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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즘(IZM) 개설 6주년 기념 특집 3
"1990년 이후, 우리를 매료시킨 영화음악 TOP 20"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출연배우들의 연기와 전개되는 이야기의 화면에 시각과 지각을 온통 빼앗깁니다. 배경에 깔리거나 이야기의 일부로 나오는 음악들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흘려듣기 마련이죠.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온 후에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를 본 후 소감에 대해 배우나 장면 그리고 스토리의 구성을 가지고 왈가왈부합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그 영화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려 할 땐 누구든지 음악을 먼저 흥얼거리게 됩니다. 배우나 장면의 구체적인 기억은 고사하고 영화의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곤 하는데, 그제야 우리의 연상 작용은 거기에서 나온 음악의 영감을 가동시킵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스코어나 삽입된 노래를 통해 영화를 재생하고 제목과 장면을 알아맞히게 되는 거죠. 마치 게임을 하듯 말입니다. 그만큼 영화에서 음악이 주는 환기성은 그 무엇보다 강합니다.
영상과 함께 필름의 트랙을 함께 달리는 음악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신체를 때리기도 하고, 마음을 쥐락펴락 긴장을 주고 이완시키면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소리로 전달합니다. 시각만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심리적 분위기를 음악이 만들어줌으로써 영화의 등장인물과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전반적인 스토리를 축약해 암시해 주기도 합니다. 수없이 극장에 걸리는 국내외 영화들 중에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 음악은 뭐가 있을까요. 고전(Classic)이라 칭할 아주 오래전 영화음악부터 고르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개봉 된 영화로 시점을 한정하면 우리세대가 좋아한 영화음악으로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대략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격세지감도 줄이면서 공감대도 넓힐 수 있게 말입니다. 이런 취지하에 이즘(IZM)은 개설 6주년을 맞아 '1990년 이후, 우리를 매료시킨 영화음악 TOP20'설문을 실시했습니다.
시네마서비스 김인수 대표이사,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 MK픽쳐스 이은 사장님과 심재명 이사, 이무영 영화감독, 오동진 문화평론가, 전찬일, 김봉석, 김영진, 심영섭, 황영미, 강유정, 김시무, 강성률(이상 영화평론가), 방준석, 이동준, 장영규, 한재권, 이한나, 박기헌(이상 영화음악감독), 남완석 우석대 영화과 교수, 성우진 음악평론가, 진현숙, 한재희, 정우식(이상 방송 프로듀서), CBS 신지혜 아나운서 등 영화/음악계에 종사하시는 전문가 29분이 도움을 주셨고, 방장 임진모, 편집장 이대화, CBS 작가 소승근, EBS 작가 안재필, 음악평론가 고영탁, 음악잡지 인터네셔널 피아노 수석기자 윤석진, 음악평론가 배순탁을 비롯한 이즘의 필자들 15명이 참여해 모두 45명이 이 설문에 응해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의견을 주신 연세대학교 영화동아리 '프로메테우스'와 건국대학교 영화동아리 '햇살'을 포함,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래 표 참조)
앙케트 방식은 먼저 1990년 이후 개봉된 영화들 가운데 60편의 영화를 추렸고 여기에 41명 설문참여자가 후보목록에 없더라도 자신이 베스트로 생각하는 작품을 포함해 10편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간단한 선정이유도 주문했습니다. 이 결과를 통해 표를 많이 얻은 20개의 작품을 집계해 '톱20'을 정했습니다. 2회로 나눠 게재하겠습니다. 먼저 20위에서 10위까지, 다음에는 1위에서 10위까지입니다. 우리 시대의 좋은 영화음악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시고 설문결과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1996) - 24표
전 세계의 인터넷세대를 열광케 한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원동력은 에피소드별로 대담하게 엮어 놓은 영상의 간명한 호흡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어빈 웰시(Irvine Welsh)의 원작 컬트 소설의 문체를 음악으로 절묘하게 대입한 대니 보일(Danny Boyle)감독의 탁월한 선곡이었다. 주인공 렌튼(이완 맥그리거 분)을 핵심멤버로 비행을 일삼으며 현실 도피적 환각에 찌든 스코틀랜드 정키 공동체의 일상에, 동시대 청춘들의 '낙오자적 반항기'를 반영한 음악을 주입함으로써, 영화의 내재적 의미를 음악 전반의 감성과 통합해 시각과 청각의 통일성을 구현해낸 것이다. “새로움과 파격”(김인수 시네마서비스 대표이사)
각기 다른 트랙을 달리는 영상과 음악, 그 자체가 곧 일심동체였다. 가사와 장르적 분위기가 주는 느낌은 물론 영국출신으로 대동단결한 뮤지션들의 면면까지, 영화의 이야기를 관통한 음악은 강력한 마약성으로 관객의 중추신경을 마비시켰다. 현실의 반대편을 향해 거꾸로 질주하는 청춘들의 '삶에 대한 반항적 욕망'을 속도감 있는 영상으로 표현한 오프닝 시퀀스, 거기에 쾌속 리듬을 쳐주는 이기 팝(Iggy Pop)의 'Lust for life'(1977년, 122위) “너바나니 펄잼이야 충분히 추앙받고 있었지만 Smiths의 음악은 천대받던 시절 이 사운드트랙은 모던록과 일렉트로니카를 대중화시킨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왜 메탈리카를 제치고 괴상한 이름의 노인네가 그래미를 받는거야??”라고 메탈다이하드들의 저주를 받던 이기 팝을 제 위치에 돌려 놓았던 영화이기도“(한재희 MBC프로듀서)를 위시해 환각상태에 빠진 렌튼(이완 맥그리거)에게 음악적 약물을 투여하는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1972) 그리고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Deep blue day'(1983)는 영화의 메타포를 장면과 함께 가장 극렬하게 전해준다. ”폭발하는 젊음의 에너지를 보여준 음반”(강성률 영화평론가)
특히 'Perfect day'는 우울한 습기를 머금은 세대의 감성에 접속되면서 'Pale blue eyes'(영화 <접속>의 삽입곡)와 함께 루 리드를 완벽 재생시켰다. 국내 음악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며 '쉰'세대가 된 그가 마침내 영화를 통해 '신'세대들과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음습한 땅속에 묻혀있던 그는 영화로 두 번 살아났다. 또한 그룹 언더월드(Underworld)의 몽환적 아우성 'Born slippy'는 지구촌 젊은이들을 댄스플로어로 끌어들이며 일렉트로니카(Electrinica)로 통칭되는 신(新)전자음악의 폭발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른바 얼터너티브 록 이후의 '모던 록'이 새 트렌드로 부상하는데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영화와 대중음악의 탁이(卓異)한 매체적 결합이 MTV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들의 불투명한 미래보다 확실한 절망을 선택하는 반항의 감정에 적확히 플러그인 된 '네오-이유 없는 반항'은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불리며 지구촌 피 끓는 청춘들에게 하나 된 연대의식을 이식시켰다.
