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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휴일) 일기/사진 스크랩 경허와 만공 큰스님의 숨결이 묻어나는 연암산-삼준산(`15.1.20)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82 15.01.26 05: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연암산(燕巖山, 440.8m)-삼준산(三俊山, 489.9m)

 

산행일 : ‘15. 1. 20()

소재지 : 충남 서산시 고북면·해미면과 홍성군 갈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장요리천장사제비바위연암산연장이고개벽장바위405갯골재삼준산갯골재임도장요리(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연암산과 삼준산은 높이가 5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지막한 산들이다. 그러나 정상어림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등 빼어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산세(山勢)를 자랑한다. 또한 넓은 평원(平原) 위에 우뚝 솟아 있어서, 주변 평야와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높이에 비해 조망(眺望)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연암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절집인 천장사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근세에 우리나라 불교계에 선풍(禪風)을 불러일으켰던 경허선사과 만공선사가 이곳에서 수행정진을 했었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장요리 주차장(서산시 고북면)

서해안 고속도로 해미 I.C에서 내려와 29번 국도를 타고 홍성방향으로 달리다가 고북교차로(交叉路 : 고북면 기포리)에서 빠져나온다. 이어서 고북농공단지(農工團地 : 고북면 가구리)를 관통한 후 고북4고수관로그리고 고요동1을 연속해서 타고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장요리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서 내려 천장사 방향으로 난 시멘트포장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깔끔하게 지어진 화장실 곁에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산행을 나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라메 솔바람길내포문화 숲길등의 둘레길들을 새로 정비한 탓에 기존의 지도(地圖)만 갖고 산행을 할 경우 헷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이정표(천장사,연암산 정상 1.5Km/ 삼준산,덕산 1.5Km)가 지시하는 왼편의 천장사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오른편은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게 될 길이다.

 

 

주차장을 출발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라메 솔바람 길의 안내판이다. ‘아라메 솔바람 길은 충청남도가 명칭과 업무표장에 대해 특허(特許)까지 출원했을 정도로 야심차게 추진한바 있는 스토리(story)가 있는 산책로사업의 일환으로 서산시에 조성된 일종의 둘레길이다. '아라메 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를 합쳐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안선(海岸線)을 따르기보다는 주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라메 솔바람 길의 일부구간이 이곳 천장사 근처에 조성되어 있고, 오늘 그중 일부분(주차장에서 천장사까지)을 걷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아라메 길은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우리 마을 녹색길 BEST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니 잠시나마 세속(世俗)에서 벗어나 느리게 걸으며 사색(思索)과 휴식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침 경허선사만공선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곁들여진 명품(名品) 길이니 말이다.

 

 

삼거리에서 천장사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다. 거기다 시멘트포장 임도(林道)로 연결되어 있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길이다. 이럴 때는 그저 왼편에 보이는 연암산을 눈에 담거나 길가에 세워진 안내판들을 읽어보며 무료함을 달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잠시 동안만 말이다. 조금 후에는 임도가 가파르게 변하고, 그 가파름에 놀라 숨이라도 헐떡이다보면 지루함 따위는 도망가 버린 지 이미 오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보면 심심찮게 이런 풍경들과 만나게 된다. ‘아라메 솔바람길을 조성하면서 세운 것들인데 그 내용들은 대부분 경허선사만공선사에 관한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다. 부근의 지명(地名)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두 분 선사(禪師)와 연결시켜 풀어 놓은 것이다. 그 덕분에 길은 더욱 의미 있는 길로 거듭났다. 한국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두 분이니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내버릴 수 있겠는가.

 

 

