸우고 틀어져 오는 경우의 사람들도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 언급을 자제 할까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여행 가지 않아도 늘 싸우는 편이라 보면 틀리지 않는다.
여행은 양보와 이해를 가르치고 배려를 덤으로 얻게 만든다
여행가서 늘 싸운다면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해와 양보와 배려가 없는 사이 인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단점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다는 데 있다
이름은 바다를 끼고 있는 것처럼 지어놓고
바다를 보여주지 않은 기만에 처음 이 길을 탔을 때 어디쯤에서 바다가 나오는지
한참을 기다렸다..서해대교가 나올 때 잠깐 바다를 보여준다
여기서 많은 사람의 영혼이 떠난 곳이라 바다로의 눈 흘김도 매우 조심스럽다
지금은 과속을 못하게 평균속도라는 굴레로 차 바퀴를 제약한다
냅다 달리던 차들도 숙연한 모양으로 속도를 줄이는 5키로 남짓~
낡은 차들이 잘 나가는 새 차들에게 온전한 속도 평등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다리를 넘어서면 행담도 휴게소가 나온다. 경기도를 넘어 충청도에 접어든 것이다.
휴게소 어디에 전광판이 어디 있나 둘러 보았다.
얼마 전 퇴사한 선배가 무작정 길을 달리다 이곳 행담도 휴게소에서
담배 피며 바라본 전광판의 광고, 그 칠갑산 광고를 보고
무작정 칠갑산에 들러 이틀을 묵고 나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이틀 동안 평생 가장 어려운 숙제를 풀고 나왔으리라
그때보다 더 어려운 경기, 거리로 내몰리는 가장들이 거리 낙엽처럼 많아질
내년 2009년 벽두가 걱정스럽다.
고상하게는 도서관 열람실의 평균 연령이 증가할 것이며, 등산 인구가 늘 것이고
슬프게는 역 대합실 상주인구가 늘 것이고 배고픈 아이가 늘어날 것이며
반갑게는 귀향으로 자연 감소되는 시골 인구 늘리기에 혈안인 군수의 눈가 주름이
옅어 질것이다. 사람은 잘 되었을 때도 고향을 찾고 어려울 때도 고향을 찾는다
먹고 살기 바쁘고 치열할 때 가장 찾기 힘든 곳이 고향이다
삶이 어렵다는 것은 강제된 선택이 주어질 때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주어질 수 있는 그 상황이 올 때 어찌 할지 준비 해두자
남에게 있는 일이 분명 나에게도 있을 수 있으므로
여행을 떠날 때는 무작정 떠나도 마음의 커다란 짐이 있다면 짐을 덜기보다는
이겨내기 위한 용기를 얻는 편이 낫다.
칠갑산 갔던 그 선배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상황과 환경이 바뀌어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건
어느 순간 사람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가족과 주위의 따스한 시선과 독려, 그 힘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리라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미래가 없는 사람보다 늘 혼자인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임을 또 느끼게 해준다
주는 행복, 받는 즐거움 사람의 모든 행위는 대상을 두고 인정하며
교류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를 통해 삶은 능동적으로 진행한다.
지시나 명분이나 어쩔 수 없음으로 살아가는 삶, 얼마나 애처로운가
우리의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이제 칠갑산 하면 콩밭 매는 아낙이 아니라 이틀 만에 돌아올 용기를
주는 멋진 산으로 기억 할까 한다
행담도를 지나 두 시간여를 지나노라면 서해안의 지명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진 해미 서산 홍성 대천 군산, 딱 여기까지였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서해 쪽으로 가장 많이 내려간 곳이 고작 군산이었다
아직 군산에 계신 이모님 덕에 대학 이후, 몇 번 어머니를 모시고 가본 곳
한국에 이렇게 너른 들판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전군가도를 달리며 느낀 적 있었다
이리 땅이 넓었으니..여기가 일제 식량 수탈의 전초기지가 될 수 밖에 없었구나
비분강개 쌀을 앗기고 깻묵을 씹던 민초들의 느낌을 알 수 있었다.