- “뮤직비디오로 봐도 될 만큼 음악의 비중이 크고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줌”(황영미 영화평론가)
- "현대 대중음악과 대중영화의 감성이 기막히게 조응했던 경우"(김영진 영화평론가)
2. <접속>(1997) - 20표
삽입곡이 무더기로 히트하면서 영화음악음반(OST) 시장 활성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 “선곡도 훌륭한 '제 2의 창작'임을 입증한 작품이다.”(이무영 영화감독)
- “삽입곡이 왜 중요한지 한국영화계에 알려주었다”(김봉석 영화평론가)
- “이 음반으로 인해 1990년대 이후 영화음반도 팔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었다.”(강성률 영화평론가)
- “가요 OST=팝 컴필레이션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낸 작품”(안재필 EBS라디오작가)
우선 영화 전편을 사로잡고 있는 주제곡일 뿐더러 동현과 수현의 만남을 가능케 했던 곡이 바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다. 루 리드의 낮게 뱉어내는 보컬이 문득 가슴을 저미는 이 곡은 동현에게 있어서 옛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의 노래이자 새로운 사랑을 예감케 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이 곡에 대한 호응은 마니아들을 제외하고 대중들에게는 기억 저편에 묻혔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오버그라운드로 이끌어 낸 장본인. 영상이 갖는 파급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이즘 박효재)
컴퓨터를 통해서만 얘기하던 두 사람이 처음 서로를 확인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을 아름답게 감싸 안던 곡은 바흐의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노트북'을 팝으로 편곡해 1965년 토이즈에 의해 히트한 'A lover's concerto'. 여기선 1966년에 이 곡을 리메이크한 재즈 여가수 사라 본(Sarah Vaughan)의 노래가 삽입되었다. 그녀의 호소력이 강한 보컬은 해피엔딩 속에서 빛을 발한 이 곡을 단숨에 최고 애청 레퍼토리로 만들었다.
- “올디스 명곡들을 열곡 스무곡씩 담은 헐리웃 OST보다 더 매력적입니다. 10년전, 피카디리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밤, 영화관 앞에 정말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네요. IMF가 들이닥치기 직전, 사라본의 음성이 리어카에서 메아리치던 종로 거리는 참으로 로맨틱했습니다. How gentle is the rain!”(한재희 MBC프로듀서)
영화 속에 삽입된 모든 노래를 잘 골라낸 사람은 국내 최초의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평가받은 조영욱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음악 감독 조영욱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영화. 음악이 영화의 보조요소가 아니라 영화의 정서를 가늠해주는 주요 표현요소라는 걸 각인시킨 작품”(김영진 영화평론가) 그는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개념이 확실하게 서 있지 않은, 그래서 여전해 뜨거운 감자처럼 민감한 문제로 남아있는 저작권 문제에 정면 도전, 쓰고 싶은 음악들 고른 뒤 인접권을 가진 레코드사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선곡된 곡의 저작권 등을 해결, 모범을 보인 케이스. 뮤직비디오, OST등 선곡을 개봉 전 홍보 등 여러 가지가 돋보였던 영화”(유인택 기획시대 대표) 전례가 없었던 저작권 획득과정으로 새로운 영화음악 풍토를 일궜다는 점도 이 영화가 남긴 발자취일 것이다. 이후 무수한 국내 영화가 <접속>의 예를 따랐다.
3. <물랑 루즈>(Moulin Rouge, 2001) - 19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의 부속장치가 돼버린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음악은 영화와 중력에 있어서 평행선을 긋는 경우가 많다. 할리우드와 볼리우드의 버라이어티 쇼적 요소가 융합된 영화 <물랑 루즈>는 음악이 영화와 균형을 이룬 로맨틱 뮤지컬 작품. 그만큼 영화음악이 기막히다. “최상의 스펙터클과 최상의 음악들의 향연”(전찬일 영화평론가) '물랑 루즈'는 무희들의 힘찬 캉캉 춤으로 보통명사가 된 파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의 환락클럽이다. 영화도 여기서 벌어지는 클럽의 주역 여가수와 한 시인의 운명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명작을 현대식으로 업데이트한 <로미오+줄리엣>(1996)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rmann)은 영상을 지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랑 루즈가 연상시키는 역동성과 그 이름이 갖는 전통성을 음악에도 고스란히 구현했다. 따라서 영화 사운드트랙은 친숙한 곡을 이 시대에 맞춘 최신 사운드로 재활해냈다. 기성세대들은 과거 젊었을 때 들었던 멜로디들이 잇따라 나와 즐겁고, 신세대들은 그게 언제 적 노래인지는 몰라도 최신의 강렬하고 웅대한 사운드라서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팝, 뮤지컬, 클래식이 융해된 하이브리드 상상력의 집합”(강유정 영화평론가)
앨범이 미국에서 1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갈 정도로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여기에 삽입된 곡 'Lady marmalade'가 빌보드 팝 차트 정상에 오르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덕이다. 이 노래는 원래 1975년 여가수 패티 라벨이 히트시켰던 올드 팝으로 오리지널을 그대로 삽입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한창 잘 나가는 여가수들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릴킴, 마야, 핑크 등 4명이 합창해 불렀다.
이처럼 옛날 노래를 최신식 편곡으로 리메이크해 요즘 가수를 붙이는 방식으로 사운드트랙을 구성했다. 엘튼 존의 노래로 유명한 'Your song', 호세 펠리치아노가 불렀던 'Nature boy', 디바지의 히트곡 'Rhythm of the night' 등을 요즘 가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심지어 'Elephant love medley'에는 폴 매카트니의 'Silly love song' 필 콜린스의 'One more night' 등 무려 팝 고전 10곡을 샘플링해 기성세대들은 '내가 아는 곡이 얼마나 나오는지' 따져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직접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속삭이는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의 열정이 관객들의 속내를 달아오르게 만들었지만, 클럽 무희들이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를 합창하는 장면의 흥분과 열기는 실로 엄청난 기세로 우리를 넉 아웃시켰다.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는 뮤직비디오같은 뮤지컬이죠. 영화 속에는 당연히 '노래'가 흐르는데 그 '노래'들은 우리 귀에 익숙한, 우리가 잘 아는 곡들이고 그 '노래'들이 영화 속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롭게 들여지며 신선함을 줍니다. 영화만큼 화려하고 풍성한 사운드 트랙”(CBS 신지혜 아나운서)
4. <올드 보이>(2003) - 18표
박찬욱 감독이 유럽의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영화. 최면성과 고독 그리고 음울함의 정서가 영화를 지배한다. 이는 두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일치시키는 테마음악으로 나타난다. 오대수를 최면상태에 빠뜨리는 신호음과 조건반사를 유발하는 휴대폰 벨소리 그리고 우진의 테마('Cries and whispers'-스웨덴 명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72년작 <외침과 속삭임>을 모티프로 함)가 그것.