주차장을 출발한지 25분쯤 되면 천장사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서 돌계단을 통해 곧장 올라가는 길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소문이 자자한 천장사가 자리 잡고 있다. 경허(鏡虛)대선사와 스님의 세 제자였던 혜월(慧月)과 수월(水月), 그리고 만공(滿空)스님이 수도했던 천장사가 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천장사(天藏寺)633년 백제의 담화선사(曇和禪師)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담화선사는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며 또한 창건연대를 유추해 낼 수 있는 유물이나 유적도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는 없다. 다만 천장사에 있는 칠층석탑(七層石塔)으로 미루어볼 때 고려 시대 창건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파른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비좁은 골짜기 안에 세워진 천장사는 비록 작은 절집에 불과하지만 이 집을 거쳐 간 큰 스님들로 인하여 그 어느 곳보다 큰 사찰이다. 근세에 이 땅에 선풍(禪風)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경허(鏡虛 : 1849~1912)스님이 보림(保任 : 수행인이 진리를 깨친 후에 안으로 자성이 요란하지 않게 잘 보호하고, 밖으로 경계를 만나서 끌려가지 않게 잘 보호하는 공부. ‘보호임지,保護任止의 준말) 수행을 한 곳이며, 그의 제자인 만공(滿空 : 1871~1946)스님이 도()를 깨우친 사찰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寮舍)가가 있으며, 법당 앞에 있는 칠층석탑이 충청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법당 앞에는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2호인 칠층석탑(天藏寺七層石塔)이 있다. 높이가 7m인데 오층석탑이라는 설도 있다. 석탑을 쌓은 여러 부재(部材 :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같은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아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탑신(塔身)에 우주를 모각(模刻)한 점과 옥개석의 층급 받침이 세 단인 점, 그리고 초층의 옥개석(屋蓋石)이 그 이상의 옥개석에 비해 축소의 비율이 큰 점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장사를 둘러본 뒤 연암산으로 향한다. 연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원효 깨달음의 길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러나 경허라는 이름이 자꾸만 원효라는 글씨를 덧씌워버리는 것은 왜일까? 이곳 천장사가 맺고 있는 경허스님과의 인연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계룡산의 동학사에서 견성(見性:문득 천성을 깨달음)을 한 스님은 이곳 천장사로 자리를 옮겨 참선을 하며 오후보임(悟後保任-견성 뒤 성불을 위한 수도)을 하여 성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허선사는 고인(故人)이 된 최인호선행의 소설 길없는 길로 인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승(高僧)이다. 아니 이미 유명했던 스님이 걸었던 길을 작가가 추적해가며 썼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이 땅에 선풍(禪風)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경허스님의 발자취가 곧 우리 불교계가 추구하는 미래이자 역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읽었다는 경허선사의 선시(禪詩) 한 구절,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작가는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난 오늘 과연 무엇을 깨닫고 돌아가야 할까? 아까 천장사 앞에서 보았던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을 떠올려 본다.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몰록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 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스님의 매력에 푹 빠져 5년간이나 전국의 사찰을 돌며 스님의 삶과 수행을 ?았다는 작가에 공감(共感)하는 건 나 또한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한사람의 카톨릭 신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천장사 앞 정자(亭子)에 올라보지만 조망(眺望)은 별로다. 그렇다고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역광(逆光)이라서 모든 게 실루엣(silhouette)으로 처리되어 버린 탓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는 얘기일 따름이다.

 

 

정자를 돌아 올라가면 외로운 부도(浮屠)가 하나 나타난다. 언제 만들어진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부도는 내버려진 듯 방치되어 있다. 역시 부도도 주인을 잘 만나야 대접을 받게 되는 모양이다.

 

 

부도를 지나면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런데 주변의 풍경이 뭔가 낯설다는 느낌이 든다. 주변에 오래된 나무들이 일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난 2000년에 큰 산불이 나서 주위의 울창한 송림(松林)이 다 불타버린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화마(火魔) 속에서도 천장사만은 무사했다고 한다. 산악회 총무님의 멘트(announcement)대로 불법(佛法)의 오묘함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연암산은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제비바위가 있고 천장사가 제비 알이 들어있는 제비집 자리라고 한다. 한마디로 큰 명당(明堂)이라는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얼마 후에는 산등성이(이정표 : 한서대 입구 6.42Km/ 천장사 0.43Km)에 올라서게 된다. 천장사에서 20분 정도가 걸렸다. 등성이의 서쪽은 아찔한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이곳이 제비바위가 아닐까 싶다. 오른편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바위의 생김새가 어찌 보면 제비를 닮아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널따란 암반(巖盤) 위에 서면 남서쪽으로 고북저수지와 평야지대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리고 박무(薄霧) 때문에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그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것은 아마 서해바다일 것이다. 참고로 경허스님은 어린 만공을 데리고 이곳 천길 제비바위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툭 터진 서천을 향하고 앉아 참선(參禪)을 했단다.