군산 근방 고창 부안을 기점으로 동학 운동이 태동했음은 우연이 아니리라
내가 기르고 내가 먹지 못하는, 내것을 남에게 허망하게 내어줄 수 없는
지켜야할 마지막 자존심이 삽과 괭이를 들게 만들었으리라
군산에는 맛난 게장의 기억과 금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하구언이 있으며
선유도 근방에는 철새가 무리 지어 도래하는 장관이 자주 연출된다.
해지는 노을이 드리울 즈음 금강을 마주한 장항쪽을 바라보고 횟집에 앉으면
왼편으로 바다에 해가 넘어갈 때 목을 넘어가는 회의 맛이 일품이다
그 맛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밤이 깊어 추억을 생각할 새 없이 군산을 지나친다
추억은 떠올리면 속도를 늦추고 영화처럼 지나간다.
고창까지는 먼 길이다. 서울에서 3시간을 넘게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곳
내 고향 영월에 이르는 것 보다 먼 거리다.
나에게 멀고 안 멀고의 기준은 영월보다 먼 거리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고향은 마음의 거리 이므로 가고플 때 그 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 친한 동료의 고향이 거창이었다. 부안의 변산반도 이야기를
그때 들었으니 그 후로 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자기 고향의 자랑을 담아내는 데는 누구나 재주가 있다.
볼 수만 있다면 변산반도의 일몰을 보고, 채석강의 경치를 구경하고
풍천 장어에 고창 선운사 복분자 한잔을 하고 말리라
언제나 계획은 풍요롭지만 실행과 수확은 그에 턱없이 모자란다
부안을 지나 고창에 이르면, 선운사를 나가는 IC가 나온다.
먹을 거리를 사려면 흥덕 쪽으로 들어가 고깃집이 즐비한 백여 미터 조그만 시골읍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농협도 있고 약국도 있고 식당도 제법 있다
영화 세트 같은 조그만 동네, 가게에 복분자가 없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오던 방향을 조금 되돌아 십여분을 달리면 선운사 입구가 나온다
절에 오르는 길은 더 이상 호젓하거나 좁은 길이 아니다.
왕복 4차선 길옆으론 수많은 풍천 장어집들이 늘어서 있으며 개울을 끼고
산 아래까지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비슷한 모양의 펜션들이 빽빽하다.
일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에 주차장은 저리 넓은 걸까
선운사 복분자에 물오른 장어가 힘에 좋긴 한가보다.
숙소에 이르니 전화 목소리 곱던 늙으신 할머니 한 분 반가이 맞으신다
짐을 풀고, 사온 고기를 숯탄에 구워 먹을 즈음, 할아버지 복분자 한병을 내어놓으신다
바람이 차가운데 술 한잔 열이 올라 추운 줄을 몰랐다 밤을 기운차게 보낼 수 있으려나
평일이라 손님 없는 펜션, 노부부의 말년을 적당한 일과 함께 보내기엔 그만이라는 생각
어쩌면 부러움까지 같이 들었다. 노인네들 매일 복분자 한잔씩 하는 건 아닐까
자식들 떠나 보내고 오롯이 둘만 남아 이제는 이야기 꽃 피우기에도 힘에 벅차리라
새로이 오고 가는 사람들 맞으며 외로움을 달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꽃다운 남녀 묵어 가는 날, 노부부 싸움이 날지 화기애애 할지 궁금이 짖궃다
자식도 손님처럼 다녀가는 요즘 부모님들은 내내 외로우실 게다
술은 밤을 짧게 만든다, 적게 마시면 곤한 잠으로 짧아지고 많이 마시면
취기에 이야기와 허세와 자기 도취로 밤이 쉬이 간다. 알콜 과다 복용이 주는
마취효과에 추위를 잊고 선운사 밤거리를 이리처럼 훑고 다녔다
술 마시고 난 아침은 속이 아프다
또 한가지 어제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침은 언제나 어제 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어서 반갑다
밤과 잠이 없다면 인위적으로 생각을 끊어주는 가위가 없으니
삶의 조울을 조절 하는 기능을 잃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운사 입구 해장국 집은 좀 남다르다. 우거지 해장국을 시켰더니 순간 속이 울렁댄다
사골 국이 아니라 된장 우거지다. 된장국이 구수하지만 옆에 먼저 나온 냄새를 맡으면
술 마신 속에 반응이 온전치가 않다. 차가운 바람 몇 숟갈 복용하고 들어와
밥을 말아 들이킨다. 배신이라 할 수도 없고 코의 맛과 입의 맛은 다른 가보다
그 느낌의 절정이 청국장 아니었던가..