“우진의 과거를, 그 속에 묻힌 아픔을 위로해 주듯 우아한 왈츠풍으로 흐르는 우진의 테마 cries of whispers라든지, 섬세한 우진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대수의 혼란스러움과 이겨보이겠다는 강함을 은근하게 드러낸 대수의 테마 the old boy, 그리고 모든 비극을 끌어안은 채 영화의 마지막을 다독거리는 미도의 테마 the last waltz를 세 축으로 영화 곳곳에서 적시 적때 모습을 드러내는 음악은 영화 <올드 보이>의 거울상이 아닐까.”(CBS 신지혜 아나운서)
이 테마(이지수 작곡)는 이내 수아와 미도의 테마(음악감독 심현정 작곡)로 변주되며 오대수의 테마(심현정 작곡)와 얼개를 이룬다.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 특히 심현정 음악감독이 작곡한 'The last Waltz(미도의 테마)'는 쉽게 기억되는 멜로디와 깔끔한 편곡으로 인해 많은 영화음악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박기헌 영화음악감독) 애상적인 왈츠풍의 메인 테마는 곧 우진과 수아 그리고 오대수와 미도가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장도리로 이빨을 뽑는 폭력적 장면에 삽입된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과 함께 이율배반적으로 설정된 클래식 메인테마는 영상과의 대위법을 구현내면서 충격을 배가시킨다. “BG로서 음악 효과와 대위법적 음악 효과의 절묘한 조화. 비주얼의 불쾌함을 상쇄시킬 줄 아는 음악 연출”(전찬일 영화평론가)
- “이 영화에 음악이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끔찍하다”(강성률 영화평론가)
관객의 허를 찌르는 내러티브와 역설적 음악의 삽입은 조영욱 음악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서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영욱과 박찬욱의 세련된 음악 감성이 조화를 이룬 좋은 예로 추천. 연출자와 음악감독으로서 이들만큼 호흡이 잘 맞는 쌍도 없을 것“(김영진 영화평론가) 음악적 폭력미학의 절정'이라고 할까. 그밖에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스코어는 일렉트로니카와 웨스턴풍의 서정적 멜로디가 적절히 융화되어 배경을 장식한다. 오대수의 고독을 상징하는 트럼펫 솔로와 영화의 미스터리와 음산함을 미니멀하게 표현한 아르페지오 전자음 그리고 샘플링의 앰비언트적 배합이 주인공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기도 하고 영화의 전개를 돕는다.
5.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 16표
< 와이키키 브라더스 >는 밤무대 3류 밴드의 애환과 페이소스를 다룬 '음악영화'다. 영화에 대한 기억과 다시금 추스르게 되는 감동을 바로 음악이 지휘한다.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곡들은 알다시피 1980년대를 풍미했던 곡들의 커버 버전들이다. ”1980년대의 대중음악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음악과 현실적 삶의 고단함을 적절하게 연결한 작품“(강성률 영화평론가)
밴드의 맏형인 성우(이얼)가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송골매의 '세상만사', 오지혜의 보컬 기교가 돋보이는 심수봉 오리지널 '사랑밖에 난 몰라' 등 상당수가 지금은 성인이 된 세대의 심금을 자극한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은 그 시절의 노래가 조금이라도 스친 사람들한테는 너무도 반갑고, 마치 헌정되듯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성상(星象) 김현식이 불렀던 '회상' '사랑 사랑 사랑' '빗속의 연가' 등이 거푸 흘러나온다.
음악역사는 언제나 소외 속에 피어나는 '무명의 음악 혼'과 음악대가가 선사하는 '예술적 완성의 경지'가 평행선을 달린다. 이 영화가 택한 것은 전자요, 그것이 아마추어리즘의 미학일 것이다. 그 아름다운 미완성의 노래들과 함께 극중 성우의 고교동창인 수철이 술자리에서 툭 던지는 “행복하니? 그렇게 하고 싶던 음악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구!"라는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지나간 좋은 것을 추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성이 현재화된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음악으로서 주장한 예"(김영진 영화평론가)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건....그야말로 천형이 아닌가! 그런 당신에게 작가가 던진 질문은 “그래서 넌 행복하니!!”(CBS 정우식PD)
6.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 - 15표
영화 < 포레스트 검프 >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1950년~70년대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 속으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를 투입시킨다. 단지 지능이 낮을 뿐인 검프의 희극적인 활약상과 드라마를 지켜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흐뭇한 감동을 받게 되지만 그러한 영화의 역사성을 적확히 대변해주는 영화음악이 아니었다면 그 시대를 되돌아보는 향수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격변기의 중요한 팝 넘버들을 총망라한 사운드트랙. 양이나 질이나 다 압도적이다”(이무영 영화감독)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Hound dog'(1956)를 비롯해 밥 시거의 'Against the wind'(1980)까지, “밥 시거의 'Against the wind'를 포함 6,70년대의 명곡을 총망라했기 때문.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이 시대 음반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인 측면도 있음”(오동진 문화평론가)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노래들은 당시의 시대적 감성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일단, 엄청난 수록 내용이 웬만한 컴필레이션 앨범 정도는 간단히 능가한다.'포레스트 검프'의 어린 시절 때부터 늙기까지 그 시대와 문화 트렌드를 대변하는 음악들이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하는 탁월한 선곡이다”(성우진 음악평론가)
사운드트랙 위를 달리는 올디스 넘버들은 가히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미국 '대중음악사'라 할 만하다. “간추린 1950년대 이후 미국과 미국의 음악역사!”(임진모 음악평론가) “이 사운드트랙은 쪽집게 과외 선생처럼 팝 역사를 총정리해준다”(소승근 CBS라디오작가) 그 곡들이 나오는 순간이 기막히게 절묘하다. 역사적 현장이나 극중 중요한 장면일 때면 언제나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노래, 또 그 시절의 히트곡들이 어김없이 흘러나와 시공간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Alan Silvestri 의 드라마를 끌어가는 음악도 좋지만, 시대를 비춰주는 여러선곡들이 기역나는 영화”(방준석 영화음악감독)
베트남전 출정 때는 도어스의 'Break on through(To the other side)'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Respect'가 반전과 저항의 소리를 대변하고, 여자친구 제니가 히피들의 천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장면에서는 스콧 매켄지의 'San Francisco(Be sure to wear some flower in your hair', 이별 장면에서는 버즈(Byrds)의 'Turn turn turn',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TV장면에서는 피프스 디멘션(Fifth Dimension)의 'Medley: Aquarius/Let the sunshine in'이 절묘하게 흘러나와 극의 이해를 돕는다. 당대에 획을 그은 수많은 고전 팝음악들이 올드 팬들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포레스트 검프가 온몸으로 관통하는 바보 같은 미국 현대사 속에서,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미국 팝 역사의 풍요로운 만찬”(이즘 김태형) 엘비스 프레슬리와 어린 포레스트 검프가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은 특히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Hound dog'에서 보여줬던 프레슬리의 골반 춤이 포레스트 검프의 불편한 다리를 보고 따라한 것이라는 영화의 유쾌한 우화적 해석.