 

 

 

제비바위에서 연암산 정상으로 난 길은 벼랑의 안쪽으로 나있다. 빈 나뭇가지사이로 어설프게 나타나는 연암산 정상을 방향삼아 걷다보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고 그 위에서 또 다시 멋진 조망을 즐기게 된다. 동쪽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야(視野)가 열리는 것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가사봉(가야산)의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 통신시설까지 눈에 들어온다. 마침 날씨까지도 받쳐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삼준산 방향은 그러지를 못한다. 역광(逆光)으로 인해 첩첩이 쌓인 산들이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버린 탓이다. 그저 눈대중으로 산의 위치를 헤아려볼 따름이다.

 

 

 

 

 

 

전망대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연암산 정상이다. 서너 평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좁은 이곳에 옛날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인산불감시탑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 감시자(監視者)의 역할을 말이다. 그리고 감시탑의 고생을 위로라도 해주려는 양 정상표지목과 이정표(삼준산,장요리 1,Km/ 비녀바위 700m/ 천장사,장요리 500m)가 바로 곁을 지켜주고 있다. 참고로 연암산(燕岩山)마치 제비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1시간이 지났다.

 

 

 

 

정상에서의 조망도 좋은 편이다. 서쪽의 해안지대와 북동쪽의 산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그러나 조금 전에 전망대에서 즐겼던 풍경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가야산은 주위의 잡목(雜木)들 때문에 아랫도리가 잘려나갈 정도이다.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서 천장사에서부터 함께 달려오던 내포문화(內浦文化) 숲길과 헤어진다. 숲길은 이곳 정상에서 한서대 입구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조금 후에 내려서게 되는 임도에서 또 다시 숲길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내포문화(內浦文化) 숲길은 충청남도의 예산군, 당진군, 서산시, 홍성군의 4개 시·군이 함께 조성한 생태 문화 체험 숲길로서 동 지역에 있는 옛길과 등산로산촌 생태마을등과 수평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지역 고유의 산림 생태, 문화, 역사 자원 등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둘레길이다. 숲길은 원효 깨달음의 길’, ‘백제 부흥군 길’, ‘내포 역사 인물 길(동학길)’, ‘천주교 순례길4개의 테마(theme)로 구성(총 길이 330)되어 있는데, 오늘 걷게 될 천장사에서 연암산 정상까지의 구간이 숲길 중 원효 깨달음의 길과 중복되어 있는 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지도(地圖)를 겸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잠깐 멈춰 서서 가야할 방향을 가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연쟁이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삼준산과 연암산의 중간에 위치한 이 고개는 내륙(內陸)과 바다를 잇는 길목으로 항아리고개라고도 불린다. 옛날 이 길을 통해 질그릇이나 농기구, 그리고 소금이나 젓갈 등이 내륙으로 팔려나갔다. 이때 상인(商人)들이 고개를 넘을 때에 밝히던 횃불들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고개를 넘나들었다니 얼마나 왕래가 빈번한 고개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이곳에서 장이 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흥정을 이루기 위해 언쟁이 오갔을 수도 있었을 테니 혹시라도 연쟁이고개라는 지명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연암산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20분 남짓 걸렸다.

 

 

 

연쟁이고개에서 삼준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가에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힘겹게 치고 오르면 능선은 갑자기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타나는 철제난간을 부여잡고 다시 한 번 힘겹게 치고 오르면 전망바위에 올라서게 된다. 연쟁이고개에서 17분 정도가 걸렸다.

 

 

 

 

건너편에 연암산이 보인다. 산의 8부 능선쯤에 숨어 있는 작은 절집인 천장사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다. 연암산을 바라보면 왜 절집의 이름을 천장(天藏)’이라고 지었는지가 금방 이해가 간다. ‘천장(天藏)’이란 하늘 속에 감춘다.’는 뜻이다. 절집이 천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산의 중턱 너무도 깊은 곳, ‘하늘도 땅도 감출만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북쪽과 서쪽방향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북쪽의 가야산이 한눈에 잘 들어오고 그 왼편에 보이는 고을은 해미시가지일 것이다.