함께 나온 반찬은 술 마신 뒤 밥상에선 늘 찬 대접이다. 주인 아주머니께 머쓱하다
밥보다 많은 양의 물이 알코올 해독에 소요된 수분 보충을 위해 들어간다.
청룡산 주위로 낮은 산들이 즐비하게 둘러싸인 선운사 가는길
그 숲의 모습이며 개울가에 수향성으로 기울어진 늙은 나무들의 충성심들이
남도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관이다.
시인이 참기 어려운 경치, 미당의 읊조림이 이해가 간다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보전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 백제 때로부터 이어져온
불력의 힘이 느껴지는 듯 하다. 바람이 불어 잎들 사각이는 사찰 뒤편의 동백 숲
이곳을 꼭 오게 만드는 송창식의 노래가 귓가에 내내 맴돈다
송창식님…선운사에 와본 적이 있습니다아~~있습니다아~
몸뚱이 적은 뱁새와 박새는 여느 새 보다 더 큰 목청으로 울어댄다
그럴 때 마다 동백 숲 무리 지어 흔들리는 모습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에 피마자 기름으로 멋을 낸 듯 유난히 반짝 거리는 동백잎..
그 사이 마다 빨간 동백꽃이 수 놓듯 떨어지면 마음이 푹푹 내려 앉을 것 같이
아름 다울 것이다
선운사에는 템플스테이도 있고 성보 박물관도 있으며 대웅보전 왼편을 가면
10개 지옥문 업보를 가름하고 심판하는 무서운 보살들의 위엄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49제를 지내며 일주일마다 떠나신 분 좋은 곳으로 모셔달라 잘 봐달라
정성 드리는 그 대상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절터 앞 산길을 따라 심어놓은 차밭의 길이가 제법 길다. 따라가다 보면 등산길이 나온다.
이른 아침이라 절 다원에서 파는 차를 마시지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풍경 속에 담겨 자라난 다향은 몸 속속들이 파고 들리라
차를 따는 스님 손길 하나 하나가 돌리는 염주같이 정성 스러우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발길 떨어지지 않는 선운사 뒤로 하고 나서는 길에 마음속에 내 언제고 꼭 다시 오리라
동백 꽃 곱게 피고지는 초봄 즈음을 마음으로 기약 해 보았다
선운사 나오던 길을 되짚어 가면, 나온지 오래된 지도에는 없는 고창-담양간 고속도로가
나온다, 장성을 지나 북광주IC를 조금만 지나면 담양으로 빠지게 된다.
아직도 담양과 단양을 헛갈리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 가게 되면 필경 커다란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점 찍어둔 무언가를 보러 가서 그게 없다면 허망할 일이니까
담양IC를 나와 직진하면 봄직한 것들은 죄다 지형상 한곳으로 모여있다.
남이섬 메타쉐카이어 숲이 울고 갈, 수 키로 정도의 높은 가로수 길은 잎이 지고 없어도
그 안에 서면 장대함을 느끼게 된다. 멋진 병사들의 열병을 받는 듯한 그 길에서 누구든
기분이 우쭐해지고 좋아지지 않는다면 마음의 병이 깊은지도 모른다.
잎이 있을 때 오면 터널 같은 그늘이 주어지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바람이 더욱 좋을 것이다.
문득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어 질 게다.
담양 하면 그래도 대나무다.