7.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2000) - 14표
스테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엇>이 영국영화라는 것은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음악들로 단번에 알 수 있다. 스웨덴 출신의 이글 아이 체리를 빼고는 전부 영국 가수들의 곡으로 배경음악을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영국 노래가 대부분이라서, 그것도 1970-80년대에 발표된 올드 레퍼토리들인 다수인 탓에 다소 낯설지는 모르지만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갈수록 소외되고 있는 영국음악을 영화로 접할,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이 이 영화음악의 최대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영국인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만큼이나 음악에 훈훈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두 음악가가 남긴 명곡이 사운드트랙의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그룹 T-렉스를 이끈 마크 볼란(Marc Bolan)과 폴 웰러(Paul Weller)라는 인물이다. 마크 볼란은 1970년대 초반 '글램 록' 열풍을 일으켰으나 1977년 나이 서른을 앞두고 요절해 영국인들이 두고두고 기리는 인물. 발레 소년을 다룬 내용에 맞춰 사실상의 영화 테마 곡도 그의 노래 'Cosmic dancer'로 설정했다. 유명한 곡 'Bang a gong(Get it on)' 뿐 아니라 그룹 초기의 동화적 경향을 대변한 곡 'Ride a white swan'이 수록되어 매니아들을 솔깃하게 한다. “펑크와 발레의 절묘한 만남”(고영탁 음악평론가)
상대적으로 생소한 이름인 폴 웰러는 자신의 그룹 '더 잼'을 전성기에 해체해 순수성을 지켰다는 점에서 영국에서는 절대적으로(심지어 폴 매카트니와 엘튼 존보다 더) 숭앙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는 나중 그룹 '스타일 카운실'과 이후 솔로활동으로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렸다. 또한 웰러와 볼란 음악이 선택된 것은 영국 북부 광산촌을 무대로 하는 영화와 공히 '북부 소울'을 지향했던 둘의 음악이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흡수력이 높은 이 사운드트랙의 미학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본다. “영국 대중문화의 힘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영화만 놓고 보면 미국은커녕 프랑스보다도 후진국일지 모르지만 이른바 사회파 영국영화들에는 촌스런 리얼리티가 주는 매력과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에는 어김없이 영국산 명곡들이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 “나는 열두살 때 춤을 추고 있었네~” 마크 볼란의 목소리에 맞춰 빌리가 침대 위에서 펄쩍거리던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제 인생 최고의 오프닝 신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한재희 MBC프로듀서)
8. <킬 빌>(Kill Bill, 2003) - 13표
불혹의 나이를 넘어 만든 쿠엔틴 타란티노의 < 킬 빌 >(Kill Bill Vol. 1)은 시나리오 작업과 영화 연출 그리고 배우로 활동하면서 갈고 닦은 솜씨와 재기를 스크린에 몽땅 쏟아 부은 야심작. 이 작품에서도 타란티노의 B급 영화적 감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으로 불리는 흑인 액션영화를 비롯해 마카로니 웨스턴,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 홍콩 쇼브라더스의 쿵푸영화, TV 형사/탐정 액션물 등에 이르기까지 인종, 사회, 문화적으로 훨씬 더 종 다양성을 갖춘 영화 내적 장치들은 지금까지 그가 선보인 것들 중 최고의 통합적 산물임을 과시한다.
“영화건, 음악이건 모든 대중문화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어떻게 시대를 넘어서도 생존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를 보여준 영화”(김봉석 영화평론가)
선곡능력이 탁월한 그는 영화 <킬 빌> 역시 다분히 개인적이고 키치적이나 청각적 기재를 통해 관객들을 스타일리시한 영화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중음악들을 기막히게 삽입해놓았다. 다소 장면전개와 부정합을 보이기도 하지만 '퇴행적 복고'의 산물인 영화의 시각요소를 강화하는 복고풍 음악들이 줄창 흘러나온다. 그러한 삽입곡들은 장르적 편린들이 몽타주처럼 뒤섞인 작품에 시공간적 배경을 확인시키거나 심리적인 묘사 또는 영화의 진행감을 도우면서 관객들이 동일한 감성적 토대를 구축하도록 만든다.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킬 빌>은 지난 시대에 대한, 퇴색된 장르에 대한 오마주. 기존의 멋진 곡들도 수록돼 있지만, 웨스턴 무비 스타일의 스코어곡들은 <킬 빌>이 갖는 의미와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CBS 신지혜 아나운서)
다양한 요소들이 집적돼 통일적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처럼 비장미가 흐르는 올드 팝에서부터 로커빌리, 힙합, 엔카, 팝 디스코, 로큰롤, 팝 연주곡,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B급 형사 액션물, 스파게티 웨스턴, 사이코 스릴러 테마음악까지 상 하위 장르적 특성이 명확한 곡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 되어있다. “상당 부분 낸시 시나트라의 'Bang Bang'과 케이코 카지가 부른 엔카 'The Flower Of Carnage'때문.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처럼 잡스러운, 믹스드된 음악 센스가 돋보이는 별스런 OST라는 점에서”(오동진 문화평론가)
-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곡들이 내용이나 화면과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타란티노 감독은 삐딱한 천재다.”(소승근 CBS 라디오작가)
사운트랙에 삽입된 곡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나 다름없다. 다채로운 음악의 편린들이 흩뿌려져있지만 전혀 산만하거나 영화의 집중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팝 음악이 등장할 때는 그 자체로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내러티브에의 몰입이 그만큼 느슨해질 수 있지만 타란티노는 이를 잘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대중문화 큐레이터로서의 감각이 돋보였던 음악”(김영진 영화평론가)
9.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2003) - 12표
아는 가수라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퍼프 대디, 라이자 미넬리일 수밖에 없는 한 엘리트 초등학교 학생 교실에 '가짜 보결교사' 잭 블랙이 주도하는 유쾌한 '록의 반란'이 일어난다.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것,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해대는 것, 그것이 바로 록이다! 록의 본질은 바로 저항과 자유임을 유머러스하게 설명하고 있다. 록 스피릿을 목청껏 외치는 잭 블랙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다가도 한편으로 측은해 보인다. 아마도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현재 록의 처지와 닮아서일 것이다. 화려했던 록 역사의 끝자락을 부여잡은 모양이 퍽 안쓰럽다.”(이즘 박효재) <스쿨 오브 락>은 록이라는 매개물로 학생들이, 제도적 환경을 가리키는 '맨'을 딛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고 뚱뚱하지만 열정적이고 우악스런 잭 블랙, 그의 실제와 이미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 영화는 록이 갖는 여러 코드들을 곳곳에 깔아놓으면서 일단은 학생들에게 공동체의식, 용기, 자신감을 불어넣는 쪽으로 메시지를 몰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감동을 위한 장치일 뿐 아니라 사실 록의 지향이기도 하다. 잭 블랙이 칠판에 록의 계보와 면면들을 가득 써놓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 하나로 충분하듯 영화음악 또한 록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애 가장 웃긴 영화 베스트 10에 꼭 들어갈 영화일 것입니다. 흐르던 음악말고도 듀이 선생(잭 블랙)이 천거하던 그 엄청난 음반들이며 교장선생님을 흥분시킨 스티비 닉스까지, 록음악의 세계로 사람을 꼬시기에는 이만한 영화가 없습니다. 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야 이외에도 많지만, 이 음악만큼 정말 록 매니아들의 주체하지 못할 땀냄새를 스크린 밖으로 전해낸 영화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한재희 MBC프로듀서)
후(The Who)의 'Substitute', 도어스의 'Touch me',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 모던 러버스의 'Roadrunner', 라몬스의 'My brain is hanging upside down'와 같은 록 역사를 수놓은 보석들이 줄지어 스크린을 잠식하며 흐른다. “평론가들의 평가가 어찌됐든, 영화의 가치가 어쨌든 이 영화는 너무나 '완소'작품이다. 잭 블랙의 명연기에 의해 'Rock'은 멋지게 승화한다. 록음악을 조금이라도 안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 영화의 마력에서 헤어날 수 없으리라...영화 곳곳에서 흐르는 Led Zeppelin, Cream, The Doors, Stevie Nicks등의 선곡은 절묘하다.”(성우진 음악평론가) “
여기에 등장하는 레퍼토리들, 방 벽면을 장식하는 포스터들, 그리고 잭 블랙이 쏟아내는 대사를 꼼꼼히 연구한다면 '간추린 록의 역사'를 더듬는 기회도 될 것이다. 이를테면 록의 텍스트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 그만큼 메탈, 글램, 소울 그리고 펑크를 망라한 정통의 록 흐름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만약 영상으로 록을 알려거든 이 영화를 보라.”(임진모 음악평론가) 키팅선생의 <죽은 시인의 사회>보다 덜 심각하고 록을 콘텐츠로 한다는 점에서, 록 팬들에게는 즐겁고 반가운 영화요, 영화음악이다.
