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업은 당나귀! 요12:12-19 종려주일 낮. 2023.0402. 주일 낮.
오늘은 4월 첫째 주일이자, 종려주일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홍걸포 집사님 일행들이 먼 서울에서 와 은혜로운 찬앙 연주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 이후 고난주간을 보내게 되는데, 제목과 같이 예수님을 업은 나귀를 생각하시면서
과연 내가 예수님을 업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에 멋진 승용차가 아닌, 마차도 아닌,
어린 나귀의 등에 업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입성은 스가랴 선지자에 의하여 예언된 일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는 이미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무리들로 붐벼대고 있었습니다.
그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려고 성문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자연스럽게 입으로 찬양을 외칩니다.
“호산나 찬송 하리 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렇게 외치는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마21:2=맞은 편 마을~.~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누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하라!.
눅19:30=맞은 편 마을~.~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 풀어 끌고 오라,,,,,
누가 물으면 주가 쓰겠다하라...
마태와 누가=매인 나귀를 ~.~요한은 그 나귀의 등에 업히심 예수님을......말없이 순종하는 당나귀
새깨 나귀인데 말입니다. 이런 나귀 이기를 바랍니다.
1. 나귀 새끼 등에 업힌 예수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은 어느 개선장군에 못지않은
장관이요 환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선장군보다 더 크고 위대한 승리의 영광을 안고 입성 하실 수 있지만,
나귀에 업히신 것은 바로 그의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귀 새끼에 업히신 것은?
1)겸손한 왕 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겸손하다는 히브리말 ‘아니’=곤고하다, 초라하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새끼에 업히신 것은 그의 겸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왕으로써 곤고를 겪으셨으며 가난하고 초라하셨습니다.
그는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낮추시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빌2:6-10).
그는 말구유에 누우 실 정도로 낮 추워 오셨습니다(눅2:7)
그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 지시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고후8:9).
그는 원수의 무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기 까지 겸손하셨습니다(눅23:24).
그는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상에서 까지 못 박은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23:34)
그는 십자가상에서까지 강도들을 용서해 주십니다(눅23:42)
예수님이 나귀 새끼에 업히신 것은?
2)평화의 왕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 당시 따르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원수를 무찌르기 위하여 칼을 가지고
입성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눅2:14).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①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②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이 나귀 새끼 등에 업히신 것은?
3)그에 대하여 예언된 말씀의 성취입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이 같은 입성에 대하여 그 뜻을 잘 모르고 있었지만
나중에 이 일이 스가랴가 예언 한 예언의 성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 호산나를 외친 무리들 예루살렘에 있었던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들고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호산나 찬송 하리 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면서 외칩니다.
‘호산나’는 히브리어 ‘호시아나’= 헬라어 음역입니다.
이 말은 ‘구원하소서’ ‘이제 구원하소서,
우리들을 구원하소서’란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갈채,
또는 찬양의 송영으로 사용되어 온 말입니다.
몰려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친 것은 다만 유월절 행사 때문에 습관적으로 부른 찬송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를 이 찬송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그를 맞이하는 태도에서 나온 고백일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조국이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을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에 의하여 자유 함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해 왔습니다.
그들은 이번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외친 것입니다.
몰려든 사람들은 엄청난 소문을 듣고 기대감에 몰려온 것입니다.
무슨 소문에 놀라 몰려왔을까요?
수많은 소문들이 있었습니다.
①어린 아이의 도시락 하나로 ‘오병이어’5천명이 먹고 남은 기적의 소문입니다.
②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소문도 들었습니다.
④각색 병자를 치료하시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의 눈이 열렸고, 귀먹은 자의 귀가 열렸고,
혈류 증 여인이 옷자락 만지자 나았고,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살았고, 문둥이가 치료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 예수님을 보기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요즈음 무슨 소문?
2월8일 켄터키 주 에즈베리대학교에서 폭발한 성령은 3월 말까지 있었던 성령 폭발!
3월 말경 우크라이나 하늘에 나타난 주님의 손 기도의 손?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손이였습니다.
30여년 전에는 미국의 하늘에 하나님의 눈이 떠 있었습니다.
그러가 하면 3월 3일 국발뉴스에서는 근무시간만 아니면 동선연애 해도 구속하지 않겠다고 ~~
이런 문제의 요지경 세상에서 이번 벗꽃은 말발했는데, 여기 이동네에 핀 벗꽃을 보니 가지에서만
핀게 아니라 몸통에서도 피었더군요....요15:1~가지에서 열매가 맺어야 되는데,
주님이 오실 때 되니 몸에서 꽃이 피는 군요....성화의 몸이 될 날이 가까운 듯 합니다.
그런 그가 이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다니 이는 분명
희망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몹시 흥분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인가의 입에서 ‘호산나’의 찬송이 나오자,
하나 같이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암송 시를 다 함께 합창할 정도 였습니다.
사실 이들의 이 같은 환영은 적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환호는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이라는 판세로 뒤집어진 것입니다.
나사로 까지 같이 잡아 죽이여야 된다는 밀담이 오고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참으로 연약하기에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간사함을 봐야하고, 이것이 말세 때에 나나날 현상임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잡히고 빌라도의 재판에서 십자가 사형언도를 받습니다.
결국 골고다의 사형장에서 무력하게 죽어간 것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십니다.
만약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로마의 손에서 구원하심이 목적이셨다면
그 일은 그의 생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표적으로 자기를 믿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에 의하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에서 예수님을 맞이한 무리들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표적 때문에 모인 무리들이었습니다.
또 정치적 메시야로 보고 모인 무리로 두 무리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정치적인 메시야로 바라본 자의 눈에는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개선의 가치로 예수님의 입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그들을 선동하거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부르짖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모여든 군중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실망은 빌라도의 판결때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라는 말로 충분히 입증이 됩니다.
예수님이 과연 메시야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준 실망이 폭발하는 모습을 잘 봐야합니다.
이러하듯 많은 무리들은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대제사장의 선동을 받아 예수님 대신"바라바"를
요구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마27:20-24).
이런 일은 몇일만에 십자가에 못을 박아 사형을 시키라는 소로로 바꾸어집니다.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행1:10~11=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서있는 자들을 향하여, ~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다시오실 주님 약속을 믿고 마음에 성령님 모셔 좋은 성전 이루어 입으로 나같은 죄인이 주님을
믿음으로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은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향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우리의 반석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답이되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14.03.06.합비교회, 20230402인흥)