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회사 MTB 동호회 정기라이딩 날인데 성원이 되질 않았다. 지붕에 캐리어를 단 슈퍼돼지님은 항상 보헤미안으로서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 둘만의 정기라이딩을 살며시 서기산 정찰대의 스케줄에 끼워 넣어보자. 부랴 부랴 나만의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보았다. 강진 MTB 홈페이지 도로 정보를 참고하여 다음 위성지도에서 ‘나만의 길’을 억지로 대입시켜 만든 지도. 가이버님판 운장산 대동여지도에 미치지 못할지언정 나의 그것에는 고도가 표시되었다. 주요 임도의 고도(高度)와 랜드마크 간의 대략적인 거리. 비록 어설프지만 이 정보는 낯선 곳 처녀라이딩에 딱 좋다. 미리 안심을 할 수 있으므로.
항시 말로만 술 한잔 하자던 친구, 아침을 먹었던 보성 초입의 휴게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다. 푸훗~하는 서로의 웃음 뒤로, 우리들의 바쁘지 않은 일상은 서로에게 공개되었다. 강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선, 마당발 인맥때문에 향후 녹색 MTB당이 창당된다면 당수로 두발님이 임명될거란 농담과 슈퍼돼지님이 언급한 100억짜리 불상이 종교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이어지는 순간, 장흥에서 강진으로 이어지는 2번 국도가의 형형색색 들녘은 가히 찬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호주그룹 Air Supply의 신선한 화음이 마구 흥얼거려진다.
나이 대비 건장한 강진 청년(?)들은 강진의료원을 지나 농로(農路)에 다다르자 마구 속도를 올렸다. 강진과 여수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 마냥 속도는 30km/h를 가뿐히 넘는다. 아주 얕은 각도로 오르막을 이룬 농로에서부터 나는 이미 지쳐버렸다. 정신력으로 재무장을 하려는 차, 안장에서 죽일 놈의 삐걱거림이 시작된다. 아주 돌아버리겠다. 그렇게 십 여 킬로미터를 달리고 나서야 서기산은 시작된다.
처절히 약해진 다리의 힘과 안장의 이음으로 인해 본격적인 오르막에 다다르자 앞 드레일러는 1단으로 항복을 한다. 곧장 앞을 향해야 할 앞 바퀴가 좌우로 계속 춤을 춘다. 힘이 빠진게다. 물을 연거푸 마신다. 막 태어난 짐승이 어미의 젖꼭지를 빠는 것 마냥 누가 뭐래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쭈욱~쭉 빤다. 갑자기 이름 모를 동물이 눈 앞에 투영됨을 느끼자 정신이 차려지고, 이내 숲의 녹색 풀 내음을 음미하려 한다. 생각없는 동물이 되긴 싫은게다. 임도에 설치된 이십 여cm 폭의 모든 배수로에는 바퀴 충격을 최소화시키고자 철근 받침을 해 놓았는데 배려(配慮)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잠시 엉터리 대동여지도를 보니, 서기산 정상을 살짝 비켜선 임도는 최고 높이가 약 280여 미터이다. 자주 접하는 천성산을 감안하면 큰 고민 될 것 아니다. ○ 강진 - 서기산 임도 : 280M, 강진읍내 : 20M, 고도차 : 260M ○ 천성산 - 천성산 중턱 : 340M, 여도중학교 : 100M, 고도차 : 240M 이미 농로를 한참이나 지나왔고 그 곳의 고도 차이도 꽤 있을테니 천성산 생각하며 대충 올라도 될 터...
서산저수지를 다시 오른쪽으로 끼고 돌 무렵,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신다. 실은 기다림이 아니라 미르님이 잡석으로 이루어진 임도에서 미끄러졌다 한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인데... 미르. 미르는 용(龍)의 순 우리말이다. 얼굴에 작은 스크래치가 났으니 그야말로 용안(龍顔)에 상처를 입으셨다! 길이 너무 순탄하다 보니 사고가 생겼다는 미르님의 말대로 긴장을 단단히 하고 속도를 낮춰본다.(근데 내가 낼 속도나 있나?) 몇 개의 크고 작은 고개를 넘고 나니 어느덧 속도계가 30여 킬로미터를 찍을 무렵 아스팔트가 나타난다. 타르 냄새가 이렇게 좋았던가. 영암 월출산의 황홀경이 펼쳐지는 성전면이다. 지나왔던 임도를 생각해 보니, 맨 처음 서기산을 끼고 오르는 오르막은 길고 급하지만, 이후의 임도는 그 고도차가 크지 않으니 전혀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조금 지칠만 하면 내리막이고, 심심하다 싶으면 높지 않은 오르막으로 화답하고... 임도에서 이 십여 킬로미터를 보냈으니 고생은 다 한듯 싶다. 항상 지나면 쉬운게다.