10. <필라델피아, 1993>(Philadelphia) - 11표
'Street of philadelphia'를 노래한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오스카트로피를 거머쥐며 시그니처 송의 위력을 만방에 과시했지만 영화의 진한 감동은 닐 영(Neil Young)의 노래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와 동일한 제목의 노래 '필라델피아'는 그만큼 매혹적이다. 흐느끼는 피아노 선율과 슬픔을 머금은 닐 영의 음색은 마음 속 깊은 곳을 아리게 만들 정도. “주인공의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병실에서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장례식 장면에서 나오는 'Philadelphia'와 함께 또 다른 삽입곡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Street of Philadelphia'는 심금을 울린다.”(오동진 문화평론가)
프로듀서로부터 '서던 맨'의 느낌과 유사한 노래를 주문 받은 영은 기타 록 대신에 가슴 시린 피아노발라드로 화답했다. 주인공 앤드류 백켓(톰 행크스 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도시의 쓸쓸함이 곡의 저류를 타고 흐른다. 두 록음악 거장의 진심어린 노래는 보수적인 아카데미마저 감화시켰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Streets of Philadelphia'와 닐 영의 'Philadelphia'(이 제목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만으로도 충분하다.”(이무영 영화감독)
사회적 편견과 자신의 처지를 고뇌하는 변호사 앤드류를 위무하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아리아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의 눈물어린 호소도 잊을 수 없는 영감을 준다. <양들의 침묵> 이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 감독과 다시 의기투합한 하워드 쇼어(Howard Shore)의 온화한 심포닉 스코어와 함께 우리들의 영혼과 심금을 울린 영화음악.
10. <8마일>(8 Mile, 2002) - 11표
< 원더 보이스 >(Wonder Boys)로 밥 딜런(Bob Dylan)에게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안겨준 커티스 핸슨(Curtis Handson) 감독 작품. 2002년, < The Eminem Show >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고 'Without me' 와 'Cleaning out my closet'로 대중음악계 스타로 급부상한 에미넴(Eminem)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호평을 얻어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자전적 영화인만큼 에미넴 그 자신의 내면과 경험에서 절로 나오는 소리를 담은 <8 마일>의 사운드트랙 또한 빌보드 앨범 차트를 호령하며 삽입곡인 'Lose yourself'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놨다. 내친김에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거머쥐는 영예를 누렸다. 한마디로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친 격, 랩 스타 '에미넴의 에미넴에 의한 에미넴을 위한' 쇼였다. “에미넴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았고, 또 그가 마지막으로 '쿨'했던 시절에 대한 기록이기도 한 이 음반 이후 그가 음악적으로나 스타일에 있어서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역시 이런 유의 아티스트는 과거를 돌아보는 시점에서 매력이 사라지나 보다.”(김태서 웹진 '웨이브' 편집장)
꼬깃꼬깃 접혀 있는 라임 노트 위에 빼곡히 적힌 글씨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힙합 비트는 주인공 래빗의 랩을 향한 열정과 그 이면에 버티고 있는 거친 삶과 생활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다. 고장 난 차를 수리하던 중 엄마의 트레일러 집에서 흘러나오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Sweet Home Alabama'를 샘플삼아 래빗과 그의 친구 퓨처가 즉흥으로 가사를 바꿔 노래를 부르고 랩을 하는 모습은 힙합의 매력 중 하나이자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인 프리스타일 랩을 가장 즐겁게, 가장 친밀하게 묘사한 장면 중 하나다. “오, 에미넴! 예술적 경지의 랩을 구사하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감을, 마지막 배틀 신에서는 자신감 충만한 래빗의 심리를 대변해주는 몹 딥(Mobb Deep)의 'Shook One Pt. II'는 가사로서나 음악으로서나 랩 배틀의 공격적인 분위기를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음악이었다. “허튼 수작은 집어 치워라. 뇌관 가득 총알을 집어넣고, 혈관 가득 분노를 채워 넣어라. 에미넴이 왔다. 강렬한 펀치처럼 세상을 샌드백 삼아 두드리는, 에미넴의 랩은 불로 빚은 시이다. 물로 만든 언어의 강이다.”(심영섭 영화평론가)
- 힙합이 무엇인지를 음악과 영상의 완벽한 조화로 들려준다.(김봉석 영화평론가)
※ 같은 표를 얻은 동순위는 영화개봉시기를 우선순위로 결정했습니다.
