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쉬운 말로 화장실 갈 때 마음과 화장실 나올 때의 마음이 서로 다르다. 화장실 갈 적에는 생리적으로 배설해야 할 긴박한 상황이라 걸음걸이가 다급해지고 (화장실이 그렇게도 반갑고 필요해지고), 화장실 나올 적엔 용무도 끝나서 행보도 느긋해진다.(화장실도 이젠 별 볼일 없게 된다) 좀 문자를 쓴다면 여측이심(如厠二心)이라고나 할까.
폭염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에 길 가던 나그네들이 무더위를 참을 수 없어 잠시 쉬고 갈 곳을 찾다가 플라타너스 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짓고있는 것을 겨우 발견하고는 거기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길손들은 한참만에 땀이 가시고 피로가 회복되자 플라타너스 나무를 쳐다보면서 『거, 나무치고는 쓸 모 없이도 자랐군. 어쩌자고 기둥감으로 쓸만하게 훤칠하게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만 쓸데없이 길게 퍼졌담. 영 못생긴 나무로구나』하고 지껄였다.
그러자 플라타너스 나무는 『에끼, 이 은혜도 모르는 것들아. 당장 내 그늘 밑에서 그렇게 고맙게 햇볕과 무더위를 피해 땀을 식히고 난 후엔 그따위 배은망덕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하고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사람 마음의 간교함을 꼬집은 일화다. 아닌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처럼 측정하기 어렵고 간교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자기 눈앞에 가장 아쉽고 필요할 적엔 상대방에게 헐레벌떡 굽실거리며 갖가지 아양을 떨다가도 나중에 목적이 이뤄졌거나 쓸모가 없을 때는 언제 봤냐는 듯이 관심조차 없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을 뒷간 갈 때의 마음과 뒷간 다녀온 후의 마음을 대구(對句)시켜 얄팍하고 갈대처럼 쉬 변화하는 인간의 간사함을 재미있게 풍자한 속담이다.
은연중 재미있고 구구절절 깊은 해학이 스며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가시가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 이 속담의 부류에 드는 인간군(人間群)들이 우리주변에는 너무 흔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의리가 실종되고 도덕윤리가 땅에 떨어질수록 이 속담의 주인공들은 양산되기 마련일까.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아껴뒀던 돈을 친척이나 친구가 열흘만 쓰고 나서 갚아주겠다고 하며 애걸복걸해 빌려줬는데도 나중엔 갚지도 않으면서 돈 찾으러간 사람에게 되레 적반하장 큰 소리 치는 친척 친구들...
제주도내 맘씨 좋은 어느 교통업체 사장은 80년대 말 한 젊은이가 자주 찾아와 『스페어 운전사(예비 운전자)라도 좋으니 그저 채용만 해달라』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이 사람을 스페어로 채용했다. 1년 넘어서는 정식 운전자로 승진(?)시켜주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후 회사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이때 이 젊은이는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사장에게 여러가지 극언을 서슴치 않았다. 업무로 따지고 공격하는 것 까진 그렇다 손치더라도 심지어「쌍시옷」(ㅆ)나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사장에게 앞장서 대든 것이다. 심한 인격적인 모멸까지 받은 심장 약한 그 사장은 그저 『세상에 이럴 수가...』하며 졸도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회사를 헐값에 처분하고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뒷간 갈적 마음=뒷간 다녀온 후 마음>의 등식(等式)이 이뤄지는 그와 같은 인간들과는 밤새 술 마시고, 있는 것 거저 주며, 호형호제하고 함께 깊은 인생론(人生論)을 펼쳐봐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운명의 역전보다 한층 더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제군들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비열함이요, 과거의 혜택을 모르는 망은(忘恩)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일찍이 그의 저서 「회상록」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이중적 심성을 뒤늦게 간과하고서는 지난날을 후회하는 글을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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