어려서 하도 사회시간에 듣고 자란지라 어떤가 보고 싶었다.
겨울에 연을 만들라 치면, 구할 수 있는 대나무는 대나무 우산 살밖에 없었다.
그 살의 길이에 맞추어져 같은 사이즈의 연밖에 못 만들다가 아버지가 커다란 대나무를
구해 주시면 친구들을 압도할 커다란 연을 만들고 좋아하던 기억 생생하다.
가로수 길에서 되돌아 조금 내려가 우회전 하면, 죽녹원이 나온다
대나무 숲이 푸르다는 뜻 이렷다. 언덕 위 덩그란 건물 하나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만
정작 언덕을 오르고 나니 숨겨진 대나무 숲이 나온다.
머리에 자란 머리칼 같이 촘촘하게 자라난 대나무..바람에 파도결로 일렁이며 사각이는
소리가 듣기 정겹다
대나무를 넣어 만든 숲길 이름, 죽마고우길, 운수 대통길 작명이 재밌는데
상관없는 철학자의 길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숲길은 저녁같이 어둡고 빠져나가는 공기는
속도를 얻어 차갑고 빠르지만 신선한 느낌이다.
솎아내는 대나무 간벌, 몇 개 얻어 연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추억은 습관이다. 하고픈 것이 있으면 거기서 꺼내어 다시 해보게 만든다.
와호장룡 이었던가.. 대숲을 날아오르던 중국영화..촘촘한 대숲 사이에 몸을 얹으면
잎처럼 붙어 바람 율동에 따라 춤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오는 길 횡단보도엔 대나무 호떡을 판다. 이거 괜찮다~
여행은 돈보다 시간이 문제다
더욱이 해가 짧아진 겨울이라면, 시간이 지날 때 마다 마음이 바빠진다.
순천만을 보고 싶었다. 서울 하늘 공원에 억새 축제도 장관이겠지만
모래톱 위로 자연히 자라난 갈대 숲의 모습은 어떠할지 보고 싶었다.
그쪽을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어 보였다.
순천만을 향해 가던 고속도로 주변 아마도 보성강의 상류라 짐작되는
개울 곳곳에 수북이 자라난 갈대가 보기 좋았다. 이걸로 만족하자.
순천만에 이르기 전에 송광사 방향으로 빠져 나왔다. 하나를 버리면 둘 이상을 얻을 수도 있으니,
불교 3보 중 승에 해당하는 송광사를 들러 보기로 했다
인근에 어떤 댐이 있는지 모르지만, 커다란 인공호수가 겨울 오후에도 그리 을씨년스럽지 않고
나름 멋진 풍경들을 만들어 낸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왼편으론 벌교 순천이 나오고 오른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보성 고흥이 나온다.
송광사는 그길 중간쯤에 있다. 규모도 규모려니와 3보 사찰 이니만큼 볼거리들이 풍성하리라 생각했다.
절에 오르는 길은 아직 잎 무성한 참백나무들의 용모가 수려하다.
반지의 제왕 에서 보았음직한 나무 군단 같은 제각기 다른 모습의 고목들이 즐비한 길
나무의 오만 가지 갈피들도 법당을 만나면 곧은 기둥으로 만들어져 동량이 되고 싶어 질게다.
저 혼자 곧은 나무가 있다면 그런 선택이 주어진다.
목탁 소리 은은한 송광사, 앞은 오사카 성 같은 작은 호수와 개울로 둘러져 있고 다리를 건너면 공사중인 사천왕문 뒤로
크기만으로도 압도감이 드는 대웅보전이 떡하니 버티고 섰다. 가히 3보 사찰이라 할만하다.
천명이 넘는 스님들은 어디서 숨바꼭질 중일까
중생계 업보를 짐 지고 용맹수련중인 스님들 눈에 띄지 않는다. 사방 둘러보아도 들어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스님만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수련에 방해되는 게 이유란다 동의하기 어렵다.
사람과 함께 가야 할 종교라면 사람도 숲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절에 오면 내가 먼저 도가 트는 거 같다.