● 공동 12위.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1998) - 10표
토드 헤인즈(Todd Haynes)감독은 본격적인 글램의 드라마 <벨벳 골드마인>을 주조해내 글램을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닌 엘니뇨로 끌어올렸다. 당연히 영화음악은 당시 글램 록을 선도한 뮤지션들의 보석을 포괄하고 있다. '글리터 록'과 혼용되고 있는 글램은 음악적으로는 다소 세련된 하드 록일 뿐이다. 간결한 일렉트릭 기타 리듬을 앞세우지만 형식이나 사운드 볼륨이나 그리 특별난 것은 아니다. 중심은 글램 록을 하는 사람들의 외적인 측면에 있다. 금빛 찬란하고 미래적인 의상과 장식으로 치장하고 짙은 화장이 특징이다. 그 모습은 다분히 양성(兩性)적이다. 글램 록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이 대목에 드리워진 '성 관념의 파괴'에 있다. “글램 록,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크리스찬 베일, 이완 맥그리거. <벨벳 골드마인>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었거나 떠올랐거나 다른 면을 보여준 이들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낯선 장르, 글램 록이었지만 그 저속한 듯 현란하고 관능적인 글램 록이 영상 속에 부활하면서 사운드 트랙 또한 멋지게 구성되었다.”(CBS 신지혜 아나운서)
글램은 개인적 성향이었지만 이러한 기성의 가치에 대한 도발과 전복의 자세가 웅크리고 있어 바로 뒤에 출현하는 공격적 펑크로 연결되는 이음목이 되었던 것이다. 이기 팝이 글램의 아티스트로 분류되면서도 '펑크의 대부'로 통하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펑크가 되살아나 펄펄 날고 있다면 글램이 재조명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글램 록을 빛낸 주역으로는 T 렉스의 마크 볼란, 개리 글리터, 뉴욕 돌스 그리고 브라이언 페리의 록시 뮤직이 꼽힌다. 그러나 글램에 대한 접근의 기초는 데이비드 보위다. 그의 당시 작업 파트너인 브라이언 이노가 그의 영향권 아래 글램 서클에 들었으며 빈둥거리고 있던 루 리드나 이기 팝의 기를 다시 세워준 인물 또한 데이비드 보위다. <벨벳 골드마인> 역시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의 밀월 관계를 모델로 삼고 있다. 실상 보위는 이기의 팬이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 실제 보위와 이기의 노래를 들을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데이비드의 분신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와 이기의 분신 커트 와일드(이완 맥그리거 분)가 함께 한 밴드 '비너스 인 퍼스'와 '와일드 라츠'가 그 부족분을 다소 과장된 환상적 무대 퍼포먼스와 더불어 메워주고 있다. 글램을 알고 싶은 팬들에게는 필수적인 음악영화다.
<시카고>(Chicago, 2002) - 10표
미국의 대표적인 오락이자 쇼 비즈니스의 중추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 <시카고>는 1975년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명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영화는 토종 1920년대의 시카고 뮤지컬 재즈를 들려준다. 주연배우들인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그리고 리처드 기어가 직접 노래했다는 사실이 화제를 넘어 사람들의 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스토리를 따라 음악을 즐기는 통에 관객들은 뮤지컬 재즈라는 친근하지 않은 음악임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뮤지컬 영화로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굉장한 박동과 이완을 동시에 살아있다. 캐서린 제타 존스의 노래와 춤으로 시작되는 'All all that jazz'를 위시해 래퍼 퀸 라티파의 재능이 빛나는 'When you're good to mama', 여죄수들의 기구한 사연 'Cell block tango' “뮤지컬 재즈의 전형이라고 할 프레드 엡과 존 캔더의 음악. 그중 감옥에서 여죄수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부르는 'Cell block tango'는 압권.”(임진모 음악평론가), 마지막 르네 젤위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이중창 'Nowadays/ hot honey rag'는 압권. 역시 둘이 솜씨를 발하는 엔드 타이틀의 'I move on'도 괜찮다. “현란 황홀하다. 춤과 잘 어우러진다.”(김시무 영화평론가)
이 곡들은 오늘날의 뮤지컬 재즈가 그 원형인 뉴올리언스 재즈부터 피아노 리듬음악인 랙타임, 프랑스의 카바레, 스페인의 탱고 등 여러 요소가 융합되어 발전되어온 것임을 다시금 일러준다. 뮤지컬이 음악, 노래, 무용, 연극이 결합된 종합무대예술이라는 것을 재인식시켜주는 영화 그리고 음악.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노래와 춤”(남완석 우석대학교 영화과 교수)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 10표
남자들의 사랑이라는 워낙 강한 소재가 화제이지만 이안 감독 스스로 말했듯이 영화를 저류하는 메시지는 성을 넘어서는 인간 본연의 고독이다. 마지막에 홀로 사는 에니스(히스 레저)가 찾아온 딸에게 결혼식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알린 후 옷장에서 잭(제이크 질렌할)의 옷을 보고 '맹세'하는 장면에 감아 도는 왠지 모를 외로움은 삶을 옥죄는 가변적이고 계량화되어가는 이성 간 사랑행태에 조그만 경종을 울린다. “21세기형 '이뤄질 수 없는 사랑'”(CBS 정우식PD)
20년을 관통하는 잭과 에니스의 결코 쉬 밝힐 수 없는 사랑은 숨소리가 낮고 처연할 수밖에 없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구스타브 산타올라야(Gustavo Santaolalla)가 담당한 영화음악도 여기에 과녁을 조정했다. 둘의 금기된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상호 감정을 표현하려면 음악은 서정적이되 처연한 분위기를 담아내야 한다. "두 남자의 이해받지 못한 사랑을 함께 따라갔던 음악"(김영진 영화평론가)
핵심은 그래서 실상 엔드 크레딧에 흐르는 두 곡의 팝송과 주제가격인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보다는 구스타브의 스코어다. “결코 음악이 주도적인 영화가 아님에도 말미의 두 곡의 주제곡만으로도 기꺼이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영화의 전체 주제를 완벽하게 표현하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주요장면을 타고 흐르는 타이틀테마를 위시한 기타연주곡들은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외로운가를 일깨울 만큼 영화의 지향을 빈틈없이 받들어준다. 은은하고 서정적이다. 하지만 구슬프다. 음악도 성공적이라는 평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슴 시리도록 쓸쓸하면서도 뭉클한 감동과 위안을 주는 음악”(고영탁 음악평론가)
스코어뿐 아니라 삽입된 노래들도 연장선상에 있다. 역시 구스타브 산타올라야가 작곡한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에도 비애감이 퍼져있다. 엔드 크레딧을 흐르는 2곡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He was a friend of mine'과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의 'The maker makes' 역시 읊조림이 우수로 가득하다. 작품의 질은 질료(質料)와 무관하게 성취될 수 있음을 설교한다. 간만에 그리움, 고독, 처연함을 내재화한 음악을 듣는다.
“지난 몇년간 헐리우드에서 주목받는, 그리고 최근 여러 음악상을 받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Gustavo Santaolalla. 그는 단조로운 음색으로 정말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있다.”(방준석 영화음악감독)
● 공동 15위.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0) - 9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만큼이나 멋진 팀웍을 자랑하는 팀 버튼(Tim Burton)과 대니 엘프만(Danny Elfman), 그들이 <배트맨>의 빅 히트 이후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또 하나의 흥행작이다. 1990년에 공개된 이 영화는 팀 버튼 감독 특유의 냉소와 풍자적 감각을 동화 같은 희비극적 러브스토리로 엮어 은막 위에 펼쳐냈다.
