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사들과 함께 문경은선수의 발자취를 조명해보는 추억글입니다.
어제 올린 글에선 문경은의 광신상고 시절과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대해 써보았는데
오늘은 연세대 2학년, 3학년 시절을 가지고 논해볼까 해요.
혹시 지난번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옛기사와 함께하는 문경은의 발자취 - ①고딩시절과 연세대 신입생 시절
1. 연세대 2학년 시절
당시 연세대의 주축멤버였던 정재근은 마산고시절 고교랭킹 1위로 연세대에 스카웃 되었던 선수였고
이듬해에 입학한 오성식도 중앙고시절 고교랭킹 1위로 연세대에 스카웃 되었습니다.
또 바로 이듬해에 입학한 문경은도 광신상고시절 고교랭킹 1위로 연세대에 스카웃된 선수였는데
1991년.. 또한명의 고교랭킹 1위가 연세대행을 결정하기에 이르니 그게바로 이상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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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1988~1991 고교랭킹 top 3 ◀
88년: 1위 정재근(마산고/연세대) / 2위 이상범(대전고/연세대)
89년: 1위 오성식(중앙고/연세대) / 2위 정경호(휘문고/중앙대학교) / 3위 정인교(휘문고/고려대)
90년: 1위 문경은(광신상고/연세대) / 2위 김재훈(용산고/연세대) / 3위 홍사붕(송도고/중앙대)
91년: 1위 이상민(홍대부고/연세대) / 2위 김영만(마산고/중앙대) / 3위 양경민(용산고/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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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연속 고교랭킹 1위 선수들을 스카웃하는데 성공하며 고교의 최고 유망주들을 싸그리 쓸어가던
연세대... 93~94 시즌에 연대가 대학최초로 농구대잔치를 제패할 수 있었던건
이렇듯 다년간 치열하게 준비해온 물밑 작업의 성과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1990년 12월 27일 경향신문 - 연세대의 예비신입생이된 홍대부고출신 이상민 ◀
이로써 <이상민-오성식(이상범)-문경은-정재근-김재훈> 라인업을 완성하며 대학최강을 넘어
감히 농구대잔치의 패권에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야기하던 연세대..
1990년 농구대잔치에 이어 또한번 실업최강 기아자동차와 명가 삼성전자를 꺽어내기도 하는등
명문 실업팀들도 결코 함부로 생각할수없는 돌풍의 대학세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 1991년 11월 17일 한겨레 - 허동택 트리오의 기아자동차를 무너뜨린 연세대 ◀
그당시에 흥미로웠던점은 문경은에게 이제 <전담마크맨>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신입생 시절의 문경은에게 호되게 당하며 그의 득점위력을 실감한 타 팀들은
심지어 자기팀의 주전 공격수를 벤치에 앉히면서까지 수비전문 전담마크맨을 투입하여
문경은 봉쇄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죠.
당시에 문경은 전담마크맨들의 플래이를 보면 다른건 신경 안씁니다.
오로지 문경은만 바라보며 찰싹붙어서 따라다니지요. 아예 공도 잡지 못하도록...
그러나 당시엔 무슨수를 써도 막기 힘든 선수가 문경은이었는데
<1991년 농구대잔치> 주요 경기별 득점을 살펴보면
☞ 1차전 한국은행전: 문경은 29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2차전 기아자동차전: 문경은 26득점 / 연세대승리
☞ 3차전 경희대전: 문경은 32득점(3점슛 8개)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4차전 기업은행전: 문경은 20득점(11리바운드,더블더블기록) / 연세대승리
☞ 5차전 삼성전자전: 문경은 30득점(7리바운드,3점슛 5개)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6차전 현대전자전: 문경은 2득점.........
1차전부터 연일 고득점을 폭발시키며 승승장구! 삼성의 에이스 김현준과 더불어
치열한 득점왕 경쟁을 벌여나가게 되죠.
기존의 문경은,정재근,오성식,이상범등과 더불어 이상민까지 합세한 연세대의 전력은
종전시즌보다 한층더 안정감있는 전력을 구가하며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까지 넘보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것은 6차전 현대전자전에서 당한 문경은의 굴욕... 2득점...
2~30점은 기본으로 해주던 당대의 문경은에게 있어 2득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당시 문경은에게 굴욕을 안긴 선수는 현대전자의 수비전문 선수였던 김지홍!
김지홍이 누구냐구요?
바로 이분입니다!
인상만큼이나 참으로 악착같은 수비로 상대를 괴롭힜던 선수였지요.
어쨌든 김지홍의 전담마크에 당해 2득점이라는 생에 최악의 굴욕을 맞본 문경은은
설상 가상으로 발등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 2차라운드의 경기들을 뛰지 못하다가
삼성전자전에서 다시 복귀하기에 이르는데 이후,
☞ 삼성전자전: 문경은 19득점
☞ 기아자동차전: 문경은 19득점
☞ 한국은행전: 문경은 27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경희대전: 문경은 20득점 / 연세대승리
☞ 삼성전자전: 문경은 21득점
☞ 현대전자전: 문경은 20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등을 기록하며 발등 부상 당하기 전에 비해서 상승세가 다소는 꺽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만
최희암감독이 부상재발방지를 위해 문경은쪽의 과부하를 줄여준 때문이기도 했죠.