 

 

이어지는 능선은 큰 오르내림이 없이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넘으며 이어진다. 그러나 밋밋하지는 않다. 중간 제법 험상궂다고 볼 수 있는 바위구간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암봉을 지나 소나무가 가지런한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덧 갯골재에 이르게 된다. 전망대에서 24, 연쟁이고개에서는 40분이 걸렸다. 갯골재는 삼준산을 중심으로 서쪽의 장요리와 동쪽의 내라리를 이어주는 옛 고갯길이다. 고갯마루에는 이정표(삼준산 정상 1.1Km/ 장요리/ 가곡주차장/ 연암산)외에도 벤치를 놓아두었다. 아마 이곳까지 올라온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쉬어가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갯골재에서 아이젠(eisen)을 꺼내 신는다. 평소에 아이젠 신기를 꺼려하는 집사람까지 두말없이 꺼내드는 걸 보면 그녀의 눈에도 능선에 수북이 쌓인 눈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하긴 산길의 경사(傾斜)가 가파른 오르막길인데다 또 어떤 구간은 바위로까지 이루어져 있는 데야 그녀인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행여나 미끄러질세라 조심조심 10분 남짓 오르면 가곡주차장 갈림길’(이정표 : 삼준산 정상 70m/ 가곡주차장 3.45Km/ 삼준암 0.7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삼준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6~7평 남짓한 정상은 삼준산(三峻山)이라는 본명(本名) 옆에 압휘봉(壓輝峰)이라는 부수적인 이름 하나를 더 달고 있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홍성 310)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니 하나가 더 있다. 단둘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안쓰럽게 생각되었던지 누군가가 삼각점 뒤에다가 정상표지목을 하나 더 세워 놓았다. 글씨가 안보일 정도로 낡아서 지금은 비록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지만 말이다.

 

 

정상어림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툭 터진다. 우선 서해바다와 평야지대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연무(煙霧)만 아니었다면 간월호와 천수만이 또렷했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일락산에서 이어지는 가야산이 한눈에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덕숭산과 용봉산이 내포평야에 우뚝 서있음을 볼 수 있다.

 

 

 

가곡리 방향으로 연이은 바위봉우리들이 나타난다. 기암(奇巖)으로 이루어진 바위등성이가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있어 무척 아름답다. 그쪽 방향으로 하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냥 맥없이 발길을 돌리고 만다. 우리를 태우고 돌아갈 버스가 장요리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늘 선두를 맡았던 윤대장도 추천하고 싶은 하산코스를 가곡리로 잡은 것을 보면 말이다.

 

 

정상에서 갯골재로 되돌아와 하산을 시작한다. 장요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로프 등의 안전시설도 일절 보이지 않으니 조심해서 비탈길을 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런 내리막길은 오래지 않아 끝을 맺는다. 12분쯤 후에는 참새골에 내려서게 되기 때문이다. 골짜기는 바짝 말라있다. 사시사철 건천(乾川)임이 분명하다. 비가, 그것도 많이 올 경우에만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변할 것이고 말이다.

 

 

산행날머리는 장요리주차장(원점 회귀)

갯골재를 내려선지 20분이 지나면 임도(이정표 : 덕산 2.4Km/ 신송리/ 삼준산 1Km)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종료되는 장요리 주차장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어서 당분간은 그다지 볼거리가 없는 무료한 길이 계속된다. 이런 길은 봄에 찾으면 제격이겠다. 가로수로 조성된 벚꽃나무들이 제법 굵은 것으로 보아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그늘 아래를 걸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화계사 입구를 지나면 전면에 연암산이 또 다시 그 자태를 드러낸다. 연암산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언쟁이고개로 올라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면서 헤어졌던 천장사입구 삼거리를 거쳐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것이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10분이 걸렸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쉰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산행을 하면서는 물론 산행을 마치고 그 결과를 정리하면서 내내 골머리를 썩였던 게 하나 있다. 바로 무너미고개연쟁이고개에 관한 의문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지도(地圖)들을 보면 연암산과 삼준산 사이에다 앞에서 말한 두 개의 고개를 표기(標記)해 놓고 있다. 그런데 고개의 위치를 서로 다르게 표기한 탓에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은 내가 만났던 고개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다. 내가 본 것이 옳다면 모든 지도를 부정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테니까 말이다. 고민 끝에 난 내가 본 사실을 믿기로 했다. 이 구간에 무너미고개는 존재하지 않고, ‘연쟁이고개만 있는 것으로 말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주차장에 세워진 등산안내도가 해줄 것으로 믿는다. 안내도에는 분명히 연쟁이고개만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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