핼쑥한 피부에 뚱하면서도 슬픈 표정으로 연민을 자아내는 가위손 에드워드(조니 뎁 분)의 미용기술과 조경예술이 전설에나 나올 법한 동화적인 공간미와 함께 '이야'하는 탄성을 절로 내게 만든다. 그 환상적인 세계로 관객을 안내하는 건 바로 대니 엘프만의 음악이다. 팀 버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미와 비극 속에 핀 낭만적 로맨스가 스타일리시하게 묘사된 그 곳으로 음악은 우리를 데려간다. “제가 고른 OST중에 유일하게 오리지널 스코어만으로 된 음반입니다. 영화음악에 별다른 일가견이 있지 않지만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여기 데니 앨프만의 음악은 거의 모든 OST를 좋아합니다. <가위손>의 음악은 얼핏 들으면 디즈니가 싶을 정도로 대중적이지만 그 서늘한 아름다움은 디즈니식 과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가위손>보다는 배트맨OST를 훨씬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데이빗 린치와 안젤로 바달라멘티는 없는거죠...)”(한재희 MBC프로듀서)
엘프만의 음악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한 감정, 동화적인 선율, 환상적인 코러스가 한 데 어우러져 귀에 와 닿는 순간 영감을 주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우우우”하는 하이톤의 합창과 아름답지만 슬픈 3박자 왈츠, 조니 뎁의 불행한 운명을 암시하듯 저음을 가르는 현과 냉정한 음색의 목관악기, 영롱한 벨소리가 잔잔하게 조화를 이루다 점점 고조되는 오케스트레이션. 유명한 테마선율을 통해 우리는 기이하고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러브로망의 스페이스로 날아간다. 에드워드가 가위손으로 킴 복스(위노나 라이더)의 조각상을 만들 때, 눈처럼 흩날리는 얼음 조각을 맞으며 춤을 추는 킴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쓸쓸한 합창과 교향악의 앙상블 '아이스 댄스'(Ice dance)는 희비극적인 로맨스의 주제를 담은 메인테마이자 사운드트랙의 백미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상에는 역시 대니 앨프만의 음악입니다. 더 이상 덧붙일 필요가 없는 작품이죠. ^^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와 킴의 이야기를 하늘을 뒤덮는 얼음조각이 되어 앨프만의 테마로 변주되죠.”(신지혜 CBS아나운서) 영국 팝 보컬의 살아있는 전설 탐 존스(Tome Jones)가 부른 영화의 상징적노래 'With these hands' 또한 빠뜨릴 수 없는 트랙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오직 한 사람, 대니 엘프만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영화음악이다.
<사랑과 영혼>(Ghost, 1990) - 9표
영화의 한 장면에 삽입된 단 하나의 노래가 작품의 영속성을 규정지은 걸작이 <사랑과 영혼>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강성률 영화평론가) 1990년 개봉과 함께 전미 흥행 톱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여성관객들을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고스트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기도 한 영화. 다소 황당한 이 공상과학 판타지 러브스토리로 여배우 데미 무어(Demi Moore)가 할리우드의 특급여배우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성공한 젊은 금융 투자가 샘(패트릭 스웨이지)과 그의 연인 몰리(데미 무어)의 사랑, 친구 칼의 음모로 유령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샘, 그리고 패트릭의 원한을 풀어주고 데미와 영적으로 재회시켜주는 점성술사 오다매이(우피 골드버그). 이 네 명이 이끌어 가는 사랑, 액션, 스릴, 서스펜스, 코미디 그리고 초자연적 영매현상이 스토리를 관통한다. “대중적 장르로서의 로맨스의 기능을 극대화시킨 센티멘털리즘”(강유정 영화평론가) 그에 어울리게 어둡고 속도감 있으면서도 사랑스럽고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스코어를 입힌 작곡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부터 <인도로 가는 길>(1984)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걸작들과 함께 했으며 무려 1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소화해낸 범접불허의 영화음악 장인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다.
<사랑과 영혼>은 바로 전작인 <죽은 시인의 사회>(1989)와 더불어 한국 팬들로 하여금 자르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서게 한 작품이다. 여기서 모리스는 <닥터 지바고>의 사랑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러브 테마와 <위험한 정사>의 서스펜스와 스릴러를 가미한 하드고어적인 테마를 영상에 적절히 투영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추억의 명화로 만든 건 샘과 몰리의 러브 테마임은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이비 심령술사 오다매이의 몸을 빌려 잠시지만 재회의 포옹과 키스를 나누며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에 맞춰 감회의 스텝을 밟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사랑과 열정의 도자기를 빚는 명 러브신과 함께 이후 수많은 아류를 양산할 만큼 영원불멸의 잔영을 남겼다. 팝 명곡과 영상의 절묘한 조화가 만들어낸 감동의 명장면. 이 삽입곡은 그해 싱글차트에 재등장해 13위(1965년 4위)까지 오르며 명가(名歌)의 진가를 재 입증 받았다.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 - 9표
상품성과 작품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워킹 타이틀 필름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작심하고 내놓은 야심작인 만큼, 영화의 사운드트랙 역시 상업성과 음악성을 적절히 안배한 수려한 구성력과, 이전영화에서의 음악이 그랬듯 캐릭터와 상황에 맞춰 폐부를 찌르는 내러티브적 대중음악의 삽입이 돋보인다.
“슬픔과 감동, 유머로 점철된 하나의 휴먼 드라마가 이 한편의 ost에 담겨있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크리스마스 시즌, '나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성을 무너뜨릴 넘버원 송이자 영화 리스트이다.”(이즘 조이슬)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 노라 존스, 팝 로커 켈리 클락슨, 1971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영국신예 다이도 등 주로 여성뮤지션들을 주축으로 듣기 편한 감성적 스타일의 팝음악들이 영화의 감정선 위로 눈처럼 내린다. 사랑과 인생의 양면성을 관조와 성찰로 노래하는 'Both sides now'(여류작가 조니 미첼 작곡)를 예외로 둔다면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우의 토박이 브릿 팝 밴드 텍사스와 영국의 틴 팝 트리오 슈가베이브스까지 사랑타령 일색. 애끓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비치 보이스의 히트 싱글 '신만이 아시네.'(God only knows)와 만인의 감성에서 사랑의 힘과 가치를 강조한 비틀즈의 넘버 원 싱글 '오직 사랑뿐'(All you need is love) 또한 성탄절 연인들에게 '러브'를 실어 나른다.