▶ 1991년 11월 10일 한겨레 - 연세대 돌풍을 이끄는 문경은, 정재근, 이상민, 김재훈 ◀
연세대가 대학돌풍을 일으키다보니 85년도 허재,김유택의 전성기 중앙대와
91년의 문경은,이상민,정재근의 연세대중 어느팀이 더 강할지를 비교해보는 기사도 나왔었지요.
▶ 1991년 12월 11일 동아일보 - 85년 중앙대와 91년 연세대 전력에대한 비교기사 ◀
농구대잔치 2차대회가 끝난후 올스타전에 출전한 문경은은
32득점을 퍼부으며 대활약을 하기도 했고, 신입생때에 이어 다시한번 출전한 덩크슛경연대회에선
정재근에 이어 2위를 차지.. 덩크하는 슛터로서의 이미지를 다시하번 부각시키기도 했죠.
▶ 1992년 1월5일 경향 - 올스타전 덩크슛대회에서 1,2위를 차지한 정재근과 문경은 ◀
기존의 멤버에 이상민까지 가세하면서 역대 최초로 대학팀 농대우승까지 노려보았던 연세대였지만
역시 대학팀에게 농대우승의 길은 험란했습니다.
다만 문경은은 대학선수로는 유일하게 시즌후 시즌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리며
리그의 수퍼스타로 확실히 자리메김해 갔던 시즌이었습니다.
2. 연세대 3학년 시절
문경은이 3학년이 되던 해에는 연세대에 또한명의 걸출한 슛터가 신입생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바로 전희철과 함께 경복고를 이끌던 고교랭킹 4위 우지원이었죠.
문경은에서 시작된 오빠부대가 이상민의 입학으로 더욱 고조되고
우지원의 입학으로 최고조에 달했다고 해도 될만큼
당시 문경은-이상민-우지원 연대 3인방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는데
당시 연대경기마다 직관을 많이 다니던 저로선 여성팬들의 함성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귓대기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한경기 보고나오면 귀가 얼얼했던 기억이.....
암튼 이미 각팀들의 극심한 전담수비들에 시달리던 문경은으로선
우지원의 입학은 자신에게 집중되던 상대의 수비를 좀더 분산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었죠.
▶ 연세대의 일원이된 신입생 우지원 ◀
한층더 강해진 연세대. 이번에야말로 우승을 거뭐질 수 있었을까요?
<1992년 농구대잔치> 주요 경기별 문경은 활약상을 보면
☞ SBS전: 문경은 21득점 / 팀 최다득점
☞ 상무전: 문경은 26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삼성전자전: 문경은 23득점 / 팀 최다득점
☞ 기업은행전: 문경은 27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중앙대전: 문경은 28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명지대전: 문경은 16득점 / 연세대승리
☞ 고려대전: 문경은 26득점 / 팀 최다득점
☞ SBS전: 문경은 33득점(8리바운드)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삼성전: 문경은 31득점 / 팀 최다득점
☞ 기아자동차전: 문경은 33득점 / 팀 최다득점
☞ 중앙대전: 문경은 22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언제나와같이 꾸준한 득점 폭발력을 보여주며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지만
플옵 1차전에서 만난게 하필 당대의 팀 기아자동차...
허동택 트리오를 상대로 문경은이 24득점으로 분전하지만 역시 아직 대학팀 연대에겐
플레이오프의 강자 기아자동차를 무너뜨릴 힘이 부족했습니다.
특히나 골밑에서 든든히 버텨주던 정재근의 졸업은
상대팀들과의 인사이드 대결에서 약세로 들어났고 문경은과 우지원의 외곽포에 의존하게 만드는등
코트벨런스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시즌이었지요.
▶ 1993년 1월 17일 한겨레 - 농구대잔치서 중앙대에 역전승한 연세대 ◀
시즌중반에 열렸던 농구대잔치 올스타전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3년연속 올스타에 뽑힌 문경은은
팀 최다인 26득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농구대잔치시즌이 끝난후엔 2년 연속으로 시즌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리며
SF 포지션 넘버1 랭커로서 여전히 자리메김해 가고 있었습니다.