해인사, 불국사, 송광사….이제 해인사 하나 남았다..
언제고 가보게 되겠지
들어가는 길이 멀고 힘들수록 나오는 길은 쉽고 짧다.
해탈의 길은 멀고 힘들어도 해탈이 되면 모든 것이 무의미 하리라
삶의 길이 고난 스럽다고 버리고 떠난다면 그 고난은 남의 몫이 된다
떠날 때는 늘 내 짐뿐 아니라 내가 남길 짐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송광사를 나와 벌교를 향해 가는 길은
구례 남원 하동까지 산세를 뻗친 지리산 자락의 느낌이 있다. 곳곳에 아주 너른 논들이
이곳이 태백산의 무대였으며, 일년 고생한 농부들의 피 같은 소작을 마름들이 지주보다
악랄한 착취로 배를 채운 곳. 바다엔 바다 먹거리가 산과 들엔 풍성한 곡식들이 민초를
굶기고 지배계층을 더욱 배 불렸으리라.
견디다 못한 평등주의자들이 자연 사회주의에 동화되어, 일제의 앞잡이 친일반공주의에
저항하며 생존권을 위해 싸워나간, 보성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빨치산 통로를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길을 세월이 지난 후 제3자로 걷는 것은 배움이란 느낌이 있다.
지나가는 길목,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가르키는 푯말이 보인다.
가보고 싶은 굴뚝 같은 마음, 다가온 시장기를 이겨내지 못한다.
보성강 지류 주변의 갈대 숲이 더 무성해지고 제법 멋스럽기까지 하다
네비가 알려주는 꼬막 정식집. 네비를 쓰는 이유가 될 만하다.
마트에서 꼬막을 사서 삶아 건진 후 간장이나 찍어 먹는게 다였는데..
정식 나오기 전부터 꼬막 부침개가 군침 돈다. 꼬막이 아주 풍성하다. 이건 굴전 이랑은
완전 다르당께
꼬막 대친 게 따로 나오는 데, 이걸 먹는 게 요령이다. 꼬막 뒤편의 홈에 젓가락을 넣어서 좌우로 튼다,
작은 고막은 젓가락 새운 작은 사이즈로 맞춰서 틀 수 있는 조절이 가능하다.
이걸 모르면 앞으로 조개 입을 열려고 무지 애쓰는 쪽팔림을 당해야 한다.
뭐든 모르면 물어보라. 쉽고 편한 길이며 때로는 묻는 게 백배 덜 창피스럽다
꼬막 정식은 우아 하지 않다. 삶은 꼬막 무침을 밥에 넣어 나물들과 비벼 먹는 것이다
색다른 맛이다. 남도 바다의 느낌은 입안에 넣는다 생각하면 된다.
이제 마지막 남은 여정이다
보성군 벌교읍…여기서 보성 차 밭은 그리 멀지 않다.
여기가 남쪽 끝이라는 느낌은 사방을 둘러보면 들지 않는다. 사방으로 낮고 높은 산들이
낮은 사립 울타리 처럼 둘러서서, 내륙의 어디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산이 있으니 골이 있고 거기에 차 밭이 있지 않을까. 이미 서쪽으로 방향 튼 해로부터
차 재배에 좋은 남도의 햇살이 광폭으로 쏟아진다.
차 밭에 오르는 길은 시작인 주차장부터 둘러싸고 선 전나무 숲이 대단하다.
겨울에도 잎이 푸른 침엽수다. 섬세한 관리 덕에 꼬부라진 나무 하나 없고
그 높이가 내가 못 가본 캐나다의 숲을 연상시키게 한단다.
우리 산 백두에도 저런 나무 숲 수십 개는 있을 것이다.
