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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 39주기 추모제전(追慕祭典) [서용선] |
불세출의 가수 배호 39주기 추모제전이 지난 2010년 11월 7일 낮12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지 배호의 묘에서 ‘카페 돌아온 배호’ 주관과 배호사랑연합회 후원(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으로 거행되었다.
이날 추모전에는 전국에서 배호를 사랑하는 팬들이 60여명이 함께하여 정경애 배호추모연합회 여성위원장과 돌아온 배호 카페가 준비한 제물과 음식으로 제례를 올렸고, 각계 인사들의 격려사와 배호 노래로 먼저가신 님에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이 자리에서 배호 유족 대표 정용호씨는 배호 의형을 추모하기 위해 함께하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하며 배호의 지나온 약력을 발표하였다.
“저희 의형인 배호는 본명이 배만금(아명 신웅, 예명 배호)입니다.
1942년 4월24일 중국 산동성 제남시 경7로 위15호에서 부친 독립투사 배국민과 모친 김금순 사이에 1남 1녀중 장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해방후인 1946년4월경부터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81번지에서 생활을 하였으며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서울 창신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55년 서울 영창학교(성동중 전신)1학년 1학기 마치고 부친 별세로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수료했습니다.
1956년8월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상경하여 막내 외삼촌 김광빈를 통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 음악에 입문하였으며 1958년 1년만에 드럼을 마스터하고 「김광빈 악단」에서 주로 연주를 하였습니다.
1960년 부평 미군부대 Camp Market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였다. 1963년 「김광빈 악단」및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 부르기 시작 김광빈 작편곡의 굳바이 등 최초로 취입하고 藝名을 裵湖로 짓고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64년 낙원동 Prince(프린스) 카바레에서 밴드 마스터로 Pick Up(픽업)되어「배호와 그 악단」이란 이름으로 12인조의 풀 밴드 구성하여 드럼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같은해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과 정성수 작사 김인배 작곡의 [황금의 눈] 등을 발표하였으며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 생활 시작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 등 10여곡 병상 취임 당시 노래의 여러 군데에서 가쁜 호흡으로 인하여 가사를 짧게 끊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1966년 가을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청량리 단칸방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중 신진 작곡가 배상태를 만나 그의 대표곡이자 최대 힛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취임하여 1967년 4월에 음반을 발표, 특색있는 음색과 신기의 호소력으로 전국 인기챠드를 휩쓸면서 정상의 인기가수로 부상하였습니다.
이어서 발표된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연속 힛트함으로써 인기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고 그해부터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수상 릴레이가 시작되어 1968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 라디오 등 인기 정상과 더불어 몸이 회복되면서 왕성한 가수활동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힛트곡 ‘안녕’ 및 주옥같은 번안곡 등 생애 최고로 활발한 활동과 노래를 발표하면서 본인이 내 생애 최고의 한해로 말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차지 하면서 가을부터 TBC, KBS, MBC 등 주요 가요 가수상을 휩쓸었습니다.
1969년 1월 아세아 레코드사 전속에서 신세기 레코드사 전속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무겁고 어두우면서도 가일층 성숙된 톤으로 ‘한목숨 다바쳐’ ․ ‘당신’ 등의 명곡을 남겼으며 공개방송, 업소출연,지방공연 등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 재발로 신한의원 입원중 12월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시에는 동료 가수(이상렬 등)의 등에 업혀 출연 청중들을 숙연하게 한 가운데 청중들로부터 쾌유를 비는 감격스러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1970년 5월부터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어 서울 시내 극장무대를 시작으로 다시 공연활을 시작 백영호 작곡의 ‘비내리는 명동’ 등 많은 곡을 취입하였고, 연말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에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고 관중을 향해 인사하는등 회복기미를 보였으나 동년 2월 문산 공연중 병세의 악화로 다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치료중에 그해 3월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대도 레코드사에서 자신의 힛트곡들을 녹음하였습니다.
그해 여름 그의 마지막 신곡으로 ‘0시의 이별’ ․ ‘마지막 잎새’ 등 을 취입하였고, 그해 10월 초까지 죽어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초인적인 의지로 극장 업소 등의 무대에 섰으며, 어떤 때에는 음악만 틀어 놓고 그대로 무대에서 서 있기도 하였다.
1971년 10월 20일 MBC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 이종환) 출연 후 감기 증세와 함께 신장염 악화 27일 신한의원 입원, 10월 30일 세브란스 병원 입원 이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메다가 11월 7일 더 이상 가망이 없어 퇴원하여 미아리 집으로 가던중 완전 의식불명 상태에서 그날 저녁 9시 45분경 자택에서 운명하였습니다.
그해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여 이곳 경기도 장흥소재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호님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장충단공원 등 님의 힛트곡 50여곡은 현재도 많은 팬들의 애창곡이되어 불려지고 있으며 4곳의 노래비와 옥관문화훈장 서훈, 그리고 님의 가요제등이 개최되는 등 활발한 추모사업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날 추모제 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앞 대흥역 부근에 위치한 ‘Cafe 돌아온 배호’에서 배호를 기리는 토론과 배호 노래로 추모의 열기가 밤 늦게까지 여운을 남겼다.
유족 대표 정용호씨는 강화군 교동도 출신으로 생전에 배호 어머니와 동생의 사실상 보호자로 병수발 부터 장례까지 마무리했으며 배호의 모든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유족이다.
현 독립유공자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헐버트박사의 정신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의형 배호를 기리는 기념관을 만들어 배호의 유품을 전시하고 의형의 예술혼을 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청소년에게 배호 노래의 정신과 역사성을 전하는 전당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정용호씨는 그간 강원도 주문진 등 전국 4곳에 추모비를 세웠고 다섯 번째 인천에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 서용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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