영화의 출연진만큼이나 화려한 영, 미 출신 가수들이 합작해 낸 초호화 버라이어티 로맨틱 뮤지컬 러브레터. 영화의 오프닝 송의 노래제목마따나 '온 누리에 크리스마스'(Christmas All Around),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게 만드는 음악들로 충만하다. “이 영화 덕분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도화지와 매직펜이 팔려 나가지 않았을까싶다. 너무나 잔잔하고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들이 음악과 잘 버무려져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 덕분에 Wet Wet Wet의 'Love Is All Around'와 Beatles의 'All You Need Is Love'의 가치는 다시 빛을 발했고, 아마 판매고도 올라갔을 것이다”(성우진 음악평론가)
-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하고도 사랑스러운 사운드트랙.”(고영탁 음악평론가)
● 공동 18위.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1998) - 8표
감독과 주연을 도맡은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는 이 영화에서 그 특유의 코믹한 풍자적 연기로 홀로코스트(Holocaust)에 대한 통념을 비튼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제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상황에서도 기발한 재치를 발휘해 아들에게 '이건 하나의 게임'일 뿐이라고 천진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 임기응변에 능한 수다맨에 천생 장난꾸러기인 그로 인해 우리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탈하고 낙천적인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의 시각과 사운드트랙이 맞물려 돌아가듯 니콜라 피오바니(Nicola Piovani)가 작곡한 음악 또한 경쾌하고 수수한 분위기에서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가며 드라마의 극적인 양면성을 강조한다. “니콜라 피오바니의 정말 아름다운 선율인 메인테마와 그 테마를 장면에 맞게 편곡한 스코어들은 정말 대단한 느낌이다. 하나의 멜로디가 이렇게까지 기쁨과 슬픔, 아픔을 모두 표현하는 경우는 처음이다.”(박기헌 영화음악감독) 간결하고 소박한 두 개의 테마를 표준으로 영상과 스토리의 흐름에 적합한 분위기로 변주하고 복주해 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미묘한 페이소스가 우리의 마음을 움켜쥔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 1995)의 작곡가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와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작풍을 닮은 유러피언 심포니사운드 속에서 희비극적인 낭만의 정취가 느껴지는 사운드스코어. 그해 아카데미는 외국어영화상과 남우주연상을 안겨줘 베니니를 기뻐 날뛰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그의 이미지를 오선지에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음악에도 오스카트로피를 선사했다. “슬프지만 웃어야하는 내용을 니꼴라 삐오바니는 음악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냈다”안재필 EBS라디오작가)
<장화, 홍련>(2003) - 8표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을 모티브로 만들어 2003년 여름 화제가 된 공포영화다. 선악이 모호한 가족관계에 도사린 결말을 예측불허의 공포와 미스터리로 그려낸다. 다른 공포영화와의 차별화는 다름 아닌 음악. 아름다운 슬픔과 서정적인 애절함의 정서가 테마음악을 타고 영상의 분위기를 조율한다. “이병우의 음악은 창백하면서도 구슬픈 두 원혼의 청아한 느낌을 손에 잡힐 듯 실어 나른다. 공포 영화이지만 이 ost는 처절하게 아름다워서 슬프기까지 하다. 높디 높은 파란 하늘에서 지상으로 몸을 낮춘 마른 꽃의 이미지, 이병우의 <장화 홍련>이다.”(심영섭 영화평론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이병우는 두 개의 테마를 상황에 따라 편곡해 들려준다. 기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호른 등의 관현악협주로 구성된 음악은 단조만을 사용해 시종 음울하면서도 3박자 왈츠의 서정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장식해 비극적 스토리에 색다른 공포감을 선사했다. “정서를 담은 미장센으로서의 음악”(강유정 영화평론가)
- “공포영화의 스산한 느낌과 자매애의 비극적 정조를 잘 구현함.”(김시무 영화평론가)
-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감독 장병우의 작품. 슬픈 듯 경쾌한 느낌(돌이킬 수 없는 걸음)”(건국대 영화동아리 햇살)
이태리출신의 작곡가 피노 도나지오(Pino Donaggio)가 작곡한 고전호러무비 <캐리>(Carrie)의 영화음악을 개념적으로 뒤늦게 답습한 전례로 남을 것이다. 아름답고 고상한 대위적 선율이 의외의 서스펜스와 고딕적 호러의 위압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단순하지만 유려한 하나의 테마를 축으로 폭넓게 확장하고 변주해나가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법이 느껴지는 매혹적 주제선율의 영화음악. “이병우 감독의 작품 중에서 <장화, 홍련>은 단연 눈에 뜨입니다. 영화가 가진 강렬한 색감을 보완해주고 섬뜩한 동화를 완화시켜주며 자신 속에 이야기를 가둬버린 한 소녀를 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답게 음악으로 풀어내다니… 영화음악은 역시 한 영화를 위해 탄생하기에 오리지널 스코어가 상당히 중요한데, <장화, 홍련>의 음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수작이라 보여집니다.“(신지혜 CBS아나운서)
<라디오 스타>(2006) - 8표
최곤(박중훈 분)의 읍소하는 방송멘트와 함께 조용필의 1989년 히트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가 흘러나온다. 김밥을 팔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눈물을 삼키는' 박민수(안성기 분)는 방송을 들으며 목이 멘다. 아이도 울고 어른도 운다. 백 마디의 말보다 통속적인 대중가요(또는 한국 팝음악) 한 구절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소통수단이 되는지 극명히 전해지는 장면.
그 진하디 진한 통속성 속에 웃고 우는 동안 애청곡들이 줄을 잇는다. 재래적 서민의 정감에 소박하고도 감성적인 선율로 호소하는 방준석 음악감독의 사운드스코어가 드라마적인 감동의 흐름에 중심을 잡고 가지만, 아날로그적 소재와 배경, 버디무비의 성격이 적절히 혼합된 음악영화답게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노래들 또한 흘러간 우리가요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을 비롯해 그의 아들 신대철이 결성한 본격헤비메탈그룹 시나위, 1986년까지 가요대상을 독식하다시피 한 거인 조용필, 신중현에게 발탁돼 1970년대 최고의 도발적 여성(록적)가수로 김추자의 대표적 히트곡들이 흘러나와 라디오로 음악 듣던 재래시대의 낭만적 향수를 불러낸다.
지나친 향수주의를 막자는 의미에서 출연까지 시켜 요즘 청춘들에게 감초역할을 톡톡히 한 펑크록밴드 노 브레인(강원 영월 유일의 록밴드 이스트리버로 출연)의 '넌 내게 반했어'도 가히 압권이다. “그냥 노 브레인이 주류 영화에서 노는 게 신선했다.”(이무영 감독) 인터넷과 디지털음원으로 인해 구식매체로 전락한 라디오를 소재로 196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록의 역사를 간추려 보고 들을 수 있어 소중한 작품. “간추린 한국 록의 역사!”(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라디오에서는 한국 록발라드의 전형을 답습한 주제가 '비와 당신'(박중훈 노래/방준석 작곡)이 애청되었다. 사람냄새가 담긴 사연과 함께 소개되는 다세대음악 덕분에 온가족이 함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게 만드는 영화 속 음악, 음악 속 영화다. “소박하지만 늘 지켜봐주는 존재가 있기에 아름답습니다.”(정우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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