원래 내께 없으면 우리 형 우리 삼촌까지 들먹이는 게 우리네 정서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는 나무 기둥 사이 언뜻 언뜻 눈에 들어오는 차 밭의 풍경
낮은 비닐 하우스 모종 같은 차나무 덩쿨, 뱀처럼 산중턱에 꼬리를 만들며 산을 굽이 굽이 돌아 나간다
겨울이라 나지 않은 잎으로 연녹의 느낌은 없지만 오래 묵은 잎들의 진 녹색은 햇빛에
더욱 반짝거린다. 와보고 싶은 곳은 와 봐야 한다.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골을 내며 만들어진 차 밭은, 차 나무 관리를 가드닝 하듯이 정갈하게
다듬고, 밭의 고랑을 늘 유지 해줘야 할 것이다.
차 잎을 따기 위해서는 훌라후프 처럼 산을 옆으로 휘어 감으며 햇빛이 말려주는
땀을 닦으며 한걸음씩 나아간다. 이런 정성으로 한 잎씩 따내는 차 잎 감사히 먹으련다
차 밭에는 중간 높이에 오솔길이 나있고, 차 밭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묘가 있으며
요소 요소에 비스타 포인트가 있다. 몇 개의 영화와 광고도 찍은 것으로 보이고
아쉬운 것은 내가 여기를 다녀가도 기념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차 밭 사이 작은 나무에 간만에 본 찍빠구(지빠귀), 콩새가 날아 다닌다.
부리가 강한 콩새는 단단한 나무 열매를 참 잘도 까먹었는데 여기선 우아하게
찍바구와 사이좋게 찻잎 따 먹나 보다
곧 날이 저물 것이다..
이곳에 전등을 깔고 빛의 축제를 한다니..그때 다시 다녀와도 괜찮을 법하다
그런 장관은 뒤에 올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자, 아쉬움 남는 여행이 다시 찾게 만드니까
이제는 돌아가는 행로다
4시가 넘으면 해남 땅끝의 일몰을 볼 수 있겠지만 서울에 닿는 시간을 보장 못한다
보성에서 광주-고창으로 올라가는 길은, 광주에 이르기까지 시속 60키로가 단순히 보장만 되는 지방도-국도 일색이다.
몇 년 후에 오면 순천에서 해남, 목포까지 이르는 고속도로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때도 같은 느낌으로 다시 올 수 있을까
올라가는 동안 해는 져버리고, 고창에 이르니 긴 파장의 적외선 흔적만이 바다를 넘어
은은하다. 배가 부르지 않다면 군산에 들러 회를 먹으련만 배의 수용용량도 시간도 여의치가 않다.
시간은 짧지만 여정 긴 여행이 끝나간다.
눈에 수없이 찍어댄 필름들이 고이 머리 속에서 인화되어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는다
나는 간간히 꺼내 보고 추억 할 것이며 감사 할 것이다.
여행은 다녀와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갈 때까지 나를 조를 것이다
삶도 사랑도 소멸하지 않고, 떠나지 않으며 다시 볼 수 있을 때 까지 그리움으로 살게 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없거나 아니거나 지워지는 것은 인간사에 없으며 다만 마음에 묻어두고
장맛처럼 묵혀가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만든 사람의 길을 다녀오면서
더욱 더 사람같이 살게 되길 바래본다
떠나기 보단 보내 줄 것이며 주저하기 보단 기꺼이 할 것이며
슬퍼하기 보단 다시 다잡을 것이고 원망하기 보단 이해하려 할 것이다
사람이 만든 사람의 길을 걷고 오니
더욱 사람이 그리워진다
곳곳에 배인 사람의 냄새
청국장 냄새처럼 배어 있다
내 살갗 같은 당신들의 냄새
죽을 때 까지 떼어낼 수 없다
첫댓글 남도쪽은 아직 한번도 가보지못한곳이여서 올겨울 가까운 친구몇과 순천을가보려고 계획중였는데.... 어찌나 잘담아냈는지 함께여행다녀온느낌이든다 ㅎㅎ 친구의 여행담에 가슴뿌듯 추억을 공유했다네~~
직접 가서 보고오렴~간접경험이란건 말이지~여행사 마케팅 문구 같은거여~ 볼데가 많으니 계획을 잘 세우라구 체력좋은 운짱 선발 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