우리네 시골풍경이 그대로인 직천면. 북으로 명산(名山)인 월출산이 감싸주고 강진만(灣)이 차분이 파고 든 배산임수의 땅. 추석을 맞아 외지 양반들 고향 찾아와 노래자랑이라도 했을만한 마을 회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이 일찌기 담배놀이를 했을법한 방앗간. 그리고 한 마을의 정체를 상징하는 당산나무. 이러한 우리의 마을들을 지나 상당리에 다다르니 머리 위로는 목포-광양간 고속국도의 큰 교각과 상판이 지나간다. 이번 루트의 마지막 고개도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200미터인 저 고개만 싸목싸목 지나면 될 터이다. 싸목싸목. 엊그제 뉴스를 보니 이 '싸목싸목'이란 단어가 순천음식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다고 한다. 여수의 브랜드는 뭘까? ... 오전에 살짝 흩뿌린 비는 아스팔트가 이미 삼켜버렸는지 도로가 잘 말라있다. 저멀리 청자도요지가 있는 강진만이 읍내 뒤로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줄곧 내리막. 신나게 비벼대니 속도계가 60km/h를 찍을듯 말듯. 갑자기 미르님의 용안이 생각나자 오른 손아귀에 힘이 가해진다. 2시간 50분의 허덕임 끝에 공설운동장에 닿았다. 강진대회 목표가 설정되는 순간이다. 나에겐... 2시간 35분이 10월 17일의 목표이다!
강진의 맛집, 둥지식당. 한정식이 좋다는 이 식당을 ‘언젠가는’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일 줄이야. 44km를 쉼없이 달렸는데 연거푸 마신 소맥 두잔이 그 갈증을 마무리 한다. 위 아래를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너무 마셔댄 탓일까. 추석에 고향집에 놔 둔 가방을 찾으러 들른 벌교. 아무 생각없이 벌교 시내를 들어설 무렵, “저 분이 터바인 엄니 아니신가?” 슈퍼돼지님의 말에 밖을 보니 진짜 울엄니. 한번도 울엄니를 본 적 없는 슈퍼돼지님의 초능력인가? 어쨌든 가방을 찾고 여수 초입에 오니 울엄니 전화하신다. “니 또 가방 놔두고 갔다.” 서기산을 함께 한 허리쌕을 내버려두고 왔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함께 하신 횐님들과 즐거운 시간 새록 새록 글만 봐도 생생하네요^^* -------------------------------------------------------------------------- 10월 정라 안내공지때 대회코스에 대한 참고할 만한 내용을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여수에서 슈퍼돼지님의 후한 뒷풀이 감사드립니다^^*
내리막길이 잔 자갈로 덮여 있어서 시합 당일날 매우 조심해야 할 듯 합니다.
본의 아니게 회원분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헬멧과 고글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강진분들 덕분에 잘 먹고 구경 잘 하고 왔습니다.
함께 하신 횐님들과 즐거운 시간 새록 새록 글만 봐도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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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정라 안내공지때 대회코스에 대한 참고할 만한 내용을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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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수에서 슈퍼돼지님의 후한 뒷풀이 감사드립니다^^*
여수의 브랜드는 "시나브로"
그 난리를 치고도 모자라 엄청 마시고 토해내듯
하루의 초가을의 모든 청취를 꾸역꾸역 토해내는걸 보니 역시 우리터바인은 터보----
가방 찿아와야지.....
엄마보고 식혜 해놓으시라고 해!
여수 브랜드는 "싸무작 싸무작"
터보님의 말담과 저가 알고 계시는 분들을 전부다--ㅠㅠ
그리고 등치만큼이나 마당발 이라는것을 인정합니다, 이상! ^&^
뒷풀이는 도시탈출님께서 준비하셨는데 저에게 공을 돌리네요!
두발님 "만원에 행복"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하신 가이버님, 야촌님, 미르님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북으로 명산(名山)인 월출산이 감싸주고 강진만(灣)이 차분이 파고 든 배산임수의 땅."
그곳 10월이 기대됩니다.
맛갈스럽기도 하려니와 정보로도 아주 유익했습니다.
터바인님 필력이면 페이스북, 트위터 팔로잉(팬) 많이 늘겠네요^^ 전 요즘도 트윗에 넘이 써놓은 글 읽느라 바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