▶ 1993년 2월 3일 한겨레 - 올스타전에서 강동희와 손발을맞춘 문경은 ◀
농구대잔치 외에도 요 시즌엔 대학팀들간의 대학연맹전이 많이 열렸는데
한때 농구게시판에서 나돌던
" 문경은은 대학시절 김영만만 만나면 항상 꽁꽁 묶이고 김영만에겐 수십점을 내준 김영만 밥이었다 " 라는
새빨간 거짖말을 아직도 믿고계신 분들이라면 이제부터 열거할 문경은의 대학연맹전 기록들중
김영만이 속해있던 중앙대전에서 올린 득점기록을 유심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 봄철(춘계) 대학농구연맹전 ★
☞ 성균관대전: 문경은 17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홍익대전: 문경은 20득점 / 연세대승리 / 6강진출
☞ 고려대전: 문경은 17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경희대전: 문경은 26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동국대전: 문경은 23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중앙대전(결승전): 문경은 29점 / 연세대우승 (엥? 영만이형.. 우째된겨??)
당시 연세대는 대학무대에선 이미 적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서장훈이 입학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리그 최고의 득점기계 김현준을 위협하던 문경은..
리그 최고의 PG로 자리를 굳힌 강동희를 위협하던 이상민..
거기에 우지원, 김재훈같은 준척급 선수들까지 즐비했던 연세대를 막아낼 세력은
대학무대엔 존재하지 않았죠.
★ 종별 농구선수권대회 ★
☞ 고려대전: 문경은 31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경희대전: 문경은 22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중앙대전: 문경은 32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영만이형.. 우째된거냐고??)
☞ 중앙대전(결승): 문경은 34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우승 (영만이형...)
춘계 대학연맹전을 월등한 전력으로 우승한 연세대의 질주는
종별 농구선수권에서도 여지없었습니다. 또다시 중앙대를 결승에서 꺽고 우승을 차지한 연세대..
본 대회에서도 문경은은 가차없는 득점쇼로 2년연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까지 거뭐지게 되죠..
▶ 1992년 6월4일 동아일보 - 종별대회승리로 15연승을 질주한 연세대 ◀
★ 가을철(추계) 대학농구연맹전 ★
☞ 동국대전: 문경은 27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단국대전: 문경은 34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한양대전: 문경은 26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청주대전: 문경은 19득점 / 연세대승리
☞ 명지대전: 문경은 31득점 / 팀 최다득점 / 연세대승리
☞ 경희대전: 문경은 24득점 / 연세대 16연승행진마감
☞ 건국대전: 문경은 24득점 / 연세대승리 / 4강진출
☞ 중앙대전: 문경은 33득점 / 우승좌절 (하지만 영만이형....)
거칠것없는 연승가도속에 춘계 연맹전과 종별 선수권을 연속우승하며
내침김에 추계 대학연맹전까지 제패하여 대학농구대회를 쓸어버리려던 연세대의 계획은
아쉽게 좌절되고 맙니다. 또다시 4강에서 중앙대와 마주쳤는데
문경은이 33득점을 퍼부으며 분전했으나 지원사격을 받지 못하면서
이번엔 중앙대에게 막히고 말았죠.
▶ 1992년 11월14일 동아일보 - 추계연맹전 호조를 이어가는 연세대 ◀
재미있는것은 과거 김영만선수의 '일부' 몰지각한 팬들이 억지로 강조하던
" 문경은은 날고기던 대학시절에도 김영만만 만나면 쪼그라들었다 " 라는 주장입니다.
위의 기록들중 문경은이 중앙대를 상대로 올린 득점 기록만 열거해보면
28득점, 22득점, 29득점, 32득점, 34득점, 33득점.................
한때 문경은과 김영만이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 게시판에서는
누가 더 뛰어난 선수이냐를 두고 팬들간의 논쟁이 벌어지는적이 많았었습니다.
(벌써 십수년전의 일입니다)
당시엔 문경은이 인기로 보나 주위의 일반적인 평가, 언론의 노출빈도등
자타공인 최고의 슛터로 인정받던 시절이었기때문에
문경을을 앞지르는것이 곧 "자신이 응원하는 슛터선수가 최고의 슛터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양 여겨지곤 했었고 그러다보니 문경은은
김영만,우지원,김병철,조상현,조성원 등등 각 선수들이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맞을때마다
각 선수들의 팬들에게 여지없이 공격을 받는 집중포화의 대상이었지요.
헌데 문경은을 깎아내리고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를 치켜올려주고싶은 의욕이 과한 나머니
때로는 새빨간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부'의 사람들도 등장하게 되는데
문경은의 대 김영만에 대한 활약 날조도 그러한 분위기속에서 기인했었습니다.
당시만해도 그것이 날조임을 입증할 인터넷상의 정보들이 부족했고
아직은 폭넓은 농구팬들이 참여하는 게시판문화가 아니다보니
그야말로 새빨간 거짖말이나 낭설등이 여과없이 그데로 '믿어지는' 일들도 허다했지요.
그러한 상황속에서 당시에 형성된 일부 선수들에대한 날조적인 평가나 편견들이
심지어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은채 회자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24년 올드팬으로선 안타까운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선수를 좋게 평가해주기 위해서
괜히 다른선수를 근거없이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하는 행태는
이제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문경은이 연세대의 졸업반이었떤 4학년 시절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
첫댓글 잘 봤음.. 고딩 때는 20~30점은